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몰락귀족-49화 (49/60)

아편전쟁(4)

청과의 회담은 내가 말한 대로 끝났다. 영토 할양을 거부한 청의 강압적인 태도로 인한 협상 결렬, 이에 따른 무력시위로 인한 광저우의 초토화와 광저우 주둔군 궤멸.

그리고 다급해진 청 측의 협상 제안과 결렬, ‘양이들의 오만방자함에 격노한 황제’에 의한 ‘대청’의 대영제국에 대한 선전포고.

내가 공식적으로 전면에 나서기 전까지 벌어진 대략적인 일들이다.

“그래서........ 저게.......”

코를 틀어쥔 나는 한숨도 쉬기 어려웠다. 입으로 들어온 냄새가 코로 역류할 거 같아서.

“성벽에 여성의 소변과 각종 대변을 발라놓은 거네.”

“여기까지는 냄새도 안 풍길 텐데 왜 그러십니까.”

“내가 냄새에 좀 예민해.”

광저우의 성벽에 똥칠이 된 걸 보는 건 바다 위에서 보는 것도 참으로 고역이었다.

상상이 간단 말이다... 상상이.....

“제독.”

“예.”

“저거 싹, 아주 싹싹 태워버리게! 이건 명령이네!”

내가 내린 명령에, 제독은 한숨을 터트렸다.

“알겠습니다.”

“젠장, 어제 저녁식사가 위장으로 거꾸로 뒤집혀 올라오는 기분이군, 그게 목적이었다면 성공했네.”

“별 문제 없을 겁니다. 공사님 말씀대로라면요.”

“청군이 4만명이긴 한데, 군기가 완전히 개판이라더군, 현지 주민들을 약탈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하니까 지금이 적기네, 현재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무장해서 도적떼로 돌변한 청군과 싸우는 정도니까.”

나는 추가로 끌고 온 수송선을 가리켰다.

“그리고 상륙한 뒤에 저거 예비용으로 가져가게, 오히려 민병대가 청군보다도 위험할 수도 있어.”

레드코트는 아직도 플린트락 머스킷을 쓴다. 특허료 주기 싫다고 아직도 퍼거션 캡 안 쓰는 그 짠돌이 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놈들이 뭐하는 짓인데.

그래서 베트남에 갖다주기로 돼 있었던 물자를 조금 전용했다.

막말로 나 때문에 바뀐 게 한둘이 아닐 텐데 비 오는 날에 청군이 머릿수로 몰려오기라도 하면 그냥 뭐 되는 거 아닌가.

“퍼거션 캡으로 작동하는 3연발 오르간 건을 가져왔네, 보병들이랑 같이 움직이도록 좀 조치하게. 이곳 중국 남부에서는 제법 비가 자주 오는 편이란 말이네.”

“알겠습니다, 확실히 비가 올 때 전투가 벌어지면 곤란하긴 하겠군요.”

퍼거션 캡으로 훈련받은 적이 없는 병사들에게 부랴부랴 퍼거션 캡 나눠주는 것보다는 퍼거션 캡 쓰는 볼리 건을 몇 정 놔두는 게 나을 거다.

“전투에는 쓰지 말고 아끼다가 긴급상황에만 쓰라고 해두게.”

“어차피 그쪽으로 훈련받은 인원도 별로 없어서 줘도 활용 제대로 못 할 겁니다. 그 베트남군을 데려오면 모를까.....”

베트남군이 레드코트보다 정예일 리는 없지만, 이건 그냥 훈련 여부 차이다. 미군이 아무리 정예라고 해도 갑자기 미군 전차병을 흑표 앞에 데려다놓고 몰라고 하면 국군 전차조종수보다 잘 몰 수 있을 리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 퍼거션 캡 머스킷을 갖다줘도 플린트락만 써 왔으니 장전 방법을 몰라서 버벅거릴 확률이 높다.

하여튼 육군에 투자하기를 엄청나게 싫어하는 망할 정부 놈들 같으니라고, 프로이센에서는 벌써 최초의 볼트액션, 드라이제 바늘총이 개발 끝난 지가 몇 년인데 여태 플린트락을 쓰냐고.

심지어 기술이 없는 것도 아니다. 퍼거슨 소총이라고 세계 최초의 폐쇄기를 갖춘 후장식 소총까지 완성해놓고 도입 안 했다.

“적어도 비가 그칠 때까지 상대가 공격해오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역할 정도는 하겠지. 선두에서 여럿 달려오다가 죽어나가면 빗속에서 총을 쐈다면서 혼란에 빠져 자멸하는 걸 기대하는 건 무리려나.”

빗속에서 화약 무기를 쓴다는 건 확실히 상식 밖의 일이기는 할 텐데 말이지.

“불가능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지금까지 적들이 보인 지리멸렬한 상태를 보면 말이지요.”

“그래, 난 전쟁은 잘 모르니 제독이 알아서 지휘하게.”

광저우는 시작일 뿐이다.

중국 동남부를 초토화시키고, 양쯔강으로 진입해서 상하이와 난징을 공략한다.

난징이 함락되면 강남과 북경의 연결은 끊어지고, 청의 심장을 움켜쥐는 셈.

‘전쟁을 조금 오래 끌어야 할까.’

원 역사에서도 전쟁 다 끝난 뒤에 영국 의회에서 ‘전쟁 한 1년 더 끌었으면 중국을 더 몰아붙여서 더 많은 이권을 뜯어낼 수 있지 않았겠냐!’ 하고 불만이 제법 나온 걸로 아는데 말이다.

***

이르쿠츠크, 시베리아, 러시아 제국.

“영국군이 제법 고전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들었네, 청군을 무너트린 건 어렵지 않았는데 민병대들이 죽기살기로 덤벼들어서 손실이 제법 있었다지.”

재수가 없어도 엄청나게 없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으리라. 하필 그때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보병들의 소총 대부분이 망가졌으니까. 그래도 퍼거션 캡을 쓰는 무기가 조금은 있어서 그나마 20배에 달하는 수적 격차에도 민병대가 먼저 물러날 때까지 버티는 데 성공했단다.

“저희로써는 다행이군요, 그래야 저희가 돋보이지 않겠습니까.”

카자크 기병들은 낄낄대며 웃었다.

그랬다. 영국군이 몇 명이나 죽고 다치는지는 이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다만, 영국군이 고생하면 그만큼 그들이 거둬갈 전공이 달콤해질 것이라는 것은 기꺼웠다.

“다들 들었다시피 역습을 가한 건 정규군이 아니다. 민병대지. 청의 정규군은 우려할 수준은 아니지만 민병대의 전투력은 주시할 만 하다. 하지만......”

그건 반항의 싹을 남겨두었을 때의 이야기들.

코사크들을 위시한 러시아군에게는 이야기가 다르다는 것이 그들의 판단이었다.

“너무 멀리 진격하다가 아우렐리아 국경 넘어가지는 말도록, 거긴 영국인들 몫이다.”

농담삼아 한 말에 모두가 낄낄대면서 웃음을 터트린다.

“사흘 뒤에 출발한다. 다들 준비하도록.”

***

나는 그간의 일기를 훑어보았다.

초등학생 시절 방학숙제로밖에 써본 적 없던 일기를 다시 쓰게 된 계기는 별거 없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정리해보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더 체계적으로 세워보기 위해서다.

<1841년 9월 10일. 중국 양쯔강>

<양쯔강에 오늘 진입했다. 병력이 충원되어 현재 우리 함대가 동원한 병력은 2만 명 정도다. 영파에 배치된 청군은 대포 한 방 쏘지 않고 지리멸렬해서 후퇴했다. 식민지군의 기강이 해이한 건지 다른 병사들도 이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사방에서 약탈과 방화가 저질러지고 있다. 제독은 계속 약탈을 조장해야 청도 협상장에 나올 거라고 주장했지만 글쎄다?>

<10월 13일>

<러시아군이 몽골과 만주, 위구르 등을 침공했다고 한다. 그쪽도 약탈로는 이쪽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진 않은 모양이다. 러시아군의 발이 닿는 곳마다 살아나가는 사람이 없고 불바다가 된다니 훈족이 따로 없다. 하여튼 이놈들은 200년의 세월 동안 변한 게 없었던가 보다. 덤으로 지난달에 수송선 너바다가 타이완 남부에서 좌초했고, 선원들 전원이 포로가 되었다고 한다. 독이 바짝 오른 청에게 무슨 짓을 당할지 염려스럽다.>

<1842년 3월 8일>

<그간 정신이 없어서 일기를 쓰지 못했다. 작년 10월에 쓰고 5개월만이다. 10월 말, 대관식에 초청장이 날아왔다. 4월 1일에 후에 황궁에서 리 왕조가 귀환했음을 선언하는 대관식이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하필 만우절이냐. 시암과의 전쟁은 조이가 편지를 보내기 일주일 전에 끝났다고 한다. 예정된 결과다. 완승. 제싸다보드인드라? 암튼 이름 한 번 엄청나게 긴 태국의 국왕을 무릎꿇리고 속국으로 삼았으며, 인질로 솜뎃...... 뭐시기 하는 왕의 동생을 잡아왔다고 한다. 왕이 아들이 없어서 동생을 잡아왔다나.

물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전쟁이 상당히 늘어지고 있다. 물론 피해는 크지 않지만 진격 속도가 예상보다 늦다. 러시아놈들보다는 빨리 움직여야 할 거 아닌가. 제독이 너무 느긋해 보여서 속이 터졌고, 결국 놈들에게 반격할 여유를 주고 말았다.

어제 저녁에야 전투가 끝났다. 약 5만에 달하는 대규모 병력을 끌고온 청군은 우리의 부대 중 하나를 기습했다. 분산되어 있던 부대인지라 우리 병력은 적들의 10분의 1에 불과했지만, 결사항전한 끝에 적들을 궤멸시키고 적 지휘부를 참수했다. 우리 측 전사자는 없고 부상자뿐이며, 적 최고지휘관은 혼자 도망쳤다고 한다. 승리한 직후에 좋지 않은 소식이 하나 더 날아왔다. 범선 앤이 타이완 남부에 또 좌초하고 탑승자들은 청에게 전부 포로로 잡혔다고 한다. 독이 오를 대로 오른 청군이 포로를 학대하거나 살해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1842년 4월 1일, 베트남, 후에>

<오늘 즉위식이 있었다. 새 황제의 칙령 중 하나는 천주교 금령의 해제와 선교 허용, 외국인의 입국 허용 등이었다. 좋지 않은 소식도 있었다. 프랑스가 아편전쟁에서 우리 군이 연전연승한다는 소식을 듣고 고무되어서 원정군 편성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넉넉히 잡아도 올해 안이나 내년 초에는 원정군이 베트남에 상륙할 거다. 조연과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사실 뾰족한 수가 없다. 조연이 응우옌 왕조 내내 방치되어서 폐허가 되다시피 한 해안포대들을 개축해야 한다면서 무기, 특히 최신형 대포를 더 구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무기 최우선 순위는 원정군이다. 소총이면 내가 어떻게 구해줄 텐데 대포는 원정군에서도 눈에 불을 켜고 확보하려는 물건이라서 물량을 떼어주기가 곤란하다고 답했다. 일단 브루넬에게 편지를 보내서 프로이센 쪽에서 대포를 사오거나 우리가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냐고 문의했지만 큰 기대를 걸진 않았다. 사실 구해올 수 있다고 해도 도착했을 때면 이미 상황이 끝나있겠지. 인질로 잡혀왔다는 솜....뭐시기 왕자도 만나봤다. 나랑 나이가 비슷한데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아서 유럽에 대해서 기술, 문화, 종교 등등 한참 이것저것 캐물어대서 진땀빼다가 조연이 찾아와준 덕분에 살았다. 내가 태국 역사는 잘 모르지만 근대화를 그나마 성공적으로 한 몇 안 되는 케이스라는 건 아는데 저 왕자가 즉위한다면 근대화를 추진하지 않을까. 적어도 지금, 시암은 혁명 전 베트남처럼 폐쇄적인 국가다.>

<4월 8일>

<베트남에서 내 지위는 거의 황제 바로 아랫급인 듯 싶다. 물론 황제야 구중궁궐에 틀어박혀서 즉위식날 이후로 보이지도 않고, 거의 모든 사무는 완씨 노인이 처리하고 있다. 뭔 노인네가 어디 만년설삼이라도 잡수셨는지 호랑이기운을 내뿜으며 일처리하는 거 보면 노익장이 저런 건가 싶다. 아무튼 며칠에 한 번씩 연회에 끌려나가니 이거 허리 둘레 늘어나는 게 걱정된다. 그놈의 고수만 아니면 확실히 즐길 수 있을 텐데 말이지. 음식에서 퐁퐁맛이 난다.... 그렇다고 이 큰 연회에서 나 혼자 괜찮자고 고수 빼달라고 할 수도 없으니....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내가 참고 말지, 그래도 술맛은 좋다. 쌀국수도 맛있었다. 흑흑. 그런데 의외로 쌀국수가 베트남에서는 흔한 음식이 아니더라, 하긴 흔한 음식이었으면 궁중의 연회에 쓰는 고급 요리로 가져오지도 않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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