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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48화 (48/269)

48화 지금 좀 위험해. (2)

“영지가 위험하다고요? 왜요?”

벨린다는 뜬금없는 말에 당황했다.

영지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였던 돈 문제는 룬스톤을 발견함으로써 어느 정도 해결됐다.

그 돈만 잘 써도 다른 영지 못지않게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도련님이 돈만 마구 날리지 않으면 위험할 게 뭐가 있겠어요? 평생 써도 모자라지 않을 거 같은데요.”

영지가 위험하다면 실상 제일 큰 위험 요소는 눈앞의 지셀이다.

본래도 이것저것 사고를 치고 다니던 사람이 엄청난 돈까지 쥐었으니, 더 큰 사고를 치게 될 소지가 다분했다.

그런 사람 입에서 영지가 위험하다는 말이 나오다니, 사고 칠 거라고 예고하는 건가?

“흐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지셀은 잠시 고민하다가 방안의 모든 하녀와 병사들을 물리고 벨린다와 길리언만 남겨 두었다.

이대로 두면 그들은 앞으로도 자신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들은 지셀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일단 따라 주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해 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이쯤에서 어느 정도는 설명해 줘야 했다.

미래에서 돌아왔다고 말하면 미친놈 취급을 받을 것이 빤하니, 있었던 일들을 토대로 설명할 생각이었다.

“룬스톤을 얻었으니 이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길리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획득한 룬스톤이면 이 영지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공자님도 그걸 바라셨던 게 아니었습니까?”

“내가 바라던 일은 맞지. 하지만 그게 무조건 좋은 일만은 아니야.”

“왜 좋은 일이 아니에요?”

벨린다과 길리언은 지셀의 말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영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재원이 생겼는데 그게 도대체 왜 좋은 일이 아니란 말인가?

지셀은 잠깐 입을 다물고 생각을 정리한 뒤 말했다.

“우리를 감시하는 놈들이 있어.”

“네?”

길리언은 지셀이 망상증 같은 병에 걸린 게 아닌지 의심했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감시한다는 말인가?

그때 벨린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멜리아 아가씨요? 돈 뺏어 온 거 때문에 그러는 거죠? 그냥 적당히 보상해 주고 화해하면 되는 문제 아니에요?”

길리언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암살자들이 찾아왔을 때 처리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이전부터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놈들이야.”

“전부터 우리를 감시했다고요?”

“도대체 누가…….”

두 사람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지셀이 말을 이었다.

“이건 아버지와 가신들도 모르는 일이야. 오직 나와 내 동생 엘레나만이 아는 일이지. 누군가 우리 영지를 노리고 있어.”

지셀은 엘레나가 습격당했던 일, 디갈드 공자의 시체를 발견한 일 등을 설명했다.

누명을 써서 영지전이 일어나는 걸 방지하려고 프랑크와 디갈드 공자의 시체를 없앴다는 말까지.

지셀이 설명을 이어 갈수록 벨린다와 길리언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지셀이 지금까지 이상할 정도로 다급하게 움직이던 이유가 조금은 이해됐다.

길리언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공자님, 이 영지는…… 죄송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차지할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오히려 점령하면 야만인들과 싸워야 하니 손해입니다. 다른 영지와 싸움을 붙여서 약화시킬 이유도 없습니다.”

“그래, 지금까지는 그랬지. 하지만 지금은 어떻지?”

“당연히 지금은 룬스톤이…….”

길리언은 말을 하면서 문제를 깨달았다.

빈약한 군사력, 가난한 영지, 언제나 지쳐 있는 영지민들. 그래도 끝없이 싸워야만 하는 위치.

분명 페르디움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땅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 무엇보다 가치가 높은 자원이 발견됐다.

그렇게 된다면 결과는 빤하다.

누군가가 가진 것을 빼앗고 싶을 때, 고래로부터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벨린다가 침을 꿀꺽 삼키며 대신 대답했다.

“저, 전쟁?”

그녀는 자신이 내뱉고 난 뒤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에요. 룬스톤이 이제 발견됐는데 적들이 알 리가 없잖아요?”

앞뒤가 안 맞는다.

룬스톤이 있는 줄 알았다면 적들은 진작에 여기를 쓸어 버렸을 것이다.

지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마 우리를 노렸던 건 룬스톤 때문은 아닐 거야. 그게 있다고 확신했다면 이미 쳐들어왔을 테니까. 분명 이곳을 노리는 이유는 따로 있겠지.”

지셀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룬스톤이 발견된 이상, 그놈들도 곧 이곳을 노리고 올 거야. 내가 전쟁을 앞당긴 셈이지. 어차피 벌어질 일이었지만.”

길리언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지셀의 전 약혼자가 암살자를 보내는 것도 만만치가 않은데, 정체도 모르는 적이 영지를 노리고 있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혹시 짐작 가는 배후가 있으십니까?”

지셀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흑막이 델파인 공작이라 확신하고 있지만, 아직 드러난 증거는 없었다.

전생의 아이던을 비롯한 정체불명의 타국 사람들까지 엮여 있기에 지금 말해 봤자 소용없기도 했다.

“아직은 정확히 모르지만 계속 엮이다 보면 정체가 드러나겠지. 그래서 되도록 빨리 대비해 두려는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벨린다는 표정을 굳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구멍이 난 듯했던 쟈말과 필립의 이야기가 이제야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예전이라면 믿기 힘들었겠지만, 이미 지셀의 실력을 마수의 숲에서 충분히 확인했다.

지셀이 그렇게까지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었다.

길리언은 지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다면 영주님에게 말하고 같이 방안을 찾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니, 아직은 아니야. 가신 중에서도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도 정확히 알 수가 없어. 이미 엘레나의 호위 기사들까지 배신한 판이니까. 가신들이 아니라도 분명 첩자가 득실거릴 거야.”

“룬스톤을 얻었다는 소식도 금방 퍼져 나가겠군요.”

“맞아. 최대한 적들이 알기 전에 룬스톤을 판매하고 대비해야 해.”

지셀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아멜리아는 룬스톤과 상관없이 나를 계속 노릴 거야. 생각보다 집요한 여자거든.”

“룬스톤을 확보한 걸 알게 되면 적들은 분명 바로 움직일 겁니다.”

“그렇지. 그러니까 혹시 모를 전쟁을 준비해야 해. 왜 쉴 시간이 없는지는 이제 알겠지?”

길리언이 걱정스러운 듯 미간을 좁혔다.

“다른 영지라면, 전쟁을 준비하고 진격하는 데 두세 달이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그 기간에 페르디움에서 대응할 전력을 키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할 텐데요.”

지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들이 쳐들어온다면 페르디움의 군사력을 확실하게 제압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올 것이다. 이쪽 전력을 손금 보듯 꿰고 있을 테니까.

그들을 상대하려면 병사를 늘리고 장비를 바꾸는 게 최선이지만, 지금부터 돈을 마련하고 준비하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길리언은 그 사정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기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쓸 만한 병력을 키우고 장비를 갖추려면 적어도 일 년에서 최소한 육 개월의 시간은 필요합니다. 그것도 겨우 기본 훈련이나 마치는 정도입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벨린다는 머리 아프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니까…… 전쟁이 일어날 테니 대비를 해야 한다는 거죠?”

“뭐, 간단히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지.”

“아휴, 뭐 머리 아프게 그렇게 길게 말해요. 그러면 저도 같이 움직여요.”

“응? 벨린다는 쉬어야지. 아직 몸도 안 좋은데 뭐 하러 같이 움직여.”

“영지가 위험하다는데 같이 준비해야죠. 전쟁 같은 건 별 관심 없지만, 어차피 대장 목만 똑 따면 되는 거 아니에요? 저 그런 거 잘해요.”

자신만만한 벨린다의 말에 지셀이 장난 반, 감탄 반 섞인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거참, 말만 들어도 든든하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것만 믿고 있을 수는 없지. 어쨌든 몸부터 회복하라고.”

“도련님 덕분에 훨씬 편해졌어요. 이 상태면 금방 회복될 거 같은데요? 도련님도 지금 멀쩡히 움직이잖……. 잠깐, 그러고 보니까…… 어떻게 벌써 그렇게 움직이는 거예요? 아까 마나를 쓴 것도 그렇고.”

“어? 그러네?”

벨린다가 지적하자 지셀도 고개를 갸우뚱하며 얼굴을 굳혔다.

몸이 괜찮으니 아무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마나도 쓰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굉장히 이상했다.

분명 그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크게 다쳤다.

첫날에는 아예 기절해서 움직이지도 못했고, 이튿날에는 몸만 겨우 움직였을 뿐, 마나는 사용하지도 못했다.

그렇기에 블러드 퓌톤의 시체를 길리언과 카오르가 썰었던 게 아닌가.

하지만 지금은 몸도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마나도 부담 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최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평범하게 움직일 수는 있는 상태였다.

상식적으로 사흘 만에 이렇게까지 몸이 회복될 수는 없었다.

벨린다는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혹시 그것도 도련님이 익힌 연공법하고 관계가 있는 거예요? 엄청난 회복력이네요.”

길리언도 궁금하다는 듯 지셀을 바라보았다.

그가 보기에도 부상 정도에 비해 너무 빨리 회복된 거 같았기 때문이다.

지셀은 고개를 저었다.

이건 마나 연공법의 효과가 아니었다.

마나가 강대하면 당연히 육체의 회복력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지만, 아직 그 정도로 마나를 쌓지는 않았다.

애초에 자신의 연공법은 회복보다는 극단적인 파괴에 최적화되어 있다.

“확실히 이상하군.”

바로 잡혀가 아버지를 만나느라 의식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보름은 정양해야 하는 부상이었다.

뼈에 금이 가고 근육이 찢어졌으며 소량이지만 블러드 퓌톤의 강력한 독에 중독되었으니, 일찍 낫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근육은 벌써 거의 붙은 거 같은데?”

싸울 수 있을 정도로 완전히 치유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은 그저 몸이 조금 욱신거리는 정도였다.

뼈와 근육이 이미 거의 붙었다는 증거다.

독의 기운도 어느새 느껴지지 않았다.

“이건 나도 정말 모르겠네. 오늘은 일단 쉬면서 몸 상태를 점검해 봐야겠어.”

벨린다는 의심스럽다는 눈빛으로 지셀을 바라보았다.

워낙 어물쩍대며 숨겨 온 게 많다 보니 이번에도 그런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뭐, 일단 알겠어요. 도련님도 쉬시겠다니 잘됐네요. 몸이 괜찮아지면 같이 움직이자고요.”

“그래, 상태 보고 같이 움직이든지 할 테니까 몸조리부터 잘해.”

지셀이 길리언과 함께 나가려 할 때, 벨린다가 뒤늦게 생각난 듯 그에게 물었다.

“맞아, 기초만 훈련해도 최소 육 개월은 걸린다면서요. 아무리 빨리 준비해도 이미 늦은 거 아니에요?”

그녀의 말에 지셀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준비할 수 있는 전력이 있어.”

“그게 뭔데요? 또 용병 모으시게요?”

확실히 바로 준비할 수 있는 전력은 용병밖에 없다.

지셀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용병들도 당연히 충원해야지. 하지만 아무도 쓸 수 없는 괜찮은 전력이 따로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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