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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62)화 (63/133)

62화

그럼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세이르, 너는 이제부터 부하 1호로서 내 일을 도와줘야겠어.”

“그래.”

세이르는 무슨 일인지 들어 보지도 않고 대뜸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아? 힘든 일 엄청 시킬 건데!”

“괜찮아.”

“좋아, 그럼 첫 번째 임무는…….”

똑똑.

그때 마침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라였다.

“안젤리카 님, 아까 말씀하신 거 가져왔어요.”

“응, 고마워, 사라.”

“어머, 여기 아주 멋진 장소가 되었군요. 저도 구경해 봐도 될까요?”

“비밀 아지트니까 사라는 들어오면 안 돼!”

“후후후, 알겠어요. 친구분과 재미있는 놀이를 하시고 계시군요.”

달칵, 문이 닫혔다.

나는 사라에게 받은 쟁반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쟁반 위에는 구운 틸라타르트와 틸라마들렌, 두 가지 디저트가 있었다.

“첫 번째 임무는, 이 두 가지 디저트를 먹고 어느 쪽이 더 맛있는지 평가하는 거야.”

“……뭐?”

“설마 싫다는 건 아니겠지?”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시식은 아주 중요한 일이야. 이 디저트를 전부 먹고, 뭐가 더 맛있었는지 말해 주지 않으면 심약한 케나스가 충격받을걸.”

“하아, 알았어, 먹을게. 먹으면 될 거 아냐.”

내 차가운 협박에 세이르가 마지못해 디저트를 손에 들었다.

“……음.”

마들렌을 한 입 베어 무는 표정이 부드럽다. 아닌 척해도 맛있는 모양이다. 나는 그가 디저트를 다 먹은 뒤 물었다.

“어느 쪽이 더 맛있어?”

“둘 다 맛있는데.”

“아이참, 그건 냉정한 평가가 아니잖아. 하나만.”

둘 중 더 맛있는 쪽을 다음 주부터 고대 던전 앞에서 판매할 예정이다. 신메뉴가 무엇이 될지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라고 말하자, 세이르는 어이없어하며 이렇게 물었다.

“그렇게 중요한 선택을, 오늘 이곳에 온…… 그것도 인질인 나한테 맡긴다고?”

내 참, 무슨 착각을 하는 거람. 나는 친절하게 그의 오해를 정정해 주었다.

“아니? 그럴 리가. 세이르 한 사람의 의견을 어떻게 전적으로 믿겠어?”

“…….”

“다른 사람들은 이미 투표했거든. 세이르 너만 남았어.”

왕성의 모든 사람들이 투표해서 표가 많이 나온 쪽을 신메뉴로 채택하기로 했다.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휴가 전에 투표를 마친 상태였다.

세이르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답을 내어놓았다.

“……그러면 마들렌으로.”

“흐음, 마들렌 한 표를 더하면……. 75%로 마들렌이 당선인가.”

자신이 선택한 디저트가 뽑혔는데도 개운하지 못한 기색이던 세이르가 불쑥 물었다.

“안젤리카, 나를 왜 여기까지 데려온 거야?”

“당연히 부려 먹기 위해서지. 아까 말했잖아? 그러니까 세 끼 다 먹고, 잠은 여덟 시간 이상 자도록 해.”

“나를 부려 먹는 거랑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당연히 상관있지? 어린이는 잘 먹고 자는 게 일이거든.”

“하아……. 알았어.”

내 말을 이해한 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세이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호오, 몸값 10억 골드를 가져오라고?”

기사는 마른침을 삼켰다. 차렷 자세로 선 몸이 긴장에 덜덜 떨렸다.

기사의 두려움은 당연한 일이다. 앞에 있는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다프네 왕비였으니까.

다프네 왕비.

무능하고 어리석은 왕 대신 리어 왕국을 발전시킨 실권자. 왕자의 친모이면서 강력한 마법사이기도 하다.

다프네 왕비는 유능한 부하에게는 후하고, 반대로 자신의 명령을 제대로 따르지 못한 부하에게는 가차 없었다. 냉혹하고 잔인한 성미의 소유자다.

기사는 다프네 왕비가 노성을 터뜨리며, 무력을 써서라도 세이르를 끌고 오라고 명령하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다프네 왕비는 그저 이렇게 말했을 따름이다.

“그대로 두어라.”

“네, 당장 소공작을 끌고…… 네, 네?”

“두 번 말하게 할 텐가?”

“아, 아닙니다. 명 받잡겠습니다.”

기사가 자신의 뜻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기색이자 다프네 왕비는 픽 웃으며 덧붙였다.

“소공작을 당장 처리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마음대로 하게 두어라.”

“네, 넵.”

“허황된 꿈을 꾸는 것은 소년의 특권이지.”

싸늘한 눈이었다. 기사는 오싹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보다…….”

다프네 왕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세이르 뮨 엘레인, 끝까지 무의미한 저항을 하는구나.’

휴양 도시 엘나스에서 세이르가 죽을 뻔한 일은 사고에 가까웠다.

증오스러운 여자의 증오스러운 자식이다. 그를 그리 쉽게 죽일 생각은 없었다.

다프네 왕비는 다만 세이르에게 자신의 처지를 일깨워 주려던 것뿐이었다.

아무런 힘도 없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죽을 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를.

‘조금 겁만 줄까 했는데.’

마석을 박아 넣은 실험체가 갑자기 폭주해서 몬스터가 된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쓸모없는 것들.

뜻밖의 사건으로 실험체가 둘이나 망실되었으니 수량이 부족하다. 다프네 왕비는 감정이라고는 한 톨도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기사에게 명령했다.

“마석 가공을 다시 해야겠구나. 후보자를 준비시켜라.”

“……!”

기사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다프네 왕비에게는 ‘비밀 군단’이라고 불리는 사병이 있었다. 몸에 ‘씨앗’이라고 불리는 특수한 마석을 집어넣는 실험을 당한 병사들이다.

실험 대상은 주로 다프네 왕비의 심기를 거슬렀거나,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자들.

몸에 ‘씨앗’을 넣으면 강한 힘을 쓸 수 있지만, 자칫하다간 폭주해서 몬스터가 된다.

기사는 온몸이 흉측하게 뒤틀린 몬스터의 시체를 떠올렸다. 다음번에는 자신이 그 꼴이 될 수도 있다. 그러지 않으려면…… 그녀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할 수밖에.

“네, 넵……. 존명!”

기사가 떠나고 문이 닫혔다. 홀로 남은 다프네 왕비가 중얼거렸다.

“안젤리카 데네브라…….”

차가운 눈에 흥미가 비쳤지만 찰나였다.

“……재미있네.”

* * *

세이르가 우리 왕국에 오고 나서 며칠이 흐른 뒤.

나는 정원의 테이블에 앉아 종이를 붙잡고 씨름하는 중이었다.

“으음…….”

게임에서 제일 바쁜 때란 으레 초반을 갓 벗어난 전반부다. 튜토리얼과 초급 퀘스트를 끝마치고 본격적인 플레이가 시작되는 지점이니까.

RPG라면 시작 마을을 벗어나 첫 번째 도시에 입성한 시점이고.

가게 경영 게임이라면 낡은 가게를 고치고 재료를 모아 영업을 시작하는 시점.

그리고 <마.왕.꾸>라면 지금이 딱 그렇다. 얼마 전, E급 그저 그런 왕성을 완성한 E급 소박한 왕국. 할 일은 무궁무진했다.

그런 연유로 아빠는 휴가에서 돌아온 그날부터 집무실행이었고, 나는 나대로 바빴다. 퀘스트 조건 중 하나인 치안 레벨을 올리기 위한 밑준비 때문이었다.

골드와 포인트도 제법 모았고, 염원하던 마법 도구 공방도 세웠다. 이제 다양한 왕국 성장 테크트리를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아빠를 흑막으로 프로듀스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그냥 SSS급 왕국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최강이자 최악의 흑막 크로셀 데네브가 다스리는 SSS급 흑막 왕국이 되어야 한다.

휴가 기간 동안 세이르를 납치하는 일에만 신경 쓰느라 이 중요한 목적을 잠시 뒷전으로 돌리고 있었다.

이제 다시 원래의 목적에 집중해야 할 때이지만.

“으음……. 아니야, 이것도 별로고 이것도…….”

나는 종이에 선을 죽죽 그어 버렸다. 슬럼프인가. 썩 마음에 드는 아이디어가 없었다. 한 방에 아빠를 흑막으로 프로듀스할 수 있는 멋진 방법 없으려나.

‘아, 그거면 어떨까.’

고민 끝에 그럭저럭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나는 새로운 종이를 편 뒤 펜을 손에 들었다.

좋아, 새로운 왕국 발전을 위한 제안서를 써야지.

“피이이, 피잇!”

그때 로코가 하얀 종이 위로 올라와서 날개를 파닥거렸다. 이래서는 글씨를 쓸 수가 없다.

“뭐야, 로코, 심심해? 놀아 줘?”

“피이이…….”

“잠깐 기다려, 이것만 끝내고 놀아 줄 테니까.”

“피이잇, 피이!”

“뭐, 지금 당장? 어휴, 어쩔 수 없지. 알았어.”

정말이지 이 박쥐는 나를 너무 좋아한다니까. 로코와 놀아 주기 위해 테이블에서 일어나는 그때였다.

‘흐음?’

왕성 뒤뜰의 어느 한 곳에 부하 1호, 세이르의 모습이 보였다.

비는 시간에 성검을 휘두르는 연습을 하는 거 같더라니, 그게 지금이었나.

나는 잠시 세이르의 연습을 지켜보았다.

<두근두근 마법 왕국 꾸미기>는 게임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마법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임이다. 그래서 크로셀 데네브를 비롯하여 주요 캐릭터 중 상당수가 마법사 속성이다.

그러니 자연히 나는 검술에 문외한이지만, 그런 내 눈으로 봐도…….

‘잘하는 거 같은데?’

검 끝이 날카롭다.

세이르는 무거운 성검을 나무 막대기처럼 가볍게 휘둘렀다. 공중을 가르는 검의 궤적이 군더더기 없이 미려하다.

S급 성검이라서 그런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빛이 반짝거리는 거 같은데. 설마 검기인가?

‘에이, 말도 안 돼. 무슨 열세 살에 검기야. 아무리 신 포도 캐릭터라도 그건 아니지, 암.’

나는 눈을 비비고 다시 세이르를 쳐다보았다. 반짝거리는 빛은 보이지 않는다. 역시 착시였던 모양이다.

모르긴 몰라도, 세이르가 성장하면 대단한 검사가 될 것 같다. <마.왕.꾸>에서 세이르의 능력치도 뛰어난 편이었으니까.

그때 왕성 경비병 트리스탄이 세이르에게 다가갔다. 트리스탄도 검을 쓰니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려는 것 같았다. 거리가 멀어서 대화를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검과 관련된 단어 몇 개가 들려왔다.

“흐음?”

그런데 분위기가 영 이상하다.

뭐지, 저 어색함은……?

멀리서도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로 경직된 분위기였다. 엄청난 존재감과 친화력을 자랑하는 트리스탄(※분장 후)의 표정이 드물게 뻣뻣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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