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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98)화 (99/133)

98화

으음, 이거 큰일이네.

분위기를 풀기 위해 ‘이제부터 너는 내 소유니까 내 말은 다 들어야 해!’라든가 ‘으하하, 앞으로 하루 종일 일하게 될걸!’ 뭐 이런 가벼운 농담을 할 생각이었는데.

안 되겠다. 지금 그 말을 꺼냈다가는 철석같이 진짜라고 받아들일 것 같다.

그럼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까.

“루카, 너 마족으로 변신할 수 있어? 변신 보여 줘.”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는지, 루카가 입을 떡 벌렸다. 그리고 곧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요……. 못합, 못해.”

“어머, 그래? 키도 크고 근육도 생기고 날개도 달려서 멋지던데.”

“그게 맘대로 되는 게 아닙…… 아니란 말야. 다시 잠든 모양이라. 지금은, 마족의 힘은 느껴지지만 멋대로 튀어나오지는 않습…… 않아.”

이런. 역시 퀘스트의 진행도를 채우지 않고 대뜸 불러낼 수는 없나 보네.

“흐음, 그렇구나. 그럼 정해졌네.”

내가 씩 웃으니 루카가 떨떠름해하며 물었다.

“뭐…… 뭐가?”

“루카, 너는 나보다 동생이야.”

“뭐…… 뭐? 지금 그게 중요해?”

“응? 당연히 중요하지? 나는 연공서열을 중시한단다.”

“그게 뭔데……?”

으음, 슬슬 그만 놀릴까.

말투는 아직 오락가락 하는 데다가, 굉장히 반박하고 싶은 표정으로 입을 딱 닫고 있는 게 귀엽다니까. 세이르랑 다른 느낌으로 놀리는 맛이 있다.

나는 생긋 웃으며 루카에게 손을 내밀었다.

“뭐, 어쨌건. 알다시피 난 열 살이야. 루카 넌 몇 살인데?”

“……몰라.”

“응?”

“아주 어릴 때 이므시 백작한테 팔려 와서……. 부모도 없고, 출생 서류도 없으니까 정확한 나이는 몰라.”

잠시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나는 애써 당황을 감추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럼 넌 아홉 살 해!”

“그거보단 많습…… 많아! 생각해 보니까 나 열한 살은 된 거 같아.”

“늦었어. 앞으로 나를 누님이라고 부르도록 해.”

“처…… 천이백 살!”

“아니, 마족 나이로 세는 건 반칙이지.”

그때.

“……아하하하!”

옆에서 경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소리의 근원지인 세이르를 뾰로통하게 쳐다보았다.

“세이르, 넌 누구 편이야?”

세이르는 웃음기가 다 가시지 않은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응? 그야 루카 편이지.”

“봐, 루카, 세이르가 나보다 나이 많다고 이렇게 제멋대로라니까?”

“둘 다 ‘수준이’ 비슷해 보이는데, 그냥 열 살 동갑인 걸로 하지 그래?”

“세이르, 방금 ‘수준이’라는 단어가 들린 것 같은데.”

“기분 탓이야.”

나는 시답잖은 대화로 한참을 세이르와 투닥투닥했다. 무거운 분위기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더 큰 소리로 떠든 것이었다.

그러다 대화가 끊기고 웃음소리도 그쳤을 무렵, 루카가 불쑥 말했다.

“고맙습…… 고마워.”

침대에 걸터앉은 채 고개는 푹 수그렸고, 손은 이불을 꼭 쥔 채였다.

“응? 루카, 뭐라고?”

“구, 구해 줘서 고맙다고!”

띠링!

[<이벤트> 루카 안드라스가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5000 왕국 포인트를 회득합니다.]

[<히든 퀘스트> 마족님에게 물어봐! 진행도 : ■□□□]

굳이 눈앞에서 반짝거리는 상태창을 보지 않고도 루카가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었다. 뺨과 귓불이 붉다. 고맙다는 말을 하기 위해 큰 용기를 낸 것이 분명했다.

나는 루카가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부드럽게 말했다.

“괜찮아. 그렇게 고마워할 거 없어.”

“그래도…….”

“공짜 아닌데?”

“뭐, 뭐어어?”

깜짝 놀란 루카가 눈을 화등잔처럼 크게 떴다. 내 말을 전혀 짐작도 하지 못한 모양이다.

저런. 자신이 내 소유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은 하면서 왜 약값은 받지 않고 넘어가리라 생각한 걸까. 정화의 샘물을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값을 받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지.

나는 루카에게 중요한 사실을 전해 주었다.

“루카, 너한테 먹인 약 말인데. 10만 골드는 하거든.”

“뭐, 뭐어어어?!”

이번에 들린 비명은 루카 쪽이 아니라 등 뒤쪽이었다. 등 뒤를 슬쩍 돌아본 세이르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안젤리카, 방금 한 말 니키가 들었어.”

“……아차.”

완전히 닫히지 않은 방문이 화근이었다. 하필이면 내가 가격을 언급하는 그때, 니키가 복도를 지나가는 바람에 정화의 샘물 가격을 알아 버렸다.

니키에겐 비밀로 해 주려고 일부러 함께 안 왔는데, 결국 들어 버렸군.

“그렇게 비싼 걸 내가 버렸다니……. 으흑…….”

“니키, 괜찮아?”

니키는 충격에 빠진 나머지 내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10만 골드면 고기가 한 접시, 두 접시…… 백 접시…… 천 접시…….”

충격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니키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배웅했다. 저녁에 특식이라도 해 달라고 해야겠군.

그리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루카, 약값만큼의 일은 해 줘야겠어.”

루카는 각오를 다진 듯 차분한 얼굴로 대답했다.

“어차피 제 목숨은 이제 주인님, 아니, 네 거야. 마음대로 하십…… 해.”

“아니, 목숨까지는 좀……. 부담스러우니까 됐고.”

남의 목숨을 받아서 뭘 한담? 그런 거 본인이 알아서 잘 간직하고 있으라고.

“다만 루카, 네가 해 줄 일이 있단다.”

빙그르르.

나는 몸을 돌리고, 지금 필요한 물건을 찾아 루카의 침실을 살펴보았다. 긴 막대기가 있으면 좋겠는데 썩 괜찮은 것이 보이지 않았다.

“빌려줄까?”

내가 무엇을 찾는지 용케 알아챘는지, 세이르가 자신의 성검을 가리키며 물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성검은 너무 무겁다. 세이르는 어떻게 저걸 늘 들고 다닐 수 있는지 모르겠다.

“아, 이거면 되겠다.”

결국 마땅한 물건이 없어서 난 구석에 놓인 먼지떨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먼지떨이의 손잡이 부분으로 루카의 어깨와 머리를 톡 두드리면서 선언했다.

“루카 안드라스를 암흑 기사단의 기사로 서임합니다.”

“뭐……?”

“왜 그렇게 놀라? 너는 이제 암흑 기사단 소속이자 내 부하 2호야.”

“기사, 라고……?”

루카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런, 감동받은 모양이구나.

‘뭐, 아홉 살 난 어린애라면 기사를 동경할 법하지. 역시 어리다니깐.’

난 열 살이니까 마법사가 더 좋지만!

“정식 활동은 모레부터야. 내일은 준비를 해야 하거든. 모레, 아침을 먹은 다음에 암흑 기사단 건물로 와. 내 공방 바로 옆이니까 찾기 쉬울 거야.”

“…….”

아차, 중요한 걸 깜빡할 뻔했네.

“봉급은 기사의 봉급 체계에 준해서 나갈 거야. 그리고 숙식 제공, 유급 휴가 있음.”

띠링!

그때, 기다리던 알림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름 : 루카 안드라스

직위 : 암흑 기사단의 기사(B)

소속 : 데네브 왕국

레벨 : 21

칭호 : 칠흑의 마검사(A), 마족을 삼킨 자(B)]

먼저 루카의 상태창이 업데이트되었다.

그리고 다음은…….

[<서브 퀘스트> 어둠에 물든 기사를 완료했습니다.]

바로 암흑 기사단 설립 퀘스트를 완료했다는 알림이었다.

‘음하하! 드디어!’

여러 가지 일이 생기는 바람에 미뤄 뒀지만, 나는 이 퀘스트를 잊지 않았다.

그래서 아빠가 루카를 마음대로 하라고 했을 때, 나는 곧장 이 퀘스트를 떠올렸다.

퀘스트는 클리어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실용성 없는 암흑 기사단을 크게 세울 생각은 없었다.

‘어쨌건 암흑 기사단을 세우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그래서 내 계획은, 왕성에서 적당한 사람을 뽑아 기사라는 감투만 씌워 주는 것이었다. 편법으로 퀘스트만 클리어하는 꼼수 플레이랄까.

그런데 데네브 왕국의 왕성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많지 않다. 적당한 사람을 고르지 못하고 망설이는 사이, 이런저런 일이 일어났고 루카가 나타났다.

그리하여 루카를 기사로 만들고 간단하게 퀘스트를 클리어했다, 이 말씀이다.

나는 어쩐지 복잡한 표정의 루카를 바라보며 속으로 웃었다.

‘후후후……. 암흑 기사단의 실체를 알면 깜짝 놀랄걸.’

그 모습이 기대된다.

* * *

알레사 백작은 긴장한 표정으로 자세를 바로 했다.

이곳은 화려하게 꾸며진 미술관이었다. 신진 예술가를 후원하기 위해 열린 전시회. 돈과 권력깨나 있는 자들이 우아한 모습으로 작품을 감상했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다. 그녀가 ‘그분’의 총애를 되찾을 수 있을지, 명운을 좌우하는 날이니까.

‘로디 실로프, 그 자식만 아니었어도……!’

초조한 기다림 속, 알레사 백작은 지난날을 회상했다.

적당한 신진 예술가와 일부러 염문을 뿌렸다. 그리고 도예품을 사들이는 척하면서 막대한 돈을 세탁했다.

모두 그분이 뒤를 봐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분은 알레사 백작이 불법적인 부를 쌓을 수 있게 탈세를 눈감아 주면서, 대신 한 가지 일을 지시했다.

바로 상업 도시 사달멜리크의 자치회를 장악하는 일이었다.

쉬운 일이었다. 그녀는 이미 자치회 전원에게 뒷돈을 먹이고도 남을 만큼의 부를 쌓았으니까.

그녀의 입김이 닿는 사람을 자치회장에 당선시키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상업 도시 사달멜리크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그분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로디 실로프가 나타나면서 계획이 어그러졌다.

로디 실로프는 능수능란하게 그녀의 계획을 방해했다. 귀신에라도 씐 기분이었다. 그녀가 물밑에서 어느 후보를 미는지는 철저한 비밀이었는데, 그는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알레사 백작이 더 큰 돈으로 회유하려 들어도 자치회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로디 실로프가 자치회의 약점을 단단히 틀어쥔 것이 분명했다.

‘소문에는 사달멜리크의 암흑가를 관리한다는 말도 있지만……. 그건 아니겠지.’

그 비실비실한 상인이 암흑가까지 손에 넣었다니, 농담이 과하다.

알레사 백작은 결국 선거에서 패배했고, 그분을 크게 실망시켰다.

그리하여 오늘.

마지막 기회다. 그분의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자신은 정말로 끝이었다.

“도착하셨습니다.”

입구를 지키던 시녀가 다가와 알레사 백작에게 속삭였고, 거의 동시에 문이 열렸다.

그분은 소리도 없이 안으로 들어왔다. 알레사 백작은 너무 겁에 질린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다프네 왕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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