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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101화 (101/269)

101화 나랑 내기 한번 할까? (1)

“꺄울!”

클로드가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아니, 왜 때려요! 웬디, 뭐 해!”

클로드가 바닥에 엎어진 채 외쳤다.

호위라던 웬디는, 정작 벨린다가 공격하니 한 발도 움직이지 않았다.

클로드가 억울해하든 말든, 벨린다는 그에게 삿대질하며 크게 외쳤다.

“어디 감히 우리 도련님 땅에 그런 천박한 시설을 지으려고 해요!”

금이야 옥이야 돌봐 온 지셀이 처음으로 받은 영지다.

그런데 뭐? 도박장?

지셀의 전 가정 교사로서 그런 시설을 짓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저거 봐요! 저거 완전히 머리가 도박에 절었다니까요? 총관 자리에 오르자마자 도박장부터 차리려고 하잖아요!”

“아니, 아니! 잠깐 내 말 좀 들어 봐요! 내가 도박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고요! 끊었다니까?”

“끊기는 뭘 끊어! 끊었다는 사람 입에서 도박장 차리자는 얘기부터 나와? 차라리 개가 똥을 끊겠다!”

벨린다의 말에 가신들의 얼굴에도 의심이 서렸다.

클로드가 다급하게 손을 휘저었다.

“그게 아니라! 들어들 봐요. 이곳을 오스턴처럼 유흥 도시로 만드는 겁니다. 열심히 홍보하면 귀족들이 몰려와서 돈을 엄청나게 쓰고 갈 거라고요!”

“…….”

여전히 미심쩍은 얼굴이었지만, 벨린다도 그 말에는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오스턴에는 놀러 오는 귀족들이 많았다. 그 덕분에 오스턴 남작도 떼돈을 벌었지 않은가.

사람들이 솔깃해하는 듯하자 클로드는 신이 나서 빠르게 말했다.

“좋게 말하면 문화생활 도시이자 관광지란 말이죠. 영지민들도 손님을 응대하면서 돈을 벌 수 있을 거고요.”

“나름대로 그럴듯하네요.”

벨린다가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잘만 하면 돈을 쓸어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도박이 문화생활이란 건 동의할 수가 없지만.

“알아보니 루타니아 왕국에는 그런 도시가 없습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더 크고 화려하게 계획도시로 만드는 겁니다. 오스턴은 자연스럽게 커진 도시다 보니 좀 조잡한 면이 있었죠.”

오스턴도 원래는 펜리스와 사정이 비슷했다.

특산품도, 자원도 없고 척박한 땅.

그 아무것도 없던 땅에 도박을 즐기던 사람들과 불법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알음알음 모여 우연히 발전한 것이다.

어떠한 정책도 없이 자연스럽게 성장한, 대륙에서도 유례가 없는 천박한 곳.

그곳이 바로 향락의 도시 오스턴이었다.

“귀족들은 점잔 빼는 척해도 사실 뒤에서는 언제나 놀 거리를 찾습니다. 귀족뿐만 아니라 용병들과 모험가들도 잔뜩 올 겁니다. 사람이 많이 드나들면 그만큼 돈도 많이 오가고, 정착하는 사람도 늘겠죠.”

클로드가 자신만만하게 내뱉었다.

처음에는 아연해하던 가신들도 일리가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론을 확보한 클로드가 지셀을 바라보았다.

“어떻습니까? 일단 도시 정비만 해 두면 이후에는 놀면서도 돈을 벌 수 있습니다. 돈이 복사가 된다고? 아, 그건 못 참지.”

잠자코 듣기만 하던 지셀이 픽 웃으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뭐, 재미있는 의견이었다. 나중에 작은 도시 하나 정도는 생각해 보지.”

“나중에라니, 그럼 지금은요?”

“당연한 걸 뭘 물어? 원래 계획대로 진행한다.”

“아니, 영주님! 돈을 쓸데없이 쓰지 말자니까요!”

다른 영주들이었다면 충분히 구미가 당길 만한 제안이었다.

룬스톤을 모두 쓴다면 오스턴 못지않은 도시를 만들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언젠가 왕국 최강의 공작가와 싸워야 하는 지셀에게는 그리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영지에 문제가 많은 건 나도 알아. 그중에서 지금 뭐가 제일 급하지?”

“당연히 죄다 문제긴 하지만……. 역시 가장 급한 문제는 식량입니다. 당장 지금도 먹을 게 없어서 사 오고 있으니까요. 계속 식량을 사다 먹을 수는 없잖습니까? 돈 떨어지면 다 굶을 텐데요.”

“식량이라……. 그렇지 않아도 생각해 둔 게 있는데 잘됐네. 식량은 내가 해결할 테니, 개간할 땅이나 확보해 놔.”

“아, 진짜…….”

클로드는 짜증 섞인 눈빛으로 지셀을 바라보았다.

땅이 척박해서 생산량을 늘릴 수 없다고 지금까지 설명했는데!

이 인간, 얘기를 제대로 듣긴 한 건가?

“저기, 영주님. 이 땅은 애초에 작물이 자랄 수 없는 땅이라고 계속 얘기했잖아요. 누가 와도 여긴 못 살려요. 농사의 신이라도 오지 않는 이상은……. 아니, 여신도 이 땅은 더럽다고 포기할걸요?”

“충분해. 내가 해결하도록 하지.”

클로드의 표정이 점점 불손해지기 시작했다.

“……영주님, 농사 지어 봤어요? 농법이나 뭐 그런 거 잘 아세요?”

“아니, 잘은 모르지.”

내내 싸움질만 해 댔으니 농사를 지어 봤을 리가 없다.

“……사실 농사의 신인 거예요? 출생의 비밀?”

“그럴 리가 있나.”

“그런데 대체 무슨 방법으로 식량 생산을 늘리시려고요? 다른 영주들은 뭐 하기 싫어서 안 하는 줄 아세요?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일단 돈부터 잔뜩 벌자고요!”

클로드가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밀어붙이자 지셀이 씨익 웃으며 답했다.

“너, 내가 그 문제 해결하면 어떻게 할래?”

“예?”

“나랑 내기 한번 할까? 내가 식량 생산을 늘릴 수 있는지 없는지.”

“하, 영주님이 무슨 수로요?”

“그건 알 거 없고. 어때? 내가 이기면 앞으로 찍소리 말고 시키는 대로 하는 걸로.”

클로드가 코웃음을 쳤다.

도박 전문가인 자신한테 감히 내기를 걸어오다니! 그것도 승부가 뻔한 내기를!

“돈도 안 건 내기가 무슨 내기입니까?”

“너 돈 없잖아. 아, 그러면 내가 이기면 10년간 무급 노예가 되는 걸로 하자. 먹여 주고 재워 주기는 할게. 대신 군소리 없이 뭐든 시키는 대로 해야겠지?”

지셀에게 2천5백 골드를 빚지기는 했지만, 클로드도 급여는 받는다.

어쨌든 개인 생활은 해야 하고 살다 보면 조금씩 소비하는 게 있기 마련이니까.

지면 그런 것들까지 다 포기하고 진짜 맨몸으로 구르라는 뜻이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짓던 클로드가 갑자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기간은요? 너무 길면 곤란한데.”

“넉넉하게 3개월.”

“……잘 못 들었슴다?”

클로드는 황당해서 입을 떡 벌렸다.

3년이 아니라 3개월 만에 결과를 보여 주겠다고?

지금은 한겨울이었다. 뭔가를 심어 봐야 싹이라도 나면 다행인 수준이다.

웃음을 꾹 참으며 클로드가 내기 조건을 확인했다.

“그럼, 제가 이기면요?”

“원하는 게 뭐지?”

클로드는 심장이 마구 뛰었지만, 최대한 티 내지 않고 점잔을 떨었다.

“글쎄요……. 아무래도 제가 영주님에게 빚을 진 게 있어서 제 입으로 말씀드리긴 좀 그런데. 아이참, 잘 아시면서.”

“그럼 5천 골드를 주지. 다시 안나를 만나러 가는 건 어때?”

5천 골드라는 말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놀랐다.

5천 골드면 클로드가 평생 놀고먹으면서 살 수 있는 돈이었다.

“아니, 또 이러시네! 하지 말아요!”

“영주님, 이건 너무……. 말도 안 되는 내기입니다.”

벨린다와 길리언이 급히 나서서 말렸다.

지셀에게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겠지만, 기간이 겨우 3개월이었다.

아무리 그라도 죽어 있는 땅을 기한 안에 살릴 수는 없을 터였다.

영주가 그런 불공정한 내기를 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어허, 지금 영주님께서 큰일을 하시겠다는데 방해하시는 겁니까? 다들 가만히 계시죠.”

클로드가 부러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뺀질뺀질한 그 모습에 벨린다가 벌컥 주변 사람들에게 화를 냈다.

“다들 뭐 해요? 영주님 안 말리고!”

그녀의 박력에 밀려 가신들이 하나둘씩 앞으로 나섰다.

“영주님, 무리한 내기입니다. 지금이라도 생각을 거두셔야 합니다.”

“총관의 말이 맞습니다. 이 영지는 대부분이 바위투성이에, 흙이 있어도 거칠고 메말라 작물이 제대로 자랄 수가 없습니다.”

다들 말리는 와중에도 카오르는 나설 기미도 없이 히죽거리고만 있었다.

그로서는 어느 쪽이 지든 재미있는 상황이었다.

벨린다가 노려보았지만, 카오르는 내가 말한들 저놈이 듣겠냐는 듯 어깨만 으쓱였다.

지셀은 말리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클로드를 보며 다시 물었다.

“할 거야, 말 거야? 쫄리면 뒈지시든가.”

“하!”

클로드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헛웃음을 내뱉었다.

‘왜 저렇게 자신만만하지? 분명 방법이 없는데.’

질 거라는 생각은 전혀 안 든다.

하지만 상대방이 너무 당당하니 기분이 찜찜했다.

나름대로 도박판에서 수년을 굴렀던 클로드는, 지셀의 태도가 불안을 감추려는 허세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진심으로 이길 자신이 있는 것이다.

‘뭘 믿는 거지. 3개월 안에 자랄 수 있는 작물이 뭐가 있더라?’

클로드는 오래전 아카데미에서 배웠던 지식들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냈다.

3개월 안에 자랄 수 있는 작물은커녕, 겨울에 잘 자라는 작물도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작물은 뭘 키우실 거예요? 역시 밀이죠? 뭐 먹지도 못하는 이상한 거 심어서 억지로 먹이시는 건 안 됩니다.”

“그럼, 밀이 최고지.”

클로드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됐다, 그러면 정말 방법이 없다. 밀이면 절대로 3개월 안에는 못 키워.’

클로드는 저절로 치솟는 입꼬리를 애써 눌렀다.

지셀이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따 놓은 당상이다.

‘내가 우리 영주님을 너무 과대평가한 건가? 밀을 어떻게 키우는지도 모르는 거 같은데. 아, 설마 내가 영주님 체면 생각해서 져 줄 거라 기대한 건가?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클로드는 지셀을 바라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아, 나 도박 끊었는데……. 콜.”

“좋아, 내기는 성립됐다. 여기 있는 모두가 증인이다. 내가 이기면 넌 10년 동안 무급으로 일한다. 내가 지면 5천 골드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거고.”

클로드는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다른 이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도대체 영주는 왜 저런 미친 내기를 한단 말인가?

벨린다는 지셀을 말리지도 못하고 이만 갈다가, 웬디를 바라보고 손으로 목을 스윽 그었다.

알아서 밤에 처리하라는 뜻이었다.

웬디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클로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유독 얄미운 목소리로 지셀에게 말했다.

“저기……. 그런데 말입니다. 이게 이겨도 신변 보호가 안 되면 좀……. 돈을 들고도 떠날 수가 없다면 내기를 하는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지셀이 픽 웃었다.

“클로드는 영지의 총관이니 그의 신변에 모두 신경 쓰도록 해라.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모두에게 책임을 묻겠다.”

그 말에 웬디가 벨린다를 보고 어깨를 으쓱였다.

벨린다는 애꿎은 바닥을 발로 차며 외쳤다.

“아악! 열 받아!”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면 손을 쓰려고 마음먹었던 길리언도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영주가 직접 명령을 내렸으니 그로서도 손을 댈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와서 내기를 철회하면 지셀의 꼴이 우스워진다.

클로드는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으하하하! 그럼 저는 개간지 확보를 하러 가 보겠습니다. 아, 빈 땅 많으니 금방입니다.”

기뻐하며 돌아서는 클로드에게 지셀이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단, 3개월이 지나기만 기다리면서 일을 대충 한다면 내 승리로 하겠다. 확실히 확인할 테니 요령 피울 생각은 말도록.”

“아, 그럼요. 저 그렇게 치사한 사람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시지요. 으하하하!”

클로드는 거의 춤을 추며 자리를 떠났다.

웬디가 한숨을 쉬며 그를 따라 나갔다.

남은 자들은 황망한 얼굴로 지셀을 바라보았다.

도무지 영주가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

남들 속도 모르는 지셀이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나도 슬슬 움직여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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