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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65)화 (66/133)

65화

‘으음, 아까 거기서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으로 꺾었어야 하나 봐.’

항상 그 갈림길이 헷갈린단 말이지.

오른쪽으로 꺾으면 고대 던전이 아니라 ‘천사의 숲 보육원’이라는 곳이 나왔다.

‘흠,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보육원을 잠깐만 보고 갈까?’

다음 시나리오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데네브 왕국의 평가를 D로 올려야 한다.

[※ 원 포인트 레슨 : 왕국 종합 평가 ‘그럭저럭 먹고살 만한 왕국(D)’ 달성 조건

(1) 자금을 누적 5만 골드 이상 획득하기 (달성)

(2) C급 이상의 생산 시설을 2개 이상 건설하기 (달성)

(3) 왕국의 기술 레벨을 2로 만들기 (미달성)

(4) 왕국의 치안 레벨을 2로 만들기 (미달성)]

이 중에서 가장 까다로운 항목이 4번, 치안 레벨을 2로 만들기다.

이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 난 얼마 전에 아빠에게 말해 ‘천사의 숲 보육원’에 상당한 지원금을 보냈다.

“보육원에 지원금을 보내자고? 정말 좋은 생각이구나.”

“그렇죠? 거기, 구석에 있어서 외부에서 기부금도 잘 안 들어오는 모양이더라고요.”

“우리 천사는 착하기도 하지. 그럼 그렇게 하자꾸나. 바로 결재를…….”

“아…… 아니요, 아빠! 그 전에, 제 말을 따라해 주세요!”

“응?”

“이 데네브 왕국의 밑거름이 될 아이들이군. 크크큭……. 돈의 맛이 무엇인지 알려 주지.”

“이 데네브 왕국의 밑거름이……. 안젤리카, 지원금을 보낸다는 사실은 똑같은데 꼭 이렇게 말해야 하니?”

“기분 문제예요!”

그냥 지원금을 보내면 착한 사람 같잖아!

아무튼 휴가를 다녀온 직후에 상당한 지원금을 보냈으니 지금쯤 여유로워졌을 테다. 어떤 분위기인지 살짝만 구경하고 가자. 나는 ‘천사의 숲 보육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보육원은 이름에 걸맞게 무성한 수풀에 감싸여 있었다.

정성 들여 관리했지만 낡은 티를 감출 수 없는 작은 건물이 있었다. 칠이 다 벗겨진 외벽은 금이 가 있었으며, 지붕은 바람이 불 때마다 금방 날아갈 듯 삐걱거렸다.

‘으, 음……?’

겉으로 봐서는 전혀 돈 냄새가 안 나는데? 거의 무너지기 직전이잖아?

아, 아니다. 진정하자.

돈이 생겼다고 대뜸 건물부터 보수하는 쪽이 문제지. 보육원 아이들에게 음식과 옷을 사 주고 교육비를 대느라 건물까지는 손보지 못했나 봐.

‘그러면 애들이 잘 먹고 잘 입고 있는지만 보고 가야겠다.’

“흠, 흐음, 흐흠…….”

그때 보육원 앞마당 쪽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앞마당에는 혼자 소꿉놀이를 하는 어린 소녀가 한 명 있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돌 조각으로 풀을 짓이기고, 흙을 동그랗게 빚는다.

‘이상해. 옷이 낡았어.’

아이는 구멍이 숭숭 난 다 해어진 옷을 입고 있었다. 제대로 씻지 못해 지저분하다. 얼핏 보기에도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한 것 같았다.

‘어떻게 된 거지? 지원금은 어딜 가고?’

바스락.

아차. 아이를 자세히 살피려고 몸을 내밀다가 마른 나뭇가지를 밟는 바람에 소리가 났다. 아이가 소꿉놀이를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와서는 외쳤다.

“어, 요정님이다!”

“…….”

“요정님이야. 요정님이 왔어!”

나는 숨을 죽이고 그늘 아래로 몸을 숨겼다.

아이를 놀라게 하고 싶지 않단 이유도 있었고, 보육원의 상황도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거기다 ‘요정님’을 찾는 아이 앞에 대뜸 고개를 내밀기는 좀 민망하다.

그러니까 빨리 돌아가렴, 아가야…….

“으응? 분명 여기 요정님이 있는 거 같았는데?”

하지만 아이는 끈질겼다. 내가 숨은 곳 근처를 계속 배회하며 요정의 흔적을 찾았다.

어쩔 수 없다. 에잇, 이거나 받아라.

나는 품에 껴안고 있던 꾸러미에서 왕국 방문 기념품(틸라 모양 열쇠고리다)를 꺼내 멀리 던졌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탁, 하는 소리가 났고, 아이가 소리가 난 쪽으로 달려갔다.

“우와, 요정님의 선물이야. 요정님이 줬어.”

그때, 주택 문이 열리고 작은 소녀 한 명이 밖으로 나왔다. 소꿉놀이를 하던 아이보다는 크지만 역시나 어린 나이였다. 그 소녀 역시 무척 낡은 옷을 입고 있었다.

“샐리! 안으로 들어오렴.”

“언니, 방금 요정님이 이거 줬어.”

“샐리! 밖에서 아무거나 줍지 말라고 했지!”

“우에엥, 언니는 매번 나한테만 화내!”

“그런 거 아니야. 이리 와. 뚝, 해야지.”

아이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문이 닫혔다. 그제야 숨을 편히 내쉴 수 있었다.

“휴우…….”

그때였다.

“안젤리카.”

“으, 으, 으악!”

“왜 그렇게 놀라?”

세이르였다. 대체 언제 온 거지. 세이르가 나를 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세이르, 왜 여기 있어? 물건 배달은?”

“다 끝냈는데?”

“벌써?!”

세이르 뮨 엘레인, 정말 방심할 수 없는 인재였다.

“안젤리카가 계속 안 오길래 찾으러 왔어. 무슨 일 있어? 저기는?”

나는 황급히 세이르의 손을 잡아끌며 걷기 시작했다.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길을 잘못 들었어. 이제 배고프다. 얼른 이거 배달하고 돌아가자.”

일단, 어떻게 된 일인지 좀 알아봐야겠다.

* * *

안젤리카가 시키는 여러 가지 일들을 다 끝내고 나니 어느덧 저녁 시간이었다. 팬케이크만 먹었더니 배가 고프다며, 안젤리카가 그만 돌아가자고 말했다.

안젤리카는 세이르보다 두어 걸음 앞에서 걷다가 고개를 돌리고 말을 걸었다.

“세이르, 오늘 재미있었지?”

“……응.”

진심이었는데, 안젤리카는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듯 눈썹을 찌푸렸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다른 말을 했다.

“왕성 고용인들, 다들 좋은 사람이야. 뭐 필요한 거 있으면 꼭 말하고 그래.”

“응, 알았어.”

안젤리카가 왜 온종일 여기저기 끌고 다니며 시답잖은 일을 시켰는지 어렴풋이 감이 왔다. 아마 왕성의 다른 사람들과 가까워지기를 바랐겠지.

다만, 이 정 많고 오지랖 넓은 애는 그렇다 치고, 왕성의 다른 사람들이 세이르를 마음에 들어 할 이유는 없다.

세이르는 어디까지나 안젤리카의 억지에 가까운 배려 덕분에 이곳에 있으니까.

그런데 검 관리법을 알려 주겠다는 경비병이며, 식사를 적게 하겠다고 하자 쓰러질 기미였던 요리사, 지나치게 좋은 방을 준비해 준 시녀…….

그리고 지금 그의 앞에서 걷고 있는 소녀까지.

심한 취급을 받는 것은 익숙하지만, 배려를 받으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자신 따위 때문에 귀찮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차피 나는…….’

그래서 무작정 피해 다녔는데, 안젤리카는 그 점이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옷 속에 깃털이라도 집어넣은 것처럼 가슴께가 간지러웠다. 거북했지만 결코 불쾌한 거북함은 아니었다.

노을에 분홍빛 머리카락이 붉게 물들었다.

왕성까지 돌아가는 짧은 시간 동안, 세이르는 바람에 흔들리는 분홍빛 머리카락을 계속 바라보았다.

* * *

며칠 뒤.

나는 마법 도구 공방의 첫 번째 아이템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슬슬 아이템 만들기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지난번에 들른 ‘천사의 숲’ 보육원의 사정을 살피는 데도 이 아이템이 도움을 줄 테다.

또 하나, 겸사겸사 아빠를 흑막으로 프로듀스할 새로운 아이디어도 실천할 생각이다.

지금 만들 수 있는 아이템 중, 아빠를 흑막으로 프로듀스하는 데 도움이 될 아이템이라면 당연히 ‘이거’지.

나는 상태창에 레시피를 띄워 놓고, 작업대 위에 놓인 재료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어디 보자, 재료는 다 있고……. 먼저 종이에 도안을 그려야겠다.”

작업대의 서랍에서 새하얀 종이를 한 장 꺼낸 뒤 펜을 들었다. 그리고 상태창을 보며 슥슥 도안을 그리던 참이었다.

달칵.

공방의 문이 열리고 세이르가 들어왔다. 세이르는 내가 느긋하게 도안을 그리는 모습을 보며 말을 걸었다.

“안젤리카, 오늘은 시킬 일 없어?”

“응, 없어.”

나는 사흘 동안 세이르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일일 퀘스트를 했다. 오늘도 일일 퀘스트가 갱신되었지만, 나는 세이르와 함께 일일 퀘스트 하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이르 뮨 엘레인의 상태 이상 : 염세주의(Lv.73)]

세이르의 염세주의 레벨이 그다지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슨 반려 상태 이상이야? 평생 염세주의와 함께할 생각?

사흘 동안 열심히 여기저기 끌고 다녔는데, 이렇게나 효과가 없을 줄이야.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 것이 아니라, 건강한 몸에 끈질긴 염세주의가 깃들었구나.

이래서는 효율이 너무 나쁘다. 다른 좋은 방법이 생각날 때까지 세이르의 염세주의 낮추기는 보류다. 세이르가 그사이 왕성 사람들하고 나름대로 친해지기도 했고.

“오늘은 할 일 없으니까 가도 돼. 필요한 거 있으면 사라에게 얘기하고.”

“……그래.”

할 일이 없다고 했는데도 세이르는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을 지켜보더니 불쑥 입을 열었다.

“그건 뭐야?”

“인형을 만들려고.”

“인형? 네가 가지고 놀려고?”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한담. 나는 얼른 세이르의 오해를 정정해 주었다.

“아이참, 나는 인형 같은 건 졸업한 지 오래지!”

“……그래?”

별로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세이르가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내가 공방의 기념비적인 첫 번째 아이템으로 인형을 만들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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