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전쟁(2)
싱가포르, 영국 식민도시.
“조지 엘리엇 해군 소장입니다.”
“에드워드 젠티안 베트남 공사네.”
나는 제독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정직하게 말해두지, 나는 자네 사촌이 저질러놓은 짓에 그다지 찬성할 수 없네. 내각과 의회의 결정이며 여왕 폐하의 승인까지 받았다면 따르지 않을 수는 없지만.”
조지 엘리엇 소장은 지금 광둥에서 깽판을 쳐놓은 영국 관료인 찰스 엘리엇의 사촌이다.
“명령은 명령일 뿐입니다.”
나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그래, 명령은 명령이지, 그리고 이 명령서에 보면 귀관 역시 내 명령하에 움직여야 하고 말이네.”
“...... 그렇습니다.”
“자네 사촌에게 똑바로 전달해두게, 그쪽에도 협상할 권한 전부를 박탈한다고, 군사작전, 협상, 어느 쪽을 하든 간에 내 승인 없이는 움직이지 말게. 협상은 극동 영국군과 관료 전부를 통틀어 나만이 가진 권한이란 것을 명확하게 인지시키도록.”
“극동에서는 공사님이 전권을 가지십니다. 연락선을 보내 지시를 전달하겠습니다.”
“그래.”
알아서 기는 엘리엇 소장을 본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독, 다음 계획은 뭔가?”
“군함 20척에 수송함 27척, 병력수송선 1척에 인도 주둔군 4000명의 동원을 승인받았습니다.”
“부족하군.”
“각하, 저희 군이 보유한 함포만 540문인데.......”
“소식이 늦군, 임칙서가 미국에서 대포 300문과 함선을 구매했고 광둥을 요새화했네, 천비 해전 때를 생각하면 큰코다칠 거야. 해안포대는 동급의 함포 3문과 맞먹는다. 해군의 금언 아니었나?”
“그렇다면......”
“광둥 공격은 무리네, 소수의 함선만 남겨놓고 해안선을 따라 공격하거나 점령하면서 북상하도록, 방어능력이 집중된 곳은 광둥뿐이고 나머지는 무기와 병력의 질 모두 낙후되어 있거든, 임칙서는 뛰어난 인물이지만 청에 그만한 인물이 둘은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마카오 통행 관문을 봉쇄하도록, 중국군이 군수물자를 들여오는 주요 통로네. 우선적으로 봉쇄해야 하네.”
나는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철갑함은 얼마나 있나?”
“철갑증기선 네메시스 호를 동원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가져온 문서에 자세히 기재되어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공문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러시아?”
“예?”
“러시아가 여기서 왜 나오나?”
-........ 또한 러시아 측과 긴밀하게 연계할 것. 러시아군과의 직접적인 합동작전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낮으나.........
“러시아 역시 참전하겠다고 제안했고, 내각이 받아들였습니다. 다수의 카자크 기병들과 지상군을 파병해 청의 북부를 압박하겠다고 했습니다.”
“..........”
러시아가, 압박만 하고 물러난다고?
그럴 리가 있나?
그럴 리가 있냐고.
“망할.”
러시아는 아마 이번 기회에 만주를 껍데기도 안 벗기고 먹으려고 할 거다.
그러면 청도 결사항전할 거다.
청이 순순히 손을 든 이유 중 하나가 영국이 중국을 아예 정복해버릴 욕심을 가지고 온 게 아니라 상업적 이득을 원해서라는 걸 청이 생각보다 빠르게 파악해서고, 동시에 영국을 이용해 러시아를 견제하려 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영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더없이 좋고, 한 세대만 지나도 한 나라로 합쳐질 예정이다.
그렇다면.....?
‘전쟁, 진짜 엄청나게 길어지는 거 아냐?’
“...... 물자가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르겠군.”
“물자 말입니까?”
“본래 베트남에 지원될 예정이었던 물자 일부를 전용해 조선으로 수송하겠네, 원정군의 예비물자로 사용할 수 있게 하도록, 조선은 러시아와 연계하기도 좋은 위치니까 유사시 러시아에 해당 물자를 지원할 수도 있을 거다.”
“지정학적으로 절묘한 위치군요.”
“그래. 조선의 개항장들을 총동원하고, 현지에서 생산할 수 있는 물자는 현지에서 생산한다. 전쟁이 길어질 경우 조선에 공장을 차리는 것도 고려해봐야겠군. 최소한 인력을 싼값에 동원할 수 있지 않겠나.”
중국은 넓다.
정말 오질나게 넓다.
그 넓은 땅에서 청나라가 결사항전하겠다고 하면....... 돌겠네 진짜.
‘여차하면 베트남군이라도..... 아니, 프랑스군이 언제 기어들어올지 모르는데 얘들을 뺄 수도 없고. 하.’
나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했다.
***
런던, 버킹엄 궁전.
중국에는 어마어마한 이권이 걸려 있다.
그 거대한 시장, 그 어마어마한 물산.
욕심이 안 날 리가 있겠는가.
“아, 앙투안 대사님이시군요.”
“알렉산드르 대사님도 오셨습니까.”
“저기 빌헬름 대리공사님도 계시는군요, 인사나 드리러 갑시다.”
그리하여 열린 것이 런던 회의였다.
중국을 사이좋게 나누어 먹기 위해서.
물론 전 열강이 참여한 건 아니었다.
미국은 또 열외였고, 오스트리아 제국과 프로이센, 독일 소국과 이탈리아 국가들은 각자 정신없었다.
오스트리아 제국은 자국 내부 문제만으로도 골치를 썩는 판, 프로이센은 해군력이 워낙 모자라서 해외 영토 획득을 시도하기는 어려웠다.
독일 소국들은 어디 낄 처지가 아니었고, 이탈리아도 통일이 급하지 식민지 개척은 나중 이야기였다.
따라서 해당 국가들은 이번 회담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스페인도 마찬가지, 스페인 해군은 나폴레옹 전쟁에서 입은 피해를 자력으로 복구할 능력도 없어서 러시아의 중고 함선들을 구매해 해군의 구색이나마 갖춰야 할 정도로 몰락해 있었고, 네덜란드도 나폴레옹 전쟁기에 치명타를 입고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으며, 포르투갈은 그럴 여력 있으면 남미 문제부터 수습해야 할 판이었다.
당연히 이들 국가들은 바다 건너 중국은 손을 댈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즉, 실질적으로 논의의 여지가 있는 것은 셋이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대영제국은 영토적 야욕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미 인도 열심히 먹고 있는데 코올걸리기 딱 좋다는 걸 알고 있던 영국은 중국 내에서의 여러 이권들만 가져가는 대가로 중국을 대놓고 식민지화하는 건 포기한 상태였다.
그리고 러시아는 제일 적극적이었다.
“우선 현 국경분쟁지대인 만주와 몽골, 위구르 지역 등은 당연히 본 제국에 귀속되어야 합니다.”
물론 그 요구는 문자 그대로 러시아 제국이 원하는 최소치였다.
러시아 제국에게 있어서 영토는 다다익선. 많이 뺏으면 많이 뺏을수록 좋았으니까.
그랬기에, 요구는 크게 질렀다.
“만일 이 전쟁이 중국과의 전면전으로 확대될 경우, 가장 많은 병력을 투입하고, 적의 수도를 최단시간 내에 타격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러시아 제국이라는 것에 동의하시리라 믿습니다. 워낙 멀지 않습니까. 즉 가장 많은 전리품을 분배받을 권리가 있다는 데에 동의하시리라 믿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본 제국은 그런 사건이 발생할 경우, 황허 이북 전역에 대한 우선권을 얻고 싶습니다.”
당장 회의장이 소란해졌다.
“무슨 미친 소리!”
프랑스 대사는 벌떡 일어나 항의했고, 영국 외무장관은 어이가 없어서 입을 벌렸다.
물론 일단 같은 편이지만, 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 정도 영토를 요구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실, 대부분의 열강들은 중국의 영토를 생각보다 작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걸 감안해도 러시아가 뜯어내겠다는 영토는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이 시기, 황하는 산둥반도 남쪽으로 흐르는 시기. 따라서 러시아가 빼앗겠다는 영토의 크기는 산둥성, 화북, 몽골, 만주, 위구르 등이었다.
“그리 큰 영토도 아닙니다. 제가 알기로는 프랑스 정부가 나폴레옹 시절에 미합중국에 팔아넘긴 누벨프랑스 영토의 절반 정도 크기인 것으로 알고 있죠.”
루이지애나를 거론한 러시아 대사는 입을 열었다.
“우리 러시아는 혈맹 영국을 위해 수십만 대군을 기꺼이 끌어다 투입할 것입니다. 점령된 영토는 점령자가 우선권을 가지는 것이 상식 아닙니까?”
“그렇다 해도 과하오.”
프로이센 공사가 불만을 표시했다.
“정 러시아 제국이 그 정도 영토를 가져가야겠다면.......”
프랑스 제국은 굉장히 불만스러웠지만, 입을 다물었다.
일단 이들이 영토를 가져가겠다는 것은 곧 이번 전쟁의 전리품으로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즉 군대를 어찌되었든 내야 한다는 것, 러시아는 확전되는 즉시 수십만 대군을 동원해 청의 북부를 쳐서 동맹인 영국을 돕겠다 제안한 것이었고, 프랑스는 군대를 내지 않는 상황이었다.
군대를 내려면 못 낼 건 없지만, 그러면 베트남 원정이 늦어진다.
게다가 이들의 인지에, 청은 여전히 동방의 대국이었다.
나폴레옹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잠자는 사자를 깨우지 말라고.
그러니 마냥 많은 병력을 투입할 수 없는 영국, 그리고 역시 시베리아를 통과해 증원군을 보내야 하는 러시아가 일방적인 승전을 거두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영국이 베트남에서 프랑스를 엿먹이겠다는 발상을 한 것처럼, 프랑스 역시 영국과 러시아가 눈물 쏙 빠지게 중국에서 고생하는 걸 기대할 수 있었다.
물론 그걸 넘어 중국에 군사고문단과 무기를 지원한다는 발상까지는 하지 못했지만, 아무튼 간에 프랑스의 예상대로라면 그야말로 개고생을 할 터였다.
그러니, 차라리 러시아가 위신 때문에라도 못 빠져나가게 만든다.
“좋은 생각입니다. 우리 프랑스 제국은 몇 가지 조건만 보장된다면 러시아 제국이 황하 이북 지역의 영유권을 가졌다는 것을 인정할 의향이 있습니다.”
협상에서 양보한다면 상관없지만, 이미 못박힌 곳에서 손 떼면 그건 그것대로 위신의 실추다.
그게 싫으면 병력과 비용을 끝없이 투입하든가.
크게 질러 본 러시아 대표단이 되려 당황할 지경이었지만, 프랑스 특명전권대사는 아예 못을 박아버리려 했다.
“아우렐리아는 포기하겠습니다. 영국이 조선을 개항시켰다니 이에 대한 우선권은 영국에 있겠죠, 하지만 그 대신 일본은 저희가 가져가야겠습니다.”
아우렐리아는 소설에 나온 지명이지만, 유럽 정계에서는 워낙 유명한 이름인 탓에 조선의 대용으로 더 자주 쓰고 있었다.
사실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도 애매한 외국 이름보다는 라틴어 지명이 훨씬 낫지 않은가.
“또한 영유권을 주장하지는 않겠으나 장강 이북, 황하 이남의 지역에서 우리 프랑스가 경제적 이권을 가져가고자 합니다. 이 사항들만 보장해 준다면 프랑스 제국은 러시아 제국과 대영제국의 모든 조건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영국은 러시아가 전쟁에 끼어드는 바람에 동맹을 얻었지만, 청이 결사항전할 이유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러시아는 영국과 러시아 모두를 엿먹이고 싶었던 프랑스의 지지를 얻어낸 대신 전쟁의 난이도를 한 층 더 크게 올려버렸다.
서로서로가 상대를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거나 상대의 뒤통수를 후려치고자 혈안이 되었던 런던 회담은 겉보기에는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러나 그 누구도 개운하게 웃을 수 없는 방식으로 발효되었다.
-대영제국은 홍콩, 타이완, 류큐 왕국, 아우렐리아에 대한 우선권 및 장강 이남 중국 내에서의 경제적 이권에 대한 우선권을 가진다.
-프랑스는 일본에 대한 우선권을 가지며 장강 이북 중국에서의 경제적 우선권을 가진다.
-러시아는 전면전이 발발할 경우 황하 이북의 청의 모든 영토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영국을 지원할 것이며, 영국과 프랑스는 이를 지지한다.
그 누구도 완벽하게 만족할 수 없는 거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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