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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125)화 (126/133)

125화

마르코는 겁에 질려 몸을 움찔거리면서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빛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뜻밖의 제안을 했다.

“왕녀님, 아카데미에 오셔서 골렘 동호회에 들어오세요!”

“……응?”

“왕녀님의 능력이라면 골렘 동호회를 믿고 맡길 수 있습니다. 골렘 마스터가 될 수 있어요!”

미친 골렘 마니아에게 능력을 인정받으니 기쁘기는 한데,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나는 유감스러워하며 대답했다.

“나는 달리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아카데미에 들어올 생각은 없어.”

마르코의 어깨가 순식간에 축 처졌다. 그는 무척 낙담한 기세로 중얼거렸다.

“그, 그렇군요. 하긴 이 회로도는 이미 아카데미 수준을 넘어섰으니까요. 히이익, 제 주제에 왕녀님을 평가하듯 말해서 죄송합니다. 노려보지 마세요, 히이익!”

맹세컨대 안 노려봤다.

이런, 대화가 다른 데로 튀겠다. 나는 마르코가 겁먹지 않도록 친절한 웃음을 지으며 본론을 꺼냈다.

“그보다, 마르코.”

“히이익, 네!”

“이 회로도대로 초대형 골렘의 코어를 만드는 의뢰를 하고 싶은데, 받아 줄래?”

곧장 고개를 끄덕일 것 같던 마르코는 조심스럽게 조건 하나를 내세웠다.

“하, 한 가지만 대답해 주신다면…….”

“그래, 뭔데?”

이 미친 골렘 마니아는 반드시 포섭해야 하는 인재다. 질문 하나 정도야 얼마든지 답해 줄 수 있다.

“이 회로도는 정말 혁명적입니다. 이제까지 골렘은 클수록 만들기 어렵다는 통념을 완전히 뒤집는달까요.”

“어…… 그 정도로?”

<마.왕.꾸>의 지식을 열심히 떠올려서 그렸을 뿐이라 격찬을 받으니 퍽 민망했다.

“이 회로도만 있으면 직접 초대형 골렘을 만드실 수 있을 텐데요. 왜 굳이 저한테 의뢰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마르코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내 마법 도구 공방 또한 3년 동안 많은 업그레이드를 거쳤다. 제법 손이 가긴 하지만, 내가 직접 초대형 골렘의 코어를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딱히 골렘 제작자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데네브 왕국을 발전시키고, 돈을 많이 벌고, 힘을 손에 넣어서 엄마를 찾고, 아직 풀지 못한 과거의 의문을 해결하고 싶은 것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인재가 필요하다.

점점 커지고 복잡해지는 왕국의 일을 아빠나 내가 전부 직접 처리할 수는 없으니까. 좋은 인재를 찾아 일을 맡기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마르코는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인재였다.

“마르코의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고 하면 답이 될까.”

“어흐흑, 왕녀님……!”

마르코가 감격한 나머지 다시 내 손을 붙잡으려 했다.

“……마르코.”

이번에도 세이르가 가로막았지만.

나는 반걸음 뒤로 물러난 뒤 말을 이었다.

“네 말대로 내가 직접 초대형 골렘을 만드는 것도 가능해. 하지만 나에겐 골렘 말고도 우수한 골렘 제작자가 필요하거든.”

“그 말씀은……?”

나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마르코에게 두 번째 제안을 건넸다.

“마르코, 데네브 왕국으로 와서 골렘을 연구하지 않겠어?”

덧붙여 구체적인 고용 조건을 언급하려는 찰나였다.

웅성웅성!

내 말에 갑자기 주위가 술렁거렸다.

은근슬쩍 이쪽을 보고 있던 연금술 연구실의 좀비들, 아니, 학생들이 내 말에 깜짝 놀라 수군거렸다. 웅성거림은 점점 커져, 이런 대화가 들려왔다.

“저 미친 골렘 마니아가 데네브 왕국에 스카우트되었다고?!”

“말도 안 돼! 어떻게 저 유령 같은 녀석이!”

“히힛, 대단하군, 히힛.”

뜻밖의 소란에 당황한 나는 세이르의 옷깃을 살짝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세이르, 나 무슨 이상한 소리 했어? 왜 이런 반응이야?”

“안젤리카, 몰라?”

“뭘?”

내가 눈만 끔뻑거리자 세이르가 살짝 웃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최근에 여기서 데네브 왕국이 유명하거든.”

“왜?”

최근에 왕국 종합 평가가 B로 오르면서 더 부유하고 여유로워지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유명해질 리는 없을 텐데?

“요즘 인재를 모으고 있다며? 그것도 꽤 좋은 조건으로.”

“응, 그런데?”

요즘 내가 가장 빠져 있는 일이 바로 인재 모으기였다. 상태창을 보고 괜찮은 특성이 붙어 있는 사람 위주로 마구 고용해 댔다.

“급료도 급료지만, 연금술 공방은 환경이 나쁘거든. 보통 하루 20시간씩 일하니까.”

“우와, 개악질…….”

“거기다 연구에 대한 지원은 거의 없지. 심한 곳은 사비로 연구 장비를 사야 하기도 해.”

“그거 진짜 개악질…….”

“그렇지? 그래서 다들 조건이 좋은 데네브 왕국에 가고 싶어 하는 것뿐이야.”

근처에서 계속해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부럽다, 나도 하루에 20시간씩 굴리는 연금술사 공방 말고 데네브 왕국에 스카우트되고 싶어!”

“크으윽, 저 미친 골렘 마니아 녀석, 질투 난다!”

“그럼 저 녀석은 졸업하자마자 데네브 왕국에 가는 건가?”

나는 주위의 웅성거림을 들으며 생각했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이건 기회다. 이 아카데미에 머무는 동안 연금술 연구소의 학생들을 돈으로 회유해 싹 쓸어 가야겠다.

“우후후후…….”

나는 손을 번쩍 들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데네브 왕국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 연금술사 지원받습니다!”

정적이 흐르고, 수 초 뒤.

“저요!”

“……히힛.”

“왕녀님! 제발 저를……. 집에 토끼 같은 몬스터들이 굶주리고 있어요!”

순식간에 내 눈앞에 수북한 이력서가 쌓였다. 살짝 훑어봤는데 다들 이력이 화려하다. 연금술사 업계가 얼마나 악질인지 짐작이 갔다.

당장 이력서를 전부 검토할 수는 없으니, 추후에 다시 면접을 보기로 했다. 시간을 들여서 괜찮은 사람을 팍팍 뽑아 가야겠다.

그런데 정작 내가 제1순위로 영입하려 했던 마르코는 아까보다 한층 더 하얗게 질린 얼굴이었다. 그는 겁에 질려 눈을 꾹 감았다 뜨더니 이렇게 말했다.

“죄, 죄송하지만 저는 못 하겠어요. 히이익, 죄송합니다!”

“어, 왜? 혹시 조건 문제라면…….”

“아, 아니에요. 저, 저저, 저는 모르는 사람이 세 명 이상 있으면 졸도할 것 같거든요. 지금도 한계인데, 데네브 왕국 같은 인기 많은 곳에 갔다간…….”

생각만 해도 괴로운지 마르코는 숨을 가쁘게 쉬었다. 자칫하다가는 쓰러질 것 같다.

이 미친 골렘 마니아, 쉬울 것 같으면서 까다롭잖아!

띠링!

그때 갑자기 새로운 상태창이 떴다.

[현재 마르코의 친밀도 : 80%

친밀도가 높을수록 포섭 확률이 높아집니다. 상대와 친밀도를 높여 보세요.]

‘친밀도라고?’

조금 전, 회로도를 보여 줬기 때문인지 이미 꽤 높은 수치였다.

그런데 문제는 주위에서 마르코를 쳐다볼수록 친밀도가 쭉쭉 떨어진다는 데 있었다.

[현재 마르코의 친밀도 : 79%]

[현재 마르코의 친밀도 : 78%]

…….

[현재 마르코의 친밀도 : 70%]

이럴 수가. 케나스보다 더 심한 개복치가 여기에 있었다.

그때였다.

“끼이잉…….”

내 주머니 속에서 얌전히 몸을 숨기고 있던 고슴도치, 모코가 갑자기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나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보고 화들짝 놀라 숨었다가, 다시 조심스레 코끝만 내놓았다.

그때, 마르코와 모코의 눈이 마주쳤다.

“히이익!”

“……끼이잉.”

둘은 서로 강렬한 시선을 교환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내향형 인간과 내향형 고슴도치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모코와 마르코의 마음이 통합니다. 마르코의 친밀도가 올라갑니다.

현재 마르코의 친밀도 : 98%]

아니, 이 상태창 뭔데.

‘모코, 너…….’

나한테는 3년 동안 마음을 열지 않더니, 왜 이 내향형 골렘 마니아한테는 마음을 여는 건데?!

충격이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잘해 줬는데.

“피이잇…….”

로코만이 나를 위로하듯 날개를 파닥거렸다.

“끼이잉, 끼잉.”

모코가 마르코를 향해 알아들을 수 없는 울음소리를 냈다. 그러나 이들 내향형 동지에게는 어떤 깊은 울림이 있는 모양이다.

[현재 마르코의 친밀도 : 100%]

지금이다. 나는 잽싸게 제안을 덧붙였다.

“마르코의 연구 장소를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격리 공간으로 만들어 줄게.”

“처…… 청소도 제가 할 테니까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해 주시면, 히이익!”

“알았어, 믿어도 좋아.”

나는 미리 써 두었던 계약서에 방금 말한 내용을 재빨리 추가했다. 마르코는 추가된 내용을 꼼꼼히 읽고는 서명했다.

‘휴, 드디어 성공했다.’

마르코는 아카데미 졸업반으로,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 졸업식만 마치고 곧장 데네브 왕국으로 와서 골렘 연구소를 맡기로 했다.

계약을 마치면서, 나는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점을 입에 올렸다.

“아참, 마르코, 벌써 결혼했다며?”

“히이익! 어떻게 그 사실을?!”

마르코가 깜짝 놀라 풀쩍 뛰었다. 그리 널리 알려진 사실은 아닌 모양이다.

나는 그에게 제안했다.

“데네브 왕국으로 올 때 가족을 데려와도 좋아. 부인이 함께 오고 싶어 하면 편하게 데려와.”

가족을 찢어 놓을 수는 없지, 암.

“왕녀님, 정말 관대하시군요. 지금 제 부인을 소개해 드려도 될까요?”

“어…… 어? 지금?”

마르코의 결혼 상대도 아카데미생이었나?

계획에 없던 일이기는 하지만, 이 미친 골렘 마니아와 결혼한 상대에 대해 순수한 호기심이 일었다.

‘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단 말이지.’

“그래, 좋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마르코는 사람을 불러오는 대신 책상 아래에서 20cm쯤 되어 보이는 골렘을 꺼냈다.

“제 부인, 리리스입니다.”

“으, 응……?”

꽤나 고급스러운 소재를 사용한 듯하지만 골렘은 골렘. 즉, 찰흙 인형이다.

그러나 20cm 골렘을 바라보는 마르코의 시선은 너무나도 ‘진짜’였다.

“결혼을 인정받기 위해 신전에 꽤 많은 돈을 기부했어요.”

“…….”

“꼭 가족과 함께 데네브 왕국으로 가겠습니다, 히이익!”

“…….”

대체 얼마나 돈을 내야 신전에서 인간과 골렘의 결혼을 인정해 주는 걸까.

설마 <마.왕.꾸>에서 마르코가 파산했던 이유도 이 20cm 골렘과의 결혼인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마.왕.꾸> 이 게임, 뭐가 이렇게 개판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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