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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70)화 (71/133)

70화

샐리가 다시 장부를 들여다보며 이름을 읽었다.

“으움……. 아, 찾았다! 랜디, 삼영영 골드.”

“바보야, 삼백 골드라니까?”

풀썩!

보육원 원장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눈물에 젖은 눈으로 상인 랄프를 노려보았다.

“애들을 입양 보낸다고 데려갔잖아요! 애들을 어떻게 한 거야!”

샐리가 읽은 부분은 악덕 상인들이 보육원의 아이들을 입양 명목으로 팔아 치우고 받은 돈을 기록한 것이었다. 랄프는 뻔뻔하게도 시치미를 뗐다.

“나는 모르는 일이야. 마족 혼혈 따위를 일일이 기억할 것 같아?”

“저 책은 뭔데요!”

“내가 알 바야?”

“이 책, 저기 마차 앞에 떨어져 있던데요? 아저씨 거예요?”

“……! 그, 그건.”

상인 랄프가 장부를 뺏기 위해 가까이 오려 했지만.

“……안젤리카, 그 책 좀 보여 주겠니.”

아빠가 더 빨랐다.

“네, 아빠, 여기요.”

나는 장부를 아빠에게 건넸다.

유치한 연극을 하자니 민망했지만 뭐 어떠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비정해지는 것이 흑막의 외동딸이다.

탁!

빠르게 장부를 다 훑어본 아빠가 소리 나게 책장을 덮었다. 그리고 웃음기라고는 하나 없는 표정으로 상인들을 바라보았다.

피치 못할 버그로 착해졌다고는 하나 역시 최강이자 최악의 흑막(이 될 예정인) 크로셀 데네브. 새파란 눈동자가 아주 날카로웠다.

“처음부터 이런 게 아닐까 했지만.”

“크, 크로셀 님, 그것이…….”

“혓바닥이 길군.”

아빠가 뒤쪽을 향해 가볍게 턱짓했다. 한참 전부터 아빠의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트리스탄 및 왕성 경비병들이 상인들을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상인들도 순순히 잡히려 들지 않았다.

“에이잇! 이렇게 된 이상……!”

갑자기 상인 랄프가 이쪽으로 달려오더니 샐리의 팔을 거세게 잡아당겼다.

“으아앙! 아파!”

“물러나! 가까이 다가오면 이 아이를 찌르겠다!”

“……샐리!”

마거릿과 보육원의 원장이 샐리를 붙잡으려다 흠칫 놀라 뒤로 물러났다.

“우에에엥……. 언니, 무서워. 선생님!”

아니, 아무리 악당이라지만 이렇게까지 악당 같을 수가 있다니. 어디서 삼류 악당의 행동 원리 교육이라도 받고 온 건 아니겠지.

여기에는 아빠도, 왕성 경비병들도, 세이르도 있다. 저들이 아무리 발악한다고 해도 놓칠 리는 없다.

하지만 상인 랄프는 당장에라도 샐리를 해치려는 듯 거칠게 위협했다. 저들을 체포하려다 샐리가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선뜻 상인들을 처리하지 못한 채 긴장감이 고조되는 그때.

신비한 일이 일어났다.

폴짝!

얌전히 바닥에 놓여 있던 마왕 인형이 갑자기 공중으로 뛰어오르더니.

퍽! 퍼억!

상인들을 두들겨 팼다.

“윽! 으아악!”

문자 그대로 솜방망이 주먹인데도 아픈지 상인들이 비명을 질렀다.

“샐리!”

“흑, 우에엥, 언니……!”

겨우 상인의 손에서 벗어난 샐리를 마거릿이 와락 껴안고 뒤로 물러났다.

“으, 으윽……. 저 인형 놈이!”

상인 랄프는 손을 마구 내뻗으며 마왕 인형을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마왕 인형은 조그만 데다 아주 날쌨다. 랄프의 손을 요리조리 피하다가 솜방망이 편치를 날렸다.

‘오, 대단한데.’

퍽! 묵직한 펀치가 상인의 턱을 후려갈겼다.

“으아악! 사, 살려 줘……. 자수할 테니까 제발 저 인형을 멈춰 줘!”

“랄프가, 랄프가 그랬습니다! 장부에 다 나와 있어요. 쿨럭, 쿨럭!”

“네 녀석들! 배신하는 거냐! 크어어억!”

퍽! 퍼억!

이렇게 상인들이 울면서 잘못을 빌게 될 때까지 단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인형의 엄청난 활약에 다른 사람들이 나설 틈이 없었다.

“윽…… 으윽…….”

나는 바닥에 쓰러져 신음만 흘리는 상인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럼 이 삼류 악당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문제인데.

다른 곳도 아니고 아이들이 있는 보육원을 대상으로 나쁜 짓을 하다니, 절대 봐줄 수 없었다. 나는 팔짱을 낀 채 한껏 사악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후후후……. 악당 여러분에게 어떤 처벌을 내려야 좋을까.”

“히이이익!”

<마.왕.꾸> 내의 잔인한 대사들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는데, 아빠가 가만히 나를 불렀다.

“안젤리카.”

“아, 네.”

“이 일은 아빠가 처리할 테니 맡겨 주겠니.”

“…….”

나를 보는 아빠의 눈빛은 온화하다.

여전히 착하고 다정한 아빠가 저놈들을 잘 처리할 수 있을까? 저놈들이 눈물이라도 쥐어 짜내면 착한 아빠의 마음이 흔들리는 거 아닐까?

니키가 틸라 모종 다섯 포기를 훔쳤을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진짜 나쁜 짓을 한 놈들이니 후환이 없도록 확실히 처리해야 한다.

‘역시 내가 아빠 옆에 찰싹 붙어 있어야 해.’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아빠가 부드럽게 웃었다.

“걱정하지 말렴. 저리도 악독한 자들이니 다시 세상 빛을 보지 못하게 될 거다. 다만 우리 천사에게 좋지 않은 광경을 보일까 봐 걱정되는구나.”

“어, 음……. 네.”

단호한 아빠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는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는 경비병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데려가라.”

“넵, 존명!”

“으…… 으아아악!”

“살려 주세요!”

악당들은 경비병들에게 체포되어 끌려갔고, 곧 비명 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되었다.

남은 것은 엄청난 힘으로 악당을 쓰러뜨린 마왕 인형과, 놀란 가슴을 겨우 진정시킨 보육원 사람들뿐.

아빠가 바닥에 놓인 마왕 인형을 집어 들었다. 자신을 닮은 마왕 인형을 보고 잠시 묘한 표정을 짓는다.

“안젤리카가 만든 인형이니?”

“네, 맞아요.”

“역시 우리 천사는 손재주도 뛰어나구나.”

“아하하……. 감사해요.”

바느질은 거의 다 세이르가 했는데 칭찬받으려니 민망하다.

“하지만 인형에 깃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 깃들었구나.”

“깃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요?”

갑자기 불길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꼭 인형 나오는 공포 영화 초반부에 저런 말이 나오던데!

그치만 이 인형, 그냥 아빠의 마력이 담긴 마석을 썼을 뿐인데?

나는 깜짝 놀라 마왕 인형과 아빠를 번갈아 보았는데, 아빠는 그저 빙그레 웃을 따름이었다.

“필시 우리 안젤리카의 손재주가 너무 뛰어났기 때문일 테지.”

그렇게 말한 아빠가 마왕 인형의 머리 부분을 살짝 건드렸다. 마왕 인형의 몸통에 달린 검은 마석이 반짝이더니 인형이 툭 쓰러졌다.

“자, 이제 괜찮단다. 돌려줄 테니 조심해서 갖고 놀렴.”

아빠가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고는 인형을 돌려주었다.

* * *

“하아아.”

“…….”

“휴우우우…….”

“…….”

“흐아아아아아…….”

나는 들으란 듯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폐활량의 한계까지 숨을 들이쉬었을 때, 세이르가 말을 걸었다.

“안젤리카, 졸리면 가서 쉬지 그래?”

“세이르, 이게 졸린 거로 보여? 딱 봐도 깊은 시름에 잠긴 모습이잖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세이르가 눈을 깜빡였다.

“보육원 일은 잘 해결되었잖아. 그런데 왜 그런 표정이야?”

세이르의 말이 맞다.

보육원에 악독한 짓을 한 악당들은 체포되었다. 악당 놈들이 정확히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아빠의 말에 따르면 다시는 햇빛을 볼 일이 없을 거라고 한다.

보육원의 원장과 아이들은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났다. 그뿐만 아니라, 입양이라는 명목으로 강제로 보육원을 떠난 아이들도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시간은 걸렸지만 전원 찾아냈다나.

그 밖에도 원장의 선한 행동과 보육원의 상황이 알려지면서 여러 지원들이 이어졌고…….

퀘스트 클리어 조건인 치안 레벨도 곧 올릴 수 있을 테다.

이렇게 일이 잘 해결되었는데도 내 기분이 저조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마왕 인형 때문이야.”

“아, 그 인형. 그 인형이 왜?”

하겐티 상회의 악당 일당이 체포된 사건은 왕국 전체에 널리 알려졌다.

원체 자그마한 왕국인 데다가, 악당 일당들의 악행에 많은 왕국민들이 분노했기 때문이다. 외진 곳에 있던 보육원에서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을 줄은 몰랐다며 기부 물품을 보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이런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내가 만든 마왕 인형이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마왕 인형은 일단 겉보기에 무척 귀엽다. 껴안기 좋은 앙증맞은 크기에 솜을 빵빵하게 채워 넣어 푹신푹신하고. 거기에 더해서 샐리가 소원을 빌었더니 작은 인형이 악당을 물리쳐 줬다는 드라마틱한 스토리까지.

왕국민들은 마왕 인형에 얽힌 이 스토리에 열광했다. 얼마나 열광했느냐면…….

[<이벤트> 데네브 왕국 ‘왕국민’들이 마왕 인형에 얽힌 스토리에 감동했습니다.

2000 왕국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이런 시스템 알림까지 뜰 정도였다.

뭐, 포인트가 생긴 건 좋지만. 좋긴 한데…….

이 알림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겠는가.

그렇다. 마왕 인형이 완전히 영웅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내 의도와는 완전히 정반대!

그래도 아이들이 인형 놀이를 계속하다 보면 원래 뜻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지만, <데네브 왕국 발전을 위한 제안서~마법 인형 편~>은 원래 장기 프로젝트다. 아직 좌절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나는 사건이 수습된 이후 보육원 아이들을 만나러 갔다가 인형 놀이의 진실을 알고 말았다.

“얘들아, 왜…… 마왕이 성녀랑 결혼하는 거야?”

“마왕이 성녀랑 결혼해서 용사를 낳은 거예요!”

“여기는 신혼집이에요.”

“이제 신혼여행 할 거예요.”

“으응……. 그렇구나…….”

이럴 수가. 굉장히 독특한 인형 놀이 세계관을 가진 아이들이었다. 이래서는 아무리 인형 놀이를 하더라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

이것이 어제 있었던 일이다. 나는 세이르를 붙잡고 이 일을 이야기하면서 한탄을 늘어놓았다.

“아빠를 흑막으로 프로듀스하기 위해 만든 인형인데 정반대의 효과가 나 버렸잖아!”

손바닥 위에 로코를 올리고 간식을 먹이면서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세이르가 물었다.

“전에 흑막 캐릭터를 좋아한다고 했지. 흑막이 왜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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