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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130)화 (131/133)

130화

내가 참석을 결정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첫째, 만에 하나의 위험에서 세이르를 보호하기 위해서.

세이르가 베나토르 아카데미에 입학한 가장 큰 이유는 다프네를 피하기 위해서다. 이 아카데미 안에서라면 다프네도 세이르에게 직접 손을 쓸 수 없을 테니까.

그런데 갑자기 후원회 티 파티 장소가 변경되며 다프네가 아카데미에 왔다. 마치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세이르에게 손을 댈 수 있다고 과시하는 듯이.

걱정된다. 그렇잖아도 주위를 감시당하는 느낌이 든다고 하잖아. 세이르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어떻게 걱정을 안 하겠어.

그래서 세이르에게는 이 티 파티에 대해 말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잖아. 다프네가 온다고 하면 세이르가 신경 쓸 거라고.’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환영해 줘서 고맙군요.”

다프네는 온도가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으로 짧은 인사를 한 뒤 자리에 앉았다.

주위의 반응은 열렬했다. 티 파티에 참석한 소녀들이 아기 새처럼 선망의 눈길로 다프네를 보았다. 심지어 멜라니마저도 다프네에게 경외심을 비쳤다.

‘인기가 많군.’

하긴 뛰어난 마법사이자 섭정으로서 리어 왕국을 이끄는 수장이다. 리어 왕국 쪽 사람들이라면 동경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도 <마.왕.꾸>의 정석 루트를 플레이할 때는 좋아했다. 능력치도 좋고 써먹기 좋은 캐릭터였으니까.

그러나 실제로 이 세계에 와서 마주한 다프네는 <마.왕.꾸>에서와는 인상이 정반대다.

세이르를 음습하게 괴롭힌 일부터, 그레고리 국왕의 수상쩍은 죽음, 최근 엄청나게 마석을 모으고 있다는 소문 등…….

<마.왕.꾸> 정석 루트의 다프네와 같은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

‘높은 확률로 다프네가 메인 빌런이란 말이지.’

세이르를 괴롭히다 못해 죽이려 한 시점에서 이미 나와는 적이고.

그런데 눈앞의 다프네에 대해서 나는 잘 모른다. 물론 <마.왕.꾸>의 지식은 있지만, 그녀는 이미 우리 아빠가 착해진 만큼이나 성격이 달라져 버렸다.

그리하여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온 이유 두 번째. 다프네 왕비가 실제로 어떤 인물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적에 대해 아는 것은 중요하니까……!’

나는 테이블 밑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처럼 아카데미에 값진 후원을 하는 후원자 영애들을 만나게 되어 기쁘군요.”

다프네가 매끄러운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 곧바로 시종이 차와 티 푸드를 서빙했다. 그녀는 흠 잡을 데 없는 우아한 태도로 찻잔을 기울이며 능숙하게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나는 적당히 분위기를 맞추며 다프네를 관찰하다가, 다프네 옆에 작은 소녀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

얼추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다. 소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낯가림보다는 주눅 든 태도였다.

‘아. 비비안 리어인가.’

다프네의 딸이자, 현재 리어 왕국 국왕인 에드윈 리어의 쌍둥이 누나다.

소심한 성격인 데다가, 왕위도 쌍둥이 동생이 잇는 통에 비비안 리어의 존재감은 크지 않다.

‘으음……. <마.왕.꾸>에서는 커서 적당한 귀족이랑 결혼했던가?’

나 역시 비비안 리어에 대해서라면 이 티 파티에 참석한 후원자들보다도 아는 것이 적을 정도였다.

다프네는 친딸인 비비안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했다. 비비안이 자신의 키에 비해 너무 높은 테이블 때문에 낑낑대는 데도 눈길 한 번을 주지 않는다.

나는 다프네와 비비안을 보며 생각했다.

‘왜 저런 성격으로 컸는지 알 만하군.’

모녀 지간인데도 저렇게 무관심할 수 있는 건가. 모르겠다. 나는 아직 엄마를 만나지 못해서.

그때.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이죠, 안젤리카 왕녀.”

다프네가 불쑥 내게 말을 걸었다. 그림 같은 얼굴에 엷은 웃음이 피어오른다.

“네. 드디어 직접 만나 뵙게 되어 기뻐요.”

진심이었다. 다프네가 대체 어떤 인물이고, 무슨 생각인지 궁금했으니까. 그녀에 대해 잘 알면 앞으로의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안젤리카 왕녀는 어머니를 많이 닮았군요.”

그런데 다프네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 대꾸했다.

“……엄마를 아세요?”

“그럼. 아델리아는 원래 리어 왕국 출신이었으니까. 잘 알 수밖에 없죠.”

“그럼 엄마가 지금은 돌아가셨다는 사실도 아시겠군요.”

“…….”

다프네가 싸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낯에는 어떠한 표정도 없어서, 마치 마네킹처럼 보였다.

엄마는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고, 그래서 살아 있다고 믿고 행방을 찾는 중이라는 말은 일부러 하지 않았다. 다프네가 엄마 일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알 수 없어서였다.

SSS급 흑막 왕국을 위해 훌륭한 흑막이 되기로 결심한 나의 또 하나의 목표는 알다시피 엄마 찾기다.

지난 3년간 나는 왕국을 발전시키는 한편으로 엄마의 행방을 알아내려 노력했다. 마차 습격 사건이 일어난 날의 상황을 되짚어 가며, 엄마와 인상착의가 비슷한 사람을 폭넓게 수색했다.

참고로 듀란 할아버지와 로디가 이 일을 많이 도와주었는데, 특히 로디는 다크서클이 더 짙어질 정도였다.

그러나 진전은 없었다.

‘하긴 쉽게 찾을 수 있었다면 이미 아빠가 엄마를 찾아냈겠지.’

벽에 부딪힌 나는 조사의 순서를 반대로 해 보았다. 마차 습격 사건이 일어난 이후가 아니라, 이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사한 것이다.

긴 조사 끝에, 나는 엄마가 어디에서 출발하여 데네브 왕국으로 오려 했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마차는 리어 왕국의 수도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오늘 내가 이 티 파티에 참석한 이유 세 번째.

엄마의 행방에 대해 혹시 모를 힌트를 찾기 위해.

단순히 마차가 리어 왕국의 수도에서 출발했다는 것만으로 다프네의 관여를 의심하는 것은 지나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동기가 없다.

그러나 추적은 끊겼고, 나는 여전히 엄마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그러니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다.

다프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아델리아는 죽었지. 데네브 왕국에서.”

“…….”

감정이 거세된 듯 평이한 말투였다. 그런데도 어쩐지 그녀의 말은 가시 돋친 것처럼 느껴졌다.

다프네와 나 사이에 긴장이 흘렀다. 나는 뭐라고 말할지 생각하면서 입술을 달싹였다. 그때.

쨍그랑!

날카로운 파열음이 팽팽한 실처럼 당겨진 긴장을 깨트렸다.

“으, 아, 으앗……. 죄, 죄송합니다.”

비비안 리어가 찻잔을 깨트린 것이었다. 그녀의 작은 몸집에는 테이블이 너무 높다. 그 바람에 차를 마시려다가 손에서 찻잔을 놓친 듯했다.

“치워.”

다프네는 무표정하게 시종을 불러 깨진 찻잔을 치우게 했다. 곧 테이블이 말끔하게 치워지고 새로 차가 나왔지만, 비비안은 더더욱 움츠러들었다.

괜찮냐는 형식적인 말도 없이 다프네가 딸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 틈을 타 다른 소녀들이 다프네에게 말을 붙이면서 화제가 옮겨 갔다.

엄마 이야기를 더 파고들기 어려운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다프네가 엄마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이 정도도 충분한 진전이다.

다프네의 근처 자리에 앉은 소녀가 뺨을 붉히며 말했다.

“저도 마법 공부를 열심히 해서 조금이라도 다프네 선왕비님을 닮고 싶어요.”

나는 그녀에게 동조하는 척하면서 슬쩍 말을 보탰다.

“다프네 선왕비님은 뛰어난 마법사이시고 마석 가공 분야의 일인자이시라고 들었어요.”

“…….”

“얼마 전에 유랑민들이 데네브 왕국으로 이주를 희망한 일이 있었답니다.”

“그래요. 그거 축하할 일이군요.”

다프네가 내 말에 느리게 대답했다.

나는 데네브 왕국의 도로 공사 현장을 가로막은 바위에 대해 짤막하게 설명했다. 바위의 뿌리 부분이 거대한 마석과 연결되어 있다고 하자 소녀들이 탄식을 삼켰다.

“참 신기하죠? 자연적으로 마석이 바위와 하나가 되는 일은 아주 드물잖아요. 그래도 마석 가공 분야의 일인자이신 다프네 선왕비께서는 그런 바위도 만드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쓸 만큼 한가하지 않답니다.”

“후후, 그렇군요. 잘못 건드려서 바위가 폭발하면 유랑민들이 전부 죽어 버릴 테니까요. 그런 위험한 물건은 만드실 리 없겠죠.”

도로 공사 현장의 바위를 보았을 때 나는 이 가능성을 떠올렸다. 일부러 위험한 바위를 길에 숨겨 두었을 가능성 말이다.

데네브 왕국으로 이주하려는 유랑민 중에는 마석 제련에 재능이 있는 자가 있으니까. 그가 우리 쪽으로 넘어오게 두느니 죽여 버리는 거지.

어디까지나 가능성. 증거라고는 없는 찜찜한 추측이지만…….

‘……과연 어떨까.’

“그런 바위라니…… 폭탄이나 마찬가지잖아요.”

옆에서 멜라니가 경악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나는 생긋 웃으며 그녀의 염려를 덜어 주었다.

“걱정하지 마. 이미 해결할 방법을 찾았으니까.”

미친 골렘 마니아가 초대형 골렘의 코어만 만들어 주면 된다.

달그락.

그때, 다프네가 일부러 소리를 내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자연히 다프네에게 주위의 시선이 쏠렸다. 다프네는 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더니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안젤리카 왕녀, 이제까지 훌륭하게 내 일을 방해했더군.”

“그랬나요?”

“하지만 이 이상은 본인을 위한 일이 되지 않는단다.”

“…….”

나를 으르려는 의도가 다분한 말이었다. 어떻게 대답할까. 입술을 달싹이는 그때.

탕!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이거 놓지?”

갑자기 큰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티 파티 장소로 누군가가 난입했다. 시종이 만류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나는 느닷없이 나타난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세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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