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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34)화 (35/133)

34화

로디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는 내 말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얼떨떨하게 되물었다.

“착하신가요……? 그분이.”

“응, 착해, 엄청.”

“왕녀님의 말이 사실이라도, 착하면 좋은 거 아닌가요……?”

“아니. 로디, 생각해 봐. 세상은 거칠고 험한 곳이지?”

“뭐……. 아무래도 그런 편이죠……?”

로디가 떨떠름하게 동의했다.

“그런 세상인데 아빠가 너무 착하고 상냥하니까 걱정이 된다고. 알아? 물가에 애를 내논 것 같단 말야.”

“…….”

로디가 입술을 말아 물었다. 그러고는 다급히 고개를 돌리고 ‘푸흡’ 하는 소리를 냈다. 헛기침하는 척하며 감추려 했지만 이미 다 봤다.

“왜 웃어?”

“그야 왕녀님이야말로 어린이이신데 물가에 애를 내논 것 같다고 하시니까…….”

“그만큼 걱정된다 이 뜻이지!”

나는 살짝 뜨끔해서 얼버무렸다. 로디는 손으로 턱을 짚고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왜 그런 고민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크로셀 님은 외모부터 문제이지 않나요……?”

“뭐어?”

말도 안 된다.

다른 건 몰라도 외모를 가지고 크로셀 데네브를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수천 시간을 게임에 꼬라박고도 계속 흑막 엔딩에 도전하게 만든 완벽한 외모인데! 나는 경악하며 외쳤다.

“우리 아빠가 어디가 어때서?!”

내 말에 로디는 당황하면서 손을 내저었다.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니라……. 크로셀 님은 외모부터 무척 착해 보이시잖아요…….”

로디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은빛 머리카락은 반짝거리고, 눈동자는 맑으며, 이목구비는 섬세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외모에는 같은 말을 해도 착해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나는 뒤늦게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 그 선량하고 다정하고 상냥하며,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의 마음마저도 순수하게 만들어 버리는 외모가 문제였던 거다.

하지만 원인을 알았다고 한들 어떻게 외모를 바꿀 수 있단 말인가.

“아빠를 못생기게 만들라는 거야?”

그 말을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강렬한 거부감이 몸을 엄습했다.

아빠를 흑막으로 프로듀스하고 싶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멋진 흑막’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못생긴 흑막이면 그거 그냥 일회성 악역이잖아!

크로셀 데네브는 그 외모에 흑막이라서 좋은 거라고!

“그건 아니지만요……. 음, 예를 들어 얼굴에 흉터를 하나 만든다거나…….”

나는 눈가에 칼자국이 난 아빠를 상상해 보았다.

호오, 확실히 흉터 하나를 더한 것만으로 분위기가 일변한다.

흉터만 있으면 다정하고 상냥한 웃음이 비밀이 많은 흑막의 미스테리어스한 웃음처럼 보일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제안은 실천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었다. 나는 머릿속의 완벽한 상상을 털어 내며 말했다.

“그래도 멀쩡한 아빠 얼굴에 상처를 내긴 좀 그렇지……?”

“그러면 이건 어떠세요?”

로디가 가방을 열어 어떤 물건을 꺼냈다. 네모나고 편평한 상자에 여러 색의 안료가 든 것이었다.

나는 상자를 받아 든 채 고개를 갸웃했다.

“그림 도구는 아닐 테고, 이게 뭐야?”

“메이크업 도구랍니다…….”

“아빠한테 화장품을 쓰라고?”

퍼뜩 와닿지 않는 이야기였다. 얼굴에 안료를 좀 바른다고 해서 현재 흑막력 0%인 아빠가 흑막다워질 것 같진 않다.

“이건 평범한 메이크업 도구가 아니거든요…….”

“그러면?”

그때, 이 아이템의 상태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진실된 내면의 메이크업 도구>

이 아이템으로 메이크업을 하면 내면까지 변화합니다.

조합에 따라 다양한 성격 어필 가능!

당신의 진실된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진실된 내면을 들여다본다고? 그게 대체 뭔데?

상태창의 설명만으로는 효과가 어떤지 영 와닿지 않았다.

옆에서 로디가 아이템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이건…… 마법의 힘이 깃들어 있는 안료로 만든 도구예요……. 어떤 메이크업을 하느냐에 따라 성격이 변화한답니다.”

“성격이 변화한다고? 예를 들면?”

“예를 들면, 음……. 광전사들은 전투에 나서기 전, 붉은색 안료로 용맹한 전사의 얼굴을 그렸다고 해요. 반대로 수련에 임하는 사제들은 푸른색 안료로 신의 문장을 그리지요.”

“…….”

“용맹한 광전사, 신실한 신의 종……. 자신이 되고자 하는 모습을 꾸밈으로써 내면의 소질을 이끌어 내는 아이템이랍니다…….”

“헤에, 그렇구나.”

게임 제목부터 <두근두근 마법 왕국 꾸미기>더라니 별별 마법 아이템이 다 있네.

게임에 등장하는 어지간한 아이템은 전부 꿰고 있었지만 이런 것은 처음 보았다. 그야, 왕국을 발전시키는 데 메이크업 도구 따위를 쓸 일은 없으니 말이다.

신기하네. 딱 그 정도의 감상이랄까.

하지만 우리 아빠는 광전사도 사제도 아니다. 신기하기는 해도, 이 아이템을 쓸 곳은 없을 듯싶었다.

“됐어. 좋은 아이템이지만 나한테는 필요 없을 것 같아.”

내가 금방 흥미를 잃고 아이템을 돌려주려 하자, 로디가 얼른 설명을 덧붙였다.

“이건 그렇게 단순한 기능만 있는 아이템은 아니에요……. 특히 이 검은색 안료를 섞어서 메이크업을 하면…….”

“하면?”

“내면의 어둠을 일깨울 수 있습니다…….”

“……!”

내면의 어둠? 듣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단어다. 흑막=어둠이 아니겠는가.

그럼 이 도구로 아빠를 흑막스럽게 꾸미면 내면도 흑막스러워진다는 거겠네?

그야말로 지금의 내게 딱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물었다.

“이 아이템 사고 싶은데 얼마나 해?”

“돈은 괜찮아요. 어차피 팔리지도 않는 악성 재고였고……. 그냥 드릴 테니 가져가세요.”

안 팔렸다고? 그럼 효과가 없는 거 아냐?

조금 미심쩍은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시도는 해 봐도 좋을 것 같다.

그래, 아빠의 외모부터 멋진 흑막답게 프로듀스해 보자!

“고마워. 로디, 나 먼저 갈게. 안녕!”

나는 로디에게 받은 메이크업 도구를 품에 안고 복도를 달려 나갔다.

* * *

“그런데 왕녀님, 그 아이템에는 한 가지 제약이 있어요.”

“…….”

“그 아이템의 힘은 어디까지나 내면에 잠재된 성격을 이끌어 내는 것. 내면에 없는 것을 일깨울 수는 없어요…….”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로디는 방금까지 안젤리카가 서 있던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라.”

마음이 급한 나머지 안젤리카는 로디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떠난 지 오래였다. 분홍빛 머리카락이 파도처럼 물결치며 복도 저편으로 멀어져 갔다.

“뭐, 괜찮겠죠…….”

로디는 금방 손톱만큼 작아진 안젤리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른한 분위기의 얼굴에 언뜻 호기심이 비쳤다.

도박에는 취미가 없었다. 경쟁에도 흥미가 없다.

로디는 거대 상회 가문에서 태어난 데다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후계자가 되기 위한 경쟁에 염증을 느껴, 가문을 나와 작은 상회를 차렸다.

어리석다며 자신의 선택을 비웃는 자들도 있었지만, 자신의 깜냥에는 그냥저냥 적당히 굴러가는 실로프 상회 정도가 딱 알맞았다.

패트릭에게 뒤통수를 맞은 후로는, 그나마도 의욕을 잃고 상회를 접을 마음까지 먹었다.

‘정말로 마족에게라도 홀린 걸지도 모르겠어.’

현재 대륙에서는 여러 왕국이 세력 경쟁을 하고 있다. 그 격한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데네브 왕국이 승리하리라 점치는 자는 아무도 없을 테다.

로디 역시 마찬가지로 생각했다.

그런데…….

분홍빛 머리카락에 사랑스러운 외모, 그에 반해 시간의 더께가 앉은 듯 깊어 보이던 새파란 눈동자.

그 푸른 눈을 보는 순간,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할 선택을 했다.

도박도 경쟁도 싫어한다.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이다.

그런데 데네브 왕국의 승리에, 아니, 저 왕녀에게 걸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나이에 비해 조금 똑똑한 아이일지, 아니면 다른 비밀을 감추고 있을지.

“궁금해지네요…….”

* * *

“사라, 여기 있어?”

나는 사라를 찾기 위해 복도를 달려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사라는 방에 없었다. 어디 간 건가? 사라가 있을 법한 곳으로 가기 위해 도로 방에서 나온 그때였다.

급한 마음에 너무 서두른 것이 문제였을까.

“어?”

그만 모퉁이에 서 있던 경비병을 보지 못하고 부딪힐 뻔했다.

경비병은 갑자기 내가 튀어나오자 깜짝 놀라서 피했지만, 이미 내가 중심을 잃은 것이 문제였다.

“아코!”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한 작은 몸이 발라당 뒤로 넘어졌다.

“으으으…….”

바로 얼마 전에도 모험가 제랄드에게 부딪혀서 넘어졌는데, 또다. 또 넘어졌다.

요즘 이런 일이 잦은 느낌이다. 키가 작은 탓에 시야가 낮아서 그런가?

하지만 키는 내 뜻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다. 왕국 포인트를 써서 레벨을 올린다고 해서 키가 크는 것도 아니고.

[※ 원 포인트 레슨 : 성장기 어린이는 영양 섭취가 중요합니다.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먹읍시다. 키가 쑥쑥 클 거예요!]

응, 고마워. 정말 정말 궁금한 정보였어요.

“헉! 죄송…… 죄송합니다. 안젤리카 님, 괜찮으세요?”

경비병이 깜짝 놀라 나를 일으켜 세웠다.

“괜찮아. 나야말로 미안해. 뛰어오느라 못 봤어.”

“아, 아닙니다. 저는 원체 존재감이 없어서 자주 못 보고 지나치는 사람이 많습니다.”

확실히 그는 너무 인상이 흐릿한 나머지 존재감이 약하기는 했다. 돌아서면 금방 까먹을 듯한 특색 없는 인상이라고 할까.

그래도 이 경비병, 어디서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야 왕성의 경비병이니까 오며 가며 봤겠지만, 그게 아니라 좀 더…….

나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경비병을 어디서 만났는지 기억해 냈다.

“그러고 보니 전에 본 적이 있지? 상업 도시에 갔을 때 말야.”

지난번, 상회와 계약을 하기 위해 상업 도시 사달멜리크에 갔을 때다.

아빠와 나, 사라 말고도 한 명이 마차를 몰기 위해 동행했었다. 그 한 명이 바로 눈앞의 경비병이었다. 이제 보니 알겠네.

“흑…….”

그런데 갑자기 경비병이 눈물을 글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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