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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47화 (47/269)

47화 지금 좀 위험해. (1)

감옥에 갇힌 스코반은 벽에 기댄 채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었다.

“아우, 내가 미쳤지. 왜 그랬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아무리 대공자가 검술 실력이 뛰어나도 마수의 숲에 들어가 살아오는 건 불가능했다.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었으면 진작에 영지에서 개척에 나섰을 테니까.

그런데 대공자가 하도 당당하게 구니 자신도 모르게 믿어 버리고 말았다.

“믿을 만한 근거가 하나도 없는데 말이지.”

그가 거짓 보고를 올리는 바람에 대공자를 쫓는 병력은 한발 늦게 움직이게 되었다.

대공자도 그걸 노리고 부탁한 거겠지만……. 그 대가로 스코반은 이렇게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경비대장님 때문에 저도 이게 뭡니까. 하아…….”

스코반 옆에 앉아 있던 잘생긴 리카르도가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그는 정말 억울하게도 스코반의 부관이라는 이유로 같이 갇혀 버리고 만 것이다.

“크흠, 미안해. 그래도 곧 풀려날 거야.”

워낙 사람이 귀하다 보니, 페르디움 영지에서는 웬만큼 큰 죄를 지은 게 아니라면 기사나 병사들을 강하게 처벌하지 않는다.

엄하게 처벌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적당히 벌을 주고 노동력을 유지하는 편이 영지에 이롭기 때문이다.

“참 내, 풀려나면 뭐 합니까? 대장님은 기사 자격을 박탈당할 테고, 저는 노역 형을 받을 거라고요.”

게으른 리카르도에게 노역 형은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그것도 일이 잘 풀렸을 때 얘기지, 대공자님이 숲에서 죽으면 그렇게 쉽게 안 끝날걸요? 우리도 꼼짝없이 죽는 거라고요.”

“크흠흠, 설마 대공자님이 죽지는 않았겠지? 가만 보면 지금까지 사고 치고도 운이 꽤 좋아서 잘 넘어갔잖아. 쉽게 죽을 운이 아니라고.”

만약 대공자가 죽었다면, 스코반은 거짓 보고로 인해 대공자가 죽었다는 책임을 질 수밖에 없었다.

영주에 대한 반역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야 모르죠. 뒤쫓아 간 사람들이 대공자님을 무사히 구출해 오기나 빌자고요.”

리카르도가 혀를 차며 답했다.

스코반도 답답해진 마음을 풀 길이 없어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한참을 한숨만 내쉬던 리카르도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경비대장님은 풀려나면 뭐 하실 겁니까?”

“음…… 그냥 고향에 내려가서 농사나 지을까? 여기서 기사 해 봤자 돈도 못 벌고 힘들기만 하고 피곤한데.”

“고향이 어딘데요?”

스코반이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었다.

“사실 고향이 여기야. 페르디움.”

리카르도는 대놓고 한심하다는 눈빛을 쏘아 보냈다.

“……참 잘도 농사짓게 내버려 두겠습니다. 가뜩이나 사람도 부족한 영지인데. 병사로 몇 년 구르면 다시 기사 시켜 주겠죠.”

“에휴, 그냥 대대로 페르디움에서 살아왔으니 계속 지냈는데 말이지. 솔직히 지겹다, 지겨워. 결혼도 못 하고 모은 돈도 없고.”

리카르도가 의아한 듯 반문했다.

“결혼 그게 뭐 어렵다고요. 돈 없어도 하는 게 결혼인데. 전 오히려 여자들끼리 싸울까 봐 결혼 못 하겠던데요.”

스코반은 저도 모르게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리카르도를 돌아본 스코반이 곧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재수 없는 놈.”

잘생긴 리카르도에게 결혼은 정말 쉬운 일일지도 몰랐다.

‘하, 내가 저 얼굴로 태어났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그러고 보니 저놈은 열심히 살지도 않잖아?’

페르디움의 병사들은 박봉에 시달리고 있지만, 리카르도는 부족함 없이 살고 있다.

그를 좋아하는 여성들이 친목회까지 결성해서는 자주 이것저것 챙겨 주기 때문이다.

스코반은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나름대로 재능이 있고, 뼈를 깎는 고행을 통해 겨우 기사가 됐다.

하지만 저 리카르도 놈은 아무것도 안 해도 먹고살 정도였다.

외모도 재능이라면, 정말 축복받은 재능이었다.

스코반이 괜히 질투가 나서 리카르도의 뒤통수라도 한 대 갈길까 고민하고 있을 때, 감옥 입구 쪽에서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전해져 오기 시작했다.

“응? 무슨 일이지?”

스코반이 창살에 바짝 얼굴을 붙이자 리카르도도 그를 따라 했다.

감옥 입구를 지키던 병사와 뭔가 이야기를 나누던 일행은 곧 두 사람이 갇힌 옥방 쪽으로 다가왔다.

가장 앞에 선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고 스코반과 리카르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 대공자님!”

“대공자님, 살아 계셨군요!”

지셀은 창살 앞에 서서 반갑다는 듯 손을 까딱이며 웃었다.

“거짓말쟁이 스코반! 잘 지냈어? 리카르도 너는 감옥에서도 얼굴에 빛이 나는구나. 잘생긴 게 죄라면 넌 감금 정도가 아니라 바로 사형이었을 텐데. 하하하하.”

“살아 계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스코반과 리카르도는 진심 어린 인사를 건넸다.

이제 대공자를 죽게 했다고 처벌될 일은 없어진 것이다.

두 사람은 그것만으로도 안심했지만, 지셀은 그들을 감옥에 둘 생각이 없었다.

그는 감옥 입구에서부터 저를 따라온 병사를 돌아보며 명령했다.

“어이, 여기 열어.”

“네?”

감옥을 지키던 병사가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다.

그는 두 사람을 풀어 주라는 명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 괜찮아. 이미 다 허락받았어. 나 믿지?”

“하지만…….”

병사는 움직이지 못했다.

대공자가 거짓말을 하며 사고를 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믿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스코반과 리카르도도, 지셀 때문에 거짓말을 하다가 붙잡힌 게 아닌가.

어쩔 줄 몰라 하는 병사를 보며 지셀은 헛웃음을 지었다.

“와, 너무하네. 신용불량자 취급이냐.”

지셀이 어깨를 으쓱거리자 길리언이 나섰다.

콰지직!

길리언은 아예 잠금장치를 손으로 잡고 박살을 내 버렸다.

하지만 문이 열렸어도 스코반과 리카르도는 함부로 나오지 못했다.

스코반이 마나를 사용하면 얼마든지 탈출할 수 있는데 가만히 있었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정말 탈옥하면 일이 더 커지니까.

“괜찮다니까? 어서 나와. 전부 사면이다.”

지셀이 재촉하자 스코반과 리카로드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옥방에서 나왔다.

“감사합니다.”

“정말 풀려나는 겁니까?”

“그래, 두 사람 다 원래 업무로 복귀하면 된다.”

지셀은 두 사람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려 주고는 품에서 주머니 두 개를 꺼냈다.

“자, 받아라.”

두 사람은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주머니를 열어 보았다.

주머니 안에는 금화가 가득 차 있었다.

“이, 이걸 왜?”

“저, 정말 주시는 겁니까?”

갑작스러운 돈지랄에 두 사람이 놀랐지만, 지셀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덕분에 마수의 숲에 방해받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으니 그 보상이다. 일을 잘하면 보상을 받는 건 당연한 이치지.”

지셀은 다른 귀족들과 달리 충성심 하나로만 수하를 부리지 않는다.

용병으로서의 정체성에 기인하는 바가 가장 크지만, 어쨌든 그는 성공한 일에 확실한 보상을 줘야 충성이 따라온다고 믿었다.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스코반과 리카르도가 입이 찢어지도록 웃으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아무 탈 없이 풀려난 것도 기쁜데, 이렇게 큰돈까지 받았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래, 그러면 나중에 또 보자고. 필요할 때 다시 부르도록 하지.”

“예, 언제든 불러만 주십시오!”

“살펴 가십시오!”

두 사람은 허리를 직각으로 꺾으며 극진한 인사를 올렸다.

역시 돈 잘 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지. 지셀은 속으로 낄낄대며 감옥을 나섰다.

감옥 문을 부순 걸 알면 호메른이 좀 잔소리를 하겠지만……. 그러니까 말로 할 때 진작 열었어야지.

지셀이 나가고 나서도 한참 동안 금화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던 스코반이 리카르도에게 물었다.

“이거 액수가 꽤 많은데? 너 어디에다 쓸 거냐?”

리카르도는 잠시 생각하다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동안 매일 얻어먹기만 했으니 친목회원들 불러서 파티라도 할까 하고요. 저도 보답은 해야죠. 이 정도면 아주 끝내주게 놀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안 모으고?”

“모아서 뭐 해요. 나중에 필요한 거 있으면 친목회에 달라고 하면 돼요.”

“……재수 없는 놈.”

역시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느끼며 스코반은 연신 입술을 씰룩거렸다.

스코반이 기쁨과 좌절을 동시에 느끼던 그때, 지셀은 병상에 누운 벨린다를 찾아가고 있었다.

여전히 안색이 창백했지만, 그녀는 지셀이 찾아오자 미소를 지으며 반겼다.

“아직도 안 씻었어요? 몸은 좀 어때요?”

지셀은 그녀의 말에 웃으며 답했다.

“나는 괜찮으니까 벨린다부터 빨리 회복해.”

벨린다는 현재 마나가 역류해 몸을 정상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한계 이상으로 마나를 끌어올려 블러드 퓌톤의 공격을 막았지만, 완전히 충격을 완화하지는 못했다.

부상 자체도 심각하지만, 급작스럽게 끌어올린 마나가 충격을 받은 탓에 엉망으로 꼬여 버린 게 문제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마나가 안정될 때까지 쉬는 수밖에 없었다.

“밥은 먹었어요? 영주님은 뭐라고 하셔요?”

그런 상황에서도 벨린다는 지셀에게 잔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영주의 명을 어겼다며 끌려갔으니 혹시나 벌이라도 받을까 걱정되었던 것이다.

“다 잘 해결됐어. 걱정하지 마.”

여유 있게 웃는 지셀을 보고 벨린다는 그제야 안심한 듯 눈을 감았다.

가뜩이나 몸 상태도 안 좋은데, 용병들까지 끌고 가 무력시위를 한 걸 알면 까무러칠 거다.

지셀은 잠깐이라도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그는 잠시 벨린다의 몸을 살펴보다 곧 그녀의 손을 잡았다.

“빨리 회복할 수 있게 좀 도와줄게.”

“네? 도련님이 뭘 어떻게 도와요?”

벨린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셀은 말없이 어깨만 으쓱이고는 자신의 마나를 벨린다의 몸에 훅 밀어 넣었다.

“갑자기 무슨……. 하지 마요. 위험하다고요.”

“괜찮아, 괜찮아.”

이질적인 마나가 들어오니 그녀의 몸 안에 있던 마나가 반발하기 시작했다.

벨린다는 땀을 뻘뻘 흘리며 잘 움직이지 않는 마나를 최대한 억누르려고 노력했다.

마나 충돌이 일어나면 지셀도 다칠 테니 어쩔 수 없었다.

그사이 지셀의 마나는 요동치는 벨린다의 마나를 살며시 감싸며 누르기 시작했다.

지셀도 어느새 엄청나게 땀을 흘리며 집중하고 있었다.

길리언은 긴장한 채 주변을 경계했다.

혹시나 누군가 건드린다면 지셀과 벨린다 모두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치이익!

얼마 지나지 않아, 지셀의 몸에서 붉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허공에 흩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벨린다의 안색도 눈에 띄게 편해져 갔다.

놀랍게도 지셀이 역류하는 마나를 안정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이게 도대체? 도련님이 어떻게…….”

얼굴에 혈색이 돌아와 홍조까지 띤 벨린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떠듬거렸다.

제 몸 안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너무나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지셀의 마나 운용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섬세했다.

이 정도로 마나를 다루려면 어지간한 경지로는 불가능했다.

지셀은 조심스럽게 마나를 회수하며 손을 뗐다.

“휴, 잘됐네. 며칠 쉬면 금방 일어날 수 있을 거야. 속 좀 편해졌지?”

벨린다는 복잡한 눈빛으로 지셀을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도련님이 익히고 있는 건 가문의 마나 연공법이 아니죠?”

페르디움 가문의 마나 연공법은 붉은 기운을 내뿜지 않는다.

마나의 빛뿐만이 아니라 풍기는 분위기도 달랐다.

거칠지만 안정적인 페르디움의 것과 달리, 지셀의 마나는 살기가 짙었다.

어떤 연공법을 익혔냐에 따라 마나의 성질이 다른 건 당연하지만, 페르디움 것이 아닌 연공법을 대체 어디에서 익힌 건지 벨린다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상식을 벗어나는 성장 속도나 섬세한 마나 운용 기술은 분명 그가 익힌 연공법 덕분이리라.

지셀은 턱을 몇 번 만지작거리다가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으음, 내가 만들었는데. 정확히는 가문의 것을 뜯어고친 거지. 나한테 딱 맞게.”

“하아, 이것도 말해 주기 싫은 거예요? 그럼 그냥 싫다고 하세요.”

마나 연공법을 개량해서 자기한테 맞췄다니, 어지간한 천재가 와도 불가능한 일이다.

마나 연공법이라는 개념 자체가 오랜 세월에 걸쳐 조금씩 발전된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마나 연공법이 그렇게 손대기 쉬운 거였으면, 연공법을 쥔 가문이나 단체에서 극비로 숨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말인데? 나중에 시간 나면 벨린다도 가르쳐 줄게. 지금 익히고 있는 것도 조금 더 손봐 주고. 그러면 믿겠지?”

“아이고, 됐네요. 제가 익히고 있는 것도 쓸 만하다고요.”

“알겠어. 몸조리 잘해서 얼른 일어나라고. 또 바쁘게 움직일 거니까.”

“그렇네요. 이제 돈도 많겠다, 돈 걱정 없이 놀아 보는 것도 괜찮겠죠.”

벨린다의 말에 지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잠깐 쉬고 바로 다시 나가 봐야 해.”

“네? 어딜 나가요? 아, 룬스톤 팔러요?”

“그것도 그렇지만……. 준비해야 할 게 있어. 시간은 언제나 촉박하니 빨리 움직여야지.”

벨린다는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다시 물었다.

“마수의 숲에 들어간 것도 그렇고, 뭐가 그렇게 급해요? 또 뭘 하려고요? 뭔지 모르겠지만 이제 안 하면 안 돼요?”

“나도 솔직히 쉬고 싶지. 그런데 상황이 좀 안 좋아서 그래.”

“도대체 무슨 상황인데요? 말해 봐요.”

벨린다의 목소리에는 불안이 가득 섞여 있었다. 지셀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안타깝게도 우리 영지가 지금 아주 위험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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