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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71)화 (72/133)

71화

얘도 참. 갑자기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당연한 이야기를 물어보네.

“응? 그야 멋지잖아. 이제 흑막의 시대야. 정석적인 주인공 타입보다 흑막 캐릭터가 인기가 많다고.”

“흐음……. 그렇지만 흑막이면, 그냥 음흉한 사람 아닌가?”

“뭐어어어?!”

“피이이?”

충격이다. 어떻게 이렇게 심한 말을 할 수가 있지?!

나는 깜짝 놀라서 세이르에게 흑막의 매력을 열렬하게 설파했다.

“잘 들어, 세이르. 흑막은 먼저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적을 거침없이 해치우는 점이 멋져. 냉정하고 철두철미하지! 그리고, 검은 장막 뒤에서 은밀하게 상황을 조종하는 점도 끝내주지. 이른바 진(眞) 최종 보스! 게임판의 말을 움직이는 자!”

간식을 다 먹고 배가 볼록해진 로코를 해먹 위에 올려 준 다음, 세이르가 다시 물었다.

“즉, 안젤리카는 거침없이 적을 해치우고, 뒤에서 은밀하게 상황을 조종하는…… 그런 사람을 좋아해?”

“뭐, 그런 셈이지?”

“흐으음……. 그래, 그렇구나.”

세이르가 사르르 눈을 접으며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예쁘게 생긴 애가 생글생글 웃으니 꽃이 피듯 싱그럽다. 무슨 결심을 하는 것처럼도 보이는 웃음이었다.

흑막 캐릭터에 대한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는데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재차 물으려는 그때.

똑똑.

마법 도구 공방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안젤리카 님, 들어가도 될까요……?”

로디의 목소리였다.

“안 돼. 여기는 비밀 아지트니까 허락받지 못한 사람은 출입 금지야.”

“돈 되는 이야기도 갖고 왔는데요…….”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들어와.”

달칵. 문이 열리고, 오늘도 기운 없고 피로해 보이는 로디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오랜만입니다……. 여기가 안젤리카 님의 공방이로군요…….”

왕성에 로디가 방문한 것도 꽤 오랜만이다. 어디 보자. 휴양 도시에서 보낸 휴가 이후로 처음인가.

엘나스 호텔에서 머무는 동안 로디는 알렉산드라의 강권으로 하루에 여섯 끼씩 먹어야 했다.

그 밖에도 건강한 생활을 하라는 잔소리를 엄청나게 들은 통에, 눈 밑의 다크서클도 사라지고 기운이 생겼다.

알렉산드라의 관리가 엄청났는지, 말할 때 말줄임표의 빈도가 줄어들 정도였달까.

그러나 지금 나를 찾아온 로디는…….

휴가가 끝나고 아직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기운이 없었다. 눈 밑의 다크서클은 도로 짙어졌고, 표정은 숨 쉬기도 귀찮아 보였다.

‘알렉산드라가 왜 그렇게 잔소리를 했는지 알겠다.’

이렇게 금방 원래대로 돌아오다니. 인간의 관성이란 정말 대단하군.

때마침 간식 시간이었다. 로디가 온 김에 잠시 쉬면서 차와 간식을 먹었다. 나는 내 몫의 찻잔을 전부 비운 다음 운을 뗐다.

“로디, 돈 되는 이야기라는 건 뭐야?”

“아, 그거 말인데요…….”

로디가 자신의 가방 안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더니 내밀었다.

“이건 뭔데?”

“지금 세간의 화제인 마왕 인형 말인데요……. 그거, 왕녀님이 만드셨다고 들었는데…… 맞으신가요?”

“응, 맞아. 내가 만들었어.”

한순간 안경 너머로 로디의 눈이 빛난 것처럼 보였다.

“휴우우, 정말 다행이에요……. 마왕 인형의 제작자를 꼭 찾아야 했는데, 가까운 곳에 있었군요…….”

그렇지 않아도 그 마왕 인형 때문에 마음이 복잡한데 대체 무슨 일일까. 나는 떨떠름하게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아시다시피 왕녀님이 만드신 마왕 인형이 지금 굉장히 화제잖아요……. 똑같은 인형을 사고 싶다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거든요…….”

“뭐?”

“그래서 저희 실로프 상회에서 독점으로 마왕 인형 100개만 매입하고 싶은데요…….”

“뭐…… 뭐어어?!”

마왕 인형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단 말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로디의 용건에 나는 잠시 얼빠진 소리를 냈다.

로디는 내 손에 들린 서류를 가리키며 설명을 이었다.

“방금 드린 서류는 인형 매입 조건을 쓴 것입니다. 굉장히 좋은 조건이라고 자부하는데요…….”

“흐음……. 이만하면 괜찮은 것 같은데?”

옆에서 세이르가 서류를 훑어보고는 한 마디 보탰다.

“피이잇! 피이!”

로코, 너마저!

다들 내가 당연히 제안을 받아들이리라고 여기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해.”

“네에……. 그럼 가계약서에 사인해 주시고, 본 계약서는 며칠 내로……. 네, 네에에?! 안 하신다고요? 왜요?!”

“왜냐니, 하기 싫으니까야. 이유가 필요해?”

“조건에 불만이 있으시다면…… 조율할 수 있어요.”

“아니, 조건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야. 인형 하나에 이만한 금액이면 괜찮지. 하지만 조건이 어떻든 할 생각은 없어.”

“이럴 수가……. 왕녀님이 좋아하실 만한 계약이라고 생각했는데요…….”

로디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다소 철학적인 효과가 붙어 있다고는 하나, 고작 마석 하나를 꿰어 넣었을 뿐인 솜 인형을 비싼 값에 팔 기회는 좀처럼 없을 테니까.

앞으로 할 일이 산더미 같으니 돈은 많이 벌어 둘수록 좋지.

하지만 안 그래도 마왕 인형이 영웅 취급을 받고 있는 지금은 도저히 내키지 않았다.

‘인형을 100개나 더 만들어서 팔면, 인형을 산 사람들이 더욱더 영웅으로 취급할 거 아냐!’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지 않다.

마왕 인형은 아빠를 흑막으로 프로듀스하기 위해 만든 인형이라고! 정작 본 목적은 달성하지 못하고 인기만 생겼다니 통탄할 일이다.

“다시 생각해 보세요……. 왕녀님의 마왕 인형에는 스토리성이 있어요. 잘만 하면, 틸라의 뒤를 잇는 새로운 특산품이 될 수도 있다고요…….”

로디는 기운 없는 표정으로 나를 설득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내 대답은 변하지 않는다.

“뭐라고 말해도 절대 안 할 테니까 포기해.”

“이럴 수가…….”

로디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로코가 날개로 그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드르륵!

나는 로디와 대화를 끝맺으며 짐을 챙긴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딱 출발할 시각이었다.

“안젤리카, 보육원 애들한테 가려고?”

“응.”

나는 생각했다.

세 자매에게 피카레스크물을 영업해 볼까. 흑막 캐릭터의 매력을 설파하면 걔들이 인형 놀이 설정을 바꿀지도 몰라.

“나도 같이 가.”

“피이잇!”

자연스럽게 세이르가 나를 따라 일어섰고, 로코가 내 주머니 안으로 쏙 들어갔다.

“저도 함께 가도 될까요……?”

“상관은 없지만……. 로디는 왜?”

“왕녀님한테 거절당하는 바람에 시간이 남거든요…….”

살짝 미련이 남은 투였다. 그렇게 가엾은 척을 해도 내 생각은 바뀌지 않을 거다.

“또 보육원 쪽에 제가 도움을 드릴 만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고…….”

“그런 이유라면, 좋아.”

저 허술해 보이는 모습 때문에 자주 까먹지만 로디 실로프는 현재 상업 도시 사달멜리크의 암흑가를 이끄는 사람이다.

보육원의 재산을 갈취하려 한 악당들은 하겐티 상회 소속이었다. 그런데 하겐티 상회는 상업 도시 사달멜리크의 자치회에서도, 암흑가에서도 제명된 상태였다. 여러 문제를 일으켜서 그렇게 되었다나.

“철저하게 씨를 말려 버렸어야 하는데…….”

로디가 낮고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맙소사. 방금 로디는 엄청나게 흑막 속성 캐릭터 같았다.

질투 난다. 로디 실로프의 흑막스러움이 질투 난다!

‘후우, 아니야. 비교하지 말자.’

내가 좋아하는 흑막 캐릭터는 로디처럼 ‘선량한 조력자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힘을 숨김.’ 타입이 아니다. 냉정하고 철두철미한 진(眞) 최종 보스 타입이지.

믿음을 가지고 나만의 길을 가는 거야.

‘할 수 있다, 흑막 프로듀스!’

“안젤리카, 왜 갑자기 주먹을 꽉 쥐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야.”

아차, 혼자서 경쟁의식을 불태워 버렸네. 방금 로디의 흑막력이 너무 높아서 그만.

크흠, 흠. 아무튼.

도움을 주겠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다. 나는 세이르와 로코, 로디와 함께 보육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하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육원은 무척 이상한 분위기였다.

* * *

왕성 앞 마을의 외곽 지역. 고적한 분위기의 숲속에 세워진 천사의 숲 보육원.

마족 혼혈인 아이들이 많아 외부인을 경계하던 보육원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더 적절한 표현을 고민해 봤지만 생각나지 않는다. 역시 저건 이상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저건 대체 뭐죠……?”

나와 같은 것을 본 로디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물었다. 그렇게 물어도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그래서 이곳 천사의 숲 보육원이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인가 하면.

먼저, 보육원 앞마당이 무척 북적거렸다. 여러 곳에서 보낸 기부 물품과, 물품을 정리하는 일을 도우러 온 사람들 때문이었다.

강제로 보육원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아이들이 원장 선생님을 껴안고 울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

“안젤리카 님, 안녕!”

“자, 다 됐다. 한 사람당 세 개씩 받아 가렴. 어, 안젤리카 님, 오셨군요.”

보육원 아이들에게 간식을 나눠 주러 온 니키와 케나스 하며.

“어머, 안젤리카 님, 세이르 님, 여기서 뵙네요. 뒤에는…….”

“아하하, 안녕하세요……. 사라 씨.”

“……상인과 함께 오셨군요. 오실 줄 알았다면 저도 안젤리카 님과 함께 올 걸 그랬어요.”

‘흐으음……?’

사라가 로디를 향해 가볍게 눈을 흘긴다.

‘흐으으음……?’

평범한 대화였지만 살짝 분위기가 마음에 걸렸다.

잠들기 직전에 레몬케이크를 먹겠다고 했을 때 빼고는 늘 상냥한 사라가 저런 반응이라니. 살짝 로디를 경계하는 것도 같고.

흐으으음……. 마음에 걸리는데. 뭐, 당장 사정을 알아낼 수는 없으니 일단 넘어가자.

마지막으로 기부 물품을 안으로 옮기는 일을 돕는 트리스탄까지.

‘우리 왕성 사람들 다 여기 와 있었네.’

그건 뭐 그렇다 치고.

문제는 ‘저거’다.

나는 엄청난 존재감을 내뿜는 ‘저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다들, 저거 신경 안 쓰여?”

“응? 저게 왜? 멋지잖아.”

니키가 해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다지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문제의 ‘저것’이 뭐냐면 말인데…….

보육원 앞마당의 한구석, 네모난 단상 위에 마왕 인형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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