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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132화 (132/269)

132화 결과로 보여 주면 돼. (6)

지셀의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평생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지만, 막상 죽기도 두려우신 거겠죠. 뭐, 잘하신 겁니다. 이도 저도 아닌 그런 마음으로는 칼을 휘둘러 봐야 겉가죽만 조금 베이고 말 테니 말입니다.”

“……입만 산 돌팔이 새끼.”

두 사람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집사는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고 분노를 토했다.

“말씀이 과하십니다!”

지셀은 그를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정말 죽을 거 같아서 걱정되십니까?”

“그만하시오! 남작!”

“스스로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시겠다면 제가 대신 정해 드리지요. 어차피 죽을 거라면, 차라리 마지막 희망을 품고 치료를 받다가 죽으십시오.”

“펜리스 남작!”

분위기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집사와 기사들이 흉흉한 기세를 내뿜었다.

지셀의 측근들도 그에 대응하듯 기세를 내뿜으며 대치하기 시작했다.

그때,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브랜포드 후작과 기사단장 톨레오가 나타났다.

“후작님!”

집사는 반색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브랜포드 후작을 찾아가 지셀을 추천한 건 자신의 실수였다고 사죄의 말을 올렸다.

아가씨의 생명이 위험할지도 모르니 치료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 말에 브랜포드 후작도 직접 상황을 확인하러 치료 시간에 맞춰 찾아온 것이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대체 이게 무슨 꼴이냐. 마녀사냥이라도 하는 중인가?”

로잘린은 머리가 산발이 되고, 옷 앞섶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침대에도 피가 범벅이었으니 그렇게 느낄 만도 했다.

“아버지…….”

로잘린은 브랜포드 후작을 보고도 전혀 반가워하지 않았다.

자신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멋대로 치료를 진행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귀족가의 일원으로서 가주의 명에 따라야 한다고 해도, 머리끝까지 솟아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딸이 피 토하는 걸 구경이라도 하러 오셨나요? 아니면 시집을 보내야 할 상품이 멀쩡한지 확인이라도 하러 오셨나요?”

단검까지 들고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하는 그녀를 보고 모두가 숨을 들이켰다.

“아, 아가씨! 가주님께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집사가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예전에는 그렇게 상냥하고 품격 높았던 아가씨가 이 지경이 되다니!

병에 걸린 뒤로 성격이 날카로워진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저 지셀이란 놈 때문에 더 심해진 거 같았다.

로잘린의 사나운 말투에 브랜포드 후작은 눈썹을 살짝 찡그리고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집사 말대로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이는군. 위험한 거 같으니 원한다면 치료를 중단하겠다.”

충격적인 선언에 로잘린은 당황해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지셀은 겉으로 티 나지 않게 살짝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이제 겨우 독심을 갖췄는데 치료를 중단해도 된다니.

가뜩이나 치료에 반발하던 로잘린이 그 제안을 거부할 리가 없었다.

‘여기까지인가?’

본인이 강한 의지로 버티지 않으면 이 치료는 버틸 수가 없다.

전생의 그녀는 죽음의 공포와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할 만큼 단단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필요한 건 다른 쪽에서 알아봐야겠군.’

브랜포드 후작에게 부탁할 게 몇 가지 있었지만 이제 글렀다. 다른 기회나 방법을 노려 볼 수밖에 없다.

그때, 침묵을 지키던 로잘린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제가 그만두면 펜리스 남작님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브랜포드 후작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네가 거부했으니 그를 구속할 명분은 없다. 명분은 펜리스 남작에게 있으니 그는 그대로 돌아갈 것이다.”

그 말에 집사는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셀의 측근들은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후작씩이나 되는 사람이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을 번복하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로잘린은 가면을 붙잡고 헛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들 자기 멋대로…… 그렇게 날 모욕하고 고통스럽게 했는데 멀쩡히 떠난다고?”

웃는지 우는지 모르게 어깨를 들썩거리던 그녀는 고개를 들고 지셀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당신, 정말 마음에 안 들어. 뭐든 다 안다는 양 지껄이는 것도, 당신만이 옳다는 듯 밀어붙이는 것도.”

회귀했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 지셀은 그저 침묵할 뿐이었다.

“이 엉터리 치료도 믿을 수가 없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게 어떻게 치료야?”

“어차피 끝난 일 아닙니까. 믿지 못하겠다 하셔도, 이제 와서 그런 말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 말에 로잘린은 이를 갈며 분노를 토해 냈다.

“끝내? 시작은 아버지와 네놈이 멋대로 해 놓고, 누구 마음대로 끝내! 내가 하라면 하고 그만하자면 그만하는 인형처럼 보여?”

‘응?’

챙그랑.

그녀는 바닥으로 단검을 집어 던지고 브랜포드 후작을 바라보며 말했다.

“치료는 계속할 거예요.”

“아가씨! 정말 죽을 수도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갑작스럽게 태세를 전환한 로잘린의 발언에 집사가 깜짝 놀랐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하기 싫다더니 갑자기 왜 저런단 말인가?

그녀는 사람들의 반응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치료에 실패하면 저 돌팔이는 당연히 가만두지 않으시겠죠? 얼마나 고통스럽게 죽일지는 제가 정할 거예요.”

브랜포드 후작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네 뜻대로 해라.”

“제가 치료를 받다가 죽으면 이자를 갈기갈기 찢어서 죽여 주세요.”

“그렇게 하마.”

살벌한 발언에 모두가 마른침을 삼켰다.

오직 지셀만이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꽉 깨물었다.

‘좋아, 좋아. 독이 아주 바짝 올랐네? 누구 딸인지 잊고 있었어.’

아주 좋은 반전이다.

지금 로잘린의 머릿속에서 치료 따위는 이미 지워진 지 오래였다.

지셀이 실패할 걸 확신하고, 어떻게든 그를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이겠다는 증오와 분노만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고통을 버티기에는 이런 독심보다 더 좋은 게 없다.

로잘린은 눈을 번뜩이며 지셀을 바라보았다.

“열흘 정도 남았다고 했지? 그것만 버티면 네놈을 반드시 죽여 버릴 거다.”

“그때까지 아가씨가 살아 계셔야 그 모습을 볼 수 있겠군요. 이제 버텨 볼 의지가 좀 생겼습니까?”

“당신, 절대 곱게는 못 죽을 거야. 내가 장담할게.”

지셀은 어깨를 으쓱이며 미소 지었다.

“실패한다면야, 얼마든지 받아 드리죠. 그 눈빛 보기 좋군요.”

여유를 잃지 않는 그를 보고 로잘린은 코웃음을 치며 집사에게 말했다.

“치료할 때마다 밧줄로 내 팔과 다리를 침대에 단단히 묶어.”

“네?”

“그리고 입에 물 재갈도 준비해 놔.”

“꼭 그렇게까지…….”

“그럼 내가 치료받을 때마다 쟤들한테 붙잡혀서 미친년처럼 발버둥 쳐야겠어?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아, 알겠습니다.”

집사는 당혹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지셀은 내심 감탄했다.

‘독기가 대단하네. 사자의 자식은 역시 사자일 수밖에 없다더니. 아, 그러고 보니 브랜포드 후작가의 문장도 사자였지. 잘 어울리긴 하네.’

아무리 분노에 휩싸인 상태여도 실제로 목숨을 걸기는 쉽지 않다.

특히나 지금처럼 도망칠 구석이 있는 상태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로잘린은 보통 강단이 아니었다. 일단 독을 품고 마음을 먹고 나서는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가 다시 지셀을 노려보았다.

“어디 우리 한번 끝까지 가 보자고.”

치료가 끝나면 반드시 지셀을 죽이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물론 그런 모습에 겁먹을 지셀이 아니다.

“좋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할 테니 아가씨도 잘 따라와 주셨으면 합니다. 이제 마음 편하게 치료에 집중할 수 있겠군요.”

그는 오히려 잘 됐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 * *

“끄으으윽!”

그날 이후로 로잘린은 정말 잘 버텨 주었다.

초반에 그녀를 우습게 본 걸 사과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로잘린의 의지력 덕분에 치료가 조금 편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남작님! 좀 살살 하시면 안 됩니까?”

“남작님! 정말 다른 방법은 없는 겁니까?”

“남작님! 아가씨의 얼굴 상태가 더 나빠지는 거 같습니다!”

‘아나, 진짜 이 영감이…….’

가뜩이나 마나로 치료하는 과정에 신경 쓸 게 많아 골머리를 썩이는 지셀에게 집사는 매일 같이 잔소리를 해 댔다.

그러기를 일주일째, 신경이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진 지셀이 참다못해 외쳤다.

“다 나가.”

“네?”

“다 나가라고. 집중이 안 되니까.”

집사가 발끈하며 대답했다.

“아니, 그래도 우리가 지키고 있어야 갑자기 문제가 생겼을 때 대응을…….”

“그냥 나가. 다 엎어 버리기 전에.”

지셀은 같잖은 예의는 때려치우고 슬슬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집사와 기사들이 그럴 수 없다고 반발했지만, 로잘린이 깔끔하게 정리했다.

“다들 그렇게 해. 나중에 이걸로 핑계 대면 재미없으니까.”

시중을 들던 사용인들과 지셀의 측근들까지 모두 쫓겨났다.

그녀와 지셀만 남은 방 안에서 목숨을 건 치료가 이어졌다.

“끄으으윽!”

‘젠장, 조금만 더!’

로잘린은 매일 같이 속이 진탕 되어 피를 토하기 일쑤였다.

지옥 같은 고통을 겪는 로잘린에 비할 바는 못 되나, 심력을 바닥까지 끌어다 쓰는 지셀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조금 더 무리해서라도 빠르게 뚫어야겠어.’

본래도 약했던 그녀의 몸은 치료가 이어질수록 점점 더 약해지고 있었고, 막힌 지점을 하나하나 뚫는 방식은 너무나도 더뎠다.

‘죽지만 않으면 되잖아?’

죽으면 안 된다는 건 바꿔 말하면, 정말 죽기 직전까지 가도 살아만 있으면 된다는 뜻이었다.

어차피 시간 내에 성공하지 못하면 자신도 죽고, 치료를 끝까지 마치지 못한 로잘린도 죽는다.

‘힘드네. 하긴, 언제는 쉬운 일이 있었나.’

지셀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단숨에 뚫는다.’

그는 그나마 제일 상태가 나은 영역을 확인하고 막힌 기운을 거침없이 찢어발겨 버렸다.

투둑! 투두두둑!

로잘린의 마나 로드가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죄다 터져 나갔다.

“끄르륵!”

그녀의 눈이 뒤집히며 재갈로 막힌 입에서 피가 벌컥벌컥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로잘린은 꿋꿋하게 버텼다.

지셀은 내심 감탄했다. 마나를 다루지도 못하는 여자가 이렇게까지 버티다니.

‘좋아, 성깔 하나는 인정하지.’

지셀은 더욱더 과감하게 마나를 움직이며 그녀의 몸속을 헤집었다.

“끄으으윽!”

서로의 목숨을 담보로 한 치료.

지셀은 봐주지 않고 그녀를 밀어붙였고 로잘린 또한 이를 악물며 버텨 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의 몰골은 점점 더 피폐해져 갔다.

그리고 후작과 약속했던 보름째 되는 날.

로잘린은 악착같이 버텨 결국 살아남았다.

지셀이 손을 떼자마자 그녀는 희열 어린 미소를 지었다.

“넌 이제 죽었어…….”

그러고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후우…….”

한숨을 내쉰 지셀은 기절한 그녀의 얼굴을 닦고 다시 가면을 씌워 주었다.

그리고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마지막 날이 지나고…….

덜컥!

날이 밝자마자 브랜포드 후작과 기사들이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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