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흙바닥에서 시작하는 흑막 생활
멋진 흑막이 되기 위한 조건에는 무엇이 있을까?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상황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음흉함?
흔적을 남기지 않는 철두철미함? 냉정하고 잔인한 성격?
‘크크큭!’ 하는 흑막 웃음?
모두 정답이지만 동시에 정답이 아니기도 하다. 흑막이 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요소는 따로 있다.
바로 돈이다.
돈 없는 흑막 본 사람?
없을걸. 뭐든지 골드로 돌아가는 이 세계에서 골드 없이 어떻게 음모를 꾸민단 말인가. 돈 없는 흑막이면 그거 그냥 엑스트라잖아.
그러니 아빠를 흑막으로 프로듀스하기 제 1단계는, 바로 ‘왕국 재정을 개선하기’였다.
사기꾼 상인이 사기 친 돈을 도로 토해 냈지만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다다음 달까지의 식비, 인건비, 설비 관리비 등등에 쓰자 금방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상태창에서 실시간으로 골드가 녹는 알림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났다.
그리하여 현재 잔고는 여전히 3 골드.
[※ 원 포인트 레슨 : 왕국이 찢어지게 가난합니다. 이 상태가 지속될 시, 50일 뒤에 파산합니다.]
‘응, 나도 알아…….’
더군다나 시종장과 몇몇 고용인들은 상인이 추방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재빨리 튀었다. 눈치 하나는 빨라서는.
그놈들, 그리고 이므시 백작까지 당장 처리하고 싶었지만 마음속의 살생부에 기록만 해 두었다. 이미 저 멀리 튄 놈을 잡는 데 힘을 쏟기에는 급한 일들이 많았고, 무엇보다도…….
‘크로셀이 훌륭한 흑막이 되면, 다 핏빛 축제의 제물이 될 테니까. 크크큭…….’
그리하여 아빠를 흑막으로 프로듀스하기 제 1단계.
재정을 개선, 다른 말로 돈을 긁어모으기 위해서는 먼저 장부를 확인해야 했다.
과거 없이는 현재를 알 수 없으며, 미래를 추구할 수도 없다. 제대로 돈을 모으고 왕국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멋진 흑막 왕국이 어쩌다 이렇게 망했는지 그 이유를 파악하는 것이 시급했다.
‘좋아, 가 볼까.’
나는 아침을 먹은 뒤 방을 나서려 했다. 그런데 발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움직였는데도 사라가 따라붙었다.
“안젤리카 님, 어디 출타하시나요?”
“응, 잠깐 정원에서 산책을 하려고.”
“제가 정원까지 모시겠습니다.”
“바로 앞인데, 뭐. 혼자서 갈 수 있어.”
“저도 꼭 안젤리카 님과 산책하고 싶습니다.”
사라에게서 거절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느껴졌다. 도저히 그녀를 떼어 놓기란 불가능할 듯싶었다.
내가 새벽에 몰래 방을, 그것도 커튼을 타고 창밖으로 탈출한 일로 사라는 큰 충격을 받았다. 상인이 추방된 뒤 그녀는 나를 꼭 끌어안고 이렇게 말했다.
“아아……! 안젤리카 님이 사라진 걸 알고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그러다 그 사기꾼에게 위험한 일이라도 당하셨으면……!”
“괜찮아. 아무 일 없었잖아.”
“그 무도한 자가 밀어서 넘어지셨다면서요!”
“어? 그렇긴 하지만 정말 살짝이었어.”
“그자를 그냥 추방하기만 하다니 너무도 관대한 처사예요!”
“아, 하하…….”
사라가 길길이 화를 내며 앞으로 절대 몰래 빠져나가지 말라고 약속, 또 약속을 받아 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그녀는 매일 내 옆에 찰싹 붙어 다녔다.
사라를 떼어 놓기에 실패한 나는 계획을 바꿔 정원을 구경하기로 했다.
편의상 정원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그곳은 F급 찢어지게 가난한 왕국의 F급 낡고 좁은 왕성답게 그냥 삭막한 빈 땅이었다.
“아무것도 없네…….”
“아, 하하……. 안젤리카 님, 저쪽으로 가 보실까요?”
“응, 저쪽도 아무것도 없네…….”
“…….”
내가 <마.왕.꾸>를 플레이할 때는 여기에 커다란 황금 조각상까지 세워 놨었는데.
저쪽에는 멋진 대리석 분수, 저쪽에는 S급 조경수와 희귀 동물, 저쪽은 화려한 꽃밭…….
다 어디로 간 걸까……. 훌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