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보육원 원장은 아니야.’
지원금을 전달할 때 원장이 왕성에 방문했기 때문에 얼굴을 봤다. 기는 약하지만 아이들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아. 그렇다고 내가 그 원장 선생님의 얼굴만 보고 덜컥 믿은 것은 아니고. 상태창이 깨끗했거든.
그러니 우선 보육원에 조용히 접근해서 문제를 찾을 생각이다. 굳이 수수한 옷으로 갈아입은 이유도 보육원을 조사하기 위해서다. 내가 만든 인형도 도움이 되어 주겠지.
갈림길을 지나 얼마쯤 더 가자 ‘천사의 숲 보육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앞문 쪽으로 다가가 문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원장이나 다른 어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안젤리카, 뭘 할 생각이야?”
“여기 볼일이 있어서.”
나는 조심조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보육원의 삭막한 마당 한쪽에서 세 명의 여자아이가 놀고 있었다. 한 명은 전에 여기서 본 샐리라는 아이였다.
아이들은 실밥이 다 터지고 천이 해어진 헝겊 인형을 들고 있었다. 딱 세 명이고 하니 마침 잘됐다. 나는 아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얘들아, 안녕.”
여섯 개의 눈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얼굴이 닮은 것이 자매인 모양이었다. 가장 작은 샐리가 다섯 살쯤 되어 보였다.
“언니는 누구예요?”
샐리가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바보야, 보면 몰라? 왕녀님이잖아.”
“언니가 더 바보야. 왕녀님이 여길 왜 와? 요정님이야!”
“얘들아, 그만.”
금방 티격태격하기 시작하는 동생들을 능숙하게 떼어 놓은 첫째가 내게 말했다.
“원장님은 지금 없어요. 볼일이 있으시면 불러올게요.”
일고여덟 살쯤 될까. 아직 어린데 경계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내가 누구든 간에 빨리 떠나길 바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아이가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있었다.
살짝 잿빛이 도는 피부에 붉은 눈동자, 삐죽 솟은 어금니……. 바로 알았다.
‘역시. 이 애들 마족의 피가 섞여 있구나.’
<두근두근 마법 왕국 꾸미기> 게임 본편이 시작되기 약 천 년 전, 인간들 사이에 섞여 살았던 마족.
지금은 모두 마계로 돌아갔지만, 후손들은 이 땅에 그대로 남았다. 그들은 어느 왕국에도 정착하지 않고 떠도는 유랑 민족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모든 것을 풍화시킨다. 기나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혈족의 수는 줄어들었고 유랑의 전통도 쇠락했다. 인간들은 마족 혼혈을 경원시해서 정착하기도 쉽지 않았다. 현재는 극소수밖에 남아 있지 않다.
……라고, <마.왕.꾸>의 설정집에 적혀 있었다.
내 생각에는, 그래 봤자 마법적 힘이 횡행하는 얼렁뚱땅 판타지 세계인데 혼혈 정도가 뭐 어떻다고 박대하나 싶긴 했다.
거기다, 천 년이나 흘렀으면 마족의 피도 꽤 희석된 다음 아닌가?
여담으로, 혼혈이 아닌 진짜 마족이 대륙에 남아 있느냐 없느냐로 <마.왕.꾸> 유저 커뮤니티에서 꽤 갑론을박이 있었다.
‘마족의 영혼은 어딘가에 봉인되어 있다. 그 영혼을 찾아서 캐릭터에게 이식하면 엄청나게 강해진다.’
새벽마다 올라오던 이런 뜬금없는 내용의 게시 글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 마족의 영혼을 찾지 못해서 거의 헛소문 취급이었다.
나는 그 게시 글을 믿지 않았다. 김×× 그 인간이 마족의 영혼 이식 같은 복잡한 시스템을 구현할 리 없잖아.
F급 모험가를 레벨 99까지 올리면 흑막 엔딩을 볼 수 있다, 뭐 그런 종류의 헛소문이었겠지.
그 헛소문을 믿고 F급 모험가 브레드 따위를 열심히 키운 기억을 떠올리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무튼. 이 보육원이 이토록 외진 곳에 있는 이유도 알 만했다. 마족 혼혈이라고 경원시당하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겠지.
“저기……?”
첫째가 조심스럽게 나를 불렀다. 아차. 생각에 너무 빠져 있었다.
이 애들의 경계심을 자극할 생각은 없다. 나는 그냥 빨리 용건을 끝마치고 돌아가기로 했다.
“너희, 이거 받아.”
나는 오늘 만든 세 개의 마법 인형을 아이들에게 내밀었다.
“네? 이건…….”
첫째가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른스러운 성격 같았지만 한참 인형을 좋아할 나이다. 첫째는 인형을 빤히 바라보면서도 선뜻 받지 않았다.
“와아, 인형이다! 진짜 귀여워!”
샐리가 인형에 손을 뻗으며 환성을 내질렀다. 그러나 첫째가 샐리의 손을 확 붙잡으며 거칠게 말했다.
“샐리! 함부로 이런 거 받지 말라고 했지!”
“으, 응……. 훌쩍.”
이런, 참 야무진 아이들이구나. 그럼 별수 없지.
나는 인형을 손에 들고 흔들면서 들으란 듯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제 어른이니까 이런 거 안 갖고 노는데 어떡하지? 쓸모없어졌으니 이제 인형을 버려야겠네?”
“……!”
아이들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멀쩡한 인형을 버린다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갈등이 얼굴에 다 드러난다.
그러나 여전히 인형을 달라고 손을 내밀지는 않는다.
나는 인형을 버리는 척 구석에 내려놓으려고 했지만.
“언니, 저 언니가 인형 버리면 내가 주워 올게!”
“샐리! 남의 물건 줍는 거 아니라고 했지!”
“우, 우애애앵! 언니는 나만 혼내!”
“흑……. 우에엥…….”
이런…….
막내가 울기 시작했다. 막내가 우니 둘째도 따라 운다. 첫째는 당황하며 동생 둘을 달랜다. 도저히 인형을 버리는 척 두고 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때 옆에서 보다 못한 세이르가 끼어들었다. 샐리와 눈을 맞추고 차분한 투로 말을 건다.
“받아도 돼. 이 언니가 너희한테 인형을 선물하고 싶다고 하네.”
“지…… 진짜?”
“응, 진짜.”
세이르는 아예 내 손에서 인형을 뺏어서 샐리에게 건네주었다.
“자.”
“와아아! 고마워요, 언니.”
샐리는 울던 것도 잊고 활짝 웃었다. 세이르는 나머지 두 개의 인형도 첫째와 둘째에게 나눠 주었다.
“우와, 인형이다!”
“……고맙습니다.”
휴, 겨우 아이들에게 인형을 줄 수 있었다. 인형 나눠 주기가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를 더했다.
“크흠, 흠. 이왕 주는 거니까 많이 갖고 놀아.”
“네, 헤헤.”
“언니, 안녕!”
“……안녕히 가세요.”
우리는 세 자매에게 손을 흔든 뒤 보육원을 떠났다.
돌아가는 길. 시간이 남았으니 잡화점이라도 들렀다 갈까 고민하는데, 세이르가 나를 불렀다.
“안젤리카.”
“응?”
“왜 인형을 저 아이들한테 준 거야?”
세이르는 어딘가 복잡한 표정이었다. 내가 곧바로 대답하지 않자 다시 묻는다.
“숨어서 사는 아이들이라 불쌍해 보여서?”
“……으음.”
첫 번째 이유는 물론 아이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였다.
앞으로 보육원에 조심스레 접근하면서, 어디서 지원금이 사라졌는지 찾을 생각이다. 그러니 아이들의 경계를 풀어 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보육원의 지원금 문제에 대해서 세이르에게 말하기는 망설여졌다. 세이르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닌데, 조금 더 확실한 정황을 파악한 뒤 말하고 싶었다.
대신 두 번째 이유, 그러니까 <데네브 왕국 발전을 위한 제안서~마법 인형 편~>이라면 답해 주지 못할 것도 없지.
“모사물은 원본을 드러낸다. 그리고 모사물은 원본에 영향을 끼친다. 이것이 저 인형에 걸린 마법의 법칙이야.”
“……응?”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세이르가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나는 곧장 왕성으로 가는 대신 잡화점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설명을 덧붙였다.
“인형 놀이는 하나의 세계이자 이야기야. 아이들은 인형 놀이를 통해 이상적인 세계와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
그리고 아이들이 만들어 낸 세계, 즉 인형 놀이는 실제 세계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렇듯 마법 인형은 간단한 제작법에 비해 상당히 뜬금없는 효력을 갖고 있었다.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마.왕.꾸> 제작자 김××가 철학에 심취해서 만들어 낸 아이템이라는 추측이 정설이었다.
‘시뮬라르크와 시뮬라시옹……이었던가. 으으음……. 모르겠다. 김×× 또 이상한 소리 한다고 읽다 말았더니.’
회사가 망하기 며칠 전이었던가. 갑자기 이상한 공지 글과 함께 게임에 업데이트된 추가 아이템이 마법 인형이다.
‘회사가 망할 판이 되니까 철학에 관심이 생겼나……?’
어쨌건 <마.왕.꾸>를 만든 회사는 망했고, 나는 <마.왕.꾸>의 세계에 들어와 버렸다. 그러니 이제 와서 김××에게 왜 마법 인형이란 뜬금없는 아이템을 추가했는지 물어볼 수도 없다.
어차피 지나간 일. 중요한 것은 마법 인형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나는 뒤로 돌아 세이르를 마주 본 채 뒷걸음질로 걸으면서 물었다.
“아이들의 인형 놀이 속에서 마왕 인형의 역할이 뭐라고 생각해?”
“안젤리카, 앞을 보고 걸어. 뭐……. 보통은 악역이겠지.”
“그래, 바로 그거야.”
(바느질은 거의 다 세이르가 했지만 아무튼) 내가 만든 마법 인형은 본체를 모사하는 복제품. 그중에서도 아빠의 마력이 담긴 마석을 사용한 마왕 인형에는 아빠의 힘 0.0001% 정도는 담겨 있단 말이지.
그리고 마왕, 성녀, 용사 인형이 있으면 보통 마왕이 악역이다.
아이들은 인형 놀이를 하면서 마왕 인형을 악역으로 취급하겠지. 이로 인해 발생하는 네거티브 한 마법의 힘이 본체, 즉 아빠에게 영향을 끼친다. 인형의 영향으로 무의식에서부터 조금씩 악역다워지는 거다.
이 계획은 하루 이틀로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어디 보자……. 하루에 세 번 인형 놀이를 한다고 가정했을 때, 세 달은 지나야 유의미한 효과가 있겠네.’
상당한 장기전.
그러나 아빠를 흑막으로 프로듀스하기 위해서라면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 인형에는 사실 안전장치가 있거든. 만약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생기면 인형이 도움이 될 거야.’
내 설명을 다 듣고도 세이르는 엉뚱한 소리를 했다.
“그냥 애들한테 인형을 주고 싶었던 거 아냐? 안젤리카, 전에도 저 보육원을 신경 썼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