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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3)화 (3/133)

3화

상인이 가져온 기념 금화는 가짜였다.

정확히 말하면, 고대 왕국의 화폐는 맞는데 ‘기념 금화’는 아니다. 천 개밖에 찍어 내지 않아서 수집가들이 노리는 기념 금화와 달리, 저건 금의 순도가 낮아 가치가 떨어지는 일반 금화였다.

금화 한 개에 천 골드라니, 백 배, 아니, 천 배는 바가지다.

이는 <마.왕.꾸> 플레이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초보자 튜토리얼 퀘스트에 ‘기념 금화 구별하기’가 있기 때문이다. <마.왕.꾸>를 수천 시간 플레이한 나는 이제 눈 감고도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저 마크라는 잡상인…….

‘세계관 최종 흑막을 상대로 사기를 치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크로셀은 여전히 부드러운 표정으로 금화를 살펴보고 있었다.

평온하고 선량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당장에라도 돌변해 상인을 죽일까 봐 나는 가슴이 콩닥콩닥했다.

눈앞에서 피의 제전을 벌이는 것만은 참아 줬으면 좋겠다. 그게 내 미래일 것만 같아 무서워지니까.

“아시겠지만 결코 비싼 가격이 아닙니다. 수집가들이 얼마나 기념 금화에 목을 매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저희 상회와 늘 거래해 주시는 크로셀 님이라 특별히! 싼 가격에 드리는 겁니다.”

상인이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진짜 기념 금화라면 확실히 비싸게 되팔 수 있으니 남는 장사지만, 저런 가짜를 어디다 쓰겠는가.

그러나 크로셀은 생긋 웃으며 시원시원하게 말했다.

“좋아. 금화를 사겠네.”

“감사합니다, 크로셀 님!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으하핫!”

뭐, 뭐어어어?!

나는 이번에야말로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왜? 왜지? 왜 저렇게 가짜 티가 풀풀 나는 금화를 터무니없이 비싼 값에 사는 거야?

내가 얼이 빠진 사이에 거래는 진행되었고, 시종이 천 골드가 든 자루를 상인에게 건넸다.

상인은 아주 구두라도 핥을 기세로 굽실거리며(그야 그렇겠지. 엄청난 바가지를 씌웠으니까) 가짜 기념 금화를 건네고 대금을 받았다.

그 모습을 숨죽이며 보던 나는 불현듯 진실을 깨달았다.

‘아! 알았다! 졸렬 플레이 중이었구나!’

졸렬 플레이란 <마.왕.꾸>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게임 공략법이다. 다른 말로는 얍삽이, 혹은 돈세탁 플레이라고도 한다.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가 키우는 왕국이 성장하면, 이웃 왕국도 자동으로 강해진다. 플레이어는 비슷한 수준으로 강해지는 이웃 왕국을 견제하며 게임을 진행해야 하는데, 이건 아주 피곤한 일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왕국 레벨을 올리지 않고 약한 척을 하는 것이 졸렬 플레이다.

자동으로 레벨이 올라가지 않게끔 돈을 다른 곳으로 빼돌린 다음, 약한 척을 하다가 이웃 왕국을 털어먹는다.

이를테면 ‘힘을 숨긴 왕국’이랄까.

나는 <마.왕.꾸>의 유저 커뮤니티에서 흑막 엔딩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졸렬 플레이를 해야 한다는 공략을 보았다. 그 공략대로 졸렬 플레이를 했으니, 내가 키운 캐릭터인 크로셀이 똑같은 짓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

반짝반짝한 은빛 머리카락, 곱게 뻗은 눈매, 상처 하나 없는 우윳빛 피부……. 크로셀은 청순가련함을 사람으로 빚은 듯 아름다웠다.

‘저렇게 멋진 외모에 졸렬이라니 굉장히 안 어울리는 단어기는 하지만…….’

이곳 데네브 왕국이 가난해 보이는 이유도 이제 납득했다. 싸구려 물건을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비싸게 사는 척하면서 돈을 숨겨 두는 거겠지.

정석적인 돈세탁 방법이다. 저 악덕 상인은 단지 졸렬 플레이의 협조자일 테고.

‘뭐야, 그랬구나. 그럼 그렇지, 아하하.’

의문이 전부 풀렸다. 역시 내가 키운 최강이자 최악의 흑막 캐릭터가 사기꾼한테 눈 뜨고 당할 리가 없지.

하마터면 눈앞에서 호구 잡히는 고구마 전개인 줄 알 뻔했네. 아유, 속 시원해.

헉, 가만 생각해 보니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그러면 결국 크로셀은 흑막이 맞는다는 결론이니까.

안젤리카를 약혼시킨 것도 졸렬 플레이의 일환이었으니, 내 사망 가능성은 상승한 셈이다.

‘으, 무서워…….’

이런 생각에 푹 빠져 있느라, 나는 상인이 응접실을 나가려고 하는 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벌컥!

상인이 갑자기 응접실 문을 당겨 열었다. 문에 기대서 있던 나는 그 바람에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다 앞으로 넘어졌다.

“으, 으아아!”

꽈당!

갑자기 튀어나온 나를 보고 상인이 놀라 물었다.

“헉, 안젤리카 님이 아니십니까! 안젤리카 님께서 여기는 어인 일이십니까?”

“아하하……. 안녕하세요…….”

머리통 위로 내리꽂히는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차마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바짝 굳어 버렸다. 히이익, 엿들은 걸 들켜서 죽는 건 아니겠지?

“…….”

“…….”

이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지만, 언제까지나 바닥에 엎드려 있을 수도 없었다. 나는 마지못해 바닥에서 주춤주춤 몸을 일으켰다. 아. 시선이 따갑다.

“그, 그게! 일부러 엿들으려던 건 아니구요! 지나가다가…… 그냥 지나가던 중이었는데, 문이 열려서!”

왜일까. 말하면 말할수록 제 무덤을 파고 있는 기분이 든다.

“이리 오렴, 안젤리카.”

열심히 결백을 주장하는 나를 향해 크로셀이 손짓했다. 너무 무서웠지만 응접실은 탁 트였고, 도망칠 곳은 없었다.

“얼른, 아빠한테 와야지.”

내가 머뭇거리자 크로셀이 재촉했다. 그에게서 거절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기백이 느껴졌다.

“자네는 이만 가 보게.”

아, 안 돼! 돈세탁 협조자인 사기꾼 상인이라고 해도, 지금은 다른 사람의 눈이 절실하단 말이다.

가지 마, 목격자!

“예,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그러나 내 애타는 눈빛 공격은 상인에게 조금도 통하지 않았다. 상인이 물러나고 소리도 없이 응접실 문이 닫혔다. 시종도 내보낸 상태라 이곳에는 크로셀과 나, 둘밖에 없다.

한마디로 완전 밀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밖에서는 알 수 없다는 뜻이다.

나는 머릿속으로 엿들은 일에 대한 변명을 쥐어 짜내며 크로셀에게 주춤주춤 다가갔다. 크로셀은 의자에 나를 앉히고는 뒤에 섰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렴.”

“네, 네에…….”

그러나 극도의 긴장 때문에 몸이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렸다. 내가 좀처럼 진정하지 않자 크로셀이 어깨를 꾹 눌렀다.

“안젤리카, 가만히, 얌전히 있으라니까.”

“네, 네에에에.”

가만히 안 있었다간 바로 죽일지도 몰라! 지금은 그의 말을 따르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나는 돌멩이다, 돌멩이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무념무상의 돌멩이다. 게임 세상에 돌멩이로 환생했다고 생각하자.

뒤에서 크로셀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무얼 하는지 궁금했지만, 눈길이 닿는 곳에 거울도 없고, 움직이지 말라고 해서 뒤돌아볼 수도 없었다.

이따금 머리에 콕콕 찌르는 듯한 감촉이 느껴졌다.

‘설마 그…… 그건가? 독침?’

<마.왕.꾸>의 아이템 중에 A급 독침이 있었는데! 살짝만 찔러도 즉효를 내는 데다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아서 암살용으로 인기가 많은 아이템이었다.

졸렬 플레이, 아니, 돈세탁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고작 그런 이유로 딸을 독침으로 찔러서 암살하려는 거야?!

무섭다. 내가 플레이한 게임의 크로셀 데네브라면 충분히 할 법한 일이라서 더욱 무섭다.

“…….”

“…….”

고요 속에서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며,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는 몇 분이 지난 후.

“자, 다 됐다.”

크로셀이 내게서 손을 떼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뭐…… 뭐가요?”

크로셀이 서랍에서 손잡이가 달린 거울을 꺼내더니 내게 건넸다. 거울에는 양 갈래로 나뉘어 예쁘게 묶인 분홍빛 머리카락이 비쳤다.

“우리 안젤리카 머리카락이 풀려 있길래 새로 묶었단다. 어떠니? 아빠가 보기에는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마음에 드니?”

내 머리 모양은 전문가의 손길을 거친 듯 완벽했다. 귀밑으로는 옆머리를 자연스럽게 내고, 뒷머리는 둘로 나누어 묶어 풍성하게 늘어뜨렸으며, 머리 위에 달린 리본은 앙증맞았다.

그러나 나는 멋진 머리 모양에 감탄할 만한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거울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네네! 엄청 예뻐요.”

그러나 내 대답에 크로셀은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눈이 어딘가 까마득히 먼 곳을 본다. 뭐지? 대체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거야?

“아빠는 이렇게 우리 딸 머리카락을 묶어 주고 싶었단다.”

“아, 아하하…….”

“무슨 일 있니? 안젤리카, 안색이 좋지 않구나.”

아직 도주 준비를 제대로 하지도 못했는데 벌써부터 의심받을 수는 없다. 나는 황급히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이어 붙였다.

“아, 아니요! 너무 예뻐서, 그러니까…… 너무 예뻐서 깜짝 놀라서 그랬어요. 정말 마음에 들어요.”

하지만 크로셀은 여전히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눈썹을 살짝 늘어뜨리고 묘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겉모습만은 청순가련한 미인 아빠가 그런 얼굴을 하자 파괴력이 장난 아니었다.

‘이것도 아니야? 그럼 대체 뭘 원하는 건데?!’

모르겠다. 이 흑막의 마음을 도저히 모르겠다. 돈세탁 현장 목격자를 제거하기 위해 당장 나를 죽이지는 않을 것 같으니 다행이지만…….

‘어쨌건 지금은 의심을 사선 안 돼. 의심을 사지 않으려면…… 에라, 모르겠다.’

결심했다. 나는 의자에 무릎을 대고 몸을 일으켜 크로셀 쪽을 향했다.

“고마워요, 아빠.”

쪽.

눈을 꼭 감은 채 크로셀의 하얀 뺨에 입술을 내리눌렀다. 차마 눈을 뜨고는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참 기다려도 크로셀은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주춤주춤 물러난 뒤 조심스레 눈을 떴다.

“……하하.”

크로셀은 환하게 웃었다. 아름답게 뻗은 눈매를 접으며 상냥하게.

겉모습만 보아서는 흑막이 아니라 다정한 아빠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안젤리카가 마음에 들어 하니 나도 기쁘구나.”

휴, 이게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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