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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69)화 (70/133)

69화

바닥에 세 명의 성인 남성이 쓰러져 있었다. 입고 있는 옷으로 보아 상인 같았다. 그들은 몸 여기저기가 아픈지 앓는 소리를 냈다.

상인들의 앞에는 보육원 원장 선생님과 세 자매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서 있었다.

분위기만 보아서는 꼭 무슨 습격이라도 있었던 것 같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나는 보육원의 세 자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얘들아, 무슨 일이야?”

아빠와 나를 번갈아 본 샐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외쳤다.

“……왕녀님! 왕녀님이다!”

“거봐, 내가 왕녀님 맞다고 했지!”

“넬리 언니는 바보야. 지금 그게 중요해?”

넬리와 샐리가 내 쪽으로 달려왔다. 둘 다 눈물로 얼굴이 엉망진창이다. 나는 머뭇거리며 서 있는 첫째를 바라보았다. 첫째, 마거릿 역시 눈가에 눈물 자국이 뚜렷했다.

한참 끙끙거리던 상인들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더니 말했다.

“저, 저 미친 인형이 우리를 공격했소!”

“인형?”

그제야 바닥에 서 있는 작은 인형이 눈에 들어왔다. 자매에게 준 인형 세 개 중, 아빠를 본떠 만든 마왕 인형이었다.

“이 인형이 왜? 그냥 평범한 인형이잖아?”

마법이 걸려 있긴 하지만, 그건 아빠를 흑막으로 만들기 위한 것일 뿐. 위험하지는 않을 텐데? 위험한 물건이었으면 애들한테 갖고 놀라고 줄 리가 없잖아.

그때 아빠가 앞으로 나섰다.

“국왕 크로셀 데네브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어 보이는군.”

“오, 오오! 크로셀 님! 저희 이야기를 좀 들어 주십시오.”

상회 사람들은 아빠가 크로셀 데네브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갑자기 불쌍한 척을 하기 시작했다.

“우…… 우리는 여기 보육원을 후원하고 있는 하겐티 상회의 사람들입니다. 저희 상회장이 복지에 관심이 커서 후원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비록 이 보육원에는 마족 혼혈이 있기는 하지만……. 아, 그것이 문제라는 뜻은 아닙니다만.”

“본론만 말하게.”

“아이들을 더 잘 돌보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고 있는데, 가…… 갑자기 저 인형이 마법을 쓰면서 우리를 공격하지 뭡니까!”

“……흐음.”

“좋은 일을 하러 온 건데 어찌나 무섭던지……. 크로셀 님이 와 주셔서 이제 안심입니다.”

표정은 절실하고 태도는 정중하다.

저들의 말만 들어서는, 정말로 좋은 일을 하러 왔다가 봉변을 당한 사람들 같지만.

‘촉이 오는데. 엑스트라 악역이라는 촉이.’

<마.왕.꾸>에서 하겐티 상회는 그리 좋은 곳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저자, 훤히 빈 정수리를 보니 기억난다. 상인 랄프.

인심 좋은 상인을 가장하고 있지만, 힘없는 약자만 골라서 착취하는 악당이었다.

내가 <마.왕.꾸>에서 흑막 플레이를 할 때도 저들은 여러 나쁜 짓을 저질렀었다. 계속 귀찮게 하길래 크로셀 데네브로 그냥 쓸어버렸었지…….

왕국 포인트 파밍 해야 하는데 쟤가 자꾸 나쁜 짓해서 방해하는 바람에 귀찮았단 말야.

잔챙이 악당에게 돈 받고 악행을 못 본 척해 주는 흑막 캐릭터 본 사람? 없을걸!

흑막의 필수 요소는 쩨쩨한 악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잔챙이와 야합이라니 너무나도 멋지지 않잖아. 잔챙이 악당에게 자비가 없어야 진정한 흑막이지.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저 사람들도 버그로 인해 변화했을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지금 우리 아빠가 착하고 다정하듯이, 비슷한 버그가 발생해 하겐티 상회 사람들이 착해졌을 수도 있겠지만.

‘찜찜하단 말이지…….’

“……거짓말이에요!”

보육원 원장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뻔뻔하기도 하지! 지원금을 뺏어 갈 때는 언제고……. 당신들, 이 보육원을 없애려고 하잖아요!”

“그건 오해요! 우리는 저렴한 가격으로 보육원에 세를 주고 있었어요. 이제 이곳을 팔고 아이들을 더 좋은 곳으로 옮기려고 했던 것뿐입니다.”

“어…… 어떻게 그런 말을! 여기서 아이들을 돌보던 사람은 저라고요!”

상인 중 한 명이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여기 서류도 있습니다.”

아빠가 상인에게서 서류를 받았다. 그리고 짧게 말했다.

“서류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군.”

“그건, 그러니까…….”

보육원 원장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옆에서 들여다보니, 확실히 아빠의 말대로 서류는 멀쩡했다. 서류대로라면 하겐티 상회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보육원의 권리를 획득했다. 보육원 원장은 아무런 권리도 없는 상황이었다.

‘어디까지나 서류에 의하면 말이지.’

나는 계속해서 자신들이 얼마나 선량한 후원자인지 주장하는 상인들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샐리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얘, 어떻게 된 일이니?”

“…….”

샐리가 흠칫 놀랐다. 주변 어른들이 언성을 높이니 겁을 먹은 듯했다. 나는 샐리와 눈을 맞추고 살짝 웃었다.

“언니한테만 살짝 말해 줄래?”

“내가, 소원 빌었어요.”

“소원?”

“엄청 강한 마왕님이 나타나서, 나쁜 놈들을 물리쳐 달라고요!”

“그리고?”

“그러니까 마왕 인형이 우리를 지켜 줬어요.”

나는 바닥에 서 있는 마왕 인형을 다시 보았다. 지금은 그냥 평범한 인형처럼 보인단 말이지.

내가 이 인형에 살짝 안전장치를 해 놓기는 했다. 그러나 그 안전장치란, 신체에 위험이 발생했을 때 약간의 방어 효과가 있는 정도였다. 인형이 사람을 패는 마법이 아니었다.

“으음…….”

인형이 진짜 저 상인들을 공격했는지 여부보다 먼저 알아내야 할 사실이 있었다. 나는 옆에 있던 세이르의 옷소매를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세이르, 이쪽으로 와 봐.”

“왜 그래?”

“쉿, 조용히. 조용히 와야 해.”

세이르는 의아해하기는 했지만 순순히 나를 따라왔다.

상인들과 보육원 원장, 아빠가 계속 이야기를 나누는 틈을 타 나는 살그머니 보육원의 뒤쪽으로 갔다.

뒷마당 한쪽에 마차가 세워져 있었다. 상회 사람들이 타고 온 마차가 분명했다.

“안젤리카, 뭘 하려는 거야?”

내가 대뜸 마차에 올라타려 하자 세이르가 깜짝 놀라 물었다.

“보물찾기.”

“뭐?”

“아이참, 세이르, 보물찾기 몰라? 이제부터 보물을 찾을 거야.”

나는 마차 안을 둘러보았다.

얼핏 보기에 마차에는 특별한 부분이 없었다. 적당히 수수하고 편안하여 상인들이 많이 타는 마차였다.

하지만 내 감이 맞다면 분명 여기에 ‘그것’이 있을 텐데.

나는 마차를 샅샅이 살폈다. 그러나 찾는 물건은 금방 나오지 않았다.

‘여기가 아닌가?’

그럴 리가 없다. 하겐티 상회의 악덕 상인 랄프는 한 가지 특이한 습관이 있었다. 바로 어딜 가든 중요한 물건은 챙겨 다니는 것이다. 상회 본부를 한 번 자치회 감사 기구에 털린 적이 있어서 그렇다나.

그러니까 분명 마차에 숨겼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안젤리카, 조심해.”

“응? 으앗!”

나는 생각에 잠겨 있다가 발을 헛디뎌 그만 의자 위로 쓰러졌다.

방금 의자에 앉는 순간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난 것 같았다.

“흐음……?”

손으로 의자의 좌판 부분을 당겨 보자 더욱 확실하게 소리가 들렸다.

약간 틈이 있는 것 같은데? 꼭 한 번 분해했다가 다시 붙여 놓은 것처럼.

“……끄응.”

있는 힘껏 좌판을 잡아당겨 보았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가 계속 낑낑거리고 있자 세이르가 다가왔다.

“잠깐만 비켜 봐.”

세이르가 의자 좌판을 잡아당기자 곧 달칵 소리와 함께 분해되었다. 예상대로 의자 좌판 아래에는 빈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든 손때 묻은 책 한 권.

“찾았다.”

나는 씩 웃으며 마차 의자 아래에 숨겨진 책, 그러니까 상인들의 비밀 장부를 펼쳐 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우와, 이놈들, 흑막보다 악랄하네.”

장부에는 상인들이 어떻게 보육원 원장을 속이고 재산을 갈취하려 했는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저들이 전 소유주에게서 보육원의 권리 증서를 산 것까지는 맞다. 그러나 그 권리 증서 원본에는, 원장의 지분 및 보육원 관리 의무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상인들은 이 서류를 위조했다.

나쁜 놈들임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나쁜 놈들이었을 줄이야.

특히 보육원 아이들을 입양하는 척 데려가 부려 먹은 항목에서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처음부터 그럴 목적으로 보육원을 사들인 거겠지.

아이들이 마족 혼혈이니까. 부당한 일을 당해도 쉽게 도움을 청하지 못할 테니까.

“…….”

하아, 우리 아빠는 아직 조금도 흑막이 되지 못했는데. 어째서 이런 멋지지 않은 악역만 나타나는 걸까. 통탄할 일이다.

“찾던 물건이 그거야?”

“응, 맞아. 이것만 있으면 돼.”

그럼 이제 이 장부를 아빠한테 전해 줘야 할 텐데. 자연스럽게 전해 주려면…….

나는 품에 장부를 껴안고 마차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세 자매 쪽으로 달려가면서 기운차게 외쳤다.

“얘들아, 언니랑 그림 그리기 하자!”

여섯 개의 눈동자가 의문을 머금고 똑바로 나를 보았다. 나는 최대한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어휴, 어른들은 머리 아픈 이야기만 계속 하고. 아빠, 난 얘들이랑 그림 그리고 놀래요. 그래도 되죠?”

아빠는 겁먹은 세 자매와 나를 살펴보더니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안젤리카, 아이들을 부탁하마.”

“네! 얘들아, 이리 와. 언니랑 놀자.”

“와아아, 나도 그림 그릴래!”

샐리가 금방 활짝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샐리! 왕녀님한테 함부로 굴지 말라고 했지!”

“우에엥, 언니는 나한테만 화내!”

“아하하……. 괜찮아. 네가 마거릿이지? 마거릿도 나랑 같이 그림 그리자.”

“그, 저는 ……네.”

마거릿과 넬리가 머뭇거리면서 내 쪽으로 왔다. 나는 그들 앞에서 장부를 활짝 펼쳤다. 당연하지만, 장부에는 글씨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에엥, 여기 글자가 적혀 있어서 그림은 못 그리겠네.”

샐리가 장부를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다! 글자가 많아요. 근데 나 글자 읽을 줄 알아요. 이거, 음, 따, 땅…….”

“그럼 언니랑 글자 읽기 놀이 할까?”

“네! 내가 읽을 거예요. 음, 이거는……. 제레미, 일영영 골드, 유리…… 이영영 골드……. 알렉스는, 이영영 골드.”

“바보야, 이영영 골드가 아니라 이백 골드라고 읽어야지.”

“넬리 언니가 더 바보거든!”

다시 넬리와 샐리가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그때 보육원 원장이 뭔가 깨달은 듯 충격받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설마, 말도 안 돼……. 랜디, 랜디는? 거기 장부에 랜디란 이름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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