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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30)화 (31/133)

30화

* * *

“이게 다 뭐야?”

잉그리드 상회의 창구 접수원 잭슨은 문밖의 인파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늘따라 웬일로 손님이 하나도 없다 싶었는데, 옆 가게는 줄이 잉그리드 상회의 출입구까지 닿을 정도로 길게 늘어서 있는 것이었다.

잭슨은 손을 휘휘 저으며 앞에 선 사람들을 내쫓았다.

“거 남의 가게 앞에 막지 말고 비키쇼, 비켜!”

잭슨의 등쌀에 사람들이 마지못해 몸을 피했다. 그러나 워낙 많은 사람들이 옆 가게에 몰려든 통에 줄은 점점 더 길어지기만 했다.

이래서야 오늘 영업은 공치게 생겼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 사달멜리크 경매에서 실로프 상회가 대박을 터뜨린 이후로 명성이 예전 같지 않은 상황이다.

성장세가 엄청나, 몇 년 안에 실로프 상회가 잉그리드 상회를 따라잡겠다고 평하는 자도 있을 정도였다.

안 될 일이다.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다가는 회장인 잉그리드에게 얼마나 까일지 상상만 해도 두려웠다.

에이, 옆집에 가서 항의라도 해야겠어.

잭슨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줄의 첫머리 부분으로 향했다.

그런데 걸음을 옮길수록 달콤한 냄새가 났다. 어디서 나는 건지, 이 냄새는 절묘하게 식욕을 자극했다.

“이게 뭐요?”

결국 잭슨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막 줄에서 빠져나온 손님을 붙잡고 물었다. 원하는 물건을 사서 기분이 좋은지 손님은 선뜻 대답해 주었다.

“네? 아, 이건 틸라인데요.”

“틸라?”

“몰라요? 요즘 한창 난리잖아요. 다른 데는 다 품절인데 여기는 남아 있어서 다행이지 뭐예요.”

손님이 손에 든 종이봉투 안에는 어린애 주먹만 한 덩이뿌리가 가득 들어 있었다. 달콤한 냄새의 근원지는 이 뿌리였다.

손님은 선심 써서 뿌리를 조금 잘라 잭슨에게 내밀었다.

잭슨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틸라 조각을 입에 넣었다.

“……!”

그 순간, 달콤한 맛이 입 안에서 확 퍼졌다. 식감은 부드러우면서도 약간 탄력이 있었다. 계속 먹고 싶어지는 맛이었다.

“실로프 상회에서 독점으로 판매한대요. 사고 싶으면 얼른 줄을 서는 게 좋을걸요.”

“……고맙소.”

잭슨은 허겁지겁 줄의 맨 끝으로 향했다.

그런데 오래 지나지 않아 상점 주인이 밖으로 나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오늘 치 물량은 이제 다 떨어졌어요.”

“네? 두 시간 전부터 기다렸는데!”

줄의 앞쪽에 서 있던 사람들이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항의했다.

“죄송해요……. 이게, 데네브 왕국에서만 재배하는 특산물이다 보니 물량이 부족하네요……. 내일 다시 와 주세요…….”

아쉬움을 삼키며 손님들이 흩어졌다. 그러나 잭슨은 방금 들은 말에 놀란 나머지 멍하니 서 있었다.

“데네브 왕국이라고?”

데네브 왕국이면 우리 상회에 계약을 맺으러 왔던 그 부녀네 왕국이잖아?

그러고 보니 무슨 풀떼기를 들고 있었지. 그 풀떼기의 뿌리가 이렇게 맛있다고?

잭슨은 황급히 데네브 왕국으로 갔다.

틸라의 유행은 오래갈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이 새로운 트렌드에 올라타지 않으면 상업 도시의 상인이 아니다. 실로프 상회에서 부른 가격에 웃돈을 줘서라도 틸라를 매입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네.”

“네?”

“늦은 자에게는 기회가 없는 법이지, 크크큭……. 안젤리카, 꼭 이렇게 ‘크크큭’ 하고 웃어야 하니? 크흠, 아무튼……. 실로프 상회와 독점 계약을 맺었으니 거래가 어렵네. 돌아가게나.”

탕!

가차 없이 문이 닫혔다.

터덜터덜 빈손으로 돌아가던 잭슨은 왕성 앞 마을의 주민들이 틸라를 재배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거다!’

잭슨은 팔지 않겠다는 주민에게 높은 가격을 불러 반강제적으로 틸라 다섯 포기를 사 들였다. 얼마 되지 않는 양이었지만, 잭슨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나도 이걸 재배하면 될 일이야. 금방 양이 늘어날 테니 한몫 땡길 수 있겠지!’

그러나 이번에도 일은 잭슨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제일 비옥한 땅에 틸라를 옮겨 심고 수시로 살폈지만, 다섯 포기가 모두 시들어 버린 것이다.

“대체 왜……!”

잭슨이 절망했다.

* * *

“후후후…….”

나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틸라를 가득 실은 짐마차가 떠나고 있었다.

로디와 계약을 맺고 틸라를 판 지 벌써 2주가 지났다.

단 2주 사이에 틸라는 상업 도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식재료가 되었다.

이렇게 만들기 위해, 나와 로디는 머리를 맞대고 판매 전략을 고안했다.

“처음에는 비밀 상점을 통해 조금씩만 판매하려고요…….”

“그렇지, 그렇지.”

“그다음에는 유명 인사들을 통해 바이럴 마케팅을 하고…….”

“나 바이럴 마케팅 진짜 잘하는데!”

“감동적인 일화도 도움이 되겠어요. 척박한 땅에 피어난 꽃, 농민들의 웃음. 이런 기사를 준비해서…….”

“아니, 그건 빼자. 흑막스럽지 않잖아.”

“그게 중요한가요……?”

로디는 나와 정말 말이 잘 통했다.

그리하여 지금은 밀려드는 수요를 다 감당하지 못해, 니키뿐만 아니라 왕성의 다른 고용인들까지 틸라 재배를 돕고 있었다.

케나스는 틸라를 사용한 다양한 요리를 개발하기도 했다.

내가 제안한 구운 틸라를 밀전병에 싼 요리부터 시작해서, 틸라 수프, 틸라 밀푀유, 소금과 오일을 뿌린 틸라 샐러드 등등이었다.

처음에는 이 신메뉴 테스터로 니키가 차출되었는데, 안타깝게도 금방 잘렸다.

“맛있어! 진짜 맛있어!”

“맛있는데? 최고야!”

“나 이거 하나만 더 먹으면 안 돼?”

모든 것을 맛있게 먹어버리는 통에 테스터로서의 소임을 전혀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억울해. 진짜 맛있어서 맛있다고 한 건데!”

테스터에서 잘린 날, 니키는 이렇게 말하며 항의했다. 음, 이건 니키의 의견에 동의한다. 실제로 케나스의 요리는 다 맛있었으니까.

어쨌거나 앞으로 신메뉴는 왕성 사람들의 투표로 채택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이런 일로 조용하던 왕성이 요즘 아주 활기차다. 틸라를 판매한 돈도 착착 쌓이고 있다.

거기다…….

‘후후후, 뒤늦게 후회하는 그 잉그리드 상회 직원의 얼굴이라니!’

정말 볼만한 광경이었다.

이렇듯 모든 것이 순조로운데…….

실은 나는 한 가지 찜찜함을 느끼는 중이었다. 뭔가 하나 잊고 있는 듯한 기분인데, 그게 뭔지 도통 모르겠다.

그렇다고 무시하자니, 꼭 한여름에 보일러를 켜 놓고 깜빡한 것처럼 찜찜한 느낌이란 말이지.

“으음…….”

“안젤리카, 있니?”

그때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문간에 아빠가 서 있었다.

“어, 아빠! 오셨어요?”

나는 발 받침대에서 폴짝 뛰어 내려가 아빠에게 다가갔다.

“뭘 하고 있었니?”

“그냥 창밖을 보고 있었어요. 짐마차가 왔다 가길래요.”

“그랬니? 요즘 왕성이 좀 번잡하지?”

“네. 아, 그런데 활기차서 좋아요! 니키도 자기가 키운 틸라가 인기 있어서 좋다고 했고, 또 케나스도…….”

부드러운 웃음을 띤 채 내 말을 듣던 아빠가 무릎을 굽히고 나와 눈을 맞췄다.

“……안젤리카.”

“네?”

진지한 눈빛이었다.

웃지 않을 때는 의외로 서늘한 분위기인 아빠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니 괜히 긴장이 되었다.

아빠는 한 손으로 내 손을 꼭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 품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안젤리카에게 줄 게 있단다. 자.”

손에 차갑고 단단한 것이 닿았다. 나는 손 위에 놓인 물건을 보았다.

그건 작은 금화에 줄을 꿰어 목걸이처럼 만든 것이었다.

“이건 뭐예요?”

“틸라를 재배해서 파는 건 안젤리카의 아이디어였잖니. 상이라기에는 그렇고……. 아빠가 안젤리카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서.”

설마 상업 도시 사달멜리크에 함께 갔을 때 내게 아무것도 사 주지 못한 일을 신경 쓴 걸까?

정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그 악덕 상인들의 복마전에서 갖고 싶은 물건도 딱히 없었고.

나는 금화 펜던트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아빠가 전에 사기꾼 상인에게서 기념 금화를 샀었지. 그때 그 금화인가?

이렇게 보니 꽤 예쁘다. 어쩐지 금화가 유난히 반짝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마음에 안 드니?”

내가 잠시 말이 없자 아빠가 시무룩하게 물었다.

헉, 안 된다. 그렇지 않아도 처연해 보이는 아빠를 더 처연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얼른 말했다.

“아뇨, 진짜 마음에 들어요! 반짝반짝해서 되게 예쁘고!”

“하하……. 그래, 이리 오렴. 아빠가 걸어 주마.”

“네!”

나는 얼른 뒤로 돌았다. 아빠가 금화 펜던트를 내 목에 조심스럽게 걸어 주었다.

“잘 어울리는구나, 우리 천사. 꼭 하고 다니렴.”

“고마워요, 아빠. 저도 정말 마음에 들어요!”

커다란 손이 부드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안젤리카, 네가 원하는 일을 네가 원하는 대로 하렴. 그게 내 소원이란다.”

이렇게 아빠는 여전히 착하고 다정…….

…….

아! 아아아! 내가 뭘 까먹었는지 생각났다!

아차, 아빠를 흑막으로 만드는 걸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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