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몰락귀족-51화 (51/60)

제국주의(1)

<....... 종이로 만든 통 안에 총알과 화약, 퍼거션 캡을 일체화시킨다는 구상이 이미 프로이센에 있다는 건 아실 겁니다. 알아보니 비슷한 특허는 이미 몇 개 있더군요, 그리고 공사님이 보내주신 세총통이라는 동방의 신비한 무기에 대한 자료 역시 좋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이런 기술이 발전되지 못하고 잊혀지고 있었다니 너무 안타깝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공사님이 제안하신 방식의 신무기는 개발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다만 황동의 가격 자체가 문제가 될 공산이 큰데, 돈 쓰기 싫어하는 군이 채용할까 의심됩니다. 연사속도는 올라갈 거고, 프로이센이 지금 겪고 있다는 종이가 젖거나 찢어지는 문제는 확실히 방지할 수 있겠지만 황동은 비쌉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철을 사용하는 걸 권하는 바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훨씬 싸지 않습니까.>

<아무튼 프로토타입을 머잖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극동에서 이권을 넉넉히 따오시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요즘 회사는 어마어마한 호황이고, 더 많은 이권을 얻어올 수 있다면 무기 개발에 드는 예산 정도는 별 문제가 되지 않으니 염려 마시고 주문하십시오,>

브루넬이 보낸 편지를 훑어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금속 탄피를 사용하는 근대적 총기.

사실 핀파이어 탄약 같은 경우는 지금도 있다. 대중화되지 못했을 뿐.

“그나저나, 도광제가 대체 뭔 생각이지.”

청은 조선 정벌을 결의했다. 양면전선을 넘어 삼면전선을 자처하는 저 삽질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조선쯤이야 쉽게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고, 실제로 조선의 북병은 팔기군의 초기 공격에 박살났다.

그리고 팔기군은 얼마 내려오지도 못하고 약탈이나 저지르다가 평양은 구경도 못해보고 조선 의병들의 공격에 박살났다. 영국군이 개입하기도 전이었다.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아무튼 조선도 우리와 공동교전국이니 어느 정도 대우를 해 줘야 할 필요는 있겠지.”

“무기 정도는 공급할 겁니다. 베트남에 주던 물자를 이제 완전히 돌려야겠군요.”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프랑스 원정대가 드디어 출정했다.

“원래는 베트남만 원정할 계획이었다지만, 일본도 같이 개항시키겠다더군.”

영국 외무성이 전해준 정보는 명확했다.

-프랑스 원정군은 육전대와 해군이 별개로 행동할 예정, 해군이 베트남 해군을 전멸시키고 육전대를 상륙시킨 뒤, 베트남 해안을 떠나 일본을 강제로 개항시킬 예정.

프랑스의 오만이 극에 달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이 정도로 안이한 계획을 세우고, 한심할 정도의 정보 보안을 가진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열강은 대놓고 끼어들 수 없고, 청이 허망하게 무너지는 걸 보고 자신감을 얻었으니까.

이미 프랑스군의 수와 편제, 함대 편제 등이 내 손에 쥐어졌다는 것만 봐도 프랑스가 이 전쟁에서의 승리를 얼마나 당연시하는지가 뻔히 보였다.

‘그리고 당연히 여기는 것을 잃을수록 분노가 커지지.’

나는 끅끅대며 웃었다.

이제 조만간 파티가 펼쳐질 것이다.

프랑스에게 있어서 지옥같을 파티를.

“공사님, 자리를 비우실 겁니까?”

제독이 묻자, 나는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

“전쟁은 제독이 하면 되고, 외교야 조약 체결을 위해 포틴저 전권대사가 온다잖나.”

다시 말하지만 조약 체결 등은 내 권한 밖의 일이다. 아편전쟁을 끝내는 일도.

내가 아편전쟁을 실질적으로 지휘했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임시조치였다.

나도 본국이 내게 난징조약을 체결할 기회를 주지 않을까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나 혼자에게 모든 걸 다 맡길 수는 없다는 듯 별도의 전권대사가 지명되었다.

“조지 앨리엇 제독님이 본국으로 후송되셨고, 찰스 앨리엇은 말라리아로 사망했으며 후임자도 풍토병에 걸려 몸져누운 상태입니다. 공사님까지 자리를 비우시면....”

“그러니까 전권대사 헨리 포틴저 준남작님이 알아서 하게 놔두라니까?”

“준남작님이 아시아에 대해 아는 게 얼마나 되시겠습니까.”

“내 원래 임무와 직결된 문제야, 당연히 내가 가 있어야지, 이번 전쟁은 어디까지나 업무 외 일이란 말이네.”

본업과 부업을 헷갈려서는 곤란하다.

“조선군에 공급될 무기 정도는 구해놓고 갈 테니 그걸로 만족하게나.”

“알겠습니다. 그럼 공사님이 가시고 전권대사님이 부임하시기 전까지 협상 제안이 오면.....”

“그럴 권한이 있는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면서 거절해, 휴전 같은 건 받아주지 말도록, 본국에서는 이번 기회에 최대한 많은 것을 중국에게서 얻어내기를 원한다.”

“알겠습니다.”

***

베트남, 전변부.

베트남 조정은 극소수만 빼놓고 베트남에서 라오스로 들어가는 교통의 핵심 요지이자, 후일 디엔비엔푸라 불릴 지역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전쟁을 대비해서였다.

하노이나 후에에 조정을 유지하는 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해안에서부터 종심이 너무 짧으니까. 하노이는 그래도 100km 정도 되기는 한데, 강을 너무 큰 놈을 끼고 있어서 우리가 조선에서 한강 거슬러오른 것처럼 강을 거슬러오르면서 함대가 접근하면 방어하기 어렵다.

게다가 북부 베트남은 정글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다. 의외로 정글은 베트남 남부에나 있고, 베트남 북부는 기후도 중국 남부나 대만과 비슷하며 평탄한 편이다.

“현재 베트남은 흑적군의 존재로 유지되는 형국입니다. 저희만 무너지면 군웅할거가 시작될 거고, 시암, 크메르, 라오스 등이 모조리 반기를 들겠죠.”

참수작전에 성공하면 프랑스는 대박, 우리는 쪽박이다.

그러니 내륙 깊숙한 데로 최고지휘부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군이 폭격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한 뭔 수를 쓰든 디엔비엔푸까지 어떻게 오냐.

물론 최고지휘부가 없다고 하노이나 후에 등이 무너지게 놔둬서는 안 되지만.

“괜히 황제를 후에에 놔둔 게 아니죠.”

우리가 도망친다는 인상을 줘서는 안 되니까.

“그래도 프랑스 해군이 오래 있지 않는다고 해서 다행입니다. 후에는 해안에서 너무 가깝다지만 하노이를 비운 건 프랑스 해군이 홍 강이나 동 강을 통해서 하노이까지 진출할까 봐 비운 건데, 그럴 일이 없을 테니까요.”

“해안포대는?”

“화포도 모자라고 시간도 모자라서 있는 거 그냥 전부 포병으로 돌렸습니다.”

나는 곧장 지도를 펼졌다.

“프랑스군은 이곳, 할룽 아니면 하이퐁에 상륙할 가능성이 높네, 습한 열대우림을 헤치고 오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다낭은요?”

“공격당하겠지만, 아마 상륙하지는 않을 모양이네, 치고 빠지겠지.”

베트남 신정부의 중심지는 하노이다.

프랑스군의 입장에서는 베트남 최대의 도시이기도 한 하노이를 당연히 쳐야 한다.

서울을 탈환하기 위해 인천에 상륙했듯이, 하노이를 점령하려면 하이퐁이나 할롱을 장악해야 한다.

“지리상으로는 하이퐁이 좀 더 가능성이 높겠지, 더 보급이 용이하니까.”

홍 강을 따라 북상한다고 가정하면 더 남쪽일 수도 있지만, 함대를 뺐다는 건.......

“이놈들, 단기결전을 가정했구만.”

뭐 납득할 만 하다. 조선도 수도 따이니까 순식간에 손들었으니까.

수도만 무너트리면 동양 국가들은 한 번에 무너트릴 수 있다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얻었을 가능성도 다분하다. 당장 프랑스가 파리에 얼마나 의존하는지를 생각해 봐도 프랑스의 생각을 이해 못할 건 아니지만......

“그보다는 다른 이유가 있지 않겠나요.”

“있지. 당연히.”

나는 피식 웃었다.

“돈이 없었겠지.”

프랑스의 재정 상황은 거의 루이 16세 시기를 연상시킬 정도다. 문자 그대로 돈이 땡전 한 푼도 없을 지경.

이게 흔히 프랑스 혁명의 원인이라고 알려진 사치나, 실질적인 원인인 세금이 안 걷히는데 국가적으로 써야 할 돈은 많아서 생긴 만성적자라면 차라리 낫다.

세금은 잘 걷힌다. 물론 그 대가로 처절한 불경기를 감내해야 했지만, 아무튼 알짜배기 땅을 다 차지한 귀족층이 돈을 안 내는 일은 없다는 거다. 그랬으면 그 귀족층 배때지만 가르면 어떻게든 벌충이 가능하거든.

하지만 이건 그냥 국가 체급에 비해 벌여놓은 일이 너무 많아서 돈이 미친 듯이 빨려나가는 거다. 원정군 편성을 하느라 프랑스 재무부에서 얼마나 비명을 질렀으려나?

뭐, 사실 우리도 베트남에 무기 퍼주느라 돈 많이 쓰긴 했다만, 아무튼 간에 원정군 편성이 이렇게 늦어진 것, 그리고 한 번의 원정으로 베트남과 일본을 모두 손에 넣겠다는 무리수도 분명히 연관이 없지는 않을 거다.

돈이 없어서 원정군 편성이 힘들었을 거고, 돈이 없어서 원정군을 두 번은 못 보내니까. 그리고 베트남과 일본 둘 다 먹어야겠으니까.

굳이 비유하자면 배가 고파서 미칠 거 같은데 저 앞에 아주 먹음직스러운 샌드위치가 있다. 손으로 잡아서 먹기만 하면 되는데 너무 배고파서 거기까지 갈 기력도 없는 그런 상황이 아니려나.

그 와중에 우리가 선보인 참수작전이 제법 그럴듯해보였을 테니 아마 그런 명분으로 의회를 설득하셨겠지, 전쟁 오래 안 끌 거고, 병력도 정예로 소수만 보낼 테니 많이도 필요없다고, 물자도 많이 필요하지 않을 테니 돈 많이 안 들 거라고. 루이필리프 그 양반 나이도 제법 많던데 늙어서 고생이 많다.

문제는 조선과 베트남은 사정이 정말 다르단 게 문제다. 수도만 함락시켜서 승리하는 건 조선이 철저한 중앙집권형 국가라서 가능했던 일, 굳이 비교하자면 병자호란 같은 케이스다.

일본이나 베트남? 사방에 사병 동원 가능한 토호나 영주들이 있는데 중앙정부가 항복을 결정한다고 해서 항복하려나?

그리고 참수작전을 위해 병력 규모도 크지 않다, 심지어 이쯤되면 베트남군이 보유한 근대식 화포의 수량이 프랑스 원정군이 보유한 대포의 수량보다 많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정해봐도 될 판이다.

정예부대라지만, 정면대결로 승산이 있다.

프랑스는 두 번째 원정군을 보낼 여력이 없다. 원정군 자체도 대규모 패배를 겪으면 다시 태세를 재정비해서 싸울 만큼의 물자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하노이에서의 한 번의 결전으로 끝날 거 같은데?”

“그리고 프랑스도 그걸 바라고 있을 거고요.”

프랑스는 자기들이 이길 거라고 확신하고 있을 거고, 우리는 우리대로 우리가 이기기 위해서 갖은 수를 다 쓰겠지.

나는 탁자를 툭툭 두들겼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정면대결? 아니면 매복?”

“정면대결을 하되, 유리한 지형에서 해야겠죠. 하이퐁에서 하노이까지의 거리는 약 100km, 그 거리를 행군하는 동안 저들은 지옥을 보게 될 것입니다.”

분필이 지도 위를 죽 그어 화살표를 표시했다.

“그 모든 정보가 사실이라면, 저희 역시 더 이상 주저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노이로 전 병력을 집결시켜서 프랑스군을 정면으로 상대하겠습니다.”

나는 씩 웃었다.

베트남은 시작일 뿐이다.

모든 게 순리대로 돌아간다면, 도미노처럼, 막 피어오르던 제국주의의 씨앗은 철저히 짓밟혀 사라지리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