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결국 내가 아빠를 프로듀스하기는커녕, 트리스탄이 나를 관광업의 전문가로 프로듀스하는 시간이 지나고.
이윽고 ‘오싹오싹! 스릴 넘치는 모험이 기다리는 고대 던전’이 완성되었다.
모험가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화려한 외관.
호기심을 자극하는 전단지.
절묘하게 호승심을 불러일으키는 난이도 디자인과 보상.
관광객에게 간식거리를 판매하는 노점까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트리스탄은 직접 발로 뛰며 모험가들에게 호객 행위를 했다.
새로운 인격에 눈을 뜬 트리스탄은 호객에 엄청난 재능이 있었다. 트리스탄에게 붙잡힌 모험가들은 반드시 던전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리하여 지금.
던전 앞에는 모험가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리는 유원지, 아니, 테마파크, 아니, 고대 던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슬슬 때가 됐을 텐데…….”
띠링!
내가 작게 중얼거리는 것과 거의 동시에 또렷한 알림음이 들려왔다.
[<이벤트> 데네브 왕국을 방문한 ‘모험가’들이 고대 던전을 신나게 즐겼습니다.
3000 왕국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많은 모험가가 던전을 방문했습니다.
<오싹오싹! 스릴 넘치는 모험이 기다리는 고대 던전>의 등급이 E → D로 올랐습니다.
해당 설비의 호화도가 100 → 200로 올랐습니다.]
[<시나리오 퀘스트> 왕국 꾸미기 입문 (2)를 완료했습니다.
(1) 무사히 생존했습니다.
(2) 경험치 300exp를 획득하여, 플레이어 ‘안젤리카 데네브’의 레벨이 3 → 5로 올랐습니다.
(3) 칭호꿈과 희망의 왕국(D)을 획득했습니다.
(3) 특성왕국 꾸미기 중급자(D)를 획득했습니다.]
[<칭호 : 꿈과 희망의 왕국(D)>
분류 : 관광
꿈과 희망이 가득한 데네브 왕국으로 오세요!
관광업 분야에서 왕국이 약간 평가치 보너스를 받습니다.]
[※ 원 포인트 레슨 : 새로운 특성과 설비가 해금되었습니다. 이제 더 다양한 설비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 상세 정보 보기]
‘후후후, 됐어!’
모험가들이 끊임없이 던전을 찾아 준 덕에 여유롭게 퀘스트를 달성할 수 있었다.
‘꿈과 희망의 왕국’이라니 전혀 흑막 왕국답지 않은 칭호라서 마음에 안 들지만, 뭐! 괜찮다.
아빠가 흑막이 되기만 하면, 꿈은 악몽이 되고 희망은 덧없이 스러질 테니까. 음하하!
아참, 그래서 아빠는 어떻게 됐느냐고?
아빠는 고대 던전 체험 코스의 최종 보스 역할을 맡아 주기로 했다.
던전 안에서 위험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는지 살피는 역할까지 겸해서 말이다.
원래의 내 계획은 이랬다.
아빠가 최종 보스 역할을 하면서 내가 엄선한 원작 크로셀 데네브의 흑막 대사 100선을 말하는 거다. 그러면서 아빠가 흑막다움에 눈을 뜨기를 기대했다.
그래서 흑막다운 분장과 옷차림(특: 안 어울림)에 흑막다운 연기 디렉팅(특: 책 읽는 거 같음)까지 준비했는데.
너무 안 어울리는 바람에 그냥 도중에 그만두었다.
그 결과…….
나는 옆의 벽에 달린 덧창을 열었다. 자그마한 틈으로 아빠가 있는 보스 룸을 볼 수 있는 구조였다.
아빠는 너무도 부드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말간 얼굴에 하얀 옷은 조금도 최종 보스답지 않다.
“하하, 고생 많았네. 다음에는 좋은 결과 있기를 바라겠네.”
심지어 클리어에 실패한 모험가에게는 이렇게 덕담까지 하는 게 아닌가.
결국 아빠를 흑막으로 프로듀스하는 계획은 실패한 셈이지만.
이번에는 뭐…… 됐다.
나는 여전히 다정하고 상냥한 아빠를 보며 생긋 웃었다.
이 세계에서 눈을 뜬 뒤 벌써 몇 달이 흘렀지만, 아직 모르는 것투성이다.
내가 왜 이 세계로 오게 되었는지.
왜 나만 플레이어로서 상태창을 쓸 수 있는지.
애초에 이 세계는 정말로 내가 플레이한 <두근두근 마법 왕국 꾸미기>의 세계와 동일한지.
그리고…… 아빠는 나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반대로 새로이 알게 된 것도 있다.
내가 이 세계를 정말로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안젤리카 님, 틸라 더 가져왔는데 더 먹을래?”
“난 괜찮아. 이거도 니키 다 먹어.”
“우와, 고마워!”
나는 로코 몫의 틸라 한 조각만 남기고 나머지를 니키에게 주었다. 니키는 냉큼 틸라를 받아먹었다.
“그렇게 맛있어?”
“응!”
얘는 정말 잘 먹는다.
간식 노점에서 조리를 맡은 케나스가 니키를 보조로 차출했다가 돌려보낸 이유를 알겠다. 열 개를 구우면 다섯 개는 먹어 버리니까.
현재 니키는 임금과 별도로 왕성에서 수확한 틸라의 10%를 받는다.
당연히 팔아서 돈을 벌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다 먹어 버리는 건 아니겠지? 나는 문득 불안해졌다.
그때, 어깨 위에 앉아 있던 로코가 울음소리를 냈다.
“피이잇!”
“로코, 너……! 그렇게 귀엽게 운다고 내가 간식을 줄 거란 생각은 마!”
“피이이, 피…….”
“어휴, 그렇게 먹고 싶어? 그럼 어쩔 수 없지. 자!”
나는 손바닥 위에 틸라 조각을 올려놓고 로코에게 먹이면서 생각에 잠겼다.
문득 든 생각인데, 우리 왕성의 고용인은 다들 좀 특이한 것 같다. 케나스도 트리스탄도 니키도 한두 군데씩 특이한 점이 있다.
그중에서는 사라가 제일 평범한 거 같다. 제일 가까이 있는 시녀가 평범한 사람이라 다행이다.
아무튼…….
나는 이 세계를 정말로 좋아한다.
그러니 플레이어이자 이 세계 속의 인물로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봐야겠다.
* * *
이렇듯 퀘스트를 무사히 클리어하고 왕국을 발전시켰는데.
한 가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어? 제랄드 아저씨?”
마을에 나갔더니 모험가 제랄드가 있었다.
“어라, 전에 본 꼬마 아가씨구나! 잘 지냈지?”
“오늘도 택배 배달하러 온 거예요?”
그런 것치고는 어째 어수선한 분위기다. 2층짜리 건물 앞에서 일꾼들이 바쁘게 물건을 나르는 중이었다.
“아니, 실은 모험가를 그만두기로 했다.”
“뭐어어? 왜?!”
“던전 체험을 고급 코스까지 다 클리어했더니 여한이 풀렸어.”
“…….”
“뭐랄까……. 나는 생각보다 모험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
“이제 모험은 만족했어. 모험가를 그만두고, 진짜 내 꿈을 찾아가기로 했다.”
원래 하지 않은 선택은 마음속에서 미화되고 미련이 남기 마련이다.
‘그때 그걸 했어야 하는데! 내가 그것만 했으면 지금쯤 대단했을 텐데!’
누구나 이런 생각 하나쯤 가슴속에 품고 있지 않은가. 제랄드에게는 그게 모험이었겠지.
그러나 과거에 하지 않은 선택에는 하지 않은 이유가 있는 법. 미화된 선택지를 뒤늦게 해 보니 생각보다 별로인 일 또한 허다하다.
제랄드는 던전 체험을 통해 모험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된 모양이다. 관광형 던전에 생각지도 못한 부가 효과가 있었네.
“그럼 아저씨 진짜 꿈은 뭔데요?”
“그야 물론 잡화점을 차리는 거지!”
“그, 그렇구나…….”
“데네브 왕국은 가겟세가 저렴해서 그동안 모은 돈으로도 차릴 수 있겠더라고. 으하하!”
그런데 제랄드의 옆에는 비슷하게 모험가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나는 그들을 보고 물었다.
“저 사람들은 누구인데요?”
“던전 체험에서 알게 된 모험가들인데, 나랑 뜻이 같아서 동업하기로 했다. 자, 이거 받아.”
제랄드가 전단지 한 장을 건넸다. 전단지에는 잡화점, 여관, 식당, 기념품 가게, 꽃집 오픈 예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과정이 어떻건 진짜 꿈을 찾았다니 축하할 일이다.
“축하해요.”
“으하핫, 고맙다. 오픈하면 잘 부탁한다.”
그렇게 제랄드와 인사를 하고 몸을 돌린 그때.
띠링!
눈앞에 상태창이 나타난다.
[<두근두근 마법 왕국 꾸미기> 주간 리포트!
(1) 마을에 잡화점, 여관, 식당, 기념품 가게, 꽃집이 개업 예정입니다.
(2) 왕국의 상업 레벨이 1 → 2로 올랐습니다.]
[<서브 퀘스트> ‘모험가 대발생!’을 완료했습니다.
‘???’를 획득했습니다.]
파아앗.
그리고 하얀 빛이 터지더니 허공에 어떤 물건이 생겨났다.
이것이 보상인 ‘???’인가?
받아 들고 보니 손바닥보다 조금 큰 카드 한 장이었다. 타로 카드와 비슷한 생김새였는데 앞면은 그냥 백지, 뒷면은…….
“여명교 신전의 문장인가……?”
어디다 쓰는 카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챙겨 둘까.
여명교는 <마.왕.꾸>의 세계에서 널리 믿는 종교다. 루시리스 여신을 섬기는 이 종교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 땅에 뿌리내려 왔다.
나는 <마.왕.꾸>의 모든 것을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슈퍼 플레이어지만! 여명교의 신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많지 않다.
이유는 단순하다.
[[<업데이트 예고> ‘여명교 신전’ 콘텐츠 추가 업데이트 안내]
이런 공지만 띄워 놓고, 여명 교단이 업데이트되지 않은 채 제작사가 망했기 때문이다.
기대 많이 하라며! 곧 업데이트한다며!
김×× 그 인간 진짜!
나는 속으로 김××의 장수를 빌어 주며 카드를 품에 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