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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34화 (34/269)

34화 여기는 미친 곳이야. (2)

저녁을 먹고 밤이 다가오자 숲의 분위기는 더욱더 으스스해졌다.

매일 치러지는 전투로 피로가 쌓였음에도 불구하고 용병들은 쉬이 잠들지 못했다.

멀리서 간간이 들려오는 흉측한 괴성이 신경을 긁었기 때문이다.

일행은 모닥불을 피우고 램프를 걸어 주변을 밝힌 뒤에야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다.

하지만 지셀은 자리에 눕지 않고 모닥불 앞에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도련님은 안 주무세요?”

“확인할 게 있어.”

“뭘요?”

“몬스터.”

“네?”

벨린다가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지셀이 조용히 답했다.

“낮에는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던 몬스터들이 밤에는 안 나타나. 이유가 있겠지?”

“설마…….”

벨린다는 금방 지셀의 말뜻을 이해했다.

이틀 전만 해도 몬스터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덤벼 오곤 했다.

그런데, 요 이틀 동안에는 밤에 습격해 오는 몬스터가 하나도 없었다.

“이 지역에 밤에만 활동하는 몬스터가 있다는 얘기군요.”

“그래, 그것들이 두려워 다른 몬스터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주변에 있던 용병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첫날이었다면 애송이 귀족이 뭘 아냐며 무시하고 웃어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닷새 사이에 지셀이 보여 준 능력은 범상치 않았다.

그런 그가 하는 말이니 강한 설득력이 느껴졌다.

휘이이잉.

시간이 지나고 주변이 완전히 어둠 속에 가라앉았을 때, 불길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지셀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길리언과 카오르, 벨린다도 표정을 굳히고 따라 일어났다.

[그것들은 어둠 속에서 우리를 지켜 보고 있었다.]

“공자님.”

길리언이 부르자 지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주변에 무언가 있었다.

기감이 예민한 자들은 그 숨 막히는 시선들을 느낄 수 있었다.

몇몇 용병들도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램프가 비추는 범위 너머는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둠으로 가득한 주변에 무언가가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지셀이 풀어낸 마나의 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들의 숫자를 확인하고 지셀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예상 밖이로군.’

[그것들의 수는 약 이백여 마리였으며…… 우리가 지칠 때까지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분노한 발자크 백작이 단신으로 그것들을 쫓았으나 고작 십여 마리를 척살하는 게 전부였다.]

지셀이 확인한 수는 얼추 삼백이 넘었다.

역시 시기가 다르니 정보가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모두 움직이지 마라.”

용병들은 무기를 들고 불안한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휘익!

채찍과 같은 무언가가 날아와 걸려 있던 램프 하나를 낚아채 갔다.

램프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 곧 빛을 잃었다.

하지만 그 잠깐 사이에 인간과 비슷한 형체가 얼핏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들은 우리의 빛과 시야를 훔쳐 가기 시작했다.]

휘익! 휘익!

다시 채찍들이 날아와 램프 몇 개를 낚아채 갔다.

[그것들은 어둠과 동화하는 능력이 있어 빛을 극도로 꺼린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램프가 줄어들자 순식간에 주변이 어두워졌다.

카오르가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켈베로스 용병단을 끌고 뛰쳐나가려 했다.

마치 사냥감이 된 느낌이 그의 격렬한 본능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셀은 손을 뻗어 그를 제지하고 그저 어둠 속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카오르는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뭡니까? 숨어서 지켜보는 놈들이니 전투력은 별 볼 일 없을 겁니다. 그냥 가서 조져 버려야 다시는 까불지 않죠.”

“오늘은 여기까지다.”

“여기까지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순간 주변을 에워쌌던 불길한 기운이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

끄르르르…….

기묘한 웃음소리를 남기고 그것들은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그것들은 밤마다 우리를 찾아와 지켜보았다. 병사들은 한시도 편히 쉴 수가 없었고 우리는 점점 빛을 잃어 갔다.]

정체 모를 무언가가 물러난 걸 느끼고 용병들이 램프를 다시 꺼내려 했다.

지셀이 고개를 저었다.

“램프는 지금 상태로 유지한다.”

“왜요? 밝을수록 좋은 거 아닙니까?”

[우리는 후회했다. 처음 호수에서 그것들을 느꼈을 때 확실히 처리하고 움직였어야 했다. 하지만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우리는 낮과 밤 모두 잃어버렸다. 휴식을 취할 시간은 없었다. 너무 깊이 들어와 방향도 잃은 상태였다.]

지셀은 용병들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것들을 이곳에서 처리하려면 그래야 한다.”

용병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저게 무엇인지 알고 처리를 한단 말인가?

“저게 뭔데요?”

용병들의 물음에 지셀이 나직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팔로르.”

[찬란한 문명과 지성을 잃고 몬스터로 타락해 버린 그것들은 이 숲에서 ‘어둠의 사냥꾼’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은 고대의 선주 종족 중 하나인 ‘팔로르’의 후예이며…….]

* * *

일행은 더 이상 길을 내지도, 이동하지도 않았다.

그저 호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나무를 베어 공터를 만든 뒤, 그곳에서 쉬고 있을 뿐이었다.

용병들이 각자 자리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길리언은 지셀의 옆에 붙어 물었다.

“공자님,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그것들을 처리하고 움직일 생각이야. 안 그러면 계속 따라붙을 테니까.”

“어둠 속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놈들을 무슨 수로 잡는단 말입니까? 우리가 치려 해도 도망갈 겁니다.”

“일단 오늘 밤에 확인해 보자. 용병들에게 활과 화살을 준비시켜.”

“으음, 알겠습니다.”

길리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적들이 그들을 포위한 채 구경만 하고 있다면 아예 화살 세례를 날려 주는 것도 좋은 방편일 거 같았다.

모두가 긴장한 상태로 다시 밤이 찾아왔다.

운이 좋았는지 아니면 팔로르들 때문인지 낮에는 몬스터가 습격해 오지 않았다.

충분히 쉬어 체력이 회복된 용병들은 활을 든 채 어둠 속을 주시했다.

끄르르르…….

불길한 시선이 주변을 가득 채우는 것이 느껴졌다.

그 숨 막히는 대치 속에서 지셀이 외쳤다.

“쏴라!”

피잉!

순식간에 백여 개가 넘는 화살들이 사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바깥을 보고 둥그렇게 모여 선 용병들이 각자 정면을 향해 아낌없이 화살을 날렸다.

하지만.

끄르르르…….

돌아온 것은 마치 비웃는 듯한 괴기한 소리뿐이었다.

용병들은 당황했다.

“뭐, 뭐야!”

“하나도 안 맞았어? 말도 안 돼!”

분명 사방에 무언가가 있다는 건 느껴졌다. 단지 어둠 속에 숨어 모습만 보이지 않을 뿐.

그것들은 일부러 적의를 드러냈다. 기감이 둔한 사람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자신들을 포위하고 있다고 분명히 느껴질 정도로 몬스터가 많은데, 화살은 단 하나도 맞지 않고 허무하게 날아갔을 뿐이다.

“도, 도대체 무슨 몬스터길래…….”

“이 많은 화살 중에 맞은 게 하나도 없다고?”

용병들은 공포에 질려서 뒷걸음질했다.

그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길리언은 입술을 실룩거리며 마나를 끌어올렸다.

화살에 마나를 담아 더 강력하게 쏘아 보려는 속셈이었다.

그때 지셀이 길리언의 손을 잡아 제지했다.

“안 돼. 아직 마나를 사용하면 안 된다.”

“공자님?”

“그러면 일이 더 피곤해져. 마나는 철저히 숨겨야 한다.”

“그게 무슨…….”

“곧 설명해 줄게. 역시 공격이 통하지 않는군.”

[어둠에 동화된 팔로르들은 모든 물리적 공격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그렇기에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발자크 백작과 기사들을 제외하면 팔로르들에게 타격을 줄 방법이 없었다. 이것은 고대 종족인 그들이 받은 축복이자 저주였으니…….]

휘이익!

다시 램프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빛이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주변은 더 어두워졌고, 용병들은 겁을 먹은 채 서로 몸을 바짝 붙였다.

지셀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램프가 없어지는 모양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팔로르들은 가장 먼저 주변의 빛을 없애려 한다. 하지만 그것들이 간과한 점은, 마나를 머금은 무기는 스스로 빛을 뿜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마나를 무기에 두르면 빛이 뿜어져 나온다.

아예 안 나오게 할 수도 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감추는 사람은 없었다.

팔로르들에게 타격을 주려면 마나를 써서 공격해야 했다.

어둠 속에서는 공격을 손쉽게 피하는 놈들이지만, 빛이 비치며 형체가 드러나면 더 이상 무적이 아니니까.

당장이라도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자들이 팔로르들을 쫓는다면 어느 정도 타격은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셀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오히려 더 곤란해지지.’

[발자크 백작은 분명 왕국에 다시 없을 정도로 강력한 무인이지만, 그 힘을 너무나 과신했다. 팔로르들은 발자크 백작을 당할 수 없자 병사들을 납치하기 시작했다.]

첫날에 켜 두었던 램프는 절반 이상 사라졌다.

어두운 공간에 남겨진 용병들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끄르르르…….

팔로르들은 만족한 듯 웃음을 내뱉은 후 사라졌다.

이런 식으로 점점 압박을 가해 사냥감들의 전의를 떨어뜨리고 공포를 주는 것이 이들의 사냥 방식이었다.

“모두 모여라. 설명을 해 주겠다.”

팔로르들이 사라지자 지셀은 용병들을 모아 놓고 자신이 아는 걸 설명해 주었다.

설명을 듣고 일행 모두가 경악해 입을 벌렸다.

빛이 없으면 공격이 통하지 않는 몬스터라니, 그런 건 들어 본 적조차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 화살을 쏘아 본 뒤라 믿기 싫어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 그러면 램프도 더 설치하고 횃불도 만들어서 잔뜩 둘러놔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간을 잠깐 벌어 줄 뿐, 결국은 모든 불을 뺏길 거야.”

“그러면 이건 어때요?”

벨린다가 단검 하나를 쥐어 들자 곧 단검에 푸른 빛이 서리기 시작했다.

기척만 잡을 수 있다면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도 죽일 수 있다.

무기가 가까이 가는 순간에는 몸 일부라도 빛이 비칠 테니까.

“역시 벨린다는 똑똑하네.”

지셀이 칭찬하자 벨린다가 콧대를 높이 세우며 잘난 척했다.

“저 왕립 아카데미 나온 여자예요.”

“거짓말은 잘한다니까. 어쨌든 마나를 사용하면 안 돼.”

“거짓말인 거 어떻게 알았어요? 아니, 마나는 왜 쓰면 안 되는데요?”

“그러면 저놈들이 사냥 방식을 바꿀 테니까.”

[잡혀간 병사들의 흔적을 발견했다. 산 채로 잡아먹힌 모습이었다. 분노한 발자크 백작은 팔로르들이 나타날 때 아예 주변 수십 미터를 날려 버렸다. 하지만 이미 그 힘을 알고 있는 팔로르들은 멀리 떨어져 다니며 빛에 노출되기도 전에 어둠 속으로 숨어 도망갔다. 결국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병사들이 끌려가도 구경만 하는 꼴이 되었다.]

만약 팔로르들이 싸움을 피하고 쫓아다니며 하나둘씩 납치하는 방식을 취한다면 자신들은 금세 말라 죽을 것이다.

마나를 쓸 수 있는 사람도 적고, 숫자도 그리 많지 않은 지금의 전력으로는 전멸할 수밖에 없었다.

지셀이 설명을 이어 갈수록 일행들은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

가뜩이나 숲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강력한 몬스터들이 나오고, 그만큼 피해도 늘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밤마다 저런 놈들이 쫓아와 납치를 시도한다고 상상하니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그,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미 저놈들이 우리를 사냥감으로 찍은 거 아닙니까. 지금이라도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한 용병이 불안한 마음에 묻자 지셀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싸워야 해.”

[이 인원으로는 도무지 방법이 없었다. 분명 싸우면 이길 수 있는 상대였지만 상대는 우리와 싸울 생각이 없었기에……. 결국 우리는 또다시 실패했고, 왕실 마법사 알로이스 경과 휘하 마법사들이 도착하고 나서야 그것들을 박멸할 수 있었다.]

지금 용병들보다 강한 전력이었던 전생의 선발대도 몇 번이나 마수의 숲 공략에 실패했다.

그들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아무런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팔로르들이 몬스터치고는 똑똑했던 것도 문제였다.

하지만 지셀은 그들과 다르다.

‘저것들이 눈치채기 전에 이곳에서 모조리 죽인다.’

정보는 충분하고 준비도 철저히 했다.

모든 것이 그의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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