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여기는 미친 곳이야. (1)
마누스는 교묘하게 사람들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이건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우리는 지금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는 거라고.”
“그래도 목적지는 초입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는데…….”
“크큭, 넌 그걸 믿냐? 그게 어딘데? 어디까지 들어갈 줄 알고 그래?”
“…….”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한 게 한둘이 아니야. 아무도 온 적이 없는 이 숲에 목적지를 정했다고? 그게 어딘 줄 알고? 왜 가는 건데? 뭐가 있는 줄 알고?”
“으음, 그런 생각은 안 해 봤는데.”
“젠장! 고용주는 미친 게 분명해! 그냥 혼자서 망상만 하다가 끝내는 게 아니라 실행력까지 있는 과감한 미친놈이라고! 우리도 결국 다 죽고 말 거야!”
마누스의 말에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다.
간혹 망상에 빠진 영주나 귀족들이 괴상한 짓을 벌이는 경우가 실제로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나이가 지긋한 용병, 토란이 인상을 찌푸렸다.
“고용주가 아니었으면 진작에 다 죽었을 거다. 쓸데없는 소리 하면서 불안감을 조성하지 마라.”
“……아니, 나는 그냥 불안하니까.”
“저런 고용주를 만나는 게 흔한 일인 줄 아나? 고용주는 누구보다 앞에 서서 싸우고 있고 누구보다 우리 목숨을 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보통 귀족들은 용병들에게 지시할 뿐, 앞장서서 싸우지는 않는다. 위험한 일이라면 더 그랬다.
용병들을 고용하는 이유는 방패로 쓰기 위함이지 함께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니까.
그건 용병들조차도 당연히 받아들이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셀은 달랐다.
정말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려는 모습을 계속 보여 주고 있었다.
이미 그 모습에 감명받은 토란은 분란을 일으키려는 마누스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고용주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이미 다 죽었어. 망상이 아니라 그만한 실력이 있는 거다. 우리는 믿고 따르면 된다.”
마누스도 더 이상 토란의 말을 반박하지 못했다.
다른 용병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렇지. 우리를 고기 방패로 쓰려는 게 아니야.”
“고용주가 다른 귀족들과 다르다는 건 확실하지.”
“지휘하는 건 어떻고? 아주 능수능란하더라.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야.”
“저런 고용주라면 믿을 만하지.”
그래도 강력한 몬스터와 몸을 부딪치며 싸워야 하니 부상자와 사망자가 안 나올 수는 없었다.
마누스가 그 사실을 상기시키며 투덜거렸다.
“그게 언제까지 통할 거 같은데? 지금이야 괜찮다 쳐도 이렇게 계속 지내다가는 결국 다 죽고 말 거야.”
아무리 놀라운 능력을 보여 주면 무엇 하나?
쉴 틈 없이 싸우다 보면 결국 피로 때문에 모두 지쳐 쓰러질 것이다.
지셀이 아니었으면 이미 진작에 다 죽었을 정도로 이 숲은 위험했다.
초입에 서식하는 몬스터는 경쟁에서 패배하고 외곽으로 밀려난 놈들일 텐데도 숲 밖의 몬스터보다 강력했다.
아직 목숨이 붙어 있을 때 다 때려치우고 도망가야 했다.
마누스가 자꾸만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그래서였다.
도망간다면 고용주한테 죽을 거 같고, 설사 그가 놓아주더라도 혼자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
불안감과 피로감에 빠진 용병들을 선동해 고용주를 압박하고, 최대한 위약금을 적게 물고 돌아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목숨이 아깝지도 않아? 아무리 용병이지만 스스로 죽을 자리를 찾아가는 놈이 어디 있냐?”
하지만 토란이 코웃음을 치며 반박했다.
“돈을 받았으면 목숨을 맡기는 게 용병 아닌가.”
“멍청하긴, 그런 용병이 요즘 어디 있어? 우리는 결국 고기 방패로만 쓰이다 죽을 거라고. 고용주도 정말 위험해지면 도망갈걸?”
실력 있는 용병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목숨을 걸고 임무를 완수하는 것?
아니다. 가장 오래 살아남는 자가 가장 실력 있는 자다.
위험하다 싶으면 빨리 발을 빼는 것도 용병에게 꼭 필요한 능력이다.
귀족을 믿고 따르는 건 정말 멍청한 짓이다.
지금이야 배려하는 척 행동해도 언제든 위험해지면 자신들을 버리고 도망갈 테니까.
귀족이란 본디 그런 놈들이다.
마누스가 계속 선동하자, 동요하기 시작한 용병들이 있긴 있었다.
현실적인 발언에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젠장, 멍청한 꼰대 새끼!’
하지만 토란처럼 고지식한 놈들이 문제였다.
용병들 대부분은 고용주를 믿고 끝까지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누스가 다시 입을 열려 할 때, 토란이 그의 멱살을 잡았다.
“자, 봐라. 고용주가 쓰고 있는 저 약과 포션은 우리 몸값보다 비싼 거다. 너라면 저렇게 할 거냐? 고용주가 정말 우리를 고기 방패로 쓸 생각인 거 같냐고?”
그 말에 가까이 있던 용병들이 모두 고개를 돌렸다.
용병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서는 지셀이 부상자들의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자들은 다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고용주가 쓰고 있는 약은 정말로 자신들의 몸값보다 비싼 약들이었기 때문이다.
용병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군거렸다.
“하긴, 우리를 버릴 사람 같지는 않아.”
“치료하는 솜씨도 보통이 아니야. 나는 무슨 전문 치료사인 줄 알았다니까?”
“포션도 적게 쓰는데 효과가 엄청나더라고.”
사람들의 반응이 다시 시들해지자 마누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 모습을 본 토란은 잡았던 멱살을 탁 놓았다.
“우리는 돈을 받았으니 그냥 따르면 된다.”
“쳇.”
침을 뱉는 마누스를 일별하고 자리로 돌아간 토란은 가만히 앉아 지셀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자신도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겪었던 고용주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조금씩 마음이 끌렸다.
용맹하거나, 지휘력이 뛰어나거나, 똑똑한 귀족들은 많이 만나 보았다.
하지만 용병을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게 아니라 인간답게 대해 주는 귀족은 단연코 처음이었다.
자기 몸을 사리지 않고 저렇게 앞장서서 싸우는 귀족 또한 본 적이 없었다.
토란은 돈이 아니라 지셀이라는 인간 자체에 감화되고 있었다.
‘정말 죽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조금 더 보고 싶군.’
죽음이 무섭지 않은 건 아니었다.
마누스의 말처럼 정말 죽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설령 죽더라도 끝이 어떤지 함께 가보고 싶었다.
멍청한 결정인지도 모르지만…… 돈을 받고 목숨을 파는 용병이 죽기 싫다고 도망친다면 용병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그건 토란이 용병으로서 품은 마지막 신념이자 양심이었다.
“그나저나 우리 고용주는 돈도 많군. 가난한 영지라더니 저런 비싼 약들은 어떻게 구해 온 거지?”
토란의 말대로 지셀은 귀한 약들과 포션을 아낌없이 쓰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벨린다가 끊임없이 잔소리를 할 지경이었다.
“아니, 도련님! 그 귀한 약재며 포션을 그렇게 마구 쓰면 어떻게 해요? 도련님 다쳤을 때 써야죠! 내가 미쳐 정말!”
지셀은 용병의 팔에 붕대를 꽉 감아 주며 말했다.
“그거 아껴서 뭐 해? 다 쓰려고 가져온 건데. 필요할 때 제대로 써야지.”
“이러다가는 나중에 도련님이 필요할 때 쓸 것도 없다고요!”
“그건 뭐 그때 가서 생각해 보자고.”
벨린다가 지셀을 흘겨보며 툴툴댔다.
“비싼 약 쓰는 것도 아까워 죽겠는데, 무슨 치료까지 직접 해 줘요?”
“이놈들 치료하는 게 영 개판이잖아. 보고 있으니 속이 뒤집힐 거 같아서 말이지.”
털털한 지셀의 답변에 벨린다는 답답하다는 듯 제 가슴을 두드렸다.
다친 용병은 감격해서 말했다.
“가, 감사합니다. 공자님.”
“됐고, 쉴 수 있을 때 잘 쉬어 둬라. 나중에 응급 치료법도 좀 제대로 배우고.”
“헤헤, 알겠습니다요.”
용병들이 소독을 하겠답시고 상처에 오줌을 휘갈기고, 아무런 효과도 없는 풀을 덕지덕지 붙이고 있는 꼴을 보고 지셀은 순간 머리가 띵해졌다.
어쩔 수 없이 하나하나 붙잡고 가르치며 챙겨 주었다.
“부목을 그딴 식으로 대면 뼈가 어긋날 거다. 그리고 너는 오줌 금지다. 더 발랐다가는 살이 곪아 버릴 거야. 이 멍청한 놈아! 그걸 왜 마셔!”
지셀의 행동에 감격한 용병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다른 고용주들은 보통 부상이 심한 용병들은 버리거나 죽게 내버려 둔다.
살려 두려면 돈도 들고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벨린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용병을 챙기는 지셀을 뜯어보았다.
“도련님이 어떻게 저런 걸 알고 있지? 저렇게 주변을 챙기는 사람도 아니었는데…… 설마 진짜 흑마법사가 빙의한 건가?”
그녀가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동안에도 일행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전투를 반복하며 나아간 지 오 일째가 되는 날.
일행은 작은 호수를 발견했다.
“와, 물이야!”
“엄청 시원하잖아!”
물을 발견하자마자 용병들은 모두 달려가 목을 축였다.
챙겨 온 물이 있지만, 미지근할뿐더러 시간이 지날수록 물주머니의 냄새가 배어서 마시기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속이 뻥 뚫릴 정도로 차가운 호수의 물은 쌓여 온 갈증을 단번에 해결해 주었다.
평소에는 용병들의 움직임을 제한하던 지셀도 그 행동은 막지는 않았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에 잠겼다.
‘정리한 루트는 비교적 정확하다.’
전생에 왕국의 토벌대가 진행한 경로와 자신이 가려는 경로는 달랐다.
당연히 몬스터들도 일행이 마주치는 순서대로 기록되어 있지는 않았다.
지셀은 기억을 더듬어 예상 경로와 몬스터들의 기록을 다시 맞추었다.
지금까지는 비교적 잘 들어맞았고, 운이 좋았는지 나타나지 않은 몬스터들도 있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위험하다.’
이 호수는 지셀이 목적지로 삼은 장소에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그리고 더 큰 위험이 시작됨을 알리는 곳이기도 했다.
[그것들은 아마 호수를 지날 즈음 따라붙기 시작했을 것이다.]
지셀은 기억 속 문구를 여러 번 되뇌며 일행에게 말했다.
“오늘은 여기서 쉰다. 오랜만에 씻고 재정비도 하도록 하지.”
용병들은 그의 지시에 따라 주변의 나무를 베고 시야를 확보한 뒤, 야영 준비를 했다.
“도련님, 금방 저녁 준비해 드릴게요.”
지셀의 실력을 어느 정도 알게 된 뒤, 벨린다는 몬스터를 상대할 때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보다는 훨씬 체력 소모가 덜한 편이었다.
그녀는 작은 솥을 수레에서 꺼내 물을 받고 각종 양념과 육포를 넣어 따뜻한 수프를 끓였다.
“자, 이거 드세요. 이런 곳에서는 든든하게 먹어야 힘을 쓰는 법이라고요.”
“아니, 그렇다고 나 혼자만 매일 이런 걸 먹기는…….”
“쓰읍! 잔말 말고 그냥 드세요.”
벨린다는 포크를 그의 눈앞까지 들이밀고 사납게 웃었다.
지셀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용병들이 휘파람을 불며 야유를 보내왔다.
“어휴, 누구는 따뜻하고 맛있는 거 먹는데 누구는 딱딱한 육포나 뜯고.”
“아니, 전투도 안 하고 공자님 뒤만 따라다닐 거면 우리 밥이라도 해 달라고!”
“그래, 앞으로 식사 담당을 맡아라! 우우!”
“우리도 따뜻한 수프를 달라!”
피잉!
순간,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나무에 포크가 깊이 박혔다.
야유하던 용병들 중 하나가 기대고 있던 나무였다.
제 귀 옆에 바로 박힌 포크를 보고 용병은 식은땀을 흘리며 눈알만 뒤룩뒤룩 굴렸다.
벨린다가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 다들 손 있으시잖아요. 직접 해 드세요. 아셨죠? 저는 우리 도련님 챙기기도 바쁘거든요.”
용병들이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냥 하녀인 줄 알았는데, 포크를 던진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자칫했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이마가 뚫릴 거 같았다.
지셀은 피식 웃으며 벨린다에게 말했다.
“여유가 생기면 용병들도 좀 챙겨 줘. 다들 고생하고 있으니까.”
“뭐, 생각해 볼게요.”
“그나저나 오늘은 입맛이 별로 없는데, 이건 다른 사람들에게…….”
“여기까지 와서 반찬 투정이세요? 빨리 드셔야죠. 어렸을 때 바로 식사 안 하시면 제가 어떻게 했는지 기억나시죠?”
벨린다가 새로운 포크를 꺼내 지셀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지셀도 더는 말을 덧붙이지 않고 얌전히 수프를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