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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59)화 (60/133)

59화

어린애 주먹만 한 크기의 돌이 흉측하고 불길한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모든 마석은 색깔과 관계없이 안이 투명하게 비쳐 보인다. 이는 안에 담긴 마나의 성질 때문이다.

그런데 이토록 불투명한 마석이, 그것도 몬스터의 몸 안에 들어 있었다니 기이한 일이었다.

아빠는 사라에게 마석을 건네받아 살펴보고는 말했다.

“흐음……. 변이 마법을 새겨 넣은 것 같군. 이 몬스터들,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아.”

그 말에 주변이 가볍게 술렁거렸다.

불안하겠지. 처음 보는 몬스터가 나타났는데, 그 몬스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졌기까지 하다니.

술렁거림이 조금 잦아든 뒤, 아빠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런 기괴한 마법은 들은 적이 없군. 신관, 이 마석을 분석할 수 있겠나?”

아빠는 맞은편에 서 있던 신관복을 입은 남자에게 마석을 내밀었다.

‘어라? 저 사람은…….’

갈색 피부에 밀짚색 머리카락, 그리고 묘하게 그늘진 분위기를 한 신관이었다.

‘이름이 뭐더라, 이름……. 아, 디드리크!’

전에 내게 유사 타로 카드 점을 봐 준 여명교의 신관이었다. 유사 타로 카드 점만 봐 주는 게 아니라 꽤 유능한 신관이었나 보다.

디드리크도 마석을 살펴보았지만 속 시원한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마법이 효용을 다하면 마력이 변질되게 장치해 놓았군요. 이 상태로 마력의 주인을 알아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고위 마법사일 것 같습니다.”

“고위 마법사라…….”

디드리크가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아, 상당한 고위 마법사요.”

그 말을 들은 순간, 이 자리의 몇몇이 같은 사람의 이름을 떠올린 것이 분명했다.

다프네 왕비. 그녀는 리어 왕국의 실권을 쥐고 있을 정도로 대단한 마법사니까. 그리고 이 대륙에서 유명한 마법사 중, 마석 가공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명백한 증거가 없는 탓에 누구도 섣불리 그 이름을 꺼내지 못했다.

아빠가 디드리크에게 말했다.

“마석에 남은 마력의 원류를 알아낼 수 있겠나?”

“하하……. 솔직히 자신은 없군요. 마석에 정화 작업을 한 뒤 시간을 들여 조사를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부탁하지.”

“그리고 저 몬스터의 시체 역시 신전으로 옮겨서 정화 작업을…….”

그때였다.

갑자기 호텔의 입구로 기사들이 들이닥쳤다. 옷에 그려진 문양으로 보아 세이르의 영지, 그러니까 엘레인 공작령에서 온 기사들로, 전부 여섯 명이었다.

‘한때는 꽤나 명망 높았지만, 전대 기사단장이 죽은 뒤 타락한 기사단이기도 하지.’

호텔의 문지기 두어 명이 기사들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그들은 제지를 무시하고 퍽 거만한 태도로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알렉산드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세이르가 그 낡은 별장에 머물 때도, 목숨의 위기를 겪었을 때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는데. 그런 기사들이 이제 와서 무슨 일일까.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기사들은 다짜고짜 천에 덮인 몬스터의 시체를 들것으로 들어 옮기려 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저희 호텔에 무슨 일이실까요.”

알렉산드라가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날카롭게 말했다. 기사들 중 한 명이 잔뜩 뻐기는 투로 대꾸했다.

“엘레인 공작령의 소공작님이 몬스터에게 습격당했는데, 기사단이 어찌 가만히 있겠소.”

“이제까지는 아무런 연락도 없으시더니.”

“마음대로 떠드시오. 이 시체는 우리가 가져가서 조사하겠소.”

“뭐라고?”

알렉산드라와 기사가 살벌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때 신관 디드리크가 끼어들었다.

“진정하세요. 이 호텔은 여명교 신전에 의해 성지(星地)로 지정되었습니다. 아무리 공작령의 기사들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드나들 수 없습니다.”

“신관, 이걸 보시오.”

기사가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디드리크에게 건넸다.

“이건……?”

“여명교 총본산의 상급 신관에게 승인장을 받았소. 우리가 이 시체를 인수하겠다고.”

디드리크의 낯에 잠시 당황이 스쳤다.

“상급 신관님이 승인하셨다고요? 하아……. 알겠습니다.”

썩 납득하지 못한 기색이었지만 결국 디드리크는 뒤로 물러났다. 디드리크보다 높은 사람의 승인이라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디드리크가 아까까지 들고 있던 잿빛 마석을 아빠에게 넘기고, 아빠가 소매 안으로 감추는 것을 보았다.

제일 중요한 마석은 아빠가 들고 있으니 시체 정도야 가져가도 상관없지만…….

‘찜찜하단 말이지.’

기사단이 이제까지 코빼기도 안 비추다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생각에 잠기던 그때, 기사단 무리의 대표로 보이는 자가 세이르에게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무사하셨군요, 세이르 님! 변고를 겪으셨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했습니다.”

기사는 세이르를 다시 만나 무척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제 안심하셔도 됩니다. 자, 소공작님, 모시겠습니다. 공작령으로 돌아가시죠.”

움찔.

세이르의 어깨가 크게 떨렸다.

‘아…….’

반짝이던 초록빛 눈동자에서 한순간에 빛이 사라졌다.

마치 색으로 가득하던 풍경이 흑백으로 바뀌는 듯한 모습이었다. 장난기 어렸던 표정이 덤덤해졌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기보다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 하는 표정이다.

아주 잠깐 드러났던 세이르의 본 성격이 수면 아래에 잠긴 듯했다. 나와 시답잖은 장난을 친 것이 조금 전인데 마치 다른 사람 같다.

[세이르 뮨 엘레인의 상태 이상 ‘염세주의’의 레벨이 79 → 89로 상승합니다.]

확인 사살을 하듯 시스템이 알림을 띄웠다.

나는 세이르에게 다가가 자그마하게 속삭였다.

“세이르, 저 기사들 다프네 왕비가 보낸 사람들이야?”

“…….”

세이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이르의 표정만 보아도 답은 분명했다.

나는 어렵지 않게 세이르의 감정을 읽어 낼 수 있었다.

체념이다.

여기서 저 기사들에게 저항하더라도 아무 소용 없고, 결국 따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거구나. 아주 오랫동안 학습된 체념이 그의 몸 깊숙한 곳까지 뿌리내렸다.

그때 알렉산드라가 기사들의 앞을 막아섰다.

“이보세요. 엘나스 호텔은 신전에 의해 성지(星地)로서 권한을 보장받아요. 아무리 기사들이라고 해도 호텔의 손님을 멋대로 데려갈 순 없습니다.”

“엘레인 공작령의 기사단이 소공작님을 모셔 가는 게 뭐가 어떻단 게요?”

“본인의 의사가 제일 중요하지 않겠어요?”

호텔이 보장받은 권리가 걸려 있는 만큼 알렉산드라는 물러서지 않았다. 기사는 세이르 쪽을 눈짓하며 말했다.

“소공작님은 보호가 필요한 상황이오. 소공작님, 돌아가십시다.”

세이르는 소란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은지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나를 보았다.

“이 소녀에게 줄 것이 있어. 잠시만 기다려.”

세이르가 자기 말을 들을 기색이자 기사는 순순히 물러났다. 세이르는 나를 데리고 조금 구석진 곳으로 가더니 허리에 찬 성검을 풀었다.

“자, 약속대로 성검을 네게 줄게.”

“…….”

“원래 빌려주기로 했지만 돌려주지 않아도 괜찮아. 돌려받기도 힘들 테고.”

나는 세이르가 내민 성검을 받는 대신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그리고 불쑥 물었다.

“어디로 가는데?”

“엘레인 공작령으로 돌아가야겠지.”

“세이르네 집?”

“……그래.”

그의 말에서는 ‘집’에 대한 어떠한 반가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끔찍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안 받아? 이거 필요하다며.”

“……세이르.”

“이 검이 필요하니까 나를 도운 거라고 했잖아.”

“…….”

다시 원점이다.

처음에 세이르를 만났을 때, 나는 그에게 깊이 관여하지 않고 구하지도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든 성검만 손에 넣으면 되고, 이 성검이 아니면 세이르와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니, <마.왕.꾸>의 전개대로라면 추후에 대립하는 경쟁 국가 소속이니 오히려 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한편으로 그때의 내 생각은 그저 틀리지 않았을 뿐, 옳은 답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대로 세이르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극심한 거부감이 드는 것을 보니.

‘뭐랄까…… 분함? 기껏 살려 놓은 애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짜증?’

이대로 엘레인 공작령으로 돌아가면 세이르는 죽을지도 모른다. 공작령에서 먼 이 휴양 도시에도 암살자가 나타났다. 공작령이라면 더 쉽게 암살자를 보낼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세이르가 죽으면 나도 곤란하다. <마.왕.꾸>에서는 세이르가 죽은 뒤부터 리어 왕국이 공격적으로 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상당히 귀찮다.

그러니까 앞으로 내가 할 일은 세이르를 돕는다기보다는…….

그래, 그거다. 데네브 왕국이 SSS급 흑막 왕국으로 발전하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에 미리 대비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냥 그것뿐이다.

나는 세이르가 내민 성검을 받지 않고 말했다.

“아니, 성검은 줄 필요 없어.”

“그래?”

세이르는 아쉬운 기색으로 성검을 갈무리했다. 나는 세이르에게 얼굴을 바짝 붙이고 나직하게 말했다.

“세이르, 내게 방법이 있어. 그러니까 도와달라고 해.”

“…….”

세이르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그럴 줄 알았다. 이 솔직하지 못한 염세주의 꼬맹이 같으니.

뭐, 상관없다. 어차피 세이르가 뭐라고 말하든 내 맘대로 할 생각이었다.

납치 대상의 말을 듣는 납치범 본 사람? 없을걸!

‘음하하, 정말 멋진 방법이야!’

* * *

세이르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바로 이해할 수 없었다.

안젤리카는 크로셀의 옷소매를 잡아당기더니 귓가에 대고 뭐라고 속닥거렸다. 크로셀은 서늘한 눈빛으로 세이르를 바라보며 그 말을 다 들었다. 그리고 빙그레 웃으며 안젤리카에게 말했다.

“그래, 우리 천사 뜻대로 하렴.”

“네!”

다음으로 안젤리카는 세이르를 보며 뜬금없는 말을 했다.

“세이르, 나 너한테 줄 거 있잖아!”

“응? 그랬었나?”

“아이참, 그거 있잖아, 그거!”

안젤리카는 대충 얼버무리고는 세이르의 손을 잡아끌고 정원 구석으로 데려가려 했다. 기사단의 우두머리는 곧장 안젤리카를 제지했다.

“소공작님을 어디로 데려가는 건가?”

“못 들었어? 세이르한테 줄 게 있다니깐?”

“소공작님, 모시겠습니다.”

“아이참, 꼬맹이들끼리 할 말이 있어. 아저씨는 저리 가 있어.”

“크흠, 적당히 해라.”

기사는 그를 따라오려 했지만 안젤리카의 완강한 반대에 일단 물러났다.

그들의 목적은 그저 세이르를 조용히 데리고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니 어린애에 불과한 안젤리카를 상대로 공연히 소란을 빚기보다 일단 기다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겠지.

안젤리카는 기사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까지 세이르를 데려가더니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상자에 달린 버튼을 누르자, 상자가 커지더니 작은 방이 되었다. 안젤리카는 세이르를 그 방 안에 밀어 넣었다.

장난감 상자를 그대로 키운 듯한 방이었다. 테이블과 의자, 침대까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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