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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43화 (43/269)

43화 역시 생각한 대로야. (1)

“그렇지! 이게 돈 복사지.”

“이거 하나하나가 금괴나 마찬가지라고.”

“대장이 이제 북부 최고의 부자가 되는 건가?”

용병들은 신이 나서 한마디씩 하며 채광을 시작했다.

채광이라고 해 봐야 돌을 박살 내어 적당한 크기가 되면 수레에 싣는 것뿐이니 둔기 몇 개만 있어도 충분했다.

세부적인 가공은 영지에서 할 테니 용병들은 그런 것까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몇몇 용병들이 자기네들끼리 모여서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야야, 이거 좀 주워 가자.”

“그래, 이거 아주 작은 것도 엄청 비싸다고.”

“부스러기만 좀 챙기면 모를 거야.”

이런 일을 할 때 고용주가 모르게 조금씩 빼돌리는 건 용병들 사이의 불문율이었다.

세 배의 보수도 좋고 자신들을 잘 챙겨 주는 것도 고맙지만, 물건을 빼돌리는 건 그와 별개 문제로…… 몸에 밴 당연한 습성이자 관행 같은 거였다.

그때 고든이 모두에게 들리게 아주 큰 소리로 당당히 외쳤다.

“난 안 주워 가! 보수 세 배로 충분하다고!”

“이, 이 새끼가?”

“쉿! 조용히 해! 너도 가져가면 좋잖아!”

다른 용병들이 당황하며 외치자 고든이 자신 있는 표정으로 다시 외쳤다.

“나는 돈 같은 거 전혀 관심 없어!”

용병들은 과할 정도로 크게 외치는 고든을 미친놈 보듯 흘기며 자리를 피했다.

그 모습을 감탄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던 지셀이 길리언에게 속삭였다.

“저런 애를 조심해야 해. 돈에 관심 없다고 하는 용병들이 더 환장하더라고. 돈에 관심이 없으면 애초에 용병 일을 안 하겠지.”

길리언은 고개를 끄덕이고 용병들에게 경고했다.

“만약에 부스러기 하나라도 가져간 게 밝혀지면 목을 베어 버릴 것이다. 계약 위반이니 목이 달아나도 할 말은 없겠지? 쓸데없는 욕심은 부리지 마라.”

길리언이 으르렁거리자 용병들은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작업을 하면서 작은 룬스톤 한두 조각 정도 몰래 챙겨 볼까 했는데, 저렇게 강경하게 나오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고든이 갑자기 바지 속에 손을 넣고 몇 번 주물럭거리더니, 룬스톤 조각을 몇 개 꺼내 바닥에 툭 던져 버렸다.

“이 새끼가?”

“뭐야? 언제 챙겼어!”

“야, 이 미친놈아!”

용병들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욕하자, 고든은 코를 몇 번 훔치더니 쌩하게 자리를 피해 버렸다.

어이가 없어 눈만 깜박거리는 길리언에게 지셀이 다시 속삭였다.

“내 말 맞지? 크큭.”

“……그렇군요.”

길리언은 한숨을 내쉬고 다시 용병들에게 강조했다.

“목숨이 아깝다면 부스러기 하나도 빼 먹지 말고 모두 싣도록 해라.”

단호한 어조에 용병들은 연신 입맛만 다셨다.

그동안 길리언의 실력은 충분히 봐 왔으니 함부로 덤비거나 반항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래도 용병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을 이어 나갔다.

살아남은 것도 감격스러운데 엄청난 보수까지 받을 예정이니, 부가 수입이 그렇게 절실하지는 않았다.

“자자, 빨리 담자고.”

“붙어 있는 돌을 최대한 깨서 털어. 많이 담아야지.”

용병들이 떠들면서도 열심히 작업하자 수레에는 금세 룬스톤이 가득 담겼다.

지셀은 수레가 차는 걸 지켜보다가 용병들에게 몇 대는 비워 두라 지시했다.

“아니, 왜요?”

“많이 가져갈수록 좋은 거 아닙니까?”

용병들이 질문하자 지셀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퓌톤의 시체를 가져갈 거다.”

예상하지 못한 말에 용병들은 의아해했다.

“그걸 왜 가져갑니까? 가져가서 드시려고요?”

“저 큰 거를 어떻게 가져갈 생각이십니까?”

룬스톤으로 수레를 채우면 벌어들일 돈이 얼마인데, 그걸 마다하고 시체부터 가져가겠다는 지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수레 몇 대에는 디루스 엔트의 내피까지 가득 차 있는 상태였으니, 블러드 퓌톤의 시체까지 실으려면 룬스톤은 얼마 싣지 못할 터였다.

“블러드 퓌톤의 시체가 있으면 몬스터들이 접근하지 않을 거다. 앞으로 도로를 만들 때도 그 피와 고기를 주위에 뿌릴 생각이야. 그러면 길을 내고서도 몇 달은 안전하겠지.”

용병들이 눈을 끔뻑이자 지셀은 조금 더 풀어 설명해 주었다.

“몬스터들이 접근을 안 하니 우리가 돌아갈 때도 안전하다는 얘기다. 가죽과 껍질도 방어구를 만들 수 있고, 독은 무기에 발라서 쓸 수 있을 테니까. 시체도 여러모로 쓸모가 많아.”

용병들은 그제야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일리가 있는 말이네요.”

“우리 대장은 나이도 젊은데 가끔 보면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 같단 말이지.”

“그러게, 저런 건 생각도 못 했네.”

몬스터는 다른 개체의 냄새에 민감하다.

블러드 퓌톤처럼 강력한 몬스터의 체취가 느껴진다면 근처에 접근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수레를 전부 써도 룬스톤을 모두 실을 수는 없었다.

남은 룬스톤을 안전히 가져오려면 이번에 블러드 퓌톤의 시체를 처리하는 게 나았다.

용병들은 수레 몇 대에 룬스톤을 가득 채우고, 이번에는 블러드 퓌톤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칼이 들어갈 수 있게 길리언과 카오르가 공간을 만들어라.”

지셀도 현재 몸이 정상이 아니라 제대로 마나를 사용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길리언과 카오르가 마나를 이용해 끙끙대며 뱀의 비늘을 걷어 냈다.

어느 정도 틈이 생기면 용병들이 달려들어 열심히 사체를 잘라 냈다.

하지만 워낙 덩치가 크고 단단해 자르는 데만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말았다.

룬스톤을 채굴하고 블러드 퓌톤의 시체를 잘랐을 뿐인데 벌써 저녁이 다가온 것이다.

“작업을 마치면 여기서 쉬고 내일 돌아간다.”

지셀의 말에 용병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용병들은 블러드 퓌톤의 사체를 토막 낸 뒤, 수레에 가득 싣고 줄로 단단히 묶었다.

덩치가 워낙 크니 전부 가져가는 건 엄두도 못 냈다. 수레에 실은 양은 사체의 절반도 못 되었다.

하지만 지셀은 크게 아쉬워하지 않고 작업을 지켜보았다.

어차피 조만간 다시 와서 나머지 시체도 챙길 생각이었다.

잠시 후 수레가 꽉 차자 용병들은 손을 번쩍 들며 환호를 내질렀다.

“으아아, 다 했다!”

“더 이상 실을 수도 없어.”

“드디어 돌아가는구나!”

모든 작업이 끝나고 용병들은 오랜만에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

혹시 모르니 경계를 서고는 있지만, 블러드 퓌톤의 시체 때문인지 이번에도 몬스터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날이 밝자 용병들은 길을 마저 내고, 열심히 수레를 끌며 이동했다.

말이 없으니 인간이 직접 손으로 밀고 끌어야 해서 이동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었다.

룬스톤도 돌에 붙은 채로 실었고, 블러드 퓌톤의 시체도 그 크기와 무게가 만만치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워낙 짐을 높이 쌓아서 천으로 덮어 가려도 아래쪽은 훤히 보이는 상태였다.

“끄응, 말 대신 수레 끄는 짓은 처음 해 보는군.”

“짐 옮기는 게 싸우는 것보다 더 힘든 거 같아.”

“어느 정도 길을 냈으니 이제 인부들이 올 수 있겠지.”

돌아가는 건 즐겁지만 종일 무거운 수레를 끌고 움직이다 보니 작은 불평불만들이 튀어나왔다.

그래도 돌아가는 길은 들어올 때보다 훨씬 편했다. 오면서 길을 내 두기도 했고, 블러드 퓌톤의 시체 때문에 몬스터들도 습격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느릿느릿하게 가니 꼬박 하루가 걸렸다.

일행들은 그들이 남긴 익숙한 흔적들을 확인하고 숲의 끝자락에 가까워졌음을 느꼈다.

“어이, 거의 다 왔어.”

“오늘 밤은 정말 편하게 쉬겠구만.”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

그렇게 다들 마지막 힘을 짜내며 이동하고 있을 때, 숲 바깥쪽에서부터 한 무리가 일행에게 다가왔다.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워진 뒤 지셀은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영지의 병사들이군.”

페르디움 영지의 기사와 병사들이 무거운 표정을 지은 채 다가오고 있었다.

지셀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가장 앞에 선 기사에게 물었다.

“보아하니 마중을 나온 거 같지는 않네.”

기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살아 계셨군요. 대공자님을 찾으러 움직이던 중이었습니다. 알기 쉽게 길을 내셨더군요.”

지셀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어쨌든 무사히 돌아왔으니 찾을 필요 없어. 걱정시켜서 미안하군.”

기사는 무거운 표정을 지우지 않은 채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섰다.

“저희는 대공자님을 체포하러 왔습니다.”

기사의 말에 용병들은 모두 놀라고 말았다.

지셀이 영주의 명을 어기고 멋대로 마수의 숲에 들어왔다는 사정은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셀과 길리언은 이렇게 될 걸 예상했기에 생각보다 담담한 표정이었다.

기사는 조금 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영주님의 명입니다. 순순히 따라오셔야 안 다칠 겁니다.”

협박이 다분히 섞인 말에 지셀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나 지금 좀 바쁜데. 몸도 아프고 말이야.”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셨군요. 그렇다면 강제로 끌고 가야겠습니다.”

스르릉.

기사는 경멸의 눈빛을 보이며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권한도 받았겠다, 반항하도록 유도하고 그 핑계로 흠씬 두들겨 팰 생각도 있었다.

‘넌 대공자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나한테 죽었다. 운 좋게도 마수의 숲에서 살아남았구나. 제발 반항해라.’

평소에도 지셀을 고깝게 보던 기사는 천천히 검을 들어 그를 겨누었다.

“어디 평소처럼 반항이라도 좀 해 보시지요. 제가 따끔하게 혼내 드리겠습니다. 다리를 좀 분질러 드릴까요? 아니면 팔?”

대공자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무례한 발언이었다. 일부러 지셀을 도발하는 것이었다.

‘곤죽으로 만들어 다시는 까불지 못하게 해 주마.’

기사가 그런 생각을 하며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순간.

챙! 차앙!

모든 용병이 갑자기 무기를 뽑아 들며 기사와 병사들을 포위했다.

“이, 이놈들이?”

기사가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자 용병들이 무시무시한 눈빛을 내뿜으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미 몇 번이나 죽을 위기를 넘긴 용병들의 기세는 무서울 정도로 날카롭고 예리했다.

감당 못 할 기운이 몰려오자 병사들이 창백한 얼굴로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네, 네놈들!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

기사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영주의 명으로 움직인다고 하면 용병들 따위는 찍소리도 못하고 물러나는 게 정상이었다.

그렇기에 기사도 지셀의 주변에 있는 용병들은 아예 신경도 쓰지 않고 무시했다.

설마 이렇게 대놓고 적의를 드러낼 줄이야.

“나는 영주님의 명을 받고 온 기사다! 이러고도 무사할 거 같으냐!”

기사가 검으로 사방을 겨누며 소리쳤다.

하지만 기사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흐흐, 그거야 영지 내에서나 통하는 말이지.”

“초입이지만 어쨌든 여기는 마수의 숲이라고.”

“우리가 죽였다는 증거 있어? 아마 무서워서 너희들 찾으러 오지도 않을걸?”

“대충 숲 여기저기에 시체를 버려두면 알아서 몬스터들이 집어 갈 거야. 너희 시체도 못 찾을 거다.”

험악한 말에 기사는 당황해서 지셀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마나를 사용할 수 있더라도 이 정도 숫자의 용병들을 당할 자신은 없었다.

게다가 어찌나 기세가 흉악한지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아 보였다.

“대, 대공자님!”

결국 기사는 주눅이 든 목소리로 지셀을 불렀다.

하지만 지셀은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깨만 으쓱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용병들은 확실하게 마음을 굳혔다.

“흐흐, 우리가 알아서 처리하자.”

“그래, 싹 쓸어 버리면 아무도 모르겠지.”

“쉽게 쉽게 가자고. 안 걸리면 그만이지.”

“힘들게 길을 냈는데 편하게 쓰려고 하네?”

용병들의 기세에 살기가 깃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진심으로 이곳에 있는 기사와 병사들을 전부 죽일 생각인 것이다.

살기를 느낀 기사는 침을 꿀꺽 삼키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미, 미쳤어. 이 새끼들 다 미친놈들이야.’

아무리 막 나가는 놈들이라 해도 영주의 명을 받고 온 기사를 죽이려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이놈들은 대공자를 닮았는지 하나같이 맛이 간 놈들이었다.

기사는 잽싸게 주변을 둘러보며 머리를 굴렸다.

남은 용병은 고작 오십여 명.

기사가 데리고 온 병사들과 비슷한 숫자지만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지, 지원을 요청해야…….’

하지만 용병들이 이미 절묘하게 자리를 잡고 그들을 포위하고 있었다.

병사 하나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이 모두 바짝 붙어 있는 상태였다.

‘보통 놈들이 아니다.’

풍기는 기세도 그렇고, 자리를 잡은 것만 봐도 한두 번 싸워 본 놈들이 아니었다.

도망치는 게 불가능하다고 느낀 기사는 지셀을 바라보며 악을 썼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당장 용병들을 물리십시오! 영주님의 명을 받고 온 기사를 죽이려 하다니! 미쳤습니까?”

그때 구경만 하고 있던 길리언이 도끼를 들고 다가갔다.

“가만 보니 정말 주둥이에 예의가 없는 놈이구나.”

차가운 그의 눈빛을 보고 기사는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기서 죽는다면 정말 시체도 찾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 남은 방법은…….

털썩.

“대공자님, 살려 주십시오!”

무릎을 꿇고 비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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