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몰락귀족-52화 (52/60)

제국주의(2)

기병들이 서로를 향해 달린다.

흉갑, 손에 든 총, 흉흉한 기세.

세계 반대편에서 태어난 두 군대의 모습은 묘하게도 비슷했다.

퀴레시어는 본래 영국에 없는 병과, 골머리를 앓던 영국 군사고문단은 프랑스군을 모델로 해서 퀴레시어의 장비와 전술을 교육시켰고, 베트남군의 복식 역시 이에 수렴진화할 수밖에 없었다.

곧장 총성이 울렸다. 베트남 기병들은 다가오는 프랑스군을 향해 세총통을 쐈다.

총이 발사되면 곧장 쇠집게를 뻗어 장전되어 있는 다른 총통을 집는다. 숙련된 이들은 몇 초조차 되지 않아 이 모든 것을 해냈다.

떨어지는 명중률은 연사력으로 보완한다, 예상대로라면 이를 통해 프랑스군에 비해 베트남군이 기병전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베트남 측이 예상치 못한 게 있었다면.

-탕! 탕! 탕!

프랑스군의 연발 권총이었다.

38구경 핀파이어 하모니카 권총을 뽑아든 프랑스 기병들이 마상에서 권총을 연사하자 세총통의 연사력은 하모니카 권총을 따라가지 못했다.

리볼버의 여러 원형 중 하나라 불리는 하모니카 권총을 단발 권총을 갈아끼우는 식으로 상대하겠다는 것부터가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볼트액션 소총으로 반자동 소총을 상대하는 격이었다.

순식간에 기병대의 수가 줄어들자, 망원경으로 그 꼴을 보던 조연은 이를 갈았다.

“젠장! 저건 뭐죠?”

“저런 무기를 프랑스군이 운용한다는 정보는 없었어. 꼴을 보니 리볼버 같은데.......”

망원경으로는 총의 형태를 확실하게 파악할 수 없었던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아직 끝난 건 아냐. 어차피 현대전에서 기병이 할 수 있는 일을 극도로 제한적이다. 전장의 승부는 포병과 보병이 가른다.”

보병은 탱커, 포병은 딜러, 추격은 기병.

중기병은 추격에 적합하지 않고, 오직 기병을 상대하는 데만 적합하다.

“저런 연발총을 전군에 보급했으면.....”

“그건 불가능해.”

나는 딱 잘라 말했다.

“돈 없는 거지 신세인 프랑스가 저걸 전군에 어떻게 보급하나. 게다가 리볼버는 구조상 소총 크기로 확장하는 게 거의 불가능해.”

예외가 없진 않지만 그 예외들이 이 시대에 있을 리가.

“어차피 우리 중기병이 전멸해도 적 중기병대도 제법 피해를 입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니까 포격전과 보병전을 준비해, 아직 승산은 우리에게 더 크다!”

“...... 좋아요.”

믿어 보겠다는 듯, 조연은 즉시 명령을 하달했다.

그 직후, 프랑스 퀴레시어들이 돌격해 왔다.

-타타타타탕!

단 한 번의 총격에 그들 대부분이 낙마했다. 퀴레시어들은 남은 탄을 전열의 방진에 쏘았지만 큰 피해를 줄 수는 없었다.

잠시 뒤 방진에 뛰어든 기병들과 총검으로 무장한 총병들의 전투가 벌어졌다.

“저놈들, 흉갑을 일부만 입고 있군.”

기병도로 총검에 저항하다가 말에서 떨어지는 퀴레시어는 분명히 승마복 차림이었다.

흉갑이 없다.

프랑스가 돈이 없다는 추측이 사실이라는 방증이었다.

바닷물에 떨어진 각설탕처럼, 애초에 몇 명 남아있지도 않던 기병들은 방진을 크게 손상시키지도 못하고 무너졌다.

“프롤로그는 끝났다. 이제......”

본편이 시작된다.

일제히 포성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영국군에 의해 철저히 조련되고, 프로이센제 크루프 야포로 중무장한 베트남 포병들은 프랑스 포병대부터 우선적으로 타격했다.

질도 결코 윗줄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없는데 숫적으로도 밀린다.

신형 야포는 물론이고 구형 대포들까지 총동원된 화망에 프랑스군이 구축했던 포대들은 하나하나 파괴되어 갔다.

그리고 보병들이 서로를 향해 접근했다.

***

-탕! 타타타탕!

베트남군의 선제사격이 날아온다.

아직 이 시대에는 사격전보다 사격전 말미에 벌어지는 총검돌격이 더 상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시대.

양측의 군대는 서로가 돌격 거리에 들어올 때까지 장전과 사격을 반복하고, 그러다가 상대가 사상자가 누적되어 방진이 흐트러지거나, 사기가 꺾이는 등의 상황이 닥쳐 돌격 기회를 잡는다면 상대에게 돌격해야 했다. 그건 모든 유럽 군대의 전쟁의 표준이다.

강변 등 돌격에 적합하지 않은 지형에서 전투를 벌여야 할 경우 경보병을 대거 투입해 정밀사격을 가하기도 하지만, 경보병들만으로는 결코 전열보병을 이길 수 없으니 결국 총격전이 벌어져야 한다.

그래야 했다.

그러나 이건 뭔가.

-퍼억!

사람의 머리가 수박 터지듯 터져나가며 핏물을 흩뿌린다.

어떤 총알은 사람을 관통해 그 뒤의 병사마저도 쓰러트렸다.

제대로 된 피해를 주지 못할 거리임에도 병사들이 우수수 쓰러진다.

훨씬 긴 사거리와 우세한 파괴력. 미니에 탄이 개발되려면 아직 몇 년 남은 탓에 아직도 납구슬을 쓰는 프랑스군을 상대로 베트남군이 사용하는 원추형 탄환은 프랑스군의 전열을 순식간에 무너트렸다.

재장전, 조준, 발사.

-타타타타탕!

병사들이 녹아내린다. 그 외의 표현으로는 이 모습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총구 앞으로 담대하게 걸어가는 것이 정예병의 증거인 시대지만, 아무리 정예병이라고 해도 탄환이 아군 사격이 제대로 피해를 줄 수 없는 거리에서 우수한 연사력으로 날아들어 쓰러트리면, 그 결과 돌격은커녕 그 전에 다 죽게 생겼다면.

선택권이 많지 않았다.

“속보!”

프랑스 장교들이 고함을 질렀다.

“대열을 유지하면서 속도를 올려! 놈들을 우리 사거리 안에 넣는다! 빨리!”

이러다 다 죽게 생겼다.

사거리에, 파괴력에, 연사력까지 모조리 뒤쳐진다. 대체 상대는 얼마나 정예 병력인 건가. 영국군의 레드코트가 옷만 갈아입고 오기라도 한 건가?

-탕! 탕탕!

베트남 측에서도 사상자가 나기 시작했다. 프랑스군의 경보병들이 장거리 사격을 가해 피해를 주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경보병은 전열보병을 괴롭힐 수는 있어도 결정적으로 이길 수는 없다. 베트남군은 쓰러졌지만, 곧 다른 병사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당연히 그들이 뒤집어써야 하는 화망은 전혀 옅어지지 않았다.

총알을 무릅쓰면서 앞으로 나아간 프랑스군은 얼마 가지 않아 적을 사거리 안에 넣었다.

“장전!”

약접에 화약을 넣고, 총구에 둥글게 뭉쳐진 화약을 붓고, 둥근 납구슬 탄환을 총구에 넣고 꼬질대로 쑤신다.

“조준!”

총을 견착한다.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초짜들이나 부싯돌의 불꽃에 눈부시다며 시선을 돌린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움찔거려 조준을 흐트러트리는 병사들이 여럿 보인다. 훈련 부족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는 신병이 아니다.

몸에 배어 있는 익숙한 제식 동작으로 조준선을 정렬한다.

“발사!”

방아쇠를 당긴다. 부싯돌이 마찰하며 불꽃을 일으키고, 닫힌 약협이 열리면서 점화약에 불이 붙고, 그 불이 화약을 점화시킨다.

-타타타타타타타탕!

곧장 베트남군 여럿이 쓰러진다. 검은 제복과 흰 내의 위로 피가 번져간다.

“재장전!”

-타타타타타타타탕!

그들의 사격에 화답이라도 하듯 상대도 다시 쏜다. 전우들이 쓰러진다.

통상적인 탄과는 다르게 베트남군의 탄은 목표에 닿는 순간 깨지면서 심각한 부상을 입힌다.

계속해서 이렇게 쏘면서, 자신이 맞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프랑스 원정군 소속 부사관인 줄리앙은 전투가 끝날 때까지 자신이 사지 멀쩡하게 살아남기를 빌었다.

잠시 뒤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진형이 흐트러진다. 산탄에 맞은 병사들은 그대로 피떡이 되었고, 구형 쇠구슬 포탄은 바닥에 튕기면서 전열의 병사들의 장딴지 아래를 모조리 으깨버렸다. 한 명만 죽는 것도 아니고 포탄이 제대로 떨어지면 그 경로에 있는 자들 전부가 몰살당한다.

빌어먹게도 아군 포병은 전멸하기라도 했는지 포탄은 프랑스군에게만 떨어지고 있었다.

“빌어먹을 놈들.”

저게 어디를 봐서 토인들 따위라는 거냐.

저건 명실상부히 유럽의 정예군에 비해도 부족함이 없다. 이야기 속의 레드코트나 저 정도로 정예했을까, 한때 위대했던 프랑스의 제국 근위대가, 그 나폴레옹이 그토록 총애했다는 고참 근위대가 저렇게 정예했을까.

씬 레드 라인이 아니라 씬 블랙 라인 아닌가. 저건.

그 순간, 그의 눈에 자신들의 왼쪽에서 뭔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돌격? 아니다. 엄폐하는 건가? 왜?

물론 강가처럼 사격 후 총검돌격을 하기 어려운 지점에서는 엄폐한 채 총을 쏘는 경보병들이 다수 동원되기는 하지만 이곳에서는 아니다.

경보병들을 동원하기에는 여러모로 애매한 지형이다, 운용하려면 못할 건 없지만 운용해서 전열보병들에게 큰 피해를 주기는 어려운 지형인데, 왜?

그 의문을 그가 풀 일은 영원히 없었다.

미쳐 고막과 신경이 폭발음을 그의 뇌에 전달해주기도 전에 전에 그의 코앞에서 일어난 폭발과 함께 그의 몸에 파편 수천 개가 퍼부어지면서 즉사했기 때문이었다.

***

도르레를 이용해 화살을 당긴다.

앞부분에 물린 활에 달린 캠과 모듈이 회전하고, 활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진다.

그리고 장전이 완료된 직후, 컴파운드 쇠뇌에서 화살이 발사된다.

심지에 불이 붙은, 파편을 가득 채운 도자기 수류탄이 묶인 화살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프랑스군의 대열 한가운데에서 폭발한다.

보병 대 보병 간의 전투에서 압도적인 화력을 발휘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던 젠티안 자작이 만들어낸 걸작, 척탄기였다.

근본적으로 그 구조는 컴파운드 보우를 이용한 석궁과 안정 막대가 달린 화살형 수류탄을 조합한 것이었지만, 공사는 이를 유탄발사기처럼 사용하는 것을 제안했다.

척탄병들에게 소지시키고 먼 거리에서 수류탄을 퍼부어 적들의 대열을 와해시킨다.

총격에다가 포격, 거기에 폭탄 화살까지 덤으로 얻어맞은 프랑스군의 대열이 흐트러지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숙명이었다. 프랑스 장교들은 엽병들을 이용해 척탄병들을 저지하려 하거나 병사들의 사격을 척탄병에게 유도하는 등 갖은 수를 다 썼지만 어느 것 하나 성공적이지 못했다.

전쟁은 전략 게임이 아니었으니까. 이 시대에 전투가 벌어진다고 해도 장교들이 대열을 지키게 하는 것과 돌격명령을 내리는 것 외에는 병사들의 통제가 거의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벼락같은 외침이 터져나왔다.

“침략자들을 몰아내자! 베트남 만세!”

“황제 폐하 만세! 와아아아아!”

총격을 가하면서 거리를 계속 좁혀온 베트남군은 적들이 충분히 줄었다고 판단하자 마지막 탄환을 쏘아버리고는 총검을 들고 돌격하기 시작했다.

“돌격! 돌격하라!”

앉아서 두들겨 맞느니 돌격이라도 시키는 게 낫다. 그렇게 판단한 프랑스군 역시 돌격을 명령했다.

그러나, 그들의 수는 이미 한참 줄어 있었다.

여러 차례의 전투경험이 있다 한들, 개개인의 훈련도가 베트남군보다 우위라고 한들, 화력 자체가 뒤쳐졌다.

포병대가 수에 밀려서 궤멸하고, 기병들도 허망하게 총병대에게 돌격하다가 죽어나가고, 마지막 남은 보병들에게는 불나방처럼 사지로 뛰어드는 것 외에는 어떠한 선택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날, 프랑스 원정군은 상정할 수 있는 최악의 패배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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