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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96)화 (97/133)

96화

“놀라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마족의 영혼석이 존재한다는 전설은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전설. 허황된 이야기로 치부되었으니까요.”

“응, 그치만 직접 본 이상 믿을 수밖에 없네.”

루카가 마족으로 변하는 모습을 내가 직접 보았으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그 말대로라면 마족의 영혼석은 무척 희귀할 것 같은데. 이므시 백작의 깜냥으로 어떻게 그걸 손에 넣게 된 거야?”

듀란 할아버지는 착잡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알 수 없습니다. 누군가 뒷배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렇게 추측됩니다만.”

경위는 알 수 없으나 이므시 백작은 ‘마족 안드라스’의 영혼석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마족의 힘을 이용해 우선 나를, 그다음으로 아빠를 처치하고 데네브 왕국을 홀라당 먹어 버리겠다는 터무니없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정말 터무니없네.’

그러나 천 년 묵은 마족의 영혼석에서 마족을 부활시키고, 또 멋대로 부리는 일이 쉬울 리가 없었다.

영혼 상태의 마족을 부활시키기 위해서는 매개가 될 인간의 몸이 필요하다.

살아 있는 인간의 몸 말이다.

이므시 백작은 처음에는 성인의 몸을 사용해서 부활시키려 했다. 그러나 마족의 영혼과 인간의 영혼이 서로 반발하는 바람에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다음으로 이므시 백작은 루카처럼 버려진 아이들을 모았다.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어린아이의 영혼이라면, 마족의 영혼에 반발하지 않으리라는 계산에서였다.

그러나 어린아이를 이용한 실험은 난항이었고, 실험에 동원된 아이들은 모두 죽었다.

단 한 명, 루카만 빼고.

여기까지 듣고 나는 속이 안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차를 벌컥벌컥 들이켰지만 도무지 진정되지 않았다.

“이므시 백작은 결국 루카라는 소년의 몸에 영혼석을 이식하는 데까지 성공했습니다. ……많은 피해가 있었지요.”

“…….”

“그러나 마족 소환은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소년의 자아가 저항했지요. 그래서 이므시 백작은 소년의 자아를 죽이는 독을 계속 먹였습니다.”

“그게 저주…… 암흑화구나.”

“네.”

듀란 할아버지는 무거운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 나갔다.

독을 먹이면 먹일수록 저주의 힘은 강해지고, 폭주가 자주 일어나게 된다. 이므시 백작은 이 폭주의 힘을 이용해 나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핑계를 대어 아빠를 왕성 밖으로 불러낸다.

“그 핑계는 뭐였는데?”

이므시 백작을 직접 죽인 아빠의 행동, 그리고 말을 돌이켜 보면 아빠는 처음부터 이므시 백작을 신뢰하지 않았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었다면 아빠가 이므시 백작을 만나지는 않았을 테다.

심지어 그날은 원래 나랑 축제를 구경하기로 한 날이었다고.

“크로셀 님이 찾으시던 어떤 정보를 미끼로 삼았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이상은 제 선에서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흐음…….”

신경은 쓰였지만, 권한이 없다는데 재촉하기도 그랬다.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계획대로 아빠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이므시 백작은 루카를 왕성 안으로 잠입시킨다.

여기까지 들은 내 감상은…….

“어째 좀 허술하지 않아?”

동의를 구하는 뜻으로 세이르를 쳐다보았는데, 세이르는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안젤리카, 네 목숨을 노렸다는 이야기인데 그게 무슨 소리야.”

“사실이잖아.”

“하아.”

“몬스터한테 쫒기는 와중에 자기는 놓고 가라던 염세주의 꼬맹이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아.”

“……하아, 그래. 내가 잘못했어.”

“알면 됐어.”

잠시 다른 데로 샜네. 아무튼.

왕녀 암살 계획씩이나 되어서 이렇게 대충해도 돼?

루카는 내 공방에 숨어들었지만, 발작을 일으킨 직후 기절하면서 계획은 실패.

심지어 다음 날 뻔뻔하게 고개를 들이민 이므시 백작은 내게 시비를 걸었고, 생각보다 일찍 돌아온 아빠를 보고 도망치듯 떠났다.

자신이 나쁜 짓을 꾸몄다고 광고하는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마.왕.꾸>를 플레이할 때는 암살 그렇게 안 했다고! 철저하게 해야지!

아무 데나 허투루 암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건 멋진 흑막답지 않으니까!

‘애초에 내가 죽으면 데네브 왕국이 자기 거라는 발상부터 이해가 안 가네…….’

“네, 그렇지요. 허술합니다.”

나와 세이르를 흐뭇하게 보고 있던 듀란 할아버지가 표정을 지우고 말했다.

충성스러운 암살자(D)가 암살에 대해 그리 말하니 무게감이 상당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 허술한 모습도 계획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므시 백작의 진짜 목적은 마족 안드라스를 부활시켜서 안젤리카 님을 해치는 것이었습니다.”

“……아하.”

엑스트라 악역 주제에 한번 머리를 굴려 봤다는 이야기군.

“이므시 백작이 들고 있던 그 이상한 스태프. 그건 뭐야?”

심상치 않은 마력이 느껴지는 스태프였다.

그날, 이므시 백작은 그 스태프의 힘을 써서 마족 안드라스를 부활시켰다.

“외람되오나, 그가 어떻게 그 스태프를 손에 넣었는지는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

“다만 보통 물건이 아닌 것만은 분명합니다. 안에 잿빛의 탁한 마석이 들어 있었습니다.”

‘탁한 마석’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렸다.

휴양 도시 엘나스에서 세이르를 공격한 몬스터의 몸에서도 탁한 마석이 발견되지 않았던가?

어쨌건 이므시 백작은 그 수상한 스태프의 힘으로 마족을 부활시킬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후는 안젤리카 님이 아시는 그대로입니다.”

듀란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맺었다.

대강 상황은 파악했지만, 가장 신경 쓰이는 의문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날, 이므시 백작은 마족 안드라스를 부활시키는 데 성공했어. 다시 비활성화된 것 같지만. 그럼 지금 루카는 어떤 상태야? 괜찮은 거야?”

내 질문에 듀란 할아버지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먼저 마족의 영혼석을 소년에게서 떼어 내는 일은 불가능했습니다. 이미 소년 안에 완전히 흡수되었기 때문입니다.”

“흡수되었다고?”

“원래라면 이 경우, 마족의 영혼이 인간 쪽의 인격을 잡아먹게 됩니다만……. 정화의 힘이 마족의 힘을 억누른 것으로 보입니다.”

아.

정화의 힘.

나는 세이르와 잠시 시선을 교환했다.

정화의 샘물이다. 내가 꾸준히 먹인 정화의 샘물이 효과를 발휘한 모양이다.

내가 한 일은 의미 없지 않았다.

루카를 구할 수 있었다.

뿌듯함과 안도감이 뒤섞인 묘한 감동이 가슴 속을 휩쓸었다.

“현재는 소년이 마족의 힘을 흡수한 상태입니다. 갑자기 폭주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렇구나…….”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겨우 안심이 되었다. 나는 차로 마른 목을 축였다.

“제가 드릴 말씀은 이상입니다. 더 궁금하신 것이 있으실까요.”

그날, 매섭던 아빠의 모습이 마음에 남았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아빠는……. 아빠는, 루카에 대해 뭐라고 했어?”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으니, 어떻게 처리하든 안젤리카 님의 뜻대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내 뜻대로……?”

“네, 그 소년은 안젤리카 님 소유가 되었습니다. 어찌 쓰든 안젤리카 님의 뜻입니다.”

“일단, 알겠어.”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지만, 이는 듀란에게 말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내 뜻대로……. 그래, 알겠어.”

그렇다면 내게 생각이 있었다.

나는 남은 차를 마저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그때 듀란 할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많이 자라셨군요. 안젤리카 님이 이렇게 건강하게 깨어나신 모습을 보니 다행입니다.”

“……깨어났다고?”

“아.”

일순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비쳤다. 듀란 할아버지는 곧장 다시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다 봤다.

어쩐지 감이 왔다. 방금 말을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는 감이.

“무슨 뜻이야?”

“크흠, 몸살감기를 앓으셨지 않습니까. 깨어나셔서 다행이란 뜻이었습니다.”

“아까 오늘 새벽에나 도착했다며?”

“……안젤리카 님.”

“말해. 이제 나만 모르는 일은 질색이야.”

내 닦달에 듀란 할아버지는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이윽고 결론을 내린 듯, 눈을 질끈 감았다 뜬 뒤 말했다.

“안젤리카 님은……. 오래 잠들어 계셨습니다.”

“잠들어 있었다고? 얼마나?”

“얼마나…… 라고 딱 짚어 말하기는 힘들군요. 저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아무튼 긴 시간 잠들어 계셨고, 크로셀 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습니다.”

“…….”

놀라는 한편으로, 직감이 듀란 할아버지의 말은 사실이라고 속삭였다.

내가 안젤리카의 몸에서 눈을 뜬, 그 순간이다.

고작 나무에 머리를 부딪혀서 기절했었다기에는 너무 눈물이 많던 사라의 모습, 또 나를 과보호하던 아빠의 모습이 머리를 스쳤다.

지나치게 낮았던 HP도 오래 자리에 누워 있었기 때문이라면 설명이 된다.

그 당시에는 나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주위의 위화감을 깨닫지 못했다.

그렇구나. 내가 이 세계에서 눈을 뜰 때까지, 안젤리카는 잠들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새로운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이 몸은 텅 빈 상태였던 걸까? 원작의, 아니, 1회차의 안젤리카는 존재하지 않는 건가?

또 한 가지 의문은, 내가 오래 (잠들어 있다가 깨어났다는 사실을 왜 아빠가 비밀로 했느냐다.

딱히 감출 필요는 없지 않아? 그냥 아파서 누워 있던 딸이 눈을 떴다고 해도 되잖아. 왜 비밀로 한 거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이 의문은 결국 아빠한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봐야만 답을 찾을 수 있을 테다.

“세이르, 미안한데 조금만 기다려 줄래?”

“응?”

“루카한테 가기 전에 먼저……. 아빠를 만나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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