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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26)화 (27/133)

26화

* * *

[사달멜리크 경매에는 누구나 참가 가능합니다.]

[지금 최고의 영예에 도전하세요!]

경매장 입구에 이런 광고 문구가 커다랗게 쓰여 있었지만, 이런 행사가 으레 그렇듯 정말로 누구나 참가 가능하지는 않았다.

출품자의 경우에는 사전에 출품물을 제출하고 간단한 심사를 거친다. 그리고 어떤 물건이 출품되는지 카탈로그에 기재된다.

그런데 카탈로그에는 로디 실로프의 이름이 없었다. 대신 패트릭의 이름이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그래도 나는 놀라지 않았다. 카탈로그에 실리지 않은 물건이 경매에 나오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흥을 돋우기 위해, 진짜 희귀한 아이템은 일부러 비밀로 한다. 이른바 ‘시크릿 아이템’이다.

‘필리아 과수원의 유물이라면 시크릿 아이템이 될 만하지, 암.’

한편, 참석자의 경우에는 입장권을 제출하면 된다. 그런데 이 입장권은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자격이 필요했다.

‘그 자격이 분명…….’

상업 도시에 일정 금액 이상 투자한 사람, 추천장을 소지한 사람, 그밖에 명예롭거나 명망 있는 사람이다.

모두 F급 찢어지게 가난한 왕국에서 온 아빠와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자격 조건이었다.

그래서 경매장까지 왔다고는 하나, 나는 경매에 참석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입구에서 로디가 오는지만 확인하면 충분했으니까.

어차피 돈도 없는데 희귀품이나 고급품 위주인 경매에 참석해서 무엇 하겠는가.

“안젤리카,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렴.”

“네?”

그런데 아빠가 나를 세워 두고는 입장권을 배포하는 직원에게 다가갔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릴 틈도 없었다.

그리고 잠시 뒤, 직원과 대화를 마친 아빠가 돌아왔다.

“자, 안젤리카, 안으로 들어가자.”

어라?

아빠의 손에 입장권 두 장이 들려 있었다.

“우리 안에 들어가요?”

“그럼. 우리 천사가 경매가 보고 싶다고 했잖니.”

아빠는 나를 번쩍 안아 들고 경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심지어 아빠가 향한 곳은 꽤 좋은 자리였다. 앞쪽이라 단상이 잘 보이고, 의자도 크고 푹신하다. 음료와 간식도 무제한이었다.

소위 VIP석이라고 할 만한 자리라, 어지간히 명망 있는 자가 아니라면 입장권을 손에 넣기 힘들 터였다.

“진짜 여기가 우리 자리예요?”

“그렇단다. 자, 앉자꾸나.”

누가 이 자리 입장권을 받았다가 취소라도 했나?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잘된 일이다. 푹신한 의자에 몸을 기대고 앉아 다리를 달랑거리며 웃자, 아빠도 나를 보고 따라 웃었다.

가까운 자리에 앉은 패트릭이 나를 보고 알은체를 했다. 내 예상대로 성녀의 거울을 출품한 모양이다.

‘윽, 기분 나쁘니까 아는 척하지 마.’

참석자가 거의 다 자리에 앉았을 때쯤, 진행자가 단상 위로 올라와 경매의 시작을 알렸다. 진행자는 가벼운 농담을 섞어 가며 분위기를 띄웠다.

그리고 충분히 주의가 집중되었을 때 단상 위로 물건이 올라왔다.

“오늘의 첫 번째 출품물을 소개하겠습니다. 요즘 아주 기세가 좋지요. 신인 도예가 벤자민의 신작 다기 세트입니다.”

단상 위에는 미려한 찻주전자와 찻잔이 놓여 있었다. 흔치 않은 디자인과 색깔이었다.

모든 행사는 기대주가 나중에 나오는 법. 경매의 첫 번째 출품물이란 으레 진짜 인기 출품물이 나오기 전 분위기를 띄우는 용이다.

진행자가 열렬하게 도예가 벤자민의 이력을 소개했지만, 참석자들의 반응은 대개 시큰둥했다.

“신선한 느낌은 있지만 화려한 맛이 없네요.”

“갖고 싶긴 한데……. 오늘은 이따가 나오는 브로치를 살 거니까 참아야겠어.”

“혹시 알아요? 도예가가 나중에 유명해질지?”

“에이, 그럴 리가 있겠어요. 매년 도예 길드에서 얼마나 많은 도예가가 나타났다 사라지는지 아시면서.”

참석자들이 입찰용 푯말을 만지작거리며 하는 잡담을 들으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흐음, 200 골드 이하면 사서 이득이려나.’

도예가 벤자민은 이 시점에서는 그저 그런 신인 예술가가 맞았다. 그런데 조만간에 어느 왕국의 귀족과 불타는 사랑에 빠져 일약 스타가 된다.

예술품이란 게 그 자체의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화제성도 중요하지 않나.

소문의 로맨스 속 주인공이 만든 도자기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았고, 벤자민의 도자기는 가격이 팍팍 치솟는다.

그로부터 몇 달 뒤, 도예가 벤자민이 연인에게 차이면서 붐은 끝난다. 그사이에 벤자민의 도자기를 팔아 치운 사람들은 말 그대로 대박이 난 셈이다.

두 번째로 단상 위로 올라온 출품물은 고급 마석을 아낌없이 박아 넣은 방패였다. 방어 마법이 여럿 걸려 있어 성능이 좋았다.

“……못생겼군요.”

“으, 저런 물건이 어떻게 사전 심사를 통과한 거죠?”

그러나 너무 못생긴 바람에 참석자들에게 외면받았다.

‘500 골드 정도면 수익률이 괜찮겠어.’

또 다음은 커다란 에메랄드가 박힌 브로치였는데, 내년쯤 되면 가격이 많이 오를 예정이었다.

왜 이렇게 수익을 내는 법에 대해서 잘 아느냐고?

물론 <마.왕.꾸> 플레이 덕분이다.

이 사달멜리크 경매는 예술품 테크트리를 타고 왕국을 발전시킬 때 반드시 참석하는 행사다.

플레이어는 이 경매에서 저평가된 아이템을 낙찰받아서 가격이 오른 뒤 판다. 넉넉한 자본금만 있으면 초반에 빠르게 돈을 벌 수 있는 필수 코스 행사였다.

그래, 넉넉한 자본금만 있으면.

지금 아빠와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란 뜻이다.

어쨌거나 로디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흥미진진하게 경매를 구경하고 있으니, 아빠가 말을 걸었다.

“안젤리카, 저게 갖고 싶니?”

단상 위에는 화려한 사파이어 목걸이가 나와 있었다. 참석자들끼리 경쟁이 붙어 가격이 쭉쭉 오르는 중이었다.

“900 골드!”

“네, 900 골드 나왔습니다. 아주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올랐군요. 상회 입찰하실 분 계십니까?”

“으……. 에라, 모르겠다. 950 골드!”

현재 최고액을 부른 사람은 어느 기사였다. 연인에게 선물하고 싶다나.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 아니요?”

“계속 열중해서 보고 있지 않니.”

“그건 그냥, 경매가 신기해서요.”

“그래…….”

아빠가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대로라면 또 내가 집안 사정을 생각해서 갖고 싶은 물건을 말하지 않는다고 터무니없는 오해를 살 것이 뻔했다. 나는 황급히 덧붙였다.

“저런 건 별로예요. 불길한 마법이 걸려 있을 것 같아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내 말은 사실이다.

저 사파이어 목걸이는 이번 회차 사달멜리크 경매의 함정 카드였다. 보석의 품질, 세공의 완성도, 관리 상태 모두 괜찮지만 소유자에게 불운을 불러오는 마법이 걸려 있다.

인간의 욕심을 먹고 힘을 얻는 마법이라, 소유자가 착하게 산다면 마법의 힘이 약화되기는 하는데, 욕심 없는 인간이 그리 흔하겠는가.

빙의 전 마지막 게임 플레이 속 낙찰자는 연속 세 번 자연 재난 이벤트를 겪고 파산했다. 으으, 정말 무서운 아이템이다.

그때, 바로 옆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2000 골드!”

“네, 2000 골드 나왔습니다. 더 없으십니까? 3, 2, 1…… 네, 2000 골드에 낙찰되었습니다.”

나는 저 함정 카드를 낙찰받은 사람이 궁금해 단상 위를 보았다. 그리고 놀랐다.

‘어라……?’

단상 위에서 목걸이의 낙찰증을 받아 가는 사람은 패트릭이었다.

‘쯔, 쯔, 쯔. 보아하니 오래 못 가겠구만.’

인간의 욕심을 먹고 힘이 강해지는 마법 목걸이와 삼류 악당이라. 어떻게 보면 참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남은 경매는 평이하게 흘러갔다. 연달아 그저 그런 출품물이 나오자 흥미를 잃은 사람들이 주변에서 가볍게 잡담을 나누었다.

“이번 회 경매는 그냥 그렇네요. 마음에 차는 물건이 없어요.”

“성녀의 거울이 제일 볼만하지 않을까요?”

“전 그건 포기했어요. 너무 비쌀 것 같아서.”

“슬슬 나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아, 지금이군요.”

적절한 농담으로 다시 장내의 분위기를 띄운 진행자가 마지막 아이템의 경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자, 이 아이템을 기다리시던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오늘의 마지막 출품물, 바로 성녀의 거울입니다!”

경매가 시작되자마자 엄청난 속도로 가격이 치솟기 시작했다. 패트릭이 이미 우승을 맡아 놓은 듯 낄낄거리며 웃었다.

하지만 나는 느긋하게 기다렸다.

필리아 과수원의 어디쯤에서 유물을 찾을 수 있는지, 상세한 정보를 넘겼다. 로디가 상인이라면 마음이 동할 수밖에 없는 정보였다.

이렇게까지 떠먹여 줬는데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나도 이제 상관없다. 로디에게 공들이는 것보다는 적당한 상인에게 적당히 틸라를 팔아 치우는 쪽이 낫겠지.

오늘 경매의 최고 가격을 갱신하고 성녀의 거울 경매가 끝났다.

이제 로디의 그 기운 없는 얼굴을 볼 수 있겠구나.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기대하며 푹신한 소파에 등을 기댔다.

“어……?”

그러나 사회자는 이제 경매를 마무리한다고 말했다. 시크릿 아이템의 경매를 시작한다는 말은 없었다.

말도 안 돼, 어째서?

로디는?

그렇게 상세한 정보를 줬는데도 결국 움직이지 않은 거야?

“아빠…….”

“조금 더 지켜보자꾸나.”

그러나 초조한 나와 달리 아빠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부드러운 웃음을 띤 채 단상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빠의 여유로운 모습이 원망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 기분은 뭘까. 내가 생각보다 더 로디 실로프를 믿었던 걸까?

저주받은 목걸이를 낙찰받았으니, 패트릭이 180도로 개과천선하지 않는 한 머지않아 망하겠지.

그래서는 개운하지 않다. 사이다를 기대하며 고구마를 먹었는데, 뚜껑을 열고 일주일쯤 방치한 사이다를 마시는 느낌이란 말야.

우승자 심사가 끝나고, 결과가 적힌 종이가 진행자에게 전달되었다. 제 이름이 불리길 기대하며 패트릭이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그 순간이었다.

쾅!

큰 소리와 함께 경매장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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