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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120)화 (121/133)

120화

새삼 이렇게 보니, 루카도 그간 많이 자랐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나랑 키가 비슷했는데 어느새 앞질러서, 지금은 반 뼘가량 차이가 났다. 검은 머리카락은 길게 길어 목덜미를 덮었고, 붉은 눈은 깊어졌다.

외모뿐만 아니라 내면도 그렇다. 어딘가 어두운 구석이 있던 성격이 많이 밝아졌다.

가끔 루카와 함께 왕성 밖으로 나갈 때면, 루카를 향하는 선망의 눈길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확실히 이 녀석, 얼굴만 보면 꽤 귀여우니까 말이지.

마을의 몇몇 소녀들 사이에서 ‘과묵하고 멋진 기사님’이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전해 줬더니, 루카 본인은 죽을 만큼 부끄러워했지만.

‘나한테 도움이 되고 싶다, 라…….’

스카트 마을을 재건하려고 했을 때 루카가 그런 말을 했었지. 실제로 지금은 많은 도움이 되는 부하 2호다.

“……안젤리카?”

내가 계속 대답이 없자 루카가 다시 나를 불렀다.

세이르가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뜸 보고 싶으니까 초대에 응하겠다고 말하려니 지는 기분이랄까.

‘왜냐하면…….’

자그마치 3년이다. 아홉 살 동생 같던 루카가 이렇게 자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럼 세이르는 얼마나 변했을까.

편지가 끊긴 것도 그렇고, 세이르는 이제 데네브 왕국에서 있었던 일 따위는 잊어버린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결국 나는 떨떠름하게 모호한 대답을 했다.

“아카데미는 멀잖아? 너랑 나만 마차를 타고 거기까지 가기는 힘들어. 달리 같이 갈 사람이 있으면 모르겠지만…….”

“그래? 그럼 지금 물어보러 가자!”

“뭐? 잠깐, 루카……!”

행동력이 엄청나다. 초대장을 들고 루카가 공방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뜻밖에 많은 사람이 아카데미의 성령제에 긍정적인 관심을 보였다.

“응? 뭔지 모르겠지만 나도 갈래!”

설명을 다 듣지도 않고 고개부터 끄덕이고 보는 니키부터 해서…….

사라의 귀에 소식이 들어간 뒤에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어머, 성령제 첫날에 무도회가 열린다고 하는군요.”

“으응, 그렇긴 한데. 어차피 아카데미 안에서 열리는 무도회니까 적당히…….”

“안젤리카 님도 이제 곧 열다섯 살이시니까요. 무도회에 참석하시기 충분한 나이예요.”

사라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걱정 마세요, 안젤리카 님! 제가 안젤리카 님이 최고로 돋보일 수 있도록 준비할게요.”

데네브 왕국은 무도회니 사교계니 하는 것이 발달하지 않았다 보니, 그동안 사라가 많이 아쉬웠던 모양이다.

나는 무도회를 위해 화사한 새 드레스를 준비하는 사라의 기대를 차마 꺾을 수 없었다.

결국 나보다 주변인들이 더 호들갑을 떠는 통에 어영부영 성령제에 참석이 결정될 무렵…….

띠링!

갑자기 상태창이 떴다.

[<시나리오 퀘스트> 초대형 골렘의 코어

도로 공사를 끝마치기 위해서는 초대형 골렘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초대형 골렘의 코어를 만들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랍니다.

골렘을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 코어를 손에 넣읍시다.

인재 포섭은 아주 중요하답니다.

남은 시간 : 30일

달성 조건 : 초대형 골렘의 제작에 필요한 코어 손에 넣기

보상 : 경험치 900exp, 랜덤 특수 칭호, 새로운 설비 해금

실패 시 : 유랑민들이 리어 왕국으로 이주함]

‘……아. 맞아.’

베나토르 아카데미에 미친 골렘 마니아가 한 명 있었지.

그야말로 매드 사이언티스트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캐릭터였다. <마.왕.꾸>에서는 골렘 연구에 너무 큰 돈을 퍼부었다가 빚을 지고, 파산해서 사라진다.

‘가만, 지금쯤이면 아직 아카데미에 있을 텐데.’

나는 머릿속으로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마침 올해 그 미친 골렘 마니아가 아카데미 졸업반이었다. 아직 파산하기 전이었으니 시기도 딱 좋았다.

‘그 미친 골렘 마니아를 데네브 왕국으로 데려오자!’

그래, 그거다.

딱히 세이르를 만나러 아카데미에 가는 건 아니고, 퀘스트가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가는 거다.

거기까지 간 김에, 겸사겸사 세이르가 어떻게 지내는지 살짝 보고 오지, 뭐. 겸사겸사!

이렇게 해서 나, 니키, 루카가 베나토르 아카데미로 출발하게 되었다. 보호자 겸 호위 겸 시중 담당까지 겸해서 사라가, 그리고 박쥐와 고슴도치가 함께였다.

떠나는 날 아침, 아빠는 나를 배웅하러 나와 주었다.

“안젤리카, 아빠가 같이 못 가서 미안하구나.”

그렇다. 아빠는 선뜻 내게 베나토르 아카데미의 성령제에 가도 좋다고 허락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 아빠는 함께할 수 없다고도 말했다.

나는 아빠를 안심시키기 위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에헤헤, 괜찮아요. 아쉽지만……. 아빠는 데네브 왕국을 지켜야 하니까요!”

베나토르 아카데미는 이 대륙에 있는 다섯 개의 자유 도시 중 하나로, 어느 왕국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왕국 바깥은 바깥. 일국의 국왕이 그리 쉽게 나라를 비울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런데 아빠가 이번에 나와 함께 가지 않는 데는 생각지도 못한 이유가 있었다.

아빠는 면목 없다는 듯 웃으면서 설명을 덧붙였다.

“실은 아빠가 아카데미의 노인네들…… 크흠, 아니, 원로들과 사이가 나빠서.”

“네? 정말요?”

“그 망령 난 노인네들…… 아니, 원로들이 워낙 꼬장꼬장하게 굴어서. 우리 천사가 놀러 가는데 아빠가 같이 가면 분위기가 나빠질 것 같구나.”

금시초문이었다.

아카데미의 원로들이라면 학문에 조예가 깊고 현명하고…… 그런 이미지의 캐릭터들 아니었나?

‘우리 아빠, 대체 과거에 무슨 일을 겪었던 걸까……?’

무슨 일이 있어서, 엄청나게 흑막스러운 상태인데도 정작 흑막스러운 행동은 하나도 하지 않는 걸까.

그런 의문을 가슴에 품은 채 여행을 떠났다.

* * *

데네브 왕국과 베나토르 아카데미는 거의 끝과 끝.

아무리 크고 푹신한 마차라도 장거리 여행은 버거운 일이었다.

새벽같이 출발한 마차는 한참을 달렸다. 그리고 밤이 되어서야 중간 지점의 마을 여관에서 눈을 붙이고 다시 새벽에 출발, 숙박, 출발…….

사흘 내도록 달려, 의자에 앉아 있어도 허리와 엉덩이가 저릿저릿할 때에야 베나토르 아카데미의 높은 성벽이 우리를 맞이했다.

소박한 디자인이지만 굳건한 성벽이 아카데미의 건물을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성벽 너머로 보이는 삐죽한 첨탑은 이 아카데미의 높은 자존심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였다.

평상시 아카데미에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학생, 교사, 아카데미 직원뿐이다.

아카데미의 우수하고 가난한 학생을 후원하는 후원자들의 모임도 개최되기는 하지만, 비정기적으로 매우 드물게 열린다.

전원 기숙사제는 물론이고, 상점이나 편의 서비스도 모두 교내에 있다. 아카데미 자체가 하나의 도시나 마찬가지랄까.

그러나 1년에 한 번 열리는 축제, 성령제 기간에는 아카데미의 문이 조금이나마 열린다. 초대장을 받은 한정된 인원뿐이지만 아카데미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마.왕.꾸>를 플레이하면서 모니터 속에서는 지겹게 본 건물이지만, 실제로 보니 감회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입구에서 초대장을 내밀자 직원이 우리를 방문객용 숙소로 안내해 주었다.

숙소는 그리 넓지 않았지만 깔끔하고 좋은 방이었다. 바깥으로는 성령제를 맞아 화려하게 꾸며진 교내 정원이 보였다.

숙소에 도착하니 어느덧 밤이었다.

사흘 내도록 마차에 실려 오느라 온몸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누웠다.

“흔들리지 않는 침대란 소중하구나…….”

“피이이잇!”

“끼이잉…….”

로코도 지쳤는지 내 곁에서 날개를 늘어뜨렸고, 모코는 여전히 상자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정말 특이한 고슴도치야. 어차피 상자 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면서, 내가 어디 가려고만 하면 따라오고 싶어 한단 말이지.

으음, 안 되겠다. 너무 피곤한 탓에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내일의 계획은 내일 생각하고, 일단 자자.”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푹 자고 일어났더니 겨우 체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다 같이 숙소 1층의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나니, 나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데네브 왕국의 안젤리카 데네브 왕녀님 맞으십니까?”

“네, 그런데요……?”

표정 변화가 적고 차분한 분위기의 학생이었다.

“저는 학생회 서기 보조, 스텔라라고 합니다. 체재 기간 동안 여러분께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하려 합니다.”

“……헤에.”

아카데미의 학생회라면 꽤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을 텐데. 고작 축제 방문객들에게 학생회 소속을 붙여 주다니 상당한 서비스였다.

특히 이 스텔라라는 소녀는 깜짝 놀랄 만큼 정중하게 나를 대했다.

나는 제일 신경 쓰이는 것을 물어보았다.

“일단 세이르를 만나고 싶은데.”

“세이르 선배는 현재 교내에 안 계십니다.”

“없다고?”

사람을 여기까지 불러 놓고?

내가 얼굴을 찡그리자, 스텔라가 얼른 설명을 덧붙였다.

“네. 오늘 야외에서 치르는 시험이 있으셔서 외부에 나가셨습니다.”

“그렇구나…….”

당장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약간 맥이 탁 풀렸다.

“아. 하지만 오늘 내에는 돌이오실 예정입니다. 세이르 선배가 저녁의 무도회에서 뵙자고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별수 없지. 알았어.”

무도회 이야기가 나온 순간 사라의 눈이 번뜩 빛난 것 같은데……?

어쨌거나 무도회 때까지는 그럭저럭 시간이 있었다. 그냥 기다리기는 지루하니, 나는 아카데미에 온 다른 목적을 먼저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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