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바보를 어디에 쓰려고? (3)
마법사들이 속으로 혀를 찼다.
‘에라이, 미친놈아.’
‘쯧쯧, 역시 정상이 아닌 놈이었어.’
‘저런 놈하고 흥정하려 했으니 당연히 말이 안 통하지.’
지셀을 수행하던 세 사람도 내심 놀랐다.
지셀은 능청스럽고 장난기가 많기는 하지만, 이유 없이 약자를 협박하는 성정은 아니었다.
‘위로해 주려는 거 아니었어?’
‘안 그래도 겁먹은 사람을 협박해서 어쩌겠다는 거예요, 도련님!’
하지만 사람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지셀은 차갑게 말을 이었다.
“일단, 마탑에서는 이미 너를 내게 넘겨줬어. 나를 안 따라와도 여기 남아 있긴 어려울걸. 남을 수 있다고 해도…… 뭐.”
지셀은 어깨를 으쓱였다.
“본인이 죽고 싶다는데 내가 말릴 자격은 없지만 말이야.”
바네사는 공포로 몸을 떨었다.
지셀의 말에서는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따라오지 않으면 여기서 죽이겠다는 살기가 있다면 모를까.
마치 세상의 진리를 읊듯 단호하고 무덤덤한 그 어조가 오히려 공포심을 자극했다.
결국 바네사는 입술을 달달 떨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알겠습니다. 공자님을 서, 성심껏 모시겠습니다.”
그러자 지셀은 안도한 듯 다시 미소를 띠고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 잘 부탁하지. 실망하지는 않을 거야.”
마법사들과 지셀 일행은 어이가 없어서 잠깐 말을 잃었다. 내가 언제 협박했냐는 듯한 태도 변화가 가증스러웠다.
휴베르트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바네사에게 슬며시 다가왔다.
“좋아, 좋아. 잘 생각했어. 네 스승인 로나토도 하늘에서 기뻐할 거다.”
흡족한 미소를 짓는 그에게 바네사는 말없이 고개만 숙였다.
어차피 이들에게 자신의 의견은 개가 짖는 소리와 다를 바 없었다.
그저 기회를 봐서 지셀에게 공부를 계속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흐음, 역시 이때는 순했구나.’
지셀은 바네사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식충이에 바보라니, 보는 눈도 없지. 적염의 마탑 최고의 천재를 두고 말이야. 실패한 천재긴 하지만.’
바네사야말로 지셀이 적염의 마탑에 온 가장 큰 이유였다.
물론 바가지를 씌우기 쉬운 상황이라는 점도 이유 중 하나였지만, 바네사가 없었다면 굳이 시간과 공을 들여 가며 멀리까지 오지는 않았을 터였다.
모든 면에서 전력이 부족한 지셀에게는 강력한 ‘한 방’이 필요했다.
그는 바네사가 바로 그 역할을 하게 될 거라고 확신했다. 그녀가 거절하더라도 강제로 끌고 갈 생각이었다.
‘여기에 있어 봤자 비참한 결과만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지셀은 거짓말하지 않았다. 협박도 아니었다. 그는 오로지 사실만을 말했다.
바네사가 계속 마탑에 머물면 그녀 본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위험해진다.
이대로 둔다면 그녀는 상상을 초월하는 살인마가 될 테니까.
* * *
지셀이 그녀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세상에 혼란이 가득하던 시기였다.
소문이며 정보 따위에 관심이 많던 수하가, ‘붉은 악몽’에 대한 소식을 떠벌렸다.
“붉은 악몽?”
“루타니아 왕국에서 설치던 미친년이에요. 실력이 제법 만만치 않다는데요? 7서클이랍니다, 7서클.”
“루타니아 왕국이라…….”
고향인 루타니아 왕국 출신이라는 게 왠지 그리움을 자극했다.
“이명도 완전 멋있잖아? ‘붉은 악몽’이라니.”
그가 관심을 보이자 수하는 더 신나게 떠들었다.
“이름이 뭐라더라…… 아, 바네사랍디다. 루타니아 북부를 죄다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다더라고요. 마나 연공법을 익힌 마법사라나?”
“마법사가 마나 연공법을 익혔다고?”
마나 연공법을 익힌 마법사라니, 용병 일을 하며 온갖 괴상한 일을 다 겪어 본 지셀도 처음 듣는 얘기였다.
“네. 아마 그래서 미쳤나 봐요. 여기저기 불 지르고 다 죽이고 다녀서 영주들도 골치래요. 목적도 없다니 그냥 불장난에 미친 여자인 거죠.”
“와, 대단한데. 마나 연공법으로 그 정도 경지에 오를 수 있구나.”
“그거에 감탄하신 거였어요?!”
마법사의 서클이나 마나 연공법이나 그 근본은 똑같이 마나를 몸에 저장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론상 마나 연공법으로도 마법을 시전할 수는 있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마법의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마나 연공법으로 어지간한 마법사보다 강한 화력을 낸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지셀은 안타까워하며 혀를 찼다.
“아깝군. 미치지만 않았다면 세상에 큰 도움이 됐을 재능인데. 차라리 내 밑에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 정도 실력이라면 대륙을 덮치는 수많은 재앙에 맞서 싸울 인재가 될 수도 있었다.
“아니다, 혹시 지금도 가능한가? 내 밑에도 미친놈들 많지만, 몇 번 패니까 다 고쳐졌잖아.”
수하가 지셀의 혼잣말을 듣고 질겁하는 표정을 지었다.
“누구를 어쩌시겠다고요?”
“바 어쩌고 걔, 우리가 데려오자.”
“아니, 미친 방화범을 어떻게 데려다 어디다 쓰시려고요?”
“그건 이제 니가 알아봐야지.”
“……잘 못 들었습니다?”
지셀은 대답 없이 히죽 웃었다. 당장 알아 오라는 뜻이었다.
수하는 얼굴이 시퍼레져서 튀어 나갔다.
* * *
수하가 조사해 온 바네사의 사연은 흔해 빠진 이야기였다.
어릴 적 부모 없이 겨우 연명하다 마법사에게 주워진 고아.
그러나 바네사는 마나를 느끼지 못해 마법사가 되지 못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지만, 아무도 믿고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마나 연공법을 구해 익힌 것 같았다.
마탑에서도 마나 연공법을 익히려다 몇 번이고 실패했다는데, 어째서인지 그것만은 익힐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가문의 연공법을 고쳐 익힌 장본인으로서 지셀은 바네사가 미친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스승도 없이, 정체도 모르는 마나 연공법을 제대로 익힐 리가 없지. 그래도 잘만 고치면 어떻게 될 것도 같은데.”
재앙을 상대하는 인재는 많을수록 좋다.
지셀은 제 옆에서 미적거리던 수하를 돌아보았다.
“얘 지금 어디 있냐?”
“글쎄요. 마지막으로 나타났다는 게…… 어느 산 근처였는데. 그러고 보니까, 요즘은 소식이 잠잠하네요. 어디 숨어 있는 건지.”
지셀은 미간을 좁혔다.
“애들 풀어서 추적해 봐. 최대한 빨리.”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수하가 조금 놀라며 되물었다.
“어디 가시게요?”
“나도 찾아 보려고.”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요? 평소에는 지명 의뢰도 귀찮다고 안 받으시던 분이.”
엉덩이가 무거운 단장이 직접 나선다는 말에 수하가 놀랐지만, 지셀은 아랑곳하지 않고 밖으로 나섰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지셀은 산속에 숨어 있던 바네사를 찾아냈다.
“찾았다. 잘도 숨어 있었군?”
“으아아악!”
지셀에게 발각되자마자, 바네사는 비명을 지르며 마법을 난사했다.
그녀는 본능만 남은 짐승 같은 상태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상대가 위험한 포식자라는 걸 쉽게 깨달은 것이다.
콰아앙!
공중에 떠오른 바네사의 주변에 커다란 마법진이 떠올랐다.
콰앙! 콰아앙! 콰앙!
불기둥이 솟아오르고 거대한 불덩이들이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지셀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들을 쳐내고 피해 내며 점점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런 아무런 계획도, 생각도, 전법도 없는 공격에 당할 그가 아니었다.
“꺄아아아악!”
상대가 계속 공격을 피하자 화가 났는지, 바네사는 제 모든 힘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주변에 십여 개의 마법진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와, 다중 영창까지 한다고? 그것도 저렇게 많이?”
지셀은 깜짝 놀랐다.
다중 영창은 쌓아 올린 마나의 양과는 상관없이, 온전히 재능이 있어야 가능한 재주다.
아무리 서클이 높아도 감각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은 다중 영창을 할 수 없다.
“진짜 탐나네.”
콰콰콰콰콰쾅!
불덩이들이 유성처럼 지셀이 서 있던 자리에 내리꽂혔다.
지금껏 그래 왔듯 그는 손쉽게 피했지만, 화염이 솟구쳐 오르며 매캐한 연기가 주변을 완전히 잠식해 버렸다.
지셀은 혀를 차며 마나를 풀었다. 세차게 흐르는 마나에 휩쓸려 주변의 불길도 흔들리다 꺼져 갔다.
“좀 얌전히 굴어라!”
그가 바네사를 향해 팔을 쭉 뻗으며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 순간 바네사의 몸이 덜컥 하고 움직임을 멈췄다.
그가 다시 무언가를 당기듯 팔을 접자, 그녀는 허무하게 지셀 쪽으로 끌려오고 말았다.
“꺄아아아!”
“가만히 있어라.”
지셀은 버둥거리는 바네사의 목을 한 손으로 쥐고 그 몸에 강제로 마나를 밀어 넣었다. 마나가 혈맥을 타고 바네사의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바네사의 몸 상태를 확인한 지셀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리고 말았다.
‘이건…….’
바네사의 코어는 이미 깨진 상태였다. 7서클에 이른 덕분에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산속에 숨어들었던 걸 보면 아마 이전부터 몸 상태가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력이 다한 맹수들은 본능적으로 안전한 곳을 찾곤 하니까.
그리고 지셀을 공격하는 짧은 사이, 상태가 더욱 심각하게 악화되었다.
‘쯧, 아쉽군. 이미 끝났어.’
조금만 더 빨리 찾아왔으면 쓸 만한 부하를 얻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차피 죽을 거, 편하게 보내 주겠다는 마음으로 지셀은 손아귀에 힘을 넣었다.
그 순간, 그는 고개를 든 바네사와 눈을 마주쳤다.
지셀이 흘려 넣은 마나 덕분에 정신을 차렸는지, 그녀의 눈빛에서는 광기 대신 안도와 후회가 엿보였다.
“……정신이 돌아왔나.”
지셀은 바네사를 땅에 내려 주었다. 그녀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다 간신히 몸을 세웠다.
“……당신은?”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유명한 용병이지.”
바네사가 잠깐 고민하다 곧 고개를 끄덕였다.
“소문으로만 듣던 그 용병왕이신가 보네.”
그녀는 그 짧은 말을 하는 동안에도 중간중간 기침을 삼켰다.
“혹시 날 잡으러, 온 거야?”
“아니, 인재 영입차 온 거다.”
“영광이네, 당신 같은, 사람이 직접, 찾아오고…….”
흐린 미소를 짓던 바네사가 고통스럽게 몸을 앞으로 숙였다. 땅에 피가 한 바가지 쏟아졌다. 지셀은 끌끌 혀를 찼다.
“영입하려고 했는데, 꼴을 보니 아무래도 우리 용병단에는 못 들어오겠군.”
“……그게 피를 토하는 사람, 앞에서 할 말이야?”
바네사가 짜증을 냈지만, 지셀은 코웃음을 쳤다.
“부하로 삼지도 못할 놈한테 신경 써 줘야 할 이유가 있나?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지셀은 말을 하다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탄성을 흘렸다.
“아니다, 너를 잡아가면 현상금은 받겠군.”
“꺼져, 이 개자식…….”
바네사가 지셀에게 불덩이를 쏘아 냈다. 그러나 그 마법은 지셀에게 닿기도 전에 허공에서 꺼져 버렸다.
“제명을 제가 깎는군. 그렇게 멍청하니까 이 꼴이 됐지.”
그녀는 기침하듯 피를 토하느라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짜증 섞인 눈빛으로 지셀을 노려볼 뿐이었다.
지셀은 히죽 웃었다.
“뭐, 남길 말 있으면 해 봐라. 유언 정도는 들어 주지.”
“유언…… 남길, 사람도, 없는데.”
“그럼 신세타령이라도 해 보든가.”
그녀는 헛웃음을 흘리다 그대로 주저앉았다. 서 있을 힘도 사라진 듯했다.
“난, 그냥 마법이, 좋아서…… 마법사가, 되고 싶었을…… 뿐인데…….”
바네사가 제 무릎을 껴안으며 몸을 웅크렸다.
“정체도 모르는 마나 연공법을…… 익히는 게…… 아니었어. 나 때문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었어…….”
“후회할 건 그게 아니지.”
지셀이 혀를 차며 타박했다.
“진작 나를 찾아오지 그랬나. 내가 미친놈들 잘 고치기로 유명하다고. 너도 지금 정신 멀쩡해졌잖아.”
“당신…… 성질 더럽다는, 소리…… 많이 듣지?”
“무슨 그런 험한 소리를. 나처럼 선량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바네사가 황당하다는 듯 그를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편하게 사네, 정말…….”
“용병이니까.”
히죽 웃은 지셀이 덧붙였다.
“너도 다음엔 미적거리지 말고 바로 나한테 와라. 실력자는 언제나 환영이니까.”
바네사는 말없이 눈만 깜박였다. 눈꺼풀이 움직이는 속도가 점차 느려져 갔다.
그녀가 꺼져 가는 촛불처럼 희미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래, 용병…… 재미있어 보이네…….”
그 말을 끝으로 그녀의 숨은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다.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리며, 지저분한 그녀의 얼굴에 깨끗한 선을 그렸다.
지셀은 잠시 바네사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평소 같았으면 시체를 가져다 현상금이라도 받아 냈겠지만…….
그는 쯧 하고 작게 혀를 차고는 주검에 불을 붙였다.
어쩌면 부하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자에게 보이는 처음이자 마지막 배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