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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28화 (28/269)

28화 이게 최선이다. (2)

“뭐라고요?”

벨린다는 현기증이 돌았다.

지셀이 어렸을 때부터 봐 왔지만, 그는 언제부터인지 완전히 이해 불가능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미쳤어, 그릇이 커지고 뭐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미친 거야.’

벨린다는 얼빠진 표정을 짓다가 지셀 옆에 서 있는 길리언을 닦달했다.

“길리언! 아저씨도 뭐라고 좀 해 봐요!”

말리고 싶은 심정은 벨린다와 다르지 않던 길리언이 결국 입을 열었다.

“공자님, 이쯤에서 멈추는 게 어떻습니까? 벨린다의 말이 맞습니다. 남은 돈도 꽤 큰 돈이니, 그것만이라도 지키면 앞으로 다른 일에 쓸 수 있을 겁니다.”

길리언의 만류에도 지셀은 고개를 저었다.

“일단 어느 정도 설명이 필요할 거 같군. 카오르도 부르지.”

카오르까지 모이자 지셀은 제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다들 알다시피, 아직 시작도 하기 전인데 자금이 거의 다 떨어졌어. 이대로 가면 얼마 버티지 못하니 빠르게 수익을 내는 걸 우선할 생각이야.”

세 사람은 모두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개척이란 이전까지 발 디디지 못했던 영역을 확보하는 일이다.

그러니 당장 어디서 뭐가 나올지, 뭐가 수익이 될지 알 방법이 없었다.

벨린다가 기어코 참지 못하고 다시 나섰다.

“그냥 지금이라도 철회해요. 지금 남은 돈마저 다 쓰면 정말로 아무것도 못 하게 될 거예요. 어차피 숲에 들어가면 들킬 수밖에 없다고요. 영지에서 쫓겨날 수도 있어요.”

백 명이 넘는 용병들이 영지 인근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가신들은 분명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을 것이다.

인부들도 잔뜩 모여 있으니 다들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을 것은 뻔했다.

벨린다가 새로운 훈련장과 대공자의 별장을 만들 거라고 둘러댔으나, 그 거짓말도 지셀이 마수의 숲에 들어가는 순간 들통날 수밖에 없었다.

길리언과 카오르도 결국 한마디씩 던졌다.

“공자님께서 진행하시겠다면 따르겠으나…… 현실적으로 무리입니다. 결국 영주님께 벌을 받을 겁니다.”

“우리야 돈을 받고 싸우면 그만이지만 죽어 나갈 사람들을 생각하면 어지간한 돈으로는 감당이 안 될 텐데요. 뭐, 지금보다 더 유명해지기는 하겠네. 멍청한 짓을 한 꼴통 공자로 말입니다. 크크큭.”

모두가 지셀의 계획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역대 페르디움 영주들도 모두 포기한 일을, 일개 개인이 고작 2만 골드를 가지고 성공할 리 없으니까.

지셀은 그들의 생각을 이해한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 말도 일리 있어. 당연히 나도 그런 식으로 개척하는 건 불가능할 거라 생각해. 아마 실패하겠지.”

“그런데 왜 자꾸 고집을 부리시는 거예요!”

“그렇게 할 게 아니니까.”

“뭐라고요?”

벨린다가 당황해 되물었다. 지셀은 대답 대신 지도를 꺼내 펼쳤다.

“자, 마수의 숲이 여기 있고, 우리는 이쪽에서 들어가겠지.”

지셀의 손짓을 따라 세 사람이 지도를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마수의 숲은 지도에 그 크기만 대략 표시되어 있었다.

지셀은 펜을 하나 꺼낸 뒤, 마수의 숲 초입부터 선을 죽 긋다가 갑자기 옆으로 휙 꺾었다.

“대충 이 정도겠군. 우리는 다른 건 무시하고 바로 이렇게 길을 낼 거야. 그게 1차 목표지.”

“네?”

“영역을 확보하는 게 아니라 목표까지 가장 빠른 길을 확보한다.”

“개척을 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일반적인 개척은 불가능하잖아. 가장 빠르게 돈을 벌 수 있는 자원부터 획득할 계획이었어, 처음부터. 이곳이 우리 영지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거든.”

“여기에 뭐가 있는지 알고요?”

벨린다의 말에 지셀이 피식 웃었다.

“엄청나게 돈이 되는 거.”

“…….”

다들 당혹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들의 눈에는, 지셀이 대충 아무 곳이나 찍은 뒤 여기에 돈이 되는 게 있다고 우기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길리언이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공자님, 여기에 뭐가 있기에 돈이 된다고 확신하십니까? 그리고 그걸 공자님이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그 물음에 지셀은 난감한 듯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나만 알고 있는 고급 정보인데.”

“그러니까 그 정보를 어떻게 알았냐고요! 지금까지 숲에 들어가서 살아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벨린다가 테이블을 탕탕 치며 따졌다. 길리언과 카오르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지셀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좋아, 다들 놀라지 말고 잘 들어. 사실 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는데…….”

“심각한 상황인데 장난치지 마시고요! 어떻게 알았냐고요!”

“아니, 진짜로…….”

“도련님! 사람들의 목숨이 달린 일이라고요!”

“쩝…….”

벨린다의 역정에 지셀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번이야말로 진실을 알려 보겠다고 시도해봤지만 역시 아무도 안 들어준다. 조금 외로워졌다.

이렇게 되면 그냥 대충 둘러대는 수밖에 없었다.

“소문으로 들었어. 여기 엄청나게 돈 되는 게 있대.”

“뭐라고요?”

벨린다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지셀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길리언은 얼빠진 표정을 짓고, 카오르는 고개를 숙인 채 연신 킬킬댔다.

마수의 숲은 제대로 알려진 바 없이 온갖 소문만 무성했다.

특히 숲 안에 비싼 약재가 있다는 둥, 돈과 관련된 소문이 많았다.

몇몇 탐험가들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숲에 들어가는 것도 그런 소문 탓이었다.

그러나 설마 지셀이 그런 무모한 자들과 동류일 줄이야.

카오르는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우리 고용주는 정말 미친 사람이었군. 우리보다 더 미친 사람이 있었네. 크크큭.”

뜬구름 같은 소문만 믿고 영주의 명을 어기고, 그나마 있는 돈까지 모두 써 버린다니.

어지간한 미친놈이 아니라면 시도도 못 할 일이었다.

지셀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든 신경 쓰지 않고 제 할 말만 이어 했다.

“언젠가는 몬스터를 몰아내고 숲의 자원을 모두 활용해야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렇게 하기엔 시간이 너무 걸려. 당장 돈이 필요해서 들어가는 거니까, 돈을 빨리 버는 방법을 택해야지.”

벨린다가 치솟는 분노를 간신히 누르고 부들부들 떨며 되물었다.

“그러니까 그 ‘소문’에 따르면 ‘무언가’가 여기에 있다는 거죠?”

“그래. 여기서 우선 돈이 될 만한 자원을 구하고, 그 돈으로 다시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거야. 돈으로 돈을 벌게 되는 셈이지. 간단한 계획이지? 하하하.”

벨린다는 해맑게 웃는 그를 한 대 치고 싶은 마음을 힘겹게 내리눌렀다. 길리언은 침통한 얼굴로 한숨만 내쉬었다.

카오르는 뭐가 됐든 돈만 받고 재미있으면 된다는 태도였다.

혼란에 빠진 수하들을 둘러보며 지셀은 단호하게 말했다.

“당장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이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야. 문제가 생기면 전부 내가 책임질 테니까.”

그 단호한 눈빛을 보고 벨린다와 길리언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모두 날 믿고 따라와. 각자 최선을 다하면 분명히 성공할 거야.”

벨린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힘 빠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게 정말 사춘기의 마지막 반항이 됐으면 좋겠네요. 이제 그럴 나이 아니잖아요.”

“그 소문이 맞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공자님이 하시겠다니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길리언이 굳은 결심이 서린 얼굴로 말했다. 카오르는 여전히 낄낄댔다.

“영지의 후계자가 감옥에 갇히는 것도 보는 재미는 있겠군요. 그 전에 잔금은 꼭 처리해 주시죠.”

모두가 반쯤 체념하고 있었지만, 오직 지셀만이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엄청난 돈이 들어올 거야.’

지셀이 목표로 삼은 곳은 숲의 초입에서 가장 가깝고, 현금화가 가장 쉬운 자원이 있는 장소였다.

전생에 알게 된 정보라 출처를 밝힐 수 없었을 뿐, 헛소문 따위가 아니라 확실한 정보였다.

‘전생에 델파인 공작가가 발견한 자원이었으니까.’

왕국을 전복하고 새로운 왕조를 연 델파인 공작가는, 전 왕국의 힘을 모아 대대적으로 마수의 숲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델파인 공작가에 원한을 품고 있던 지셀도 마수의 숲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대체 왜 저렇게 힘을 쏟는지, 혹시 그들을 방해하고 괴롭힐 거리가 있는지 찾아본 것이다.

‘공작가도 자원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모르고 있었다. 마수의 숲에 들어간 건 다른 목적 때문이었을 거야.’

그 이유는 끝까지 알아내지 못했지만, 대신 숲에 있는 주요 자원의 위치가 기록된 지도와 일지를 얻어 냈다.

전생에 외워 놓고 정작 쓰지 못했던 정보를 이렇게 쓰게 될 줄이야.

‘네놈들이 고생해서 얻은 정보들은 고맙게 써먹어 주지.’

전생에 델파인 공작가는 마수의 숲을 개척하면서 엄청난 재화를 얻었다.

이번 생에는 그것들을 지셀 자신이 독차지할 생각이었다.

그 재력은 페르디움을 둘러싼 음모를 막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자, 그럼 바로 일 시작하자고.”

지셀의 말에 모두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길리언은 영지 인근에서 용병들을 관리하며 서로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간단한 훈련을 시켰다.

벨린다는 인부들을 지휘하며 주둔지 건설에 힘썼다.

지셀이 시켜서 준비는 하고 있지만 그들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특히 벨린다는 매일 밤을 걱정으로 지새워 눈 밑이 거무죽죽하게 변할 정도였다.

“소문대로라면 어떤 몬스터가 나올지 몰라. 도련님이 거기서 죽으면……. 죽어서도 멍청하다고 욕을 먹을 거야.”

사실 그간 지셀이 사람들에게 욕을 먹을 때마다 화도 나고 가슴이 아팠다.

자신이 봤을 때는 귀엽기만 한데, 다른 사람들은 그 귀여움을 이해하지 못했다.

욕을 하도 먹으니 자신이 가정교사로서 지셀을 잘 가르치지 못했다는 생각도 아주 가끔(?) 들었다.

그런데 위험한 곳에 들어가 목숨을 잃기까지 한다면…… 자신에게 지셀을 부탁한, 돌아가신 페르디움 백작 부인을 뵐 낯이 없다.

“조금이라도 위험하면 그냥 강제로 끌고 나와야겠어.”

벨린다는 지금껏 모아 둔 독을 모두 꺼내 면밀하게 살폈다.

“어디 보자…… 어떤 걸 발라 놔야 우리 도련님이 안 죽고 기절만 할까?”

지셀의 실력이 예전보다 향상된 거 같으니 독을 잘 골라야 했다.

벨린다는 꼼꼼하게 독을 선별해 단검에 정성스럽게 발랐다.

상황 보고 급하다 싶으면 뒤에서 푹 찌른 뒤 업고 도망갈 생각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걱정하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지셀은 명령을 번복하지 않았다.

언제나 자신만만하고 여유로웠던 그도 이번만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마수의 숲은 위험하다. 그 강력한 델파인 공작가도 전생에 여러 번 실패했을 정도다.

지금 지셀의 힘으로 성공하기는 사실 불가능에 가까웠다.

믿고 있는 것은 오직 전생의 경험과 정보뿐.

그걸 토대로 몇 번이고 계획을 검토하고 가능성을 따져 보아, 가장 빠르고 안전하고 확실한 루트를 선정했다.

‘하지만 정보는 정보일 뿐…… 현실에서는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 해도 영지를 살리려면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다른 모든 방법은 시간이 따라 주지 않았으니까.

이미 델파인 공작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여유를 가지고 대응했다간 모두가 죽는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빠르게 움직여야만 했다.

‘반드시…… 반드시 성공해서 영지와 가문을 지킬 것이다.’

지셀이 끊임없이 계획을 검토하고 수정하는 동안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벨린다와 길리언은 자신들이 맡은 준비가 끝나자 지셀을 찾아왔다.

사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말려볼 생각으로 찾아왔지만, 지셀의 얼굴을 본 순간 그들은 하려던 말을 속으로 삼켰다.

평소의 장난기라고는 온데간데없는 표정.

서늘할 정도로 차가운 그의 얼굴은 죽음을 불사한 각오마저 보이는 듯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은 현 상황과 작업의 진행도만 보고했다.

“도련님…… 일단 주둔지는 숙식 정도는 가능한 수준까지 작업이 끝났어요. 그런데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을 거 같아요.”

“용병들의 훈련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지의 가신들이 병사를 움직여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음.”

지셀은 잠시 고민했다.

더 단단히 준비하면 좋겠지만, 당장은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그나마 영지의 대공자라 이 정도라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더 시간을 끌 수는 없겠지.”

언제나 아쉬운 건 시간뿐이었다.

이번 계획만 성공하면 그 시간을 어느 정도 벌 수 있을 터였다.

길게 숨을 내쉰 지셀은 곧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용병들을 소집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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