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파팡! 파파팡!
다시 폭죽이 터졌다. 더 많은 꽃가루가 공중에 나부끼더니 일제히 황금빛 나비로 변해 주위를 빙글빙글 맴돌았다.
신비하고 화려한 광경이긴 한데…… 이게 뭐지?
그때, 방금 신나게 폭죽을 터뜨린 니키가 내게 달려오면서 말했다.
“안젤리카 님, 생일 축하해!”
“어?”
방금 뭐라고?
생일? 내 생일?
나는 얼이 빠진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제야 다이닝 룸의 평소와 다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중앙의 식탁에 크고 화려한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어찌나 큰지 높이가 거의 내 키만 했고, 고개를 뒤로 젖혀야 케이크의 꼭대기가 보일 정도였다.
색색의 크림을 꽃 모양으로 짠 케이크의 가운데에는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케이크의 주위는 꽃과 리본, 촛불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 밖에도 즐비한 음식들이며…….
이만큼 준비하려면 꽤 손이 많이 갔을 텐데,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니키를 비롯하여 오늘 하루 도통 보이지 않던 왕성 사람들이 나를 맞이했다. 잡화점의 제랄드 아저씨는 장식용 양초에 불을 붙였고, 세이르와 루카의 모습도 보였다.
이제 보니, 이 서프라이즈 때문에 다들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건 알겠는데…….
“…….”
나는 눈만 깜빡깜빡했다.
“어머, 안젤리카 님, 많이 놀라셨나 봐요. 안젤리카 님을 놀라게 해 드리고 싶어서 모두 함께 준비했답니다.”
사라가 예쁜 테두리 장식이 달린 붉은색 브로치를 내 옷에 달아 주면서 다정하게 말했다. 나는 여전히 반쯤 넋이 나간 채 되물었다.
“어, 뭐, 뭐를……?”
“뭐긴요. 안젤리카 님 생일 파티지요.”
오늘 내 생일이었어?
그야 사람인 이상 1년 중 언젠가는 생일이 있겠지. 그런데 오늘이 그날이라고는 조금도 짐작하지 못했다.
<두근두근 마법 왕국 꾸미기>에서 캐릭터의 생일까지는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생일이라고 해도, 그냥 태어난 날일 뿐이잖아. 굳이 안젤리카의 생일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그런데 다들 진심으로 축하해 줘서,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니키가 내게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젤리카 님, 아까 미안해. 사실 그때 양초랑 폭죽을 들고 가던 중이라, 들킬까 봐 놀라서.”
그렇게 된 거였구나.
“……하하, 괜찮아.”
“니키에게는 너무 어려운 임무이기는 했어.”
“나라면 안 들켰을걸.”
세이르와 루카도 한 마디씩 하고는 내게 축하한다고 말해 주었다.
“으하하! 안젤리카 님이 예상외의 방향으로 가셔서 얼마나 놀랐는지요.”
“휴, 실패할까 봐 조마조마했습니다…….”
왕성의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말하며 내게 축하 한 마디씩을 건넸다.
그리고…….
그들 사이로 한 걸음, 은빛 머리카락의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아빠다.
오랜만에 가까이에서 보는 아빠는 조금 기운이 없어 보였지만 청량한 모습이었다.
아빠는 무릎을 굽혀 나와 눈을 맞추고 다정하게 말했다.
“열한 살 생일 축하한다, 안젤리카.”
“……아빠.”
내가 그대로 눈만 동그랗게 뜨고 서 있으니 아빠가 쓴웃음을 지었다.
“안젤리카를 놀라게 해 주려고 몰래 생일 파티를 준비했단다. 아니면, 아빠랑 생일 파티를 하는 건 싫을까?”
여전히 다정한 표정이었지만 신중한 눈빛과 말씨였다. 마치 내가 싫다고 하면 그대로 이 다이닝 룸에서 나가기라도 할 것 같았다. 나는 깜짝 놀라서 아빠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아…… 아니요! 그냥 놀라서 그래요. 이렇게 예쁘게 꾸며 놓고, 다들 너무 보안이 철저해서, 그래서 놀라서.”
“……그래.”
겨우 안심한 듯 아빠는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내 손을 꼭 붙잡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아빠 소원이었단다.”
“뭐가요……?”
“이렇게 성대하게 우리 천사 생일을 축하해 주는 거. 아빠가 안젤리카 생일을 축하할 수 있게 해 주겠니.”
“…….”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살짝 고개만 끄덕였다.
그 작은 대답만으로도 아빠는 마치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환하게 웃었다. 보석처럼 아름다운 눈에 찬란한 기쁨이 머무른다.
아빠는 내 뺨과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고, 깊은 애정을 남김없이 드러내며 말했다.
“안젤리카, 생일 축하한다. 안젤리카가 태어나서 진심으로 기쁘단다.”
처음에는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사실에 대한 당혹스러움, 이렇게 성대하게 축하받는 것에 대한 쑥스러움만이 느껴졌지만.
아빠의 말을 듣는 순간 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꼭 머리 위로 흩뿌려진 꽃가루가 나비가 되어 가슴속을 간지럽히는 느낌이랄까.
놀랍고 쑥스럽고 어색하지만 결코 싫거나 거북하지는 않은 느낌. 이마에 내려앉은 입맞춤과 맞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따뜻함. 상대를 염려하는 따뜻함. 안도감…….
한 단어로 뭉뚱그리면 아마 사랑일 테지.
나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빠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아빠의 눈썹이 살짝 아래로 기울어졌다. 장식용 촛불의 불꽃이 아빠의 얼굴 위로 작은 일렁거림을 만들어 냈다.
내가 오랫동안 좋아해 온 캐릭터이자 아빠가 그곳에 서 있었다.
지난번 대화 이후 아빠의 얼굴을 보기 힘들어서 며칠간 피해 다녔다. 하지만 이렇게 마주하게 되니 역시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점을 실감했다.
당신은 누구고 왜 원작과 달라졌는지.
당신은 왜 나를 사랑하는지.
그리고…….
“안젤리카, 선물로 갖고 싶은 건 없니? 뭐든 괜찮으니 말해 보렴.”
“선물은 괜찮아요. 대신…… 딱 하나만 솔직하게 말해 주세요.”
“……알겠다.”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질문이 이윽고 입 밖으로 나왔다.
“아빠, 엄마에 대해 알려 주세요.”
내 물음이 뜻밖이었던 걸까. 아니면 올 게 왔다고 생각한 걸까.
아빠는 나를 바라보며 한참이나 침묵했다. 그 후 엷은 한숨을 내쉬고는 나를 향해 팔을 뻗었다.
“이리 오렴, 안젤리카.”
그리고 나를 번쩍 안아 들고 어디론가 향했다. 나는 아빠의 목에 팔을 두르며 물었다.
“아빠, 어디 가요?”
“네게 보여 줄 것이 있단다.”
* * *
아빠가 향한 곳은 왕성 북쪽의 좁고 긴 회랑이었다. 동선상 평소에는 지나갈 일이 많지 않은 곳이기도 했다.
아빠는 나를 데리고 회랑의 벽 앞에 섰다. 가까이에서 보지 않으면 알 수 없게끔 살짝 움푹 파인 곳에 손바닥보다 조금 큰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나머지 그림은 전부 아델리아가 가지고 가 버려서, 딱 한 장만 남아 있단다.”
“아델리아…….”
“그래, 엄마의 이름이란다.”
분홍빛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환하게 웃고 있는 여성의 그림이었다. 무척 잘 그렸지만 얼굴 생김새를 자세히 알기에는 너무 작았다.
그래도 나는 그림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 작은 그림에서 엄마와 나의 연결점을 찾고 싶은 듯이.
“아델리아가 이 장소를 좋아했어서, 여기에 걸어 두었다.”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아빠는 무척 오랜 기억을 더듬는 듯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델리아는, 데네브 왕국에서 순회 근무를 하기 위해 방문한 신관이었다.”
“신관님이요?!”
“하하……. 그렇게 놀랄 일이니?”
아빠는 머쓱한 듯 웃음을 지었다.
내가 그동안 아빠에게 곧장 엄마에 대해 묻는 대신 나 혼자 조사한 이유 중 하나는, 슬픈 이야기가 튀어나올까 봐 걱정되어서였다. 슬픈 기억을 꺼내게 해 아빠를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아빠는 걱정과 달리 소년처럼 풋풋한 그리움과 쑥스러움을 담아 웃었다.
아빠는 내 앞에서는 늘 웃고 있지만, 이렇게 쑥스러워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생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적어도 아빠의 엄마에 대한 기억이 나쁜 기억은 아닌 것 같아서. 딸에게 쑥스러워하며 말해 줄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아서.
“그냥 좀…… 의외라서요.”
“그러니?”
“아빠가 먼저 엄마를 좋아했어요?”
“으, 음……. 그건.”
“아빠?”
아빠는 곤혹스러운 듯 마른세수를 하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때는 아빠가 젊고 혈기 넘쳤어서, 그렇다기보다는…….”
“아빠는 지금도 젊고 멋있어요!”
적어도 이 사실만큼은 내가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다.
“하하……. 그렇게 봐 줘서 고맙구나, 안젤리카.”
이어진 아빠의 이야기는 대충 이런 느낌이었다.
(아빠의 표현에 따르면) 젊고 혈기 넘치는 시절이었던 아빠는 순회 근무를 하러 온 신관인 엄마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원래 신전을 좋아하지 않는 데다가, 왕성 바로 근처에 부득불 자리를 잡는 신관이 거슬렸기 때문이라나.
엄마 역시 신전을 박대하는 젊은 왕을 거슬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에 왕성과 신전의 사이는 오랜 시간 살얼음을 밟는 듯했다.
순회 근무 중의 신관은 근무지에서 영주권을 보장받는 것이 원칙이지만, 국왕이 마음만 먹으면 쫓아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트집을 잡아 신관이 자질 부족이라고 하면 된다.
그러나 아빠는 엄마를 쫓아내지는 않았다. 그저 두고 보았을 따름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두 사람은 서로를 신경 쓰게 되었다.
이 부분은 쑥스러운지 아빠가 대폭 축약했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
‘이거 완전 그거잖아?’
전에 마거릿이 읽던 소설 같은 느낌이다. 사악한 흑막 남주가 햇살 여주를 만나는 이야기 말이다.
가슴속이 어쩐지 간지러워졌다.
나는 젊고 혈기 넘치는 아빠와 엄마의 달콤한 추억을 상상하며 다음 이야기를 들었다.
또다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아빠는 엄마에게 청혼을 결심한다.
“진짜요? 프러포즈는 어떻게 했어요?”
아빠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저었다.
“못 했어.”
“왜, 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