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1)화 (1/133)

1화

1장. 흑막 아빠가 너무 착해

<두근두근 마법 왕국 꾸미기>라는 게임이 있다. 줄여서 <마.왕.꾸>.

비록 제목은 유치하지만 이래 봬도 갓겜이다.

플레이어는 게임 속 세계의 신적인 존재가 된다. 그리고 다양한 캐릭터 중 한 명을 주인공으로 선택해 왕국을 경영한다.

목표는 왕국을 더 크고 강하게 성장시키는 것. 즉, 판타지 왕국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왕.꾸>는 미려한 그래픽과 다양한 콘텐츠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자유로운 육성과 풍부한 스토리, 이웃 왕국과의 경쟁 등 여러 요소 덕분에 수백, 수천 시간을 플레이하는 사람도 많았다.

딱 하나, 버그가 많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내가 <마.왕.꾸>의 숨겨진 엔딩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후후후…….”

나는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화면을 보았다. 노동으로 키운 멋진 내 왕국이 화면 속에 있었다. 이제 엔딩만 보면 된다.

이 게임에는 숨겨진 엔딩이 존재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바로 흑막 엔딩. 보통 게임 플레이 시 악역으로 등장하는 마왕 캐릭터를 선택해, 왕국을 S 랭크까지 성장시켜야 볼 수 있는 엔딩이다.

플레이어는 악(惡) 성향이 되어 왕국을 경영한다. 다른 캐릭터와는 다른 악역 플레이는 속 시원한 맛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버그였다. 알 수 없는 버그가 발생하는 바람에 아무리 해도 S 랭크를 달성할 수 없었다. 버그를 고쳐 줄 게임사는 몇 년 전에 쫄딱 망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포기했을 테다.

그러나 나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두근두근 마법 왕국 꾸미기>를 수천 시간 동안 플레이한 슈퍼 플레이어지.

딱 하나, 흑막 엔딩만 보면 올 클리어인 상황이었던 만큼 도무지 포기가 되지 않았다. 수많은 시도 끝에 좌절한 나는 <마.왕.꾸>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얻어 보기도 했다.

작성자: 님들 흑막 엔딩 어케 봐여??? 아시는 분??

└익명: 버그 때문에 안됨 ㅅㄱㅇ

└작성자: 게임에 엔딩을 만들었으면 볼 수도 있게 해줘야지ㅜㅜㅜㅜㅜ

 └익명: 왜 나한테 그러심;; 제작사한테 따지세여

 └익명: 회사 망했음ㅋㅋㅋ 마왕꾸2 만들다가 부도남ㅋㅋㅋㅋㅋㅋ

 └작성자: ㅠㅠ

└익명: F급 모험가를 레벨 99까지 키우면 버그 없어짐

 └익명: ㅁㅊㅋㅋㅋㅋㅋㅋㅋ F급 쓰레기캐를 99까지 어떻게 올림ㅎㅎ;

 └작성자: ㅇㅋㅇㅋ 접수

나는 그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렸다.

F급 모험가 브레드 따위에게 온갖 고급 아이템을 다 먹여서 키워 줬다. 브레드는 어마어마하게 약했다. 한 대만 맞아도 픽 쓰러지는 캐릭터를 지루한 반복 작업 끝에 레벨 100까지 키웠지만.

[알 수 없는 오류가 발생하여 게임이 종료됩니다.]

“이 버그 망겜……!”

작성자: 마왕꾸 제작사 사장 어디 삼???? 주소불러봐

└익명: 님 갑자기 왜 급발진함;;;;

└작성자: F급 브레드 레벨 99까지 키웠는데 흑막 엔딩 안뜸ㅡㅡ

 └익명: 헐 그걸 믿었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구라였는데?

 └작성자: ㅂ;미ㅏㄷㅈ먹ㄷㅈㅅ햐ㅔ미ㅏㅇㄹ

 └작성자: 서러워서 살겠나ㅜㅜㅜㅜㅜㅜㅜ 플탐 천시간을 찍었는데 엔딩을 못보네ㅜㅜ

 └작성자: 흑막 엔딩 좀 보게해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익명: 님 포기하세여 흑막 엔딩 아무도 못봤음

└익명: 졸렬 플레이하면 흑막 엔딩 볼 수 있음

 └작성자: 이번에는 안속음ㅡㅡ

 └익명: ㄴㄴ진짜임 나 그걸로 흑막 엔딩 봤음

 └작성자: 엔딩을 봤다고????????

 └익명: ㅇㅇ공략 보고 하셈 ☞링크

진짜 흑막 엔딩을 봤는지 자세히 묻고 싶었는데 댓글은 금방 삭제되었다. 어쩐지 의심스러웠지만 그 댓글에 달린 공략 사이트만이 내게 남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나는 <두근두근 마법 왕국 꾸미기>를 다시 켰다. 그리고 최강이자 최악의 흑막 캐릭터, 대마왕 크로셀을 선택하고 공략에 따라 게임을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뒤, 바로 지금.

“후후후후…….”

SSS급 왕국에 SSS급 기사단, SSS급 악명, 최고치까지 모은 금화.

종합 랭킹 SSS!

내가 키운 완벽한 왕국과, 완벽한 SSS급 흑막이 화면 속에 있었다. 하아, 멋져. 외모 커스텀은 물론이고 눈빛마저도 악당 같구나.

화면에 엔딩이 시작되기 전의 스태프 롤이 떴다. 나는 뿌듯한 마음을 느끼며 냉장고에서 차가운 캔 음료를 꺼냈다.

치익, 탁.

차가운 탄산음료로 멍한 머리를 깨우자, 그제야 의문이 떠올랐다.

‘그런데 지금 몇 시지?’

대체 몇 시간 동안 깨어 있던 거지. 최소 이틀은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한데……. 어쩐지 몸이 찌뿌둥하고 눈이 뻑뻑하더라니. 엔딩만 보고 자자.

긴 스태프 롤이 끝나고 화면에 메시지가 떴다.

[불가능한 업적! 축하드립니다. 히든 엔딩을 달성했습니다.

계승을 위해 플레이 데이터를 보존하겠습니까?

네 / 아니요]

나는 별생각 없이 ‘네’를 선택했다. 이제 기다리고 기다리던 흑막 엔딩이 나올 텐데…….

바로 그때였다.

“큭, 쿨럭, 쿨럭!”

입에서 기침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가슴에서 엄청난 아픔이 느껴졌다. 아픔은 점점 더 심해져서 몸을 가누기도 힘들 정도였다.

“윽, 아파……. 으윽…….”

공교롭게도 나는 혼자 있었다. 도움을 청하기 위해 책상 위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119를……. 쿨럭, 쿨럭!”

땀에 젖은 손에서 핸드폰이 미끄러졌다. 곧 격통과 함께 눈앞이 흐려졌다.

그렇게 의식을 잃었다가 눈을 떴는데.

“엥……?”

나는 <두근두근 마법 왕국 꾸미기>의 세계에 빙의해 있었다.

* * *

난데없이 게임에 빙의하다니.

그것도 히든 엔딩을 보겠다고 밤까지 새워 가며 게임하다가 심장 마비로 쓰러졌기 때문이라니.

‘내가 쪽팔려서 진짜.’

차라리 빙의 트럭에 치였다면 쪽팔리지라도 않았을 텐데.

현실을 부정해 봤지만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다.

풍성한 분홍빛 머리카락, 동그란 뺨, 커다란 눈동자, 그리고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의 몸.

무척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낯선 외모가 거울 속에 있었다. 죽기 전의 나와는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내가 게임에 빙의했다고 확신한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까부터 눈앞에서 번쩍거리는 상태창이다.

[이름 : 안젤리카 ??? (플레이어)

직위 : ??? 왕녀

소속 : ??? 왕국

나이 : 10세

레벨 : 1

특성 : 우리 아빠 딸(A)

종합 능력치 : F

HP : 10/10   MP : 100/100

공격 : 3   방어 : 3   마법 : 9]

[<두근두근 마법 왕국 꾸미기>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현재 플레이 데이터를 로딩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내가 헷갈리기라도 할까 봐 상태창에는 친절하게 게임 이름까지 적혀 있었다.

나는 <마.왕.꾸>를 수천 시간 동안 플레이했고, 주요 캐릭터는 줄줄 외울 정도로 잘 알았다. 하지만 ‘안젤리카’는 왕녀인데도 누구인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 안젤리카란 친구는 능력치가 엉망진창이었다. 특히 HP는 최저치로 설정되어 있어서 조금만 무리해도 픽 쓰러질 것 같았다.

얘는 대체 무슨 캐릭터지? 왜 이 모양 이 꼴인 걸까.

‘시스템.’

[현재 플레이 데이터를 로딩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몇 번 더 시도해 봤지만 똑같은 메시지만 떴다. 지금으로서는 더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아…….”

지끈거리는 머리를 푹신한 베개에 기대는 그때, 달칵하고 문이 열리더니 시녀가 들어왔다.

“안젤리카 님……! 깨어나셨군요!”

시녀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내 머릿속은 여전히 텅 빈 상태였다. 빙의하기 전에 이 몸이 지니고 있던 기억은 남아 있지 않은지,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모르겠다.

나는 기억이 없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이마를 부여잡고 신음했다.

“으, 으윽. 머리야. 어떻게 된 일이지? 머리가 아파서 잘 기억이 안 나.”

걱정이 많은 성격인지, 시녀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흑……. 그게……. 안젤리카 님은 나무에 머리를 부딪쳐서 쓰러지셨어요. 깨어나셔서 다행이에요.”

“저, 저기, 울지 마. 봐, 멀쩡하잖아.”

“네……. 안젤리카 님이 무사하신데 눈물을 그쳐야겠지요. 흑…….”

나는 이 눈물 많은 시녀를 달래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안젤리카가 무슨 캐릭터인지는 몰라도 왕녀인 것은 확실했다.

능력치는 엉망진창이지만 신분이 왕녀인데 뭐 어떠랴. 앞으로 놀고먹는 황금빛 미래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일단 여기가 어떤 왕국인지 파악해야겠다. 나는 간신히 울음을 그친 시녀에게 말을 걸었다.

“나 좀 일으켜 줘.”

“안젤리카 님, 아직 몸이 낫지 않으셨어요. 누워 계시면 제가 의사를 불러올게요.”

“괜찮아. 그냥 머리에 혹이 났을 뿐인걸.”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열 살짜리 아이의 짧은 팔다리와 화려한 분홍빛 머리카락이 아직 어색했다.

시녀의 만류를 뿌리치고 방문을 열려던 찰나였다.

벌컥!

내가 문을 열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문 앞에는 방으로 막 들어오려던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그런데 이 남자…….

‘윽, 눈부셔.’

……아름답다.

길게 기른 은빛 머리카락은 찬란하게 반짝거렸다. 이목구비는 선명하면서도 조화로웠고, 속눈썹마저 긴 데다, 푸른빛 눈동자는 별처럼 반짝거렸다.

그야말로 천사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아름다운 외모였다.

다만, 저 얼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안젤리카가 깨어났다고?”

“네, 크로셀 님. 조금 전에 의식을 차리셨습니다.”

시녀가 황급히 아름다운 남자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크로셀?’

설마, 그 대마왕 크로셀?

에이, 말도 안 돼. 아무리 그래도 <마.왕.꾸> 최강이자 최악의 흑막이 왜 여기 있겠어.

그러나 내 현실 도피를 가로막으려는 듯 곧장 상태창에 정보가 떴다.

띠링!

[이름 : 크로셀 데네브

직위 : ??? 왕(??)

소속 : 데네브 왕국

레벨 : 로딩 중

특성 : 로딩 중

……(로딩 중)]

“……아.”

“안젤리카, 괜찮니?”

크로셀 데네브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살폈다.

그러나 나는 하얗게 질린 채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마.왕.꾸> 세계관에서 최강이자 최악의 흑막 캐릭터, 대마왕 크로셀! 흑막 엔딩을 보기 위해 내가 플레이한 악(惡) 성향의 캐릭터였다.

끔찍한 깨달음이 뇌리를 스쳤다.

나, 흑막의 외동딸로 빙의한 거구나.

“아, 안젤리카! 정신 차리거라!”

충격을 받은 나는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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