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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29)화 (30/133)

29화

하긴, 방금까지 마족이니 계약이니 하는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어린애인 양 구니 그야 신기하기도 하겠지.

‘아니, 왜. 아빠한테 애교 좀 부릴 수도 있지.’

그래도 그 앞에서 입만 벌려 복숭아를 받아먹으려니 새삼스럽게 민망했다.

“그, 아빠, 제가 먹을 수 있어요.”

“자, 막 깎았을 때 먹어야 맛있단다. 아­ 해야지.”

“으음……. 네, 아…….”

나는 아빠의 권유를 이기지 못하고 복숭아를 받아먹었다. 과즙이 풍부하고 아삭아삭해서 맛있었다. 아빠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내가 먹는 모습을 생글생글 웃으며 쳐다보았다.

그리고 복숭아를 몇 조각 먹었을 때쯤 아빠가 말문을 열었다.

“그래. 안젤리카, 로디 씨가 안젤리카가 키운 틸라에 많은 관심을 보였단다.”

“정말요? 와, 다행이에요!”

나는 천진한 얼굴로 활짝 웃으며 박수를 짝짝 쳤다. 아빠는 내 입에 복숭아 조각을 하나 더 넣어 주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틸라를 얼마에 팔지 안젤리카의 의견도 들어 보려 한단다.”

“네? 진짜예요?”

“그럼. 우리 천사가 키우려 한 작물이잖니.”

‘아빠, 나를 너무 믿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 아빠는 너무 착하니까 내가 한번 보는 쪽이 나을 것 같기도 했다.

앞으로 틸라를 어떻게 유행시킬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했으니까.

“아까 크로셀 님에게도 보여 드린 건데요……. 우선 이 정도로 구입하고 싶습니다.”

로디가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조금이라도 가격을 깎으려 하면 냉정하게 협상해야지! 그런 생각으로 종이를 받았지만, 가격란을 보고 나는 아연해졌다.

“짐마차 세 대 분량 당 1000 골드요? 이건 너무…….”

“그래, 로디 씨가 너무 큰 금액을 불러서 어떻게 거절해야 하나 고민이었단다.”

아니, 이걸 왜 거절해?

내가 얼추 예상했던 매입 가격의 세 배에 달하는 돈이었다.

지금 창고에 쌓여 있는 틸라의 일부만 팔아도 여유롭게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을 테다.

아, 설마.

“무슨 다른 조건이 있는 건 아니야?”

“물론 조건은 있답니다……. 틸라를 저희 상회와 독점적으로 거래해 주세요. 다른 상회와 계약을 맺지 않고, 저희 상회하고만요…….”

로디의 말을 들으니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틸라를 유행시킬 생각이며,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쓰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로디는 틸라를 유행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내가 사람은 제대로 봤구나.

“탈라를 유행시킬 생각이구나?”

“그렇답니다……. 이제까지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작물이니까요. 충분히 유행시킬 수 있어요…….”

힘없는 말투와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자신만만한 내용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마음에 걸리는 부분을 물어보았다.

“오늘 왕국민들에게 틸라를 나누어 줬어. 왕성에 있는 틸라라면 로디하고만 거래해도 좋지만, 왕국민들이 틸라를 키워서 자발적으로 거래하는 건 막을 수 없을 텐데.”

“그 정도는 상관없어요. 어차피 마기에 오염된 땅에서만 자라는 작물이고……. 왕국민들이 재배해서 거래하는 양은 소량일 테니까요.”

“그럼 결정이네요!”

나는 기쁜 마음에 활짝 웃었다.

남은 복숭아를 사라와 함께 나누어 먹는 동안 계약서 작성과 대금 지불이 이루어졌다. 로디는 우선 짐마차 여섯 대 분의 틸라를 구입하기로 했다.

왕국의 파산 위기를 해결하고 퀘스트를 클리어하기에는 충분한 돈이었다.

“그럼 다음 주에 다시 오겠습니다…….”

“응, 로디, 바이바이!”

띠링 띠링!

로디가 떠나고, 내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눈앞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상태창이 나타났다.

[<이벤트> ‘실로프 상회의 주인’ 로디 실로프가 거래에 대단히 만족합니다.

2000 왕국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후후…….’

얼마 전 로디를 설득하기 위해 투자한 포인트를 두 배로 회수했다.

상태창이 계속해서 눈앞에 나타났다.

[왕국 종합 평가 ‘소박한 왕국(E)’를 달성했습니다.]

[<시나리오 퀘스트> 왕국 꾸미기 입문 (1)을 완료했습니다.

(1) 무사히 생존했습니다.

(2) 경험치 100exp를 획득하여, 플레이어 ‘안젤리카 데네브’의 레벨이 2 → 3으로 올랐습니다.

(3) 특성­왕국 꾸미기 초심자(E)를 획득했습니다.]

[<특성 : 왕국 꾸미기 초심자(E)>

분류 : 왕국 꾸미기

플레이어가 왕국을 꾸밀 때 약간의 능력치 보너스를 받습니다.]

[<데네브 왕국 종합 정보>

자금 : 2000 골드

왕국 포인트 : 2500

호화도 : 10

종합 평가 : 소박한 왕국(E)

설비 : 낡고 좁은 왕성(F), 조그마한 텃밭(F)

칭호 : 없음

※ 원 포인트 레슨 : 왕국이 다소 가난한 편입니다. 극소수의 생산 시설이 가동 중입니다. 몇몇 사람이 왕국에 희미한 관심을 보이지만, 소박한 환경에 불만족을 느낍니다. 더 많은 생산 시설을 지어 왕국을 발전시키세요.

▶ 상세 정보 보기]

[<시나리오 퀘스트> 왕국 꾸미기 입문 (2)

축하합니다. 드디어 ‘소박한 왕국(E)’에 도달하셨군요.

그러나 아직 데네브 왕국에 주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크로셀 데네브를 잘 프로듀스해서 왕국을 발전시켜 나갑시다.

남은 시간 : 66일

달성 조건 : 왕국의 호화도를 200 이상으로 올리기

보상 : 랜덤 특수 칭호, 경험치 300exp, 특성­왕국 꾸미기 중급자(D)

실패 시 : 왕국의 경제 레벨 하락, 파산 혹은 사망]

“헤헤헤…….”

상태창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비록 이번에도 실패 시 ‘파산 혹은 사망’이라는 살벌한 문구가 적혀 있었지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드디어 F급 찢어지게 가난한 왕국에서 탈출했다는 것!

돈이 없어 눈물짓던 날들이여, 안녕!

틸라를 판 돈이 생겼으니 드디어 왕국을 발전시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머릿속으로 지금 단계에서 써먹을 수 있는 효율적인 왕국 발전 방법이 쫙 떠올랐다.

후후후, 이대로라면 생각보다 빨리 SSS급 왕국을 달성할 수 있겠어.

그건 그거고.

그나저나 보상이 하나 부족하지 않아? 나한테 하나 더 줄 게 있을 텐데?

‘<히든 퀘스트> 경매에 참가하는 건 누구?’에서 ‘루트 1. 패트릭을 만나기’ 달성했잖아.

‘계산은 바로 해야지. 퀘스트 보상 줘!’

[……]

[……]

꼭 시스템이 무언으로 항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패트릭을 만나랬지 패트릭을 이기게 하란 내용은 없었잖아?

퀘스트 달성은 달성이지. 희귀 아이템 줘. 준다며!

[<히든 퀘스트> 경매에 참가하는 건 누구? 루트 1 클리어 보상으로 ‘무언가의 알’을 획득했습니다.]

내 닦달을 견디지 못한 시스템이 결국 보상을 내놓았다.

‘처음부터 그냥 주면 좋았잖아.’

시스템이 준 보상은 한 손에 꽉 차는 크기의 알이었다.

상태창에는 ‘무언가의 알’이라고만 적혀 있었는데, 아마 몬스터의 알인 듯싶었다.

“어? 이거…….”

나는 깜짝 놀라서 알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하얀 껍질은 은은하게 무지갯빛이 감돌았고, 독특한 검은 반점이 있었다.

<마.왕.꾸>에서 이런 모양을 한 알은 몇 종류 없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설마 드래곤의 알?!”

드래곤치고는 알이 작은 편이긴 한데, 그래도 이 무늬는 틀림없이 드래곤이다.

와, 대박.

대부분의 판타지풍 게임이 그렇듯 <마.왕.꾸>도 드래곤이 몬스터 중에 제일 세다. 드래곤을 부활시켜 길들이기만 하면 무력 면에서 큰 이득이다.

어떡하지. 이왕이면 다크 드래곤이면 좋겠다.

역시 흑막이라면 검은색이지! 검은색 드래곤이 앉아 있는 왕성 앞마당.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다. 얼른 드래곤의 알을 놔둘 장소를 찾아야겠다. 햇볕이 따뜻하게 비치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둬야 빨리 부화하겠지?

나는 손에 알을 들고 곧장 방을 나섰다. 정원으로 이어지는 복도를 달리는데, 맞은편에서 오던 아빠와 마주쳤다.

“안젤리카, 기분이 좋아 보이는구나. 그래도 복도에서 뛰면 안 된단다.”

“아빠! 이거 보세요. 제가 이걸……. 그러니까, 저기서 주웠는데요.”

“……알? 몬스터의 알이니?”

“네! 드래곤의 알이면 어떡하죠? 보세요. 이 무늬, 드래곤의 알이랑 똑같이 생겼어요!”

아빠는 내게서 알을 받아 잠시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차분한 표정으로 내게 돌려주었다.

“깨어나면 무엇의 알인지 알 수 있겠구나. 잘 돌봐 주렴.”

“네!”

아빠는 생긋 웃으며 나를 배웅했다. 여전히 천사처럼 다정하고 아름다운 아빠다.

나는 왕성 정원에서 제일 볕이 좋고 공기가 잘 통하는 곳에 둥지를 만들어 알을 놓아두었다. 부화하는 날이 기대된다.

이렇듯 모든 것이 순조롭다.

그런데 뭐 하나 까먹고 있지 않나?

아빠의 상냥하고 다정한 모습을 보는데 어쩐지 찜찜한 기분이 든단 말이지.

이상하다. 뭔가 중요한 걸 까먹은 느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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