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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58)화 (59/133)

58화

아. 내가 아빠의 딸이니까 말을 조심하려는 걸까.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나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이해해요. 아빠는 착해서, 돈 문제에서는 안심이 안 되니까요.”

“네, 그…… 그렇죠. 착하, 셔서……. 네, 하하…….”

목이 타는지 알렉산드라는 차를 두어 번 들이켜고는 원래의 화제로 돌아왔다.

“왕녀님의 어머니는…… 굉장히 굳센 분이셨어요. 그때의 크로셀 님에게 다정하게 다가가셨죠.”

“…….”

“저는 그분을 가까이서 뵌 적은 거의 없지만,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답니다.”

조곤조곤한 목소리에는 엷은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

“그분은 한동안 데네브 왕국에 머물다가, 다시 떠나셨어요. 그리고 얼마 뒤…….”

알렉산드라는 말끝을 흐렸다. 오랫동안 묻어 둔 해묵은 기억을 떠올리는 듯 잠시 눈가를 찌푸리더니, 뒷말을 이었다.

“……크로셀 님에게 딸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

“미안해요, 왕녀님. 이 이상은 저도 알지 못해요.”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알렉산드라의 말만으로 엄마에 대한 직접적인 힌트를 찾을 수는 없었다. 이름은 무엇인지, 어떤 사람인지, 지금 살아 있는지조차 모른다.

하지만 이 세계에는 분명히 안젤리카의 어머니가 존재했다.

이제 안젤리카의 삶에도 제법 익숙해졌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의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떠올리면 꼭 발밑이 불안정한 기분이 드는 의문들.

안젤리카는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을까. 크로셀 데네브는 어쩌다 혼자 안젤리카를 키우게 되었을까…….

현실이 되어 버린 게임 속에는, 내가 알던 게임의 정보만으로는 다 알 수 없는 맥락들이 있었다.

신기하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함을 아는 것만으로도 그 많은 의문이 해결된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

‘언젠가 엄마를 만날 수도 있을까.’

아주 희박한 가능성이다. 애초에 이유가 있어서 떠났고, 이유가 있어서 아빠가 내게 감추는 걸 테니까.

그래도……. 희박한 가능성이나마 가슴이 뛰었다.

그때였다.

“그, 그럼, 안젤리카 님, 저는 급한 일이 생겨서.”

“네?”

방금까지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있지 않았던가?”

“남은 오후, 좋은 시간 보내시길.”

정말로 급한 일이 생겼는지 내게 짧게 인사하고 알렉산드라가 떠난 순간.

“안젤리카, 여기 있었구나.”

아빠의 목소리였다.

“어, 아빠!”

아빠는 내게 다가오더니 금방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손으로 내 이마의 열을 재었다.

“음……. 열은 많이 내렸구나. 다행이다.”

“그쵸!”

“그래도 아직 조심해야 한다.”

“네!”

나는 아빠와 이야기하면서 문득 며칠 전 있었던 몬스터 사건을 떠올렸다. 정확히는, 그때 아빠가 사용했던 무기, 심연의 주인.

‘심연의 주인’은 크로셀 데네브의 전용 무기로,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엄청 세지.’

전 대륙을 다 뒤져도 손에 넣기 힘든 고성능 마석이 일곱 개나 달렸다. 최고의 마법사인 아빠가 최고의 무기를 들면 그 시너지 효과는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아빠는 몬스터 사건 전까지 한번도 ‘심연의 주인’을 꺼내 들지 않았다. 나는 문득 느낀 의문을 입에 담았다.

“아빠.”

“응?”

“아빠는 왜 평소에 심연의 주인을 안 써요?”

뜻밖의 질문이었는지 아빠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빠가 심연의 주인을 쓰면 엄청 세잖아요. 귀찮게 하는 놈들도 다 해치우고, 돈도 쉽게 벌 수 있을 텐데.”

“하하하…….”

아빠는 나를 번쩍 들어 무릎 위에 앉혔다. 그리고 내 머리카락을 손으로 살살 빗어 끝을 땋으면서 대답했다.

“그 스태프는…… 지나치게 강해. 그리고 지나치게 강한 힘은 끝내 자신을 파괴한단다.”

“파괴한다고요?”

“그래. 조금씩 자신을 잃게 되고…… 후회할 일을 저지르게 된단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힘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심했단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왜냐하면 아빠의 이 말은 꽤나 흑막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흑막’이라고 퉁쳐서 부르고 있지만, 흑막에도 꽤 여러 가지 타입이 있단 말이지.

방금은 ‘강한 힘을 지녔지만 자신의 잘못으로 깊은 후회를 맛본 뒤 힘을 봉인하기로 한 흑막’ 타입이랄까. 내가 지향하는 최강의 흑막 크로셀 데네브와는 다른 타입이지만, 나름 매력이 있지.

아빠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안젤리카, 아빠가 그 힘을 쓰지 않으면 싫니?”

“음……. 그런 건 아니에요.”

물론 아깝지만, 엄청나게 아깝지만!

내가 잘해서 아빠를 흑막으로 프로듀스하기만 하면, 그 힘을 쓰지 않아도 SSS급 흑막 왕국에는 도달할 수 있다. 그러니까 됐지, 뭐.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더 남아 있었다.

“그치만 저번에는요?”

“응?”

“저번에, 그 이상한 몬스터가 나타났을 때. 그때는 아빠가 심연의 주인을 썼잖아요.”

“그때는 우리 안젤리카가 위험했으니까.”

“…….”

“안젤리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아빠는 뭐든지 할 수 있단다.”

다정하면서 진지한 말이었다.

아빠가 이토록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지키겠다고 말하자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잠시 손만 꼼지락거리다가 아빠의 품에서 일어나, 아빠를 찾은 본 목적을 꺼냈다.

“저, 축제 구경 가고 싶어요. 우리 오늘 축제 보러 가요.”

“그러니? 물론 좋단다. 하지만 잠시만 기다려 주겠니.”

“네?”

그때 사라가 아빠를 불렀다.

“크로셀 님,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래, 알겠다.”

아빠는 내게 기다리라고 말한 뒤 호텔의 정원 중앙으로 갔다.

중앙에는 많은 사람들이 원을 그리고 서 있었다. 세이르의 모습도 보였다.

‘무슨 일이지?’

호기심을 느낀 나는 얌전히 기다리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원의 한가운데에는 무언가가 놓여 있었다.

‘뭐지?’

아, 몬스터의 시체다. 낙뢰를 맞아 검게 탄 시체가 놓여 있었다.

내가 앓아누워 있는 동안, 휴양 도시의 경비대와 신전이 사건에 대해 조사를 했다고 들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몬스터는 세이르만을 노렸다. 그래서 기물 파손은 있었을지언정 인명 피해는 없었다고 한다. 세이르가 머물던 별장에 있던 시신도 수습되었다.

그러나 암살자를 보낸 배후나 암살자가 몬스터로 변한 원인, 두 번째 몬스터가 나타난 경위 등은 알아낼 수 없었다.

그리고 남은 것은 이 몬스터 시체 한 구.

이제껏 없던 형태의 몬스터다. 그래서 자세히 조사하기 위해 몬스터의 시체를 남겨 두었다. 다른 하나는 아빠가 완전히 없애 버려서 시체가 남지 않았다.

그런데 몬스터를 살피는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심각했다. 아빠 역시 서늘한 무표정이었다.

“아빠, 무슨 일이에요?”

“……안젤리카.”

아빠는 나와 몬스터의 시체를 번갈아 보고는 다정하게 말했다.

“안젤리카, 미안하지만 방에 돌아가 있겠니? 우리 천사가 보기에는 좋지 않은 모습이겠구나.”

아빠는 나를 배려해서 한 말이겠지만 안 될 일이었다. 암살자가 기괴한 몬스터로 변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인간을 몬스터로 변이시킨 걸까? 아니면 반대로 몬스터를 인간으로 위장한 걸까? 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런 일을 벌였지?

그리고 일을 꾸민 배후는 누구일까?

심증으로는 다프네 왕비가 꾸민 일이 거의 확실하지만, 증거가 없는 한 의미 없는 일이다.

이 의문들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나도 상황을 알아 둘 필요가 있었다.

“괜찮아요, 아빠. 나도 궁금한걸요.”

“무서울 텐데.”

“에이, 아빠가 다 해치웠으니까 하나도 안 무서워요!”

아빠가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알겠다. 무서우면 언제든지 말하렴.”

“네!”

“사라, 시작해라.”

“네.”

아빠는 옆에 있던 사라에게 눈짓했다. 사라가 단검을 들고 몬스터의 시체에 가까이 다가갔다.

사라는 단검을 쥔 모습이 잘 어울렸다. 그저 상냥하고 감정이 풍부한 시녀라고 생각했는데 저런 모습이 있는 줄은 짐작도 못했다.

그리고 사라가 새까맣게 탄 몬스터의 피부를 찌르려는 순간.

근처에 서 있던 세이르가 슬그머니 위치를 옮겨 내 앞을 가렸다.

“어엉?”

세이르가 나보다 키가 큰 탓에 앞이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살짝 옆으로 가 세이르의 어깨 너머를 들여다보려 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세이르는 나를 따라 서 있는 위치를 바꿨다. 이리저리 고개를 들이밀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나는 꽥 소리를 쳤다.

“아, 왜!”

“응? 안젤리카, 있었어? 이제 몸은 괜찮아?”

세이르는 태연자약한 얼굴로 시치미를 뗐다. 아까 내가 왔을 때 내 쪽 쳐다본 거 다 봤는데.

“세이르, 키 크다고 유세하는 거야?”

“내가 뭘? 나는 그냥 여기 서 있었을 뿐인걸.”

“그럼 조금만 옆으로 가 봐. 안 보이잖아!”

“난 이 자리가 마음에 드는데.”

“으으…….”

세이르의 양옆에는 호텔 직원들이 서 있었는데 모두 키가 컸다. 나는 까치발을 하다가 콩콩 뛰어도 보았지만, 그럴 때마다 세이르는 절묘한 각도로 내 앞을 가렸다.

“나도 보고 싶은데!”

“어린이는 안 보는 게 좋아.”

“너도 어린이면서.”

“응, 그래도 내가 더 어른이잖아.”

“으으으…….”

세이르가 보일 듯 말 듯 하게 웃었다.

얘 원래 성격이 이랬나? 장난기가 는 데다 미묘하게 능청스러워진 것 같은데?

아, 맞다 상태창! 상태창을 보자.

[이름 : 세이르 뮨 엘레인

직위 : 엘레인 소공작(A)

소속 : 리어 왕국­엘레인 공작령

레벨 : 23

특성 : 성검의 주인(S)

상태 이상 : 염세주의(Lv.79)]

염세주의 레벨 79!

호오, 그동안 꽤 레벨이 내려갔다.

‘역시 잘 먹고 잘 쉬는 게 중요한 법이지, 음.’

나는 그냥 앓아누운 상태였으니 한 일도 없지만, 괜스레 뿌듯한 마음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염세주의 레벨이 내려가면서 성격이 좀 변한 것 같긴 한데, 나는 내일이면 데네브 왕국으로 돌아가니까, 뭐!

‘아차!’

세이르의 변화에 뿌듯해하느라 몬스터의 시체 부검 과정을 보려던 것을 깜빡했다.

쟤가 시비를 거는 바람에!

이번에야말로 세이르를 피해 사람들의 원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는데, 어느새 몬스터의 시체 부검은 끝난 다음이었다. 몬스터의 시체 위로 흰 천이 덮여 있었다.

사라는 단검을 닦아 검집에 넣은 뒤, 시체에서 꺼낸 어떤 물건을 높이 들었다.

“찾았습니다, 크로셀 님. 이것이에요.”

사라의 손에 들린 것은 탁한 잿빛을 띤 마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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