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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59화 (59/269)

59화 바보를 어디에 쓰려고? (2)

마법사들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길리언이 지셀에게 물었다.

“공자님. 전속 마법사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원래 마법사만 지원받으려고 하셨던 게 아니었습니까?”

예전에 지셀이 대략적으로나마 계획을 설명해 준 덕분에, 벨린다와 길리언도 마법사를 고용하겠다는 계획을 알고는 있었다.

정말로 이렇게 성공할 줄은 몰랐지만.

“뭐, 겸사겸사하는 거지. 마법사도 열 명을 못 채웠으니까 말이야.”

“장로가 하는 말만 들어서는 그리 뛰어난 인물은 아니고 허드렛일이나 하는 사람 같습니다. 그런 사람으로 괜찮겠습니까?”

“괜찮아, 괜찮아. 사람이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른 거니까.”

지셀이 단언하니 길리언은 더 말하지 않았다.

사람을 쓰는 거야 주군의 마음이니 신하가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새로운 인물이 발목이나 잡지 않았으면 바랄 뿐이었다.

한편 카오르는 설명을 듣고도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부족한 마법사 넷 대신 하녀 한 명을 받는 건 아무리 좋게 봐도 수지가 안 맞는다.

심지어 전속 마법사로 삼겠다니, 세상에 마탑의 하녀를 전속 마법사로 삼는 귀족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거참,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단 말이야.’

사실 고용주가 누굴 전속 마법사로 들이든, 손해를 보든 카오르와는 상관없다.

무슨 생각인지 궁금하기야 했지만, 지셀이 굳이 자신에게 설명해 줄 의무도 없긴 했다.

그래도 확인해 둬야 할 부분이 하나 있었다.

“공자님. 마법사들을 고용하는 게 정말 영지전을 대비해서 그런 겁니까?”

“그래, 혹시나 해서 말이야. 준비해서 나쁠 건 없지.”

“마탑 출신이라는 거야 비밀로 한다 쳐도…… 용병 마법사를 고용했다 정도는 밝히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룬스톤도 있으니, 대대적으로 병사들을 육성하고 있다고 하면 함부로 건들지 못할 텐데요.”

카오르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때로는 힘을 과시함으로써 전쟁을 억제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번만은 그 논리가 통하지 않았다.

델파인 공작가는 반드시 페르디움을 공격할 것이다. 마법사 몇 명 고용했다 해서 무서워할 자들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비웃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페르디움은 아직 적들보다 모든 면에서 열악하기에, 최대한 전력을 숨겨야 승리할 수 있었다.

“일단은 최대한 숨기고 싶군. 카오르도 비밀을 잘 지켜야 할 거야.”

“저야 뭐…… 돈만 주면 마누라 속옷 색깔도 말할 수 있습니다만.”

능글맞은 대답에 지셀은 피식 웃었다.

곧 휴베르트와 장로들이 일단의 마법사 무리를 데리고 들어왔다.

화려한 로브를 입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짓고 있는 마법사 여섯 명.

그리고 그들 뒤에 한 여자가 주뼛거리고 서 있었다.

‘드디어 만났군.’

지셀은 여자를 발견하고 무척이나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이십 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여자.

어두운 적색 머리칼은 잔뜩 헝클어져 있고, 입고 있는 로브도 다른 마법사들과 다르게 다 해지고 지저분했다.

불안하고 초조한 얼굴로 사람들의 눈치만 보는 게, 이 여자가 마탑에서 얼마나 구박을 받고 사는지 눈에 보일 정도였다.

휴베르트는 웃으며 지셀에게 마법사들을 소개했다.

“자, 이들이 앞으로 일 년간 자네를 도와줄 마법사들이네. 비밀을 유지하라고 신신당부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걸세.”

여섯 명 중 젊은 남자 하나가 앞으로 나서서 자신을 소개했다.

자신보다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마법사들을 자연스럽게 이끄는 걸 보니 제법 대단한 실력자인 모양이었다.

“알포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마법사들을 이끄는 중책을 맡았습니다. 탑주님의 명에 따라 앞으로 공자님을 성심껏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말은 공손했지만,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저 위에서 시키니 일단은 따라 준다는 느낌이 물씬 묻어났다.

알포이는 입술을 비죽거리며 지셀을 마치 촌놈 보듯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재수 없는 표정이었지만 지셀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잠시 빌려 쓸 전력일 뿐이었다.

“페르디움의 대공자 지셀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젊은 나이에 3서클 마스터라니 대단한 재능이시군요.”

휴베르트가 헛기침하며 대신 답했다.

“흠흠, 자랑은 아니지만…… 우리 마탑에서 촉망받는 기재 중의 기재일세. 아마 저 나이 또래에서 이 친구보다 뛰어난 자는 거의 없을 거야. 내가 신경을 좀 많이 썼네.”

장로 중 한 명이 옆에서 끼어들며 한마디 덧붙였다.

“알포이는 탑주님의 제자일세. 우리 마탑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지. 어떤가? 우리도 최선을 다했네.”

사실은 믿을 만한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아끼는 후계자까지 차출한 것이지만, 최대한 생색을 낼 셈이었다.

“그렇습니까? 탑주님의 제자까지 보내 주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지셀은 웃으며 답했지만, 사실 진심으로 감탄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원하는 인물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선선히 알포이에게 칭찬을 건넸다. 빈말에는 돈이 들지 않으니까.

“마탑의 후계자라니 정말 든든하군요. 기대가 큽니다.”

알포이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말씀 편히 놓으시지요. 탑주님께서 최선을 다해 공자님을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저희 마탑에 아주 중요한 손님이시라고요.”

그는 일부러 겸양을 떨며 휴베르트가 지셀에게 신경을 많이 썼다는 걸 강조했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며 손님에게도 예의를 갖추는, 그 나름의 처세술이었다.

휴베르트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알포이 또한 이 정도면 잘했다고 생각하며 만족해했다.

하지만 상대는 그들과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었다.

“알겠다. 앞으로 잘 부탁하지. 그대들이 영지에서 할 일이 많다. 지금부터 긴장을 놓지 말도록.”

지셀이 기다렸다는 듯 바로 하대하자 알포이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보통 겸양을 떨면 상대방도 그에 맞춰 주는 게 예의다.

마탑의 후계자인 그에게 이렇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다.

그런데 눈앞의 지저분한 놈은 알포이를 존중하기는커녕, 정말로 제 아랫사람처럼 대했다.

예의고 뭐고 전혀 그를 대우해 줄 생각이 없는 것이다.

‘이, 이 무식한 촌놈이…… 주제도 모르고!’

알포이는 수치스러워하며 속으로 이를 갈았지만, 겉으로 티를 낼 수는 없었다.

그저 화나서 시뻘게진 얼굴을 고개 숙여 숨기는 게 전부였다.

‘중요한 계약이 있다고 하니 일 년은 참아 주마. 하지만…… 내가 마탑주가 된 뒤에도 이따위로 굴 수 있는지 두고 보자.’

알포이가 이를 갈며 분을 억누르는 동안 다른 마법사들도 하나씩 앞으로 나서며 지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여섯 명이 모두 인사를 끝낸 후에도, 뒤에 선 여자는 안절부절못하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장로 중 한 명이 그녀의 등을 확 밀어 버리며 짜증을 냈다.

“뭐 해? 어서 공자님한테 인사드리지 않고? 밥이나 축낼 줄 알지, 눈치도 없어. 쯧쯧.”

갑자기 앞으로 밀려난 여자는 겁먹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고, 공자님께 인사 드립, 드립니다. 바, 바네사라고 합니다.”

지셀은 잔뜩 긴장한 그녀에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지셀 페르디움이다. 앞으로 잘 부탁하지.”

바네사는 당황하며 로브에 손을 박박 문질러 닦고 그의 손을 맞잡았다.

연신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지셀이 웃으며 다시 말했다.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돼. 자세한 설명은 탑주님에게 들었겠지?”

그러자 바네사는 덜덜 떨며 고개를 저었다.

“저, 저는 아무런 얘기를 못 들어서…… 청소를 하다가…….”

그녀가 뒷말을 흐렸다. 지셀은 눈살을 찌푸리며 휴베르트를 바라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휴베르트는 당황해서 다급히 변명했다.

“급하게 데리고 오느라 아직 말을 전달하지 못했네. 바네사, 너는 이제 마탑을 떠나서 이 공자님을 모시도록 해라. 알겠느냐?”

“네?”

바네사는 깜짝 놀라 휴베르트와 장로들을 쳐다보았다.

언젠가 마탑에서 버림받을 거라 각오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통보받을 줄은 정말 몰랐다.

“스, 스승님께서는 저더러 마탑에 계속 있으라고…….”

바네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항변했지만, 휴베르트가 엄하게 소리쳤다.

“어허! 로나토는 이미 죽은 사람이다. 탑주의 명령을 거역하겠다는 말이냐?”

“그, 그렇지만…….”

휴베르트는 묘한 표정의 지셀을 곁눈질하더니, 곧 어조를 달리하여 사근사근하게 속삭였다.

“너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거다. 여기서 허드렛일이나 하는 것보다야, 저 공자님의 전속 마법사로 지내는 게 낫지 않겠느냐.”

“하, 하지만 저는 마법도 제대로 못 쓰는…….”

“쓰읍! 왜 이렇게 잔말이 많아!”

바네사가 마법을 쓰지 못한다는 사실이 들킬까 봐 휴베르트가 기겁하며 말을 끊었다.

바네사는 어쩔 줄 모르고 울상을 지었다. 옆에 있던 장로 한 명이 진중한 표정으로 그녀를 달랬다.

“고아였던 너를 마탑에서 몇 년간 먹여 살려 주지 않았느냐.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공자님을 잘 모시도록. 알겠느냐?”

바네사는 고개를 푹 숙였다.

결국 버림받고 말았다는 사실에 눈물이 나올 거 같았다.

스승이 죽은 뒤 언제 쫓겨날지 몰라 전전긍긍해 왔다.

어렸을 때부터 마탑에서만 살아왔는데, 갑자기 나가 봐야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혼자 세상 밖으로 나가 살 자신이 없었다.

마탑에서 계속 머물기 위해 하녀 노릇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아무 소용이 없었다.

바네사는 살며시 고개를 들어 지셀을 쳐다보았다가 도로 고개를 숙였다.

‘무, 무서워.’

이 사람이 왜 자신을 원하는지 알 수 없으니, 자신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흑, 정말 마법사가 되고 싶었는데…… 정말 열심히 노력했는데…….’

그녀의 눈에 절로 눈물이 글썽거렸다.

로나토는 바네사의 총명함에 반해 고아였던 그녀를 제자로 거두어 마법을 가르쳤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바네사의 몸 안에는 마력이 쌓이지 않았다.

머리로는 모든 술식을 깨우쳤지만, 마력이 없으니 마법을 시전할 수 없었다. 스승은 안타까워했지만 해결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혼자 남은 그녀는 마탑에서 식충이 취급을 받게 되었다.

그래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잠을 줄여가며 원인을 찾았고 술식 연구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자신도 마법을 쓸 수 있을 거라 희망을 놓지 않았다.

‘가고 싶지 않아…….’

저 공자를 따라간다면 자신은 더 이상 마법을 공부할 수 없을 것이다.

마탑에서는 비록 하녀 취급을 당할지언정 계속 마법을 공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귀족가에서는 진짜로 하녀 노릇을 하게 될 것이다.

바네사가 제대로 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휴베르트가 성이 나서 크게 외쳤다.

“뭐 하느냐! 어서 공자님께 인사드리지 않고!”

바네사를 넘긴다는 조건으로 겨우 마법사 수를 줄여 놨는데, 시간을 끌다 괜히 지셀의 마음이 바뀌면 골치가 아파질 게 뻔했다.

결국 조급해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제 성질머리를 내보이고 말았다.

“내 말을 안 들으면 네년이 여기서 마법을 계속 익힐 수 있을 거 같으냐!”

고성에 놀라 바네사가 몸을 움츠렸다.

장로들도 한마디씩 험한 소리를 던졌다.

“저 공자님이 원할 때 가는 게 네 신상에도 좋을 것이다.”

“네 재능은 여기서 펼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니 좋은 말로 할 때 어서 가거라.”

“그동안 마탑에서 그렇게 보살펴 줬으면 양심이 있어야 할 거 아니야!”

흉흉한 분위기에 짓눌려 바네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미 그녀가 지셀을 따라가는 건 결정된 일이었다. 바네사는 그걸 거절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마탑에서 지금까지 베푼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는 말도 맞았다.

“아, 알겠습…….”

머리로는 이해했는데, 자꾸 목소리가 목에 걸려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결국 서러움에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보다 못한 지셀이 한숨을 푹 쉬며 앞으로 나섰다.

“다들 그렇게 험하게 말씀하시면 이분이 겁먹지 않겠습니까? 부드럽게 말씀하셔야지요.”

“크흠흠…….”

휴베르트와 장로들이 헛기침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냥 그가 빨리 바네사를 데리고 꺼져 줬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지셀은 바네사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나는 네 도움이 필요하다. 너를 꼭 내 마법사로 쓰고 싶어. 나와 같이 가 주지 않겠어?”

바네사는 지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마치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움이 어려 있었다.

그 따뜻한 음성과 눈빛에 바네사는 조금 기대를 품었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제, 제가 거절하면…… 어떻게 되나요? 여, 여기에 계속 있을 수 있나요?”

“진짜? 후회 안 해?”

“예, 예……!”

“후회할걸?”

지셀은 언제 웃었냐는 듯 미소를 거두고 단호하게 답했다.

“여기 남으면 너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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