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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68)화 (69/133)

68화

“아이참, 내 사악한 계획 못 들었어? 인형에 마법이 걸려 있다니까?”

“그게 진짜라고 해도……. 너희 아빠를 사악하게 만들어서 무슨 이득이 있는데?”

“응? 그건…….”

예기치 못한 버그로 아빠가 착해진 바람에, 다종다양한 사기꾼들이 아빠를 털어먹을 위기에 처했다고 밝히기는 좀 민망하다.

앞으로 이 대륙에서 왕국들 사이의 경쟁이 심해질 테다. 착하기만 해서는 이웃 나라와의 공격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고 말하기도 저어된다.

‘그 이웃 나라가 세이르네 나라잖아…….’

정확히는 다프네 왕비가 요주의 인물.

세이르에게 가능한 한 다프네 왕비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좋지 않은 기억을 건드릴 필요는 없으니까.

결국 내 입에서는 아주 심플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나는 흑막 캐릭터를 좋아하거든!”

“……뭐?”

“와, 저거 봐. 귀엽다, 저거 살까?”

마침 잡화점에 도착했다. 나는 대충 대화를 끝맺은 뒤 잡화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세이르, 뭐해? 얼른 와!”

“……하하, 알았어.”

어딘가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던 세이르가 뒤늦게 걸음을 옮겼다.

* * *

세 자매의 막내, 샐리는 언니들과 함께 앞마당에서 인형 놀이를 하는 중이었다.

“헤헤헤, 예쁘다.”

샐리는 들꽃을 한 송이 꺾어 성녀 인형의 머리에 장식했다. 그리고 구멍 난 손수건 조각을 둘러 베일을 만들고 마왕 인형 옆에 세웠다. 들꽃과 나뭇잎을 깔아 길을 만들고, 조약돌을 주워 하객으로 삼았다.

아무리 봐도 결혼식 준비다.

샐리가 하는 일을 가만히 보던 첫째, 마거릿이 의문을 느끼고 물었다.

“샐리, 마왕이랑 성녀가 결혼하면 용사는 어떡해?”

“용사는 아기야.”

“……응?”

“둘이 결혼해서 아기를 낳는 거야.”

“…….”

샐리는 상당히 독창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이제 보니 옆에서는 둘째, 넬리가 찢어진 옷으로 아기 포대기를 만드는 중이었다.

풀을 짓이긴 뒤 납작한 돌 위에 올려 피로연 음식을 만들었다. 이제 결혼식 준비가 끝났다. 샐리가 마거릿을 향해 손짓하더니 성녀 인형을 내밀었다.

“자, 마거릿 언니가 이거 해.”

“응? 내가?”

“어. 언니 이거 좋아하잖아. 나는 마왕 인형이 좋아.”

마거릿은 어린 두 동생들과 함께 이 보육원에 맡겨졌다. 부모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아마 죽었으리라고 생각한다. 혼혈들의 끝은 대부분 좋지 않았으니까.

어린 나이에 동생들을 돌보다 보니 늘 먼저 양보하는 어른스러운 성격이 되었다. 하지만 마거릿 역시 아직 인형을 좋아하는 어린아이였다. 마거릿은 조심조심 인형을 안아 들었다.

“……예쁘다.”

“헤헤, 그치?”

찢어진 옷 조각을 기워 만든 인형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예쁘다. 한 번도 입 밖에 내 본 적 없지만, 사실 이런 인형이 갖고 싶었다.

샐리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제 결혼식 하자.”

“그럴까?”

“넬리 언니는 아기니까 아직 오면 안 돼.”

“바보야. 결혼식 전에 아기가 생길 수도 있지.”

“……그래? 그럼 그런 걸로 하자.”

언니의 말에 따라 인형 놀이 설정을 수정하려는 그때.

다그닥다그닥! 히히히힝!

보육원 뒷마당 쪽에서 말발굽 소리와 울음소리가 들렸다.

벌컥!

보육원 원장님이 문을 열고 세 자매를 향해 손짓했다.

“얘들아, 얼른 방으로 들어가거라.”

샐리는 정성 들여 준비한 결혼식장을 보고 입술을 삐죽였다.

“에이, 이제 결혼식 할 건데! 조금만 이따가 갈래요.”

그러나 마거릿은 곧장 동생들의 손을 잡아끌었다.

“샐리, 넬리, 안으로 들어가자. 인형 놀이는 내일 다시 하고.”

“웅…….”

“우애앵…….”

마거릿은 칭얼거리는 동생들을 데리고 보육원 2층의 좁은 방으로 돌아간 다음, 문을 잠갔다. 오래지 않아 밖에서 거친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만두세요! 아이들은 아직 어려요. 여길 나가면 어디로 가라는 건가요!”

“그러면 빚을 바로 갚아 주셔야겠소.”

“무슨 말도 안 되는……! 당신들이 멋대로 빚을 지웠잖아요!”

문 앞에 쭈그리고 앉은 마거릿은 숨을 삼켰다.

또 그 사람들이다. 이 보육원의 후원자, 하겐티 상회의 사람들.

“언니…….”

넬리와 샐리가 울먹거렸다. 마거릿은 애써 웃으며 동생들을 달랬다.

“괜찮아. 저 사람들 금방 갈 거야. 잠깐만 이러고 있자.”

원래는 이렇지 않았다.

보육원의 소유주는 몇 년째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외진 곳에 있는 데다가, 후원금도 거의 들어오지 않는 곳이다. 돈이 되지 않으니까 방치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보육원 원장님은 갈 곳 없는 마족 혼혈 아이들을 받아들이고 성심성의껏 보살폈다. 생활은 넉넉하지 않아도 서로가 있어 버틸 수 있었다. 가난해도 보람과 행복이 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왕성에서 보육원 원장을 부르더니 상당한 지원금을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앞으로 매달 운영비를 지원하겠다고도 말했다.

원장은 뛸 듯이 기뻐했다.

늘어난 보육원 운영비로 아이들에게 더 좋은 음식과 옷을 줄 수 있으니까. 거기다 낡아 빠진 건물을 보수하고,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칠 수도 있을 테다.

그런데 갑자기 이 보육원의 소유주가 나타났다.

정확히는, 새 소유주. 하겐티 상회의 상인 랄프라는 자가 전 소유주에게 빚 대신 이 보육원의 권리를 갈취했다.

그동안 보육원을 지키면서 아이들을 돌본 사람은 원장이었다. 그러나 하겐티 상회가 내미는 서류 앞에서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서류가 의심스러웠지만, 상대는 돈깨나 있는 상회다. 누가 마족 혼혈을 돌보는 가난한 고아원 원장의 말을 들어준단 말인가.

하겐티 상회는 그동안의 임대료 명목으로 왕성에서 받은 지원금을 가져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강제로 보육원 아이들을 여러 곳에 입양 보냈다. 명목상 입양일 뿐, 싼값에 부릴 수 있는 인력을 팔아넘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족 혼혈 아이는 다소 거칠게 다루더라도 아무도 막지 않을 테니.

아직 어린 마거릿은 이런 세세한 수법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원장님이 곤란을 겪고 있다는 것만은 알았다.

며칠 전, 하겐티 상회의 사람이 마거릿에게 말을 걸었다.

좋은 입양처가 있다고.

마거릿이 입양을 가면 동생들은 편안히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좋은 입양처라는 건 거짓말이다. 허드렛일을 하는 하녀가 되어 아침부터 밤까지 고된 일을 해야 하겠지.

‘그래도 내가 가면 이 애들은…….’

“언니……?”

마거릿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 잠깐 원장님한테 다녀올게. 넬리, 샐리랑 같이 손 꼭 잡고 있어.”

어린 마음에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것일까. 동생들이 마거릿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언니, 가지 마!”

“……샐리.”

“우에에엥…….”

샐리가 울음을 터뜨렸다.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무섭고 불안했다. 꼭 마거릿 언니가 멀리 떠날 듯한 느낌.

“언니, 어디 가면 싫어, 우엥…….”

“얘들아…….”

어느새 마거릿과 넬리의 눈에서도 눈물이 차올랐다.

쾅! 콰앙!

문 밖에서는 계속 거센 소음이 들렸다. 하겐티 상회에서 온 자들이 원장을 협박하기 위해 집기를 부수는 것이었다.

“흑…….”

샐리는 마왕 인형을 꽉 껴안았다.

분홍빛 머리카락의 언니가 준 마왕 인형이다. 샐리는 이 인형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마왕은 강하니까. 나쁜 놈들을 전부 물리칠 수 있으니까.

우리한테도 강한 마왕님이 있어서 저 사람들을 물리쳐 주면 좋을 텐데.

그러면 원장님도, 마거릿 언니도, 넬리 언니도 힘들어하지 않을 텐데.

눈을 꼭 감고 기도했다.

제발 강한 마왕님이 나타나서 나쁜 놈들을 해치워 주기를.

그리고 마거릿 언니가 아무 데도 가지 않게 해 주기를.

그 순간, 갑자기 인형에서 빛이 났다.

“어……?”

문이 열렸다. 상인 한 명이 다짜고짜 안으로 들어오더니 마거릿을 거칠게 끌어당겼다. 입양처가 정해졌으니 당장 출발하자며 떠들어 댔다.

“언니, 가지 마! 으아앙!”

넬리가 울면서 마거릿을 껴안았다. 상인은 무자비하게 넬리를 밀치고 마거릿을 데려가려 했다.

그때, 샐리의 품에서 마왕 인형이 폴짝 튀어나왔다.

그리고 용맹하게 마거릿 앞을 막아섰다.

* * *

보육원의 아이들에게 인형을 주고 온 다음 날이었다.

나는 점심을 먹고 세이르를 데리고 마을로 나가려던 참이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천사의 숲 보육원’에 대해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어? 아빠!”

“……안젤리카.”

그때, 나는 아빠와 마주쳤다. 어디론가 가는 중이었던 아빠가 나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오늘도 아빠는 잘생기고 아름답고, ……착해 보인다.

그래도 나는 좌절하지 않았다. 기다리다 보면 분명 마법 인형이 효과를 발휘할 테니까.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아차, 미래에 흑막이 된 아빠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아빠에게 물었다.

“어디 가시는 길이에요?”

“아. 전에 그 ‘천사의 숲 보육원’ 있지. 그 보육원에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가 보려던 중이란다.”

“……!”

벌써? 고작 하루 만에 마법 인형의 효과가 나타난 건가?

아니, 말도 안 된다. 내가 인형을 준 세 자매가 하룻밤 사이에 스무 번씩 인형 놀이를 했다고 가정해도 효과가 나타나기에는 이르다.

무엇보다 눈앞의 아빠는 여전히 상냥하고 다정하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한 가지. 보육원의 돈에 손을 댄 자가 나타난 건 아닐까.

나는 옆의 세이르에게 눈짓했다.

“세이르.”

“……알았어. 마음대로 해.”

“아빠, 나도 같이 갈래요!”

나는 세이르를 끌고 아빠의 뒤를 따랐다.

그리하여 도착한 보육원.

보육원 앞마당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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