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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92)화 (93/133)

92화

그는 오른손에는 기이하게 생긴 스태프를, 왼손에는 루카의 몸을 얽맨 쇠사슬의 반대쪽을 들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의 웃음만이 크게 들렸다.

나는 깜짝 놀랐다.

‘저 인간의 인간성이 엉망진창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짓을 벌일 정도로 간이 큰 줄은 몰랐네.’

거기다 차단 마법은 이므시 백작 따위가 쓸 수 있을 만큼 쉬운 마법이 아니다. 원래대로라면 말이다.

‘저 스태프…….’

이므시 백작이 손에 들고 있는 기이하게 생긴 스태프.

지난번에 이므시 백작이 나타났을 때도 저 스태프를 들고 있었다.

그때도 이상하게 생겼다 싶었는데, 지금은 요사스러운 기운까지 느껴졌다. 저 스태프가 마법을 성공시킨 것이 분명했다.

루카는 계속 쓰러진 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태였고, 이 검은 공간엔 나와 세이르뿐이다.

침착하자.

‘시간을 끌어야 해.’

차단 마법은 확실히 강한 마법이다. 하지만 우리 아빠를 막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시간을 끌면 분명 아빠가 이 차단 마법을 뚫고 와 줄 거다.

거기다 내게는 이것도 있다.

나는 슬쩍 손가방 안을 보았다. 파와리스 폭포를 찾아갔을 때 만든 소형 마법 폭탄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옆에서 세이르가 나를 보고 눈짓했다. 그리고 슬그머니 자세를 잡는다.

나는 세이르의 움직임을 눈에 담으며 이므시 백작을 향해 입을 열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이게 무슨 짓이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루카가 다 나으면 다시 오겠다고.”

“…….”

“네가 루카를 치료해 주다니 참 고맙구나. 덕분에 루카를 잘 쓸 수 있겠어.”

이므시 백작의 말에 속이 안 좋아졌다. 나는 입술을 짓씹고 재차 물었다.

“나를 죽이려고 루카를 여기로 보낸 건가요?”

“그렇단다. 미안하지만 너는 여기서 죽어 줘야겠구나.”

“나를 왜 죽이려고 하죠?”

“원래 이 왕국은 내 것이었다!”

“……?”

그게 무슨 소리지? 아닌데?

데네브 왕국은 우리 아빠가 세웠고, 이므시 백작은 콩고물을 노리고 맴도는 엑스트라 악역일 뿐이다.

“이제 왕좌가 제 주인을 찾아야지. 너만 없으면 이 왕국은 내 것이 될 테다! 크크큭!”

뭐래, 미친놈인가.

이제껏 내가 한 수백 번의 <마.왕.꾸> 플레이를 돌아보아도, 이므시 백작이 데네브 왕국을 먹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빠가 있는 이상 불가능하니까.

‘정말 지지리도 분수를 모르는구나.’

[이름 : 로건 이므시

직위 : 작은 영지의 백작(F)

레벨 : ???

특성 : 네 분수를 알라(F), 과거의 원수(F)

※ 상태 이상 : 야욕을 품음(Lv.9)]

나는 다시금 이므시 백작의 상태창을 보았다.

정말 한 치의 거짓도 없는 내용뿐이었다. 그는 지지리도 분수를 몰랐고, 능력에 맞지 않는 야욕을 품고 있었다.

어라, 잠깐. 과거의 원수(F)?

전에 이므시 백작의 상태창을 봤을 때 저런 내용이 있었던가? 과거의 원수라니 저게 무슨 뜻이지?

“크크큭……. 겁을 먹은 모양이군. 걱정하지 마라, 금방 끝날 테니.”

이므시 백작이 스태프를 높이 들어 올렸다.

지금이다.

“……세이르! 지금이야!”

타다닥!

세이르가 성검을 꺼내 들고 이므시 백작에게 달려들었다. 검날이 빛을 발한다. 세이르는 이므시 백작의 시선을 끈 뒤 재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때 나는 이므시 백작을 향해 마법 폭탄을 던졌다.

“이야압!”

완벽한 협공이었다. 그러나.

퍼엉! 쿠콰콰쾅!

이므시 백작은 방어 마법으로 손쉽게 마법 폭탄을 막아 냈다. 그리고 스태프를 휘둘러 세이르의 공격까지도 막아 내더니 멀리 날려 버렸다.

쾅!

멀리 날아간 세이르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으으윽! 쿨럭!”

“세이르! 괜찮아?!”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꼬맹아. 네가 그렇게 건방지니 웃어른으로서 예의범절을 가르쳐야겠다.”

차르르륵!

이므시 백작은 루카의 몸을 얽어맨 쇠사슬을 잡아당겼다. 루카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숨이 막힌 듯 루카가 발을 버둥거렸다.

“그만둬요!”

“크윽, 으……! 도망쳐!”

이므시 백작이 스태프를 크게 휘두르며 외쳤다.

“크크크큭! 깨어나라, 마족 안드라스여! 계약에 따라 적을 섬멸하라!”

“으윽…… 윽, 크아아아악!”

방향도 거리도 가늠할 수 없는 장막 속 어둠에 루카의 비명만이 울려 퍼졌다.

이어 이므시 백작의 스태프에서 불길한 빛이 터져 나왔다. 이윽고 빛이 잦아든 다음.

눈앞에 있는 사람은 더 이상 루카가 아니었다.

“루카……?”

눈앞에 서 있는 자가 낯설었다.

검은 머리카락은 바닥에 닿을 정도로 길었다. 어깨는 넓게 뻗었고, 팔다리는 길다. 신체의 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찢어진 옷의 틈새로 단단한 근육이 드러났다. 완전한 성인 남성의 모습이다.

이상한 점은 그뿐이 아니었다.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솟아올랐고, 등에서는 검은 날개가 돋아났다. 커다란 날개가 등 뒤에서 푸드덕거렸다.

그리고 그의 붉은 눈이 무감정하게 나를 바라보는 순간.

띠링!

날카로운 알림음과 함께 상태창이 나타났다.

[이름 : 마족 안드라스

직위 : 마계 후작

소속 : --

레벨 : ???

특성 : 불만스러운 파괴자(???)]

[※ 원 포인트 레슨 : 마족 안드라스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대적할 수 없는 상대! 목숨이 아깝다면 마족에게 저항하지 마세요.]

“마, 마족……?”

마족이라고?

정말로? 설정집에서나 언급되던 마족이 여기서 나온다고? 천 년 전에 다 사라진 거 아니었어?

혼란스러운 한편, 머릿속을 스치는 어떤 기억이 있었다. 눈앞의 광경에 기시감이 든다.

나,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있었다.

‘그때 그 꿈.’

쓰러진 루카를 발견한 날 마족이 나오는 꿈을 꾸었다. 그때는 그냥 중2병 꿈을 꾸었다고만 생각했는데.

예지몽이었나? 오늘 이 일을 예지했다거나?

이성보다 먼저 직감이 답을 내어놓았다.

아니다. 그건 예지몽이 아니라 기억이다. 과거의 기억을 꿈으로 꾼 거였어.

안젤리카 데네브의 기억.

원작의 안젤리카가 죽은 약혼식 날의 기억.

무너진 건물 안, 마족 안드라스가 나타났다. 그리고 안젤리카를 죽이려 했다.

하지만 어떻게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며 일어나지 않을 일’의 기억을 꿈으로 꿀 수 있는 걸까.

‘2회차……?’

게임은 원래 주회하는 것.

예를 들어, 1회차 때는 안젤리카가 원작대로 죽음을 맞이했고, 지금이 2회차라면? 많은 것이 설명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므시 백작의 상태창에서 ‘과거의 원수(F)’가 의미하는 바도 분명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눈앞에 있는 자를 보았다.

‘이므시 백작이 안젤리카 데네브를 죽인 거였어. 지금처럼 마족을 소환해서.’

“크…… 크하하하하! 성공했다! 드디어 성공했어! 마족 안드라스를 완전하게 부활시켰다!”

이므시 백작은 환희에 차 소리 질렀다. 그리고 내 쪽을 손가락질하며 마족 안드라스에게 명령했다.

“마족 안드라스여! 저 건방진 꼬맹이들을 해치워라! 네 주인을 해하려 한 자다!”

“……시끄럽군.”

낮고 거친 목소리였다. 루카의 몸에서 나타난 마족이 루카와 다른 목소리로 뇌까렸다.

“내 잠을 방해한 인간이 너냐? 거슬리는군.”

“말도 안 돼. 어째서 말을 듣지 않는 거냐! 얼른 적을 해치워라!”

“시끄럽다고 했을 텐데.”

“뭐, 뭣이……?”

마족이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자 이므시 백작은 크게 당황했다. 마족 안드라스가 조소했다.

“한낱 인간 따위가 나를 부리려 하다니, 천 년은 이르다.”

파아앗-.

마족 안드라스의 손에서 검이 생겨났다. 그리고 곧장 이므시 백작을 베어 버리려 했다.

그러나 이므시 백작은 곧 침착을 되찾고 비열한 웃음을 터뜨리며 스태프를 들었다.

“크하하하! 이걸 보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쓸데없는 수작을……. 크윽?!”

“이야아압!”

퍽!

이므시 백작이 스태프로 바닥을 두드렸다.

그 순간, 쇠사슬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마족 안드라스를 옭아맸다.

처음에 마족 안드라스는 힘으로 쇠사슬을 끊어 버리려 했지만.

“크크큭! 주인을 거스르면 어떻게 되는지 가르쳐 주지.”

푹!

이므시 백작의 스태프가 마족 안드라스의 가슴을 찔렀다.

“안 돼……! 무슨 짓이에요!”

섬뜩한 광경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스태프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기운이 마족 안드라스의 몸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러자 쇠사슬이 검은 마기로 변하더니 마족 안드라스의 몸을 전부 뒤덮었다.

“큭, 무슨……! 으윽, 으아아아아악!”

마족 안드라스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몸을 비틀며 저항하려 했지만, 그럴수록 마기는 더욱 심해지기만 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멈춰! 멈추라니까!”

나는 남은 마법 폭탄을 꺼내 이므시 백작 쪽으로 던졌다. 그러나 이므시 백작은 손쉽게 마법 폭탄을 저 멀리 튕겨 내었다.

펑! 퍼엉!

마구 터져 나온 폭음이 잦아들고.

온통 검은 공간 속에서 마족 안드라스가 몸을 일으켰다. 붉게 충혈된 눈에는 더 이상 이성이라고는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았다.

“크하하하! 마족 안드라스여, 저 건방진 녀석들을 해치워라!”

“크읏……. 윽……. 존명.”

터벅터벅…….

온통 고요한 공간 속에서 발소리만이 크게 울려 퍼졌다.

이므시 백작의 꼭두각시가 된 마족 안드라스가 검을 쥐었다. 그리고 가차 없이 나를 공격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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