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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11화 (11/269)

11화 팬다, 안 팬다, 팬다. (2)

도발적인 발언에 케인이 이를 갈며 으르렁거렸다.

“이 새끼가 이제 진짜로 미쳤구나? 울면서 내 신발을 핥을 준비나 해라.”

두 사람은 연무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결투가 벌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연무장으로 몰려왔다.

성질 더러운 대공자가 얻어터지게 생겼다니, 구경거리를 기대하고 온 것이다.

근무가 없는 기사들까지 몇 명 찾아왔다. 그중에 술에 취한 기사를 본 지셀이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오, 스코반도 왔네.’

코가 벌게진 채 비틀거리며 나타난 기사는 스코반이었다.

그는 토벌대에서 지셀이 어떻게 활약했는지 사람들에게 말했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영지의 후계자에게 잘 보이려 모든 공을 몰아준 게 아니냐고 비난을 받았다.

어느새 그는 대공자에게 일찍부터 아첨을 떠는 간신 같은 기사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붙은 칭호가 ‘거짓말쟁이 기사’, ‘명예를 버린 기사’ 따위였다.

그때부터 스코반은 술에 취해 살았다.

아무도 그의 말을 믿어 주지 않고 기사로서 명예까지 잃었으니, 모든 의욕을 잃고 술에 빠져 살 수밖에 없었다.

그 소문을 다 알고 있는 지셀은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불명예스러운 칭호 같은 건 곧 사라질 거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스코반.’

지셀과 케인은 바로 시작하지 않고 사람들이 충분히 모이기를 기다렸다.

결투를 벌일 때는 구경할 사람들이 모일 시간을 주는 게 관례였다.

놀거리가 부족한 페르디움에서는 이런 결투도 놓칠 수 없는 이벤트이자 유희였으니까.

적당히 사람들이 모이자 기사 하나가 나서서 말했다.

“자, 다들 충분히 모인 거 같으니 시작하자고.”

사람들은 각자 누가 이길 것 같은지 돈을 걸기 시작했다. 문제라면 모두 케인에게 걸었다는 점이다.

“이러면 내기가 성립이 안 되잖아?”

“결과가 뻔하니까 어쩔 수 없어.”

“차라리 내기 내용을 바꾸는 게 어때?”

“대공자님이 언제까지 버티는지로 하자.”

그런 웅성거림을 듣고 케인이 거만하게 미소를 지었다. 사람들의 반응만 봐도 누가 이길지는 확실했다.

“그러면 방법을 바꾸자. 기준은…….”

“잠깐.”

기사가 규칙을 바꾸려 할 때, 누군가가 꼬부라진 목소리로 제지했다.

“스코반?”

스코반은 귀찮다는 듯 대답도 안 하고 술병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품을 뒤져 돈이 가득 든 주머니를 꺼내 던졌다.

투욱!

묵직하게 떨어지는 돈주머니를 잡은 기사가 묘하게 비웃는 표정으로 물었다.

“뭐야? 왜 이렇게 많아? 너 설마?”

스코반은 눈이 붉게 충혈된 채 이를 갈며 말했다.

“대공자님한테 내 전 재산 다 건다. 쫄리면 뒈지시든가.”

기사는 스코반의 말에 화색을 지었다.

“좋아. 그래, 이래야 내기가 성립하지. 그런데 금액이 조금 아쉽네.”

아무리 스코반이 전 재산을 긁어 왔어도, 가난한 영지의 기사가 봉급을 받아 봐야 얼마나 받겠는가?

게다가 그마저도 요새 술값으로 죄다 쓰고 있으니 돈이 많다고는 할 수 없었다.

“어이, 대공자님한테 더 걸 사람 없어?”

나머지 사람들이 죄다 케인에게 걸었으니, 이겨도 스코반 한 사람이 낸 돈을 여럿이 나눠 먹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건 돈에 비하면 스코반이 건 돈은 적지 않았지만, 모두가 나눠 먹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쩝, 아쉽지만 이대로 진행해야겠네. 그러면…….”

그때 연무장의 문이 열리며 엘레나가 하녀들과 함께 걸어 들어왔다.

그녀는 도도한 표정을 지으며 기사 앞에 선 뒤, 돈주머니를 탁자 위에 우아하게 올려놓았다.

“나도 걸 거야.”

기사는 눈 밑에 잔뜩 그늘이 진 엘레나를 보고 잠깐 움찔하더니 확인차 물었다.

“정확히 누구에게 거시는지요?”

“우리 엄마 아들한테.”

“알겠습니다.”

기사는 희희낙락하며 돈을 챙겼다.

페르디움이 가난하다 보니 엘레나도 품위 유지비를 별로 많이 받지 못한다.

그래도 귀족은 귀족이라, 스코반이 건 돈과 합하니 다들 만족할 만한 금액이 되었다.

하녀들이 마련한 의자에 앉은 엘레나는 문득 스코반과 눈이 마주쳤다.

동병상련이라고, 두 사람은 서로의 아픔을 알 수 있었다.

엘레나도 스코반처럼 지셀에게 공을 밀어 주는 거짓말쟁이 취급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믿어 주지 않는 게 너무 답답해서 요즘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아가씨, 억울합니다.’

‘저도 억울해서 미칠 거 같아요.’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며 눈빛으로 대화하는 사이, 드디어 결투가 시작되었다.

지셀은 검을 휘휘 허공에 흔들다 케인을 겨누었다.

“와 봐라.”

“뭐?”

“싸우자며? 와 봐. 아무리 그래도 고수가 하수한테 먼저 덤벼드는 건 양아치 짓이지.”

“이 새끼가!”

케인이 검을 치켜들고 미친 듯이 돌진해 왔다.

지셀보다 키가 머리 하나는 더 크고 덩치도 우람해서, 둘의 결투 모습은 마치 투우처럼 보였다.

카앙!

두 사람의 검이 강하게 맞부딪쳤다.

케인은 지셀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힘을 한껏 끌어올렸다.

‘병신으로 만들어 줄 테다.’

감히 지셀 주제에 갑자기 자신에게 대들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소문처럼 이 새끼가 진짜 미쳐 버린 게 틀림없었다.

‘미친놈한테는 매가 약이지.’

케인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때려서 말을 안 듣는 놈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문제라면 상대방도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이란 것이다.

‘힘으로 안 되는 일이 있다? 그러면 힘이 부족한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지.’

지셀은 검을 맞대며 케인을 평가했다.

‘역시, 근력은 제법이란 말이지. 덩치도 좋으니 맷집도 좋을 테고. 이 정도면 뒷일 걱정 안 하고 적당히 패도 되겠어. 욕도 잘하니까 산적이 되었어도 잘했을 텐데 조금 아쉽군.’

어찌나 잘 먹고 자랐는지 덩치며 힘은 또래를 훨씬 뛰어넘었다.

아마 순수한 근력만 따지면 어지간한 정식 기사들도 케인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어디 검술은 어떤지 한번 볼까?’

카아앙! 카앙!

두 사람의 검이 쉬지 않고 빠르게 부딪혔다.

사람들은 여유롭게 검을 다루는 지셀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를 직접 상대하는 케인 또한 경악하고 말았다.

‘뭐, 뭐야! 언제 이렇게 실력이 늘었어!’

분명 예전에 대련했을 때 지셀은 단 한 수도 제대로 막아 내기 버거워했다.

지금도 여전할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싸워 보니 그때와는 전혀 다르다. 자신의 공격을 너무나도 쉽게 막거나 피한다.

케인이 끙끙대며 검을 휘두르는 사이에 사람들은 지셀의 선전에 감탄을 토해 냈다.

“대공자님 실력이 많이 늘었잖아!”

“케인 공자님이 약한 게 아닐까?”

“보기에는 두 분 다 화려해 보이는데?”

“원래 실력 없는 것들이 더 요란하게 싸우는 법이라고.”

구경꾼들이 숙덕거리는 소리를 들은 케인의 얼굴이 벌게졌다.

지셀을 단번에 박살 내려 했는데 오히려 한 대도 못 맞추고 있었다.

‘이익! 왜 안 맞는 거야!’

그의 속이 답답함에 타들어 갈 즈음, 지셀이 가볍게 뒤로 물러나며 웃었다.

“조금 더 재미있게 해 볼까?”

“뭐?”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셀을 바라보았다.

철컥.

지셀은 그대로 검을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양손을 흔들며 말했다.

“나는 맨손으로 할게. 수준 차이가 너무 나서 이 정도는 양보해야 재미있겠는걸?”

‘그리고 그냥 때려야 손맛이 살지.’

갑작스러운 도발에 케인이 얼굴을 붉혔다.

“이, 이 새끼가!”

지셀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을 향해 양손을 들고 환호를 유도했다.

“으하하하! 재미있다!”

“와! 대공자님 실력이 많이 늘었어!”

“아무나 이겨라!”

기사나 귀족들의 결투는 어딘가 엄숙하고 진지하다.

그런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지만, 그래도 지금 지셀처럼 쇼맨십을 보여 주는 편이 구경꾼들에게는 더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지셀은 모두를 둘러보며 다시 한마디를 던졌다.

“내가 이기면 여기 있는 모두에게 술과 고기를 사도록 하지!”

“와아아! 화끈하다!”

“대공자님 이겨라!”

“역시 페르디움의 계승자다!”

돈은 없지만 일단 지르고 본다.

이게 용병으로서 살아온 지셀의 방식이었다.

실제로 용병들의 결투는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고,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켜 능수능란하게 분위기를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귀족들이 보기에는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행동이지만, 구경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그런 게 더 즐거운 법이다.

관중들이 환호하자 케인은 이를 갈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이 미친 새끼가! 감히 신성한 결투에서 이딴 짓을!”

순식간에 주변 분위기가 시장통처럼 변해 버렸다. 마치 자신이 구경거리에 불과한 검투 노예라도 된 기분이었다.

당황하는 케인에게 지셀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래 봐야 싸움질인데 신성은 무슨 신성. 혹시 뭐 신전 쪽에서 돈이라도 받았냐? 갑자기 왜 어울리지도 않는 개소리야.”

“네놈 새끼는 귀족으로서의 체면도 없냐!”

“응, 없어. 계속 입으로만 싸울 거야? 이것도 무서우면 손가락 하나만 써서 싸워 줄 수도 있는데.”

지셀이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내뱉는 말에 주변 사람들은 웃기 바빴다.

귀족이라기보다는 시정잡배들 같은 싸움에 친근감을 느낀 것이다.

“와하하하!”

“대공자님 성격이 변한 거 같은데?”

“그래도 구경하는 맛은 있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과거의 한심한 지셀의 모습이 잠시나마 사라졌다.

오히려 그가 앞으로 무얼 더 보여 줄지 기대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끄러운 환호와 지셀의 도발에 케인은 이성을 잃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네놈,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

“아, 그러지 말라는데도 계속 입으로만 싸우네.”

파앙!

지셀은 쏘아지듯 케인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를 향해 손바닥을 휘둘렀다.

퍼억!

“크헉!”

케인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반격도 하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터뜨렸다.

손바닥으로 맞았을 뿐인데 골이 흔들릴 정도로 아팠다.

그는 머리를 부여잡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다, 황소처럼 큰 소리를 내지르며 다시 지셀에게 덤벼들었다.

“이 건방진 새끼야!”

하지만 지셀은 가볍게 피해 내고 곧바로 케인의 온몸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퍼억!

“으억! 이 새끼가!”

퍼억!

“이 망할 놈…… 아악!”

퍼억!

“네놈, 감히…… 크엑!”

퍼억!

“자, 잠깐!”

퍼억!

케인은 지셀에게 반격하기는커녕, 욕도 제대로 못 하고 얻어맞을 뿐이었다.

그들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에 감탄하는 빛이 떠올랐다.

“대공자님 움직임이…….”

“와, 정말 멋있다.”

“원래 저런 실력이었어?”

지셀의 움직임은 때로는 우아하고, 때로는 아름다웠으며 또 격렬했다.

그 화려한 몸놀림에 구경하던 기사들마저 충격에 빠졌다.

지셀이 보이는 동작 하나하나에서 뛰어난 묘리가 묻어났다. 절대 대공자의 나이에 이룰 수 없는 경지였다.

스스로와 비교한다고 해도 감히 내가 더 낫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려웠다.

“와아아아!”

“대공자님 최고입니다!”

“너무 멋지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러 댔다.

지셀의 주먹질이 화려해질수록 그걸 보는 사람들은 속이 뻥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케인이 얻어맞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툭하면 놀러 와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으니까.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

분위기가 완전히 자신의 의도대로 넘어온 걸 느끼고, 지셀은 마지막 쐐기를 박기로 했다.

그는 온몸이 퉁퉁 부어 울기 직전인 케인을 보고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야.”

“……?”

“이 꽉 깨물어라. 잘못하면 혀 잘린다.”

콰아앙!

지셀의 주먹이 케인의 배에 꽂히는 순간,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전부 깜짝 놀라 물러설 정도였다.

콰콰콰쾅!

케인은 엄청난 속도로 연무장의 끝까지 날아가 벽에 강하게 부딪혔다. 그가 쓰러진 뒤 드러난 벽에는 그때까지 없었던 금이 나 있었다.

주먹질 단 한 번으로 만들어 낸 결과였다.

그 광경을 본 기사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저게 어떻게?”

“마나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사실 지셀은 주먹에 아주 빠르게 마나를 불어넣었다가 회수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 눈에는 지셀이 마나도 없이 엄청난 힘을 낸 것처럼 보였다.

마스터 수준이 아니고서야 그 정도로 마나를 세밀하게 다루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와아아! 끝났다!”

“대공자님이 이겼다!”

“세상에! 믿을 수가 없어! 대공자님이 결투를 이기다니!”

사람들이 환호했지만, 지셀에게는 아직 끝이 아니었다.

이대로 끝낼 정도로 마음씨가 자비로웠다면 애초에 거친 용병들의 세계에서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 안 죽었네. 항복도 안 하고. 이러면 계속해야 하잖아.”

지셀은 쓰러진 케인에게 다가갔다.

땅바닥에서 빌빌대던 케인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 그만…… 하, 항…….”

“응?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하, 항…….”

“안 들린다고.”

케인이 항복을 선언하려는 순간, 그의 인중에 지셀의 주먹이 꽂혔다.

퍼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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