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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49화 (49/269)

49화 지금 좀 위험해. (3)

영입할 전력에 대해 들은 벨린다와 길리언은 긴가민가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셀이 말한 계획들은 언제나 하나같이 상식을 벗어난 것들뿐이었다.

‘솔직히 믿기 힘들지만……. 그래도 도련님이 뭐라도 설명해 준 건 처음이네.’

‘공자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두 사람은 완전히 납득하지는 못했지만, 그저 따라가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어차피 자신들을 배려해서 설명해 줬을 뿐이지 그렇게 하겠다는 통보나 마찬가지였다.

언제 지셀이 상식대로 행동하고 남의 말을 제대로 들은 적이 있었던가?

“뭐, 도련님 나름대로 계획이 있나 보네요.”

길리언도 고개를 끄덕였다.

제 딸을 치료할 때 그랬듯, 지셀만 아는 무언가가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래, 그러니까 얼른 몸이나 추슬러. 바로 룬스톤부터 팔러 갈 거니까.”

겨우 벨린다에게서 놓여난 지셀은 길리언의 어깨를 살짝 두드려 주며 말했다.

“길리언도 이만 가서 쉬어. 오랜만에 레이첼 얼굴도 봐야지.”

레이첼은 하녀들이 약을 준비해 돌봐 준 덕분에 건강이 많이 좋아진 상태였다.

나이가 비슷한 엘레나도 자주 찾아가 친구처럼 지내고 있었다.

“공자님 덕분에 잘 지내고 있으니 괜찮습니다.”

“아냐, 시간 있을 때 봐 둬야지. 앞으로 더 바빠질 테니까.”

길리언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공자님도 어서 쉬십시오. 치료도 마저 하셔야 합니다.”

“알겠어. 걱정하지 마.”

길리언이 물러간 뒤, 엄청난 피로가 몰려왔지만 지셀은 바로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룬스톤을 구하고 모두가 기뻐하는 상황이지만 지셀은 마음을 놓고 있을 수가 없었다.

“얼마나 걸리려나.”

이미 가신들 사이에서는 룬스톤을 구해 온 일로 난리가 났다.

내일이면 소문이 쫙 퍼지기 시작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영지 안에서는 소식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질 것이다.

그건 즉 아멜리아와 델파인 공작의 귀에도 들어간다는 뜻이다.

벨린다와 길리언에게 말했듯이, 분명 그들은 페르디움에 사람을 심어 놓았을 테니까.

“아멜리아도 델파인 공작과 한패이긴 하지만……. 독자적으로 움직인다고 봐야겠지.”

페르디움의 가장 큰 적은 델파인 공작가다. 그들은 분명 페르디움을 차지하거나 약화시키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영지가 아니라 지셀을 노리고 있었다.

델파인 공작가와 싸워야 하는 그에게 아멜리아는 신발 속의 가시처럼 계속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아멜리아의 움직임이 변수가 될 수 있어.”

사실 이번에도, 그녀가 이 정도로 빨리 움직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셀이 룬스톤을 얻은 걸 알게 된다면 그녀는 더욱더 과격한 방법을 쓰게 될 것이다.

“보름? 아니, 빠르면 일주일 내에 전부 알려질 거야.”

최악의 결과는 역시 전쟁이지만,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당장 내일은 아닐 것이다. 싸우려면 명분은 필요하니까.

자칫하면 아직 그들과 같은 편이 아닌 영주들이 심하게 경계할 테니, 엉터리 명분이라도 만들어 올 것이다.

그 뒤에 기습적으로 진격하더라도 전쟁을 준비하려면 최소의 시간은 필요할 터.

길리언이 예상한 대로 두세 달 정도면 쳐들어올 것이다.

페르디움처럼 돈이 없는 영지라면 몰라도, 다른 영지라면 전쟁을 준비하는 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을 테니까.

“지금이 가장 먹기 좋기도 할 거고.”

돈이 많아졌다고 해도 영지가 부강해지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룬스톤이 생겼어도 아직은 가난하고 별 볼 일 없는 영지니, 지금이야말로 뺏어 먹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얻은 룬스톤을 전부 쓸 수밖에 없겠어.”

앞으로의 일을 예측하고 준비하더라도 결과는 결국 부딪혀 봐야 아는 법이다.

과연 제가 계획한 대로 일이 잘 풀릴지, 지셀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방 안을 서성였다.

“아니, 그러고 보니까 케인 그놈은 아직도 소식이 없네?”

전쟁 준비나 룬스톤 판매처 따위를 생각하다 보니 수금하지 못한 돈이 떠올랐다.

지셀은 갑자기 훅 열이 뻗쳐 방 한가운데 멈춰 섰다.

이미 약속한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돈을 보내지 않았다는 건 보낼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지셀은 제 돈을 떼먹히는 걸 정말, 정말 싫어했다.

‘왕’씩이나 될 정도로 용병 일을 오래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용병이 돈을 떼먹히는 건 장사를 접어야 한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지셀이 용병치고는 유난히 돈을 많이 밝히는 편이긴 했지만……. 그 또한 ‘왕’다운 도량이었다.

‘그놈 참 대담한 놈이네. 감히 내 돈을 떼먹으려고 하고 말이야.’

그 정도로 공포심을 심어 줬는데도 돈을 떼먹는다는 건, 나름 믿을 만한 구석이 있다는 뜻이다.

지셀은 조만간 다시 만날 기회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눕고 나서도 한참 동안 고민하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잠든 터라, 지셀은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빠르게 회복했다고는 해도 몸이 좋지 않았던 탓도 있으리라.

그는 일어나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보고 놀라고 말았다.

“이게 다 뭐야?”

어안이 벙벙한 채 묻자, 옆에 서 있던 하녀 두 명이 대답했다.

“저건 재무관님이 보냈습니다.”

“이건 무관장님이 보냈습니다.”

“그건 총관님이 직접 찾아오셔서…….”

“요건 서기관님이…….”

“치안관님이…….”

“기사단장님께서…….”

지셀의 앞에는 술과 고기, 짐승의 가죽, 각종 옷감 등의 선물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그가 자고 있는 사이에 여러 사람이 선물을 건네주고 간 것이다.

하녀들의 입에서 영지에서 힘깨나 쓴다는 자들의 이름이 모조리 나왔다.

지셀이 자고 있으니 선물만 주고 돌아간 모양이었다.

“거참,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네.”

지셀은 머리를 긁적이며 선물들을 보고 웃었다.

어떻게든 지셀에게 줄을 대려고 다들 눈이 벌게져서는, 사람이 자는데도 굳이 찾아와 선물을 남겨 두고 갔다.

룬스톤을 얻기 전의 취급을 생각하면 위상이 달라져도 이만저만 달라진 게 아니었다.

그때는 모든 사람이 그를 피해 다니거나 무시했었으니까.

‘이제 와서 돈 보고 접근한다고 뭐라 할 수도 없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골칫덩어리였던 놈에게 아부하려니 가신들도 심란하겠지.

결국 지셀 자신이 판 무덤이다. 괜히 건드렸다가 벌집을 쑤신 꼴이 될 수도 있으니 가만히 있는 편이 낫다.

“그런데 선물들이 다 귀엽네.”

선물들을 하나하나 구경하던 지셀은 피식 웃고 말았다.

가난한 영지의 가신들에게 돈이 있어 봤자 얼마나 있겠는가.

그들 나름대로 금고 바닥까지 박박 긁어서 가져온 것일 테지만, 모두 그다지 가치가 있는 물건들은 아니었다.

솔직히 용병왕 시절에 누렸던 것과 비교하면 성에 차지 않는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가져온 사람들의 성의가 보여 무시할 수 없었다.

“목록을 가져와라.”

하녀가 종이 하나를 지셀에게 건네주었다.

찾아온 사람들과 그들이 어떤 선물을 줬는지를 적어 둔 목록이었다.

무언가를 받으면 답례하는 것은 귀족들의 명예가 달린 관습이다.

그렇기에 하녀들도 모든 선물을 빠짐없이 기록해 놓은 것이다.

지셀은 리스트를 모두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하녀들에게 말했다.

“술과 고기는 용병들에게 전해 주고, 옷감들이나 다른 생필품은 다른 사용인들과 나눠 가져라.”

하녀들이 얼굴에 화색을 띠며 물었다.

“대공자님은 필요하신 게 없으신지요?”

“응, 없어. 다 너희 나눠 가져.”

“감사합니다.”

하녀들은 고개를 연신 숙였다.

지셀에게나 가치 없는 것이지, 영지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그들에게 이런 물건들은 쉽사리 구경하기도 힘든 것들이었다.

‘대공자님이 웬일이래? 돈 많이 벌었다더니 그게 사실인가 봐!’

‘역시 돈이 있어야 인심도 나는 법이야.’

하녀들이 서로 눈짓하며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요새 욕도 하지 않고 괴롭히지도 않아서 대공자가 변했다 싶었지만, 이렇게 선물까지 주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물론 언제 또 폭군으로 돌아갈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은 남아 있었지만, 당장은 그저 기쁠 뿐이었다.

“찾아온 분들에게는 선물 잘 받았다고 전해라. 조만간 한 분씩 찾아뵙겠다고 해.”

“알겠습니다.”

자는 사이 들이닥친 문제를 대충 정리하고 지셀은 몸 상태를 점검했다.

“이상하군.”

지셀은 욱신거리는 몸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거울을 바라보았다.

독에 중독되었을 때 얼굴에 비쳤던 칙칙한 보랏빛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그저 볼이 홀쭉하게 들어가고, 조금 많이 창백할 뿐이었다.

생각보다 좋아진 몸 상태에 의아해진 그는, 내친김에 자리에 앉아 마나 연공을 시작했다.

세 개의 코어를 천천히 돌리며 한참 동안 제 몸을 관조한 지셀은 잠시 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눈을 떴다.

“마나의 성질이…… 변했네.”

마나는 그 사람이 익히고 있는 마나 연공법과 성향, 체질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어떤 마나 연공법을 익히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사람마다 다른 성질을 갖게 되는 것이다.

본래 그의 마나는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광폭하고 거칠었다.

마나를 뿜어내며 싸울 때도 그 특성이 명확하게 드러날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광폭함 속에 은밀하고 음습한 기운이 숨어들어 있었다.

전생에서도 전혀 겪어 보지 못한 일이었다.

“마나의 성질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마나가 한번 몸에 쌓이고 나면 성질이 달라지는 일은 극히 드물다.

마나를 가공해 다양한 속성의 마법을 쓰는 마법사도 예외는 아니다.

마법사들도 술식을 통해 외부로 방출하는 마나의 성질을 강제로 변환할 뿐이다.

그렇기에, 마나의 성질과 체질에 따라 화염 마법이나 빙결 마법에 특화된 마법사가 있는 것이다.

“설마…… 블러드 퓌톤의 독 기운이 내 마나와 섞인 건가?”

말도 안 되는 가설이지만 그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지셀은 손을 들어 그 음습한 기운만 따로 뽑아 움직여 보려 했다.

하지만 그 기운이 워낙 의식하고 집중하지 않으면 느끼기 힘들 정도로 미약한 데다, 몸 상태도 좋지 않아 쉽게 되지 않았다

지셀은 몇 번 더 시도하다 포기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조급해하지 말자. 어차피 회복하려면 쉬어야 하니까. 천천히 알아보면 되겠지. 회복력이 몰라보게 좋아진 것도 이거 때문인가?”

알 수 없는 현상에 머리가 복잡했지만 당장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뭐, 회복력이 좋아졌으니 잘됐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움직일 수 있겠어.”

꼼짝없이 보름 이상은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일이 잘 풀렸다.

마나에 이상한 기운이 섞이긴 했지만 그리 강하지 않으니, 급한 일부터 처리하고 확인해도 될 것 같았다.

지셀이 바로 움직이려고 마음먹었을 때, 누군가가 지셀을 찾아왔다.

“하하하! 우리 대공자님이 드디어 기침하셨군요! 몸도 어제보다 훨씬 좋아 보입니다. 건강을 타고 나셨군요. 역시 기사 중의 기사, 영지의 후계자이십니다. 정말 남자답습니다. 하하하하!”

호탕하게 웃으며 이상하게 아부하는 사내는, 페르디움의 기사단장 란돌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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