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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88)화 (89/133)

88화

나는 로켓을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딱히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은 없었다.

이대로 놓고 가려니 어째 찜찜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빠의 이름이 적힌 로켓이라니.

‘일단 가져가 볼까.’

어쩌면 아빠가 잃어버린 물건일지도 모르니까. 나중에 아빠에게 전달해야겠다.

나는 로켓을 주머니에 넣었다.

* * *

“피이이…….”

“로코, 이리 와. 언니랑 놀자.”

“피잇…….”

“왜 그래, 로코? 이거 싫어?”

“피이…….”

무사히 무지갯빛 돌을 손에 넣고 파와리스 폭포 앞 땅굴에서 돌아온 다음 날.

로코가 단단히 심통이 났다. 아까부터 아무리 말을 걸어도 이쪽을 봐 주지 않는다.

아무래도 어제 파와리스 폭포에 갈 때 로코를 공방에 두고 갔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암호문 하나만 믿고 떠난 낯선 곳인걸.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로코를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무지갯빛 돌도 찾았고 무사히 돌아왔으니 다행이긴 한데.

그동안 오냐오냐했더니 너무 건방져졌어. 주인의 마음도 모르고 말이야. 매번 ‘피이이’ 하고 귀엽게 운다고 내가 봐줄 것 같아?

나는 이참에 이 건방진 박쥐에게 서열 정리를 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로코, 자, 언니랑 사냥 놀이 하자. 새 장난감이야, 잡아 봐.”

“피잇, 피…….”

로코는 로디의 비밀 상점에서 주문한 새 장난감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대신 장난감의 포장지 안에 들어가 날개를 파닥거릴 뿐이었다.

얘가 좋게 좋게 대해 주니까 빠져 가지고. 아무래도 더 냉정하게 자신의 위치를 깨닫게 해 주어야 할 거 같다.

나는 로코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싸늘하게 일갈했다.

“로코, 언니가 로코 놓고 가서 많이 화났어? 일부러 그러려던 거 아니야. 나도 당연히 로코 데려가고 싶지.”

“피이, 피이잇!”

“그치만 로코는 이렇게 작고 귀여운데,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해? 다치기라도 하면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어.”

“피이이, 피, 피잇! 피이…….”

로코가 길게 울면서 슬쩍 내 쪽을 봤다. 반응이 있다. 나는 그 틈에 간식을 내밀면서 냉정한 말투로 꾸짖었다.

“언니가 로코 주려고 가져왔는데 안 먹을 거야?”

“피, 피이…….”

“그래, 그래. 착하지. 얼른 먹어.”

드디어 로코가 간식을 받아먹었다. 나는 계속해서 로코의 입에 간식을 넣어 주었다.

“전부터 궁금했는데.”

“응?”

내가 냉정하게 로코에게 서열의 무서움을 알려 주는 모습을 보고, 옆에서 세이르가 말을 걸었다.

입가가 묘한 각도로 기운 것이, 웃음을 참는 모습이다. 무슨 염세주의 꼬맹이가 저렇게 웃음이 헤프담.

“안젤리카는 저 박쥐 말을 알아듣는 거야? 설마, 박쥐 말도 할 줄 알아?”

“아하하, 세이르도 참. 내가 아무리 똑똑해도 그렇지. 박쥐 말을 어떻게 알아들어?”

“그럼 방금은 뭔데?”

내가 로코에게 서열의 무서움을 가르치는 모습이 꼭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 모양이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냥 느낌?”

“피이잇! 피이이이!”

“방금은 로코가 뭐라고 말한 건데? 네 느낌에 따르면.”

“내가 너무너무 좋고 똑똑하고 최고래. 어휴, 로코도 참.”

“피이이! 피이…… 피잇! 피이이이!”

갑자기 로코가 날개를 맹렬하게 파닥거리면서 고개를 가로로 젓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흡족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봐, 로코도 내 말이 맞다고 하잖아.”

세이르는 로코의 동작을 다시 한번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아닌 것 같은데……?”

“맞으니까 하던 일이나 마저 하세요, 부하 1호 씨.”

“네, 네.”

그래서 세이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면…….

어제 손에 넣은 무지갯빛 돌을 성검으로 잘게 부수고 있었다.

샤아악- 샤아아악-.

세이르가 쥔 성검의 날이 무지갯빛 돌의 표면을 스칠 때마다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어찌나 잘게 부쉈는지, 곱게 갈린 돌가루가 반짝반짝 영롱한 빛을 발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밝히는데, 나라고 세이르에게 일을 시켜 놓고 놀고 싶어서 노는 것은 아니었다. 원래는 내가 직접 쇠공이로 돌을 잘게 빻을 작정이었다.

‘경험치도 벌 겸해서 말이지.’

그런데 무슨 수를 써도 무지갯빛 돌이 부서지지 않았다.

쇠공이가 문제인가 해서 공구도 바꿔 보았다. 그러나 나이프, 정, 망치 무엇을 써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생각했다.

‘재료 다 구해 놓고 근력이 딸려서 실패하는 건가?’

암호를 못 풀어서 실패하면 내가 못난 탓이니 억울하지라도 않지. 힘이 부족해서라니!

‘역시 머리만으로는 소용이 없어. 힘을 길러야 해……!’

내가 이렇게 급발진하기 직전, 세이르가 나섰다.

하지만 근력의 문제는 아니었는지, 세이르도 쇠공이나 정, 망치 따위로 무지갯빛 돌을 부수지는 못했다.

궁여지책으로 S급 성검을 꺼내 써 봤는데, 치즈처럼 부드럽게 갈리는 게 아닌가.

무지갯빛 돌이 S급 성검이 아니면 부서지기 싫으시다는데 내가 뭘 어쩌겠나. 부하 1호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구경하면서 로코 기분이나 풀어 줄 수밖에.

“흐으음…….”

나는 턱을 괴고 잠시 세이르가 돌을 가는 모습을 구경했다.

성검의 긴 칼날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무지갯빛 돌을 깎는 손동작이 섬세하다. 세이르가 검을 쥔 모습을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닌데, 어쩐지 달라진 느낌이다.

“세이르, 혹시 키 컸어?”

“글쎄?”

“맞으면 맞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글쎄?’는 뭐야?”

“키를 재어 보지는 않아서. 요즘 잘 때 다리가 아프긴 하던데.”

“……뭐!”

나는 깜짝 놀라 세이르를 쳐다보았다.

살짝 시선이 더 높아진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세이르, 너는 이제부터 저녁에 후식으로 우유 금지야.”

“뭐? ……하핫, 그래.”

아차, 좀 심했나?

세이르가 후식으로 나오는 우유를 좋아할 수도 있잖아. 안 그래도 여전히 염세주의 꼬맹이인데 먹을 거라도 마음대로 먹어야지.

“크…… 크흠, 취소야. 마셔도 돼. 그치만 딱 한 잔만 마셔야 해.”

“큽……. 그래, 그래.”

“세이르, 왜 웃는 거야?”

“아니야, 안 웃…… 푸흡.”

결국 세이르는 무지갯빛 돌을 다 갈 때까지 키득거렸다.

역시 얘 염세주의 꼬맹이치고는 웃음이 너무 헤픈 거 아냐?

* * *

“이 정도면 됐나? 자, 다 됐어.”

“고마워, 세이르.”

무지갯빛 돌을 다 부쉈으니 남은 과정은 간단했다.

나는 유리그릇에 깨끗한 물을 받은 뒤, 잡화점에서 사 온 힐링 포션 재료를 털어 넣었다.

내 손동작이 퍽 거칠었기 때문인지 세이르가 떨떠름하게 물었다.

“그렇게 막 해도 되는 거야?”

“괜찮아, 괜찮아.”

<마.왕.꾸>에서 힐링 포션 만들기 미니 게임 엄청 많이 해 봤거든.

흔들리는 화면 속의 막대기를 조종해서 초록색 칸에 넣는 미니 게임이다.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화면이 심하게 흔들려서 성공하기 어렵다.

물론 <마.왕.꾸>의 슈퍼 플레이어인 나는 익스트림 나이트메어 모드도 가볍게 성공했…….

“아차, 폭발시킬 뻔했다.”

“……진짜 괜찮은 거 맞아?”

“괜찮아, 괜찮아. 세이르, 나 못 믿어?”

“…….”

“왜 갑자기 아무 말도 안 하는 건데?!”

크흠, 크흠.

잠시 소란이 있었지만 무사히 베이스가 되는 힐링 포션을 완성했다.

마지막으로 세이르가 열심히 간 무지갯빛 돌의 가루를 넣고 잘 저어 주었다.

띠링!

[<정화의 샘물(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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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완성했어!”

“정말? 다 된 거야?”

신기하다는 듯 세이르가 유리그릇 안을 들여다보았다. 빛을 받을 때마다 영롱하게 빛나는 물이 참 아름다웠다.

“우후후……. 드디어…….”

나는 감격에 차 주먹을 꼭 쥐었다.

전생에서 이루지 못한 위업을 이 세계에서 이루었다.

어떤 <마.왕.꾸> 플레이어도 이루지 못한 정화의 샘물 만들기를 성공했는데 기쁠 수밖에!

이것만 있으면 루카를 치료할 수 있다.

나는 상태창의 내용에 따라, 정화의 샘물을 직사광선이 닿지 않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하루 숙성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세이르와 함께 완성된 정화의 샘물을 들고 루카를 찾아갔다.

“안녕, 루카. 잘 있었어?”

루카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가 부루퉁한 표정으로 눈을 피했다. 그리고 불만이 역력한 투로 입을 열었다.

“무, 무슨. 이제 와서 무슨 일이야?”

녀석도 참. 거동도 부자유한 채로 방 안에 혼자 있으려니 불안했나 보구나.

의사가 하루에 한 번씩 진찰하러 오기는 했지만, 아무리 진찰을 받아도 루카의 증상은 심해지기만 했으니 절망적이었겠지.

나 역시 어제오늘은 정화의 샘물을 구하러 돌아다니느라 루카를 보러 올 수 없었다. 나는 상냥하게 루카에게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누나가 안 와서 불안했구나?”

“누, 누가 불안했다고……!”

“미안해. 누나가 어제는 바빴어.”

“잠깐, 대체 누가 누나야?”

“그 대신 루카에게 잘 듣는 약을 가져왔단다.”

흠칫. 방금까지 버럭버럭 소리치던 것도 잊고 루카가 나를 빤히 보았다. 붉은 눈이 혼란스러워 보인다.

나는 주머니에서 정화의 샘물을 담은 병을 꺼내 루카에게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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