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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41화 (41/269)

41화 이제 좀 쓸 만해졌구나. (4)

“그래. 그동안 몸통과 꼬리 쪽에 상처를 더 내도록 해.”

“무리입니다. 눈도 약점이 아닌데,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차라리 지금이라도 도망을…….”

두 사람이 대화하고 있을 때,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블러드 퓌톤이 길리언을 공격했다.

콰아앙!

가까스로 피한 길리언에게 지셀이 다시 외쳤다.

“어서! 일단 상처를 키워라! 혼자 있어야 나만 노릴 것이다!”

길리언은 어쩔 수 없이 뒤쪽으로 빠졌다.

그러자 블러드 퓌톤이 눈을 빛내며 지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카아아아아!

블러드 퓌톤의 거대한 머리가 지셀에게 쏘아져 나갔다.

몸과 꼬리를 공격하는 길리언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꼬리를 때때로 흔들어 견제할 뿐이었다.

지금까지 눈앞에서 알짱거리며 자신을 괴롭혔던 지셀을 단숨에 죽이려는 듯, 블러드 퓌톤은 그 어떤 때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콰앙! 콰아앙!

지셀은 블러드 퓌톤의 공격을 피하며 단 한 번의 기회를 노렸다.

약점이라는 눈에도 공격이 통하지 않는 이상, 현재 전력으로는 블러드 퓌톤을 쓰러뜨리기가 불가능했다.

만약 지셀이 전생과 같은 경지에 이르렀다면 단숨에 비늘과 몸통을 벨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요원한 경지.

그렇다면 지금 할 수 있는 방법을 써야 했다.

비록 목숨을 걸어야 한다 해도 말이다.

‘웬만하면 이 방법은 쓰고 싶지 않았는데. 하지만 이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콰앙! 콰앙!

카아아아아!

지셀은 공격을 아예 시도하지도 않고 오직 피하는 것에만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마나가 부족하다 보니 낼 수 있는 속도에 한계는 있지만, 그의 기술은 마스터를 뛰어넘을 정도로 극에 이르렀다.

수십 번을 공격해도 지셀이 절묘하게 피하기를 반복하니 블러드 퓌톤은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

아무리 머리가 좋다고 해도 결국 그 본성은 몬스터에 불과하다.

‘와라.’

지셀은 마치 약 올리듯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블러드 퓌톤을 도발했다.

카아아아아!

블러드 퓌톤이 거대한 입을 벌린 채 지셀에게 달려들었다.

몬스터 특유의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그 순간, 지셀은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피할 생각은 전혀 없는 듯, 신중한 눈으로 벌어진 입 안을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뒤로 빠져 있던 카오르가 지셀의 행동을 보며 놀라 외쳤다.

“이, 이 미친! 진짜 미친놈이었잖아!”

가물거리는 눈으로 힘겹게 전황을 지켜보던 벨린다도 허탈한 음성을 내뱉었다.

“제발 그냥 도망가라고요…….”

“공자님! 안 됩니다!”

길리언이 기겁해서 외친 그 순간.

지셀은 다가오는 블러드 퓌톤의 입 안으로 뛰어들었다.

* * *

지셀은 피부로 느껴지는 독기에 미간을 찡그리면서도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의 예상대로 블러드 퓌톤의 입 안은 겉가죽과 달리 부드러운 살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정도면 공격이 먹히겠어.’

하지만 공격이 통한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블러드 퓌톤의 이빨에서 새어 나오는 독 때문에 지금도 지셀의 옷이 천천히 타들어 가고 있었다.

이 독은 어지간한 대형 몬스터도 단번에 죽일 정도로 강력하다.

그렇기에 블러드 퓌톤이 악명 높은 마수의 숲에서도 다른 몬스터를 누르고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나로 잠깐은 독을 막을 수 있지만 임시방편이었다. 최대한 빨리 놈을 죽이고 빠져나가야 했다.

지셀이 두 번째, 세 번째 마나 코어를 활성화하자 그의 전신에서 마나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블러드 퓌톤이 혀와 목의 근육을 움직여 지셀을 삼키려 했다.

“크읏!”

목 안으로 빨려 들어가던 지셀은 마나를 검 끝에 집중시켜 블러드 퓌톤의 입천장에 검을 꽂아 넣었다.

푸우욱!

크아아아아아아!

갑작스러운 고통에 블러드 퓌톤이 고개를 쳐들고 비명을 질러 댔다.

지셀이 뛰어들자마자 뱀의 머리를 공격하며 블러드 퓌톤을 유인하던 길리언은, 블러드 퓌톤이 몸을 비틀고 꼬리를 마구 흔들며 요동치자 일단 뒤로 물러섰다.

블러드 퓌톤이 고개를 들고 있어 입 안이 보이질 않으니 난감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구경만 할 수는 없었다.

설사 지셀이 죽더라도 블러드 퓌톤을 죽여야 자신들이라도 목숨을 부지할 수가 있다.

길리언은 블러드 퓌톤의 몸을 타고 머리 위로 기어 올라갔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발광하는 이때가 기회라 생각한 것이다.

“이놈! 공자님을 뱉어 내라!”

콰앙! 콰앙!

길리언이 마나를 잔뜩 머금은 도끼로 블러드 퓌톤의 머리를 연신 찍어 댔다.

블러드 퓌톤의 머리 비늘이 조금씩 깨지고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입 안에 들어간 지셀에 온 신경이 쏠린 블러드 퓌톤은 길리언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아예 자리를 잡고 수차례 타격하는 데에는 블러드 퓌톤의 단단한 비늘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카아악!

블러드 퓌톤은 머리를 뒤로 뉘며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머리에 붙은 길리언을 땅바닥에 처박을 셈이었다.

콰아아아앙!

땅이 파일 정도로 뱀의 머리가 땅에 강하게 부딪혔지만, 길리언은 충돌 직전에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지셀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되었다.

위아래가 뒤집히면서, 입천장에 꽂아 넣었던 검에 힘을 주기 쉬운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지셀은 블러드 퓌톤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자세를 고정하고 모든 마나를 폭발시켰다.

세 개의 코어가 엄청난 속도로 돌아가며 마나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검을 통해 블러드 퓌톤의 머리로 폭발하듯이 쏟아져 나갔다.

콰콰콰콰콰쾅!

카아아아아아아아아!

블러드 퓌톤은 다시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벌떡 세웠다.

하지만 지셀은 입천장에 매달린 채 끝까지 모든 마나를 쏟아 넣었다.

카아아아아아!

블러드 퓌톤이 소금 맞은 미꾸라지처럼 온몸을 꿈틀대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길리언은 용병들과 함께 잽싸게 뒤로 물러나 블러드 퓌톤을 바라보았다.

블러드 퓌톤은 고통스러운 듯 스스로 몸을 땅바닥에 연신 던지며 굴렀다.

콰아앙! 콰아앙!

입 안에서 쏟아지는 공격에 블러드 퓌톤의 모든 이빨에서 독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엄청난 양의 독이 입 안의 모든 것을 녹일 듯이 뿜어져 나왔다.

지셀은 마나를 몸에 둘러 독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막아 냈다.

치이이이이익!

마나와 접촉한 독이 끊임없이 증기를 내며 타올랐다.

“크으으으읏!”

이제는 지셀과 블러드 퓌톤, 누가 더 오래 버틸 수 있는지의 대결이었다.

카아아아아악!

급기야 블러드 퓌톤은 제 머리를 사정없이 땅에 찧어 대기 시작했다.

입 안에 붙은 지셀을 떨어트리려는 것이다.

콰아앙! 콰아앙!

하지만 부드러운 입천장에 검을 단단히 박아 넣은 지셀은 아무리 흔들려도 꿈쩍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자리에서 죽기를 각오한 듯, 마나를 전부 짜내고 있었다.

“크으으읏!”

지셀의 입가에서 가느다랗게 피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세 개의 코어가 모두 돌아가기 시작하자 아직 다 성장하지 않은 몸이 버티지 못했다.

치이이이익!

시커먼 독연 사이에서 지셀이 일으키는 검붉은 아지랑이가 쉴 새 없이 피어올랐다.

카아아아아!

블러드 퓌톤의 입에서 그동안 몇 번이나 봤던 검붉은 연기가 나오자, 용병들은 긴장해 표정을 굳혔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용주가 벌이는 저 미친 짓이 제발 성공하기를 바라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릴 뿐이었다.

“크으으윽!”

세 개의 코어가 모두 폭발하는 힘을 버티지 못하고 근육이 조금씩 갈라지기 시작했다.

미세하게나마 블러드 퓌톤의 독 기운이 몸 안으로 침투하고 있었다.

손이 떨려 오고, 온몸을 칼로 난자하는 듯한 고통이 그를 덮쳐 왔다.

얼굴은 보랏빛으로 물들고 몸이 점점 마비되어 갔다.

평소보다 몇 배나 강력한 마나를 뿜어냈으니 몸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드드득!

근육이 너덜너덜해진 다음은 뼈였다.

가속화된 코어를 견디지 못한 뼈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신이 아득해지는 고통에도 지셀은 멈추지 않았다.

수명까지 뽑아 쓸 기세로 모든 마나를 폭발시킬 뿐이었다.

아마 조금만 더 지나면 독에 당하기도 전에 몸이 완전히 부서져 버릴 것이다.

“으아아아아아!”

지셀은 소리를 지르며 정신을 집중했다.

‘여기서 정신을 잃으면 끝이다.’

검에 몸을 맡길 때부터 편한 삶은 없었다. 앞으로도 그런 삶은 요원할 것이다.

그저 항상,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카아아악!

곧이어 블러드 퓌톤의 움직임이 눈에 띌 정도로 느려졌다.

땅에는 더 이상 부딪치지도 않고 비틀거리며 몸을 흔들 뿐이었다.

지셀은 이제 밖으로 빠져나가야 할 때임을 직감했다.

이대로 있다가 정신을 잃으면 몸이 블러드 퓌톤의 목으로 넘어가거나 독에 녹아 버릴 것이다.

휘청거리던 블러드 퓌톤이 고개를 아래로 숙이자마자, 지셀은 검에서 손을 떼고 마지막 힘을 다해 입 밖으로 몸을 날렸다.

쿵!

지셀은 바닥에 튕기듯이 떨어져 나왔다.

하지만 더 이상 몸을 움직일 힘이 없어 자리를 피할 수가 없었다.

“공자님!”

길리언이 그런 지셀을 향해 달려와 부축하려 했다.

치이이익!

“크윽!”

그의 몸을 잡은 길리언의 손이 순식간에 화상을 입었다.

블러드 퓌톤의 독이 마나와 함께 타오르며 엄청난 열기를 뿜어냈기 때문이다.

길리언은 손에 모든 마나를 집중시켜 겨우 지셀을 뒤로 옮길 수 있었다.

땅에 눕힌 지셀의 몸에서는 계속해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열기를 감당하지 못한 용병들이 옆으로 냉큼 자리를 피할 정도였다.

지셀은 그런 상태에서도, 가물거리는 눈으로 블러드 퓌톤을 바라보았다.

카아아아아…….

블러드 퓌톤은 피눈물을 흘리며 원독 어린 눈으로 지셀을 노려보고 있었다.

“막아!”

“고용주를 지켜라!”

“다가오지 못하게 해!”

용병들이 다시 무기를 치켜들며 지셀과 블러드 퓌톤 사이를 가로막았다.

카아아아아…….

처음과는 달리 블러드 퓌톤의 움직임이 매우 느렸다.

“쳐라!”

길리언의 외침에 용병들이 무기를 들고 달려 나가려던 찰나였다.

쿠웅!

일행 바로 앞까지 다가온 블러드 퓌톤이 그 몸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주, 죽었나?”

“아니, 아직 살아 있어!”

“지금 죽이자!”

카오르 또한 다시 검을 들고 외쳤다.

“독을 뿜어내니까 머리는 피해! 몸통을 아예 갈아 버리자고!”

블러드 퓌톤은 누운 채로 혀를 날름거리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정말 끈질긴 생명력이었지만 지금은 누구도 겁을 먹지 않았다.

“와아아아아!”

용병들은 함성을 지르며 뛰쳐나가 블러드 퓌톤의 상처에 무기를 연신 꽂아 넣었다.

블러드 퓌톤은 반격조차 하지 못한 채 쓰러져 꿈틀거릴 뿐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셀은 힘겨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다행이군……. 이제 끝났어…….”

용병들은 온 힘을 다해 블러드 퓌톤을 공격했다.

콰악! 콰직!

간헐적으로 꿈틀거리던 블러드 퓌톤은 결국 모든 상처가 찢어지고 걸레짝처럼 변했다.

사아아아아…….

피가 터져 나오고, 상처가 쪼개지고 짓물러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지셀을 노려보던 블러드 퓌톤의 눈이 서서히 감기기 시작했다.

타고난 강력함으로 적수가 없었던 이 지역의 절대자는.

“카아아아…….”

결국 마지막 비명을 내뱉으며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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