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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29화 (29/269)

29화 온 힘을 다해 나를 따라와라. (1)

완전 무장을 한 용병들이 지셀의 명령에 따라 순식간에 한자리에 모였다.

다들 나름대로 긴장했는지, 용병들 주제에 오와 열을 맞추고 있었다. 짧은 기간이나마 훈련한 성과가 있었다.

지셀은 그들을 이끌고 바로 마수의 숲과 가까운 주둔지로 이동했다.

“역시 아직은 상태가 좀 아쉽네.”

주둔지는 당장 숙식을 해결할 수 있게 기초만 빠르게 잡아놓은 상태였다.

완성된 뒤에 출발하면 좋았겠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만한 여유가 없었다.

지난 며칠 사이에도 가신들이 의심 어린 눈빛을 품고 몇 번이나 찾아왔었다.

그때마다 지셀과 벨린다가 대충 둘러대며 그들을 돌려보냈지만, 슬슬 인부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나고 있어 더 버티기는 힘들었다.

“어차피 숲에 들어가 있는 동안에도 주둔지 건설 작업은 계속 진행할 예정이니까…….”

지셀은 용병들을 둘러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모두 소문은 들어봤겠지만 숲은 위험하다! 내가 말하는 대로 잘 따라야 희생이 적을 것이다. 절대 개인행동은 하지 말고 긴장을 늦추지 말도록!”

갑작스럽게 무장 병력을 이끌고 나타난 지셀을 보며, 숲 입구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저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지금……. 숲에 들어가겠다고?’

병사들은 얼빠진 얼굴로 어떻게든 막으려 했지만, 이백여 명에 가까운 용병들을 막기에는 힘이 부족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숲에 들어가기 직전, 지셀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었다.

‘일이 성공하면 모든 시선이 이곳으로 몰릴 것이다.’

델파인 공작가가 페르디움이 커지는 상황을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다.

아니, 공작가까지 갈 것도 없이 주변 영주들부터 호시탐탐 이곳을 노리게 될 것이다.

어찌 보면 지셀의 행동은 스스로 위험을 불러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지.’

죽음이 다가오는 걸 뻔히 아는데, 아무것도 못 한 채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다. 살길은 그것뿐이야.’

다시 한번 마음을 강하게 가다듬은 지셀은 눈을 뜨고 손을 높이 들었다.

모두를 이끌고 숲에 들어가려는 찰나, 누군가가 크게 외치며 그들 쪽으로 달려왔다.

“대공자님, 안 됩니다!”

“오, 스코반?”

달려오는 자는 현재 마수의 숲 경비대장으로 있는 스코반이었다.

오크 토벌 이후 술에 취해 살다가 좌천 아닌 좌천을 당한 것이다.

지셀은 오크 토벌을 함께한 의리로 그가 달려와 숨을 고를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헉헉, 대공자님. 설마 숲에 들어갈 생각이십니까?”

“그렇지, 지금 들어갈 거야.”

“안 됩니다! 영주님의 명령을…….”

“스코반, 부탁 하나만 하지.”

“네?”

“내 덕분에 전에 돈 좀 벌었잖아? 그 의리를 생각해서 좀 들어줘.”

부탁이라는 말에 스코반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공자가 자신에게 무언가 부탁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지셀은 그냥 다짜고짜 물건을 뺏어가거나, 귀찮은 일을 강제로 시키는 인간이었다.

지셀은 당혹스러워하는 스코반을 보며 웃었다.

“당분간 병사들 입을 막고 내가 이곳에 들어간 걸 비밀로 해야 해. 영지의 병력이 바로 날 따라올 수 없게 말이야. 자칫하면 우리끼리 칼부림이 날지도 몰라. 이건 농담이 아니야.”

“하, 하지만 이미 용병들이 영지에 진입한 걸 수비대가 봤지 않습니까? 곧 보고가 들어갈 겁니다.”

“그러니까 전에도 내가 말했잖아. 현장에서는 일선 지휘관이 알아서 판단하고 행동하는 거라고.”

“그, 그 말은……”

“적당히 둘러대라는 말이지. 우리는 숲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이동한 거야. 어때? 할 수 있겠어?”

‘거, 거절해야 해!’

만약 거짓말을 한 게 걸린다면 자신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스코반은 의미심장하게 웃는 지셀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눈빛에는 마치 오크 토벌을 할 때처럼 자신감이 넘쳤다.

그때도 그랬다. 대공자는 제멋대로 지휘권을 달라고 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밀어붙였다.

하지만 덕분에 희생 없이 오크들을 모두 죽일 수 있었다.

저 눈빛을 보니, 다시 한번 그를 믿어 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어 버렸다.

결국 스코반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어차피 눈앞의 대공자는 말려도 듣지 않을 인간이었으니까.

“역시 화끈하네. 좋아, 그럼 시간을 좀 벌어 달라고. 능력 한번 보겠어.”

지셀은 뒤늦게 스코반을 따라온 리카르도에게도 알은체했다.

“여, 리카르도! 스코반의 부관이 된 거야? 진급 축하해. 여전히 잘생겨서 좋겠네.”

리카르도는 미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다가 물었다.

“대공자님, 어디 가세요?”

“마수의 숲.”

“거기 멋대로 들어가시면 경비대인 저희도 죽어요!”

“괜찮아, 너희들 죽기 전에 돌아올게.”

리카르도는 그 말에 기겁하며 외쳤다.

“대체 저한테 왜 그러세요!”

“내가 뭘 어쨌다고. 저번에도 그러더니 오늘도 또 그러네.”

지셀은 혀를 몇 번 차고는 말을 이었다.

“어쨌든 몬스터 튀어나올 수도 있으니 입구 잘 지켜라. 갔다 온다.”

지셀은 또 다른 사람이 그를 잡을세라 얼른 숲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 들어가자!”

지셀을 따라 용병들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스코반과 리카르도, 그리고 나머지 병사들은 그저 넋이 나간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누구도 개척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마수의 숲.

그곳에 지셀의 원정대가 드디어 첫발을 내디디는 순간이었다.

* * *

말은 한 마리도 끌고 오지 않아 모두 직접 걸어서 움직여야 했다.

몬스터의 습격에 말이 겁먹어서 날뛰거나 도망치면 오히려 더 방해된다.

짐들도 모두 수레 여러 대에 담아 용병들이 직접 끌고 있었다.

마수의 숲도 초입부는 일반적인 숲과 다를 게 없었다.

작은 산짐승들이 몇 마리 눈에 띄었고 벌레 우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용병 중에는 별거 아닌데 소문이 과장된 게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숲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간 뒤에는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부터가 진짜였군.”

누군가가 무심코 중얼거린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숲은 고요했다. 언제부터인지 벌레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숨 막힐 듯한 침묵만이 이어졌다.

조금 더 들어가자 나무들의 크기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높이 솟은 나무들은 그에 어울리는 큰 나뭇잎으로 하늘을 빽빽하게 가렸다.

어둡다.

나뭇잎 사이사이 아주 작은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이 없었다면 아예 앞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용병들 사이에서 조그맣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래서 어둠의 숲…….”

마수의 숲에 붙은 다른 이름은 어둠의 숲.

그 이름에 걸맞게 숲에는 어둠이 묵직하게 깔려 있었다.

분명 한낮임에도 흩어지지 않고 발밑에 넓게 펼쳐진 안개가 음산한 기운을 풍겼다.

서늘한 숲의 공기가 일행을 감싸고 흘렀다.

“램프를 켜라.”

지셀의 말에 따라 몇몇 용병들이 램프에 불을 붙였다.

용병들은 램프를 들며 한마디씩 수군거렸다.

“그런데 램프는 왜 이렇게 많이 들고 왔대?”

“허세지, 허세. 횃불 쓰기는 창피한가?”

횃불보다야 램프가 훨씬 편하긴 하지만, 램프는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지셀은 램프를 무려 수백 개나 준비해 온 것이다.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르는 상자도 몇 개나 쌓여 있었다.

용병들은 역시 귀족이라 씀씀이가 헤프다며 은근히 지셀을 욕하기 바빴다.

램프를 나눠 들고 시야가 충분히 확보되자 일행은 다시 천천히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이 끊기자, 지셀은 용병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곳부터 길을 낸다. 나무를 베고 풀을 쳐 내라.”

지금까지는 그나마 사람이 다닌 흔적이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없었다.

목적지까지 길을 내려면 기초 작업을 해 두어야 했다.

시간이 꽤나 걸리겠지만, 지금 길을 확실히 확보해야 인부들이 목책을 세우고 길을 다질 수 있을 터였다.

지셀은 앞장서서 도끼를 들고 나무를 베기 시작했다.

도끼질 소리가 숲에 울려 퍼졌다.

“뭐야? 고용주도 직접 나서네?”

“저게 그 솔선수범이라는 거지? 귀족의 품격 같은 건가? 크크큭.”

“얼마나 하겠어? 그냥 잠깐 의욕이 넘쳐서 저런 거겠지.”

용병들은 나무를 베며 지셀을 비웃기 시작했다.

귀족이라는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 나서서 힘을 쓰니 존경심보다는 비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나무는 제법 잘 베네.”

“그래 봤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만두겠지. 가끔 저렇게 나대는 귀족들이 있잖아?”

“하긴 집에서 검술만 수련했을 테니 몸이 근질거리긴 하겠네. 하하하.”

여기저기서 수군거림이 이어졌지만 켈베로스 용병단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고용주가 한번 주먹질을 시작하면 쉽게 안 끝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다른 용병들에게 그 사실을 말해 줄 의리는 없었다. 이런 건 몸으로 직접 익혀야 기억에 오래 남는 법이다.

벨린다는 얼굴을 찌푸리며 지셀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아이참, 도련님이 왜 이런 일까지 해요? 돈 주고 고용했으면 사람을 써야죠.”

“괜찮아. 한 사람이라도 도와야 빨리 끝나지.”

“이상하다. 도련님 원래 이런 사람 아니었는데? 귀한 몸이라고 씻는 것도 직접 안 하시면서.”

“……기억 안 나.”

벨린다에게는 불과 며칠 전 일이었지만, 지셀에게는 오래전, 철없던 시절의 잊고 싶은 과거일 뿐이었다.

두 사람이 투덕거리는 사이에도 용병들이 힘을 쓴 덕에 나무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나무를 베어 생긴 빈틈으로 햇빛이 들어오기 시작하니 일행의 분위기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지셀은 나무를 베면서도 끊임없이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그 일지에 나온 내용과 다른 점이 있으면 안 되는데.’

지셀은 전생에 마수의 숲을 조사하다 델파인 공작가의 개척단이 쓴 일지를 구하고, 그것을 닳고 닳도록 읽고 외웠다.

영지를 되찾고 자원을 차지하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페르디움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계속 읽게 된 것도 있었다.

마수의 숲은 페르디움 영지의 발전을 막은 원흉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페르디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했으니까.

‘시간 차이는 있지만, 생태계나 몬스터의 서식지가 그리 많이 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 어떤 몬스터가 나왔고 얼마나 피해를 보았는지까지 상세하게 나와 있는 그 문서를 믿고 이번 일을 시작했다.

만약 그 정보가 틀렸다면 돈을 벌기는커녕 용병들까지 전멸하고 말 것이다.

최대한 신중하게 움직여야 했다.

작업에 열중하다 보니 시간이 금세 흐르고 긴장도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이거 그냥 음침하기만 한 거 아냐?”

“그러게. 다들 그냥 겁먹어서 안 들어온 거 같은데.”

“이런 식으로 길만 내는 거면 위험 수당 받은 게 조금 미안하네.”

용병들은 시끄럽게 떠들며 작업에 속도를 냈다.

목적지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니 일이 쉽게 끝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조금 더 들어가자 가장 앞서가던 지셀이 모두를 멈춰 세웠다.

“모두 전투 준비를 해라.”

“응? 왜요?”

“아무것도 없는데?”

용병들은 지셀 너머로 보이는 숲을 뜯어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고 흔한 짐승의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아주 두껍고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시야를 가리고 있을 뿐이었다.

“가까이 가지 말고 뒤로 조금씩 물러나. 공격할 준비를 하라고.”

지셀이 반복해서 말했다.

길리언은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지만,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벨린다를 바라보니 그녀도 어깨를 으쓱하며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결국 그는 지셀에게 나지막하게 물었다.

“공자님, 무슨 일이십니까? 주변에서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습니다. 몬스터가 숨어 있는 거 같지는 않습니다.”

길리언은 주변 기척을 감지하는 데 상당히 뛰어나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예전에도 살쾡이 밀매단의 암살자들을 손쉽게 찾아내지 않았는가.

그러나 지셀은 고개를 저었다.

“숨어 있는 게 아니야.”

전생에 일지에서 본 문구가 그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굵은 덩굴에 감싸인 나무들이 가득한 곳에 도착했을 때…….]

과연 눈앞에 빽빽하게 서 있는 나무들은 모두 굵은 덩굴에 감싸인 상태였다.

길리언은 재차 물었다.

“주변에는 나무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대체 뭘 경계하고 계신 겁니까?”

[그것들은 전혀 기척이 없었다. 왕국의 제일가는 검사이자 소드마스터의 칭호를 받은 발자크 백작 또한 기척을 느낄 수 없었으니…….]

지셀은 신중하게 눈앞의 나무들을 관찰하며 답했다.

“우리 눈앞에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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