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몰락귀족-46화 (46/60)

아편전쟁(1)

후에, 베트남.

주인이 바뀐 후에의 황궁이 반군의 손에 들어온 지는 제법 되었다.

후에에서 쫓겨나 하노이까지 도망쳐 항전하던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잔재가 사라진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황제가 쫓겨난 황궁에도 찾아든 손님은 있었다.

베트남 전통악기인 단짜인이 그 현을 퉁겼다.

적막한 한밤중의 노랫소리가 마음에 스며들었고, 달빛 아래 선 노인은 묵묵히 해자를 바라보았다.

노인의 눈에는 초라한 안식처의 창문 밖으로 빛났던 오렌지색 하늘과, 지금 이 순간 황궁의 정원 너머로 저무는 석양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리고, 악사와 노인 외에도 그림자 속에 있는 또 다른 나그네가 있었다.

-동풍 부는 밤, 천 그루 나무에 피어난 꽃이 바람에 흩날리니, 비처럼 쏟아지는 별 같구나.

-퉁소 소리 울리고 옥처럼 휘영청한 달빛 아래 어룡등은 밤새도록 나부끼니.

-화려한 비녀 꽃은 아씨들은 웃음과 향을 남기며 지나가네.

-북적이는 인파 속 수천 번 헤집다가 문득 고개 돌려 보니 그대가 보이네, 등불 잦아든 그 곳에.

“이 노래를 아는가?”

“모릅니다. 듣기 좋다는 것만 알겠군요.”

“내가 어릴 적 참 좋아했던 연가라네, 복수를 마치기 전에는 이 노래를 들으며 흥취에 젖지 않겠노라고 천지신명에게 맹세했었지.”

복수를 위해 자신의 자유를 포함한 모든 것을 걸었다.

그 행복한 추억을 되찾기를 갈망했다.

“...... 축하드립니다.”

“공사, 투언티엔(順天)의 전설을 아는가?”

“들어본 것도 같습니다만.”

“명이 이 아름다운 땅을 지배할 때, 한 검이 있었네, 레 탄이라는 어부가 호수에서 건져올린 칼날과 나무에 걸려있던 칼자루를 하나로 합쳐져 만들어진 투언티엔을 차고 다니던 레 왕조의 시조, 레러이 황제는 명을 몰아내고 평화를 이룩한 뒤, 호수에서 뱃놀이를 하다가 황금거북을 만났다고 하오, 그리고 그 황금거북이 투언티엔을 돌려달라 요구하자, 칼을 물로 던지고, 거북은 그 칼을 물고 물 속으로 사라졌소, 용왕이 평화가 오자 더 이상 사용할 곳이 없는 투언티엔을 돌려받은 것이었지.”

노인은 옛 이야기 속 전설을 이야기했다.

그 모습을 상상하듯이 눈을 감은 채로.

그리고 조연은 묵묵히 현을 퉁기며 외조부를 위한 연주를 계속했다.

“하지만 우리는 투언티엔을 돌려줄 수 없네.”

“우리 역시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아직 전란은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그렇겠지. 지금은.”

묘한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어떻겠는가.”

“.............”

“사냥개는 주인에게 고기를 받아먹지만, 가치를 잃어버린 사냥개는 어떻게 되는가, 삶기거나, 그게 아니라도 주인에게 버림받는 법. 그리고 버림받은 사냥개는 굶어죽거나, 원한을 산 짐승들에게 갈가리 찢기겠지.”

“무엇을 걱정하는지는 이해합니다만.....”

“애써 연기를 해도 가면을 쓰고 하면 어떻게 하는가. 약자의 절규는 세상에서 들어줄 자는 없고, 우리는 홀로 남아야 할 운명을 선택해야 했네. 그걸 받아들여야만 해, 드높은 자존심은 아무짝에도 도움이 되지 않네.”

수면은 달빛을 보석처럼 반사하며 아름답게 빛났고,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머나먼 하늘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일출이 아름답지만 일몰은 그 몇 배는 아름다운 법, 한껏 화려하게 불타오르면 그것으로 만족하겠다는 이들도 있겠지만, 무릇 위정자란 그런 무책임함을 가져서는 안 되는 법이네.”

단지 명예로운 이름만을 바랐더라면 옥처럼 부서지는 것으로 족했으리라.

그러나 나의 이름이 천 년간 저주받는다고 해도 바라는 것은 단 하나뿐이다.

나의 명예와 자유와 교환하고자 하는 것은 단 하나뿐이다.

조국의 안전.

“스승께서는 선교사들을 받아들이고 유럽의 문물을 받아들인 개화를 주장하며 황제와 대립했고, 결국 부관참시를 당하셨으며 그 일가는 멸족되었네.”

“..........”

“유교로는 할 수 없네.”

서로를 사랑할 수 없다.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을 그 안으로 몰아넣어야 한다. 싸워야 한다. 그리하여 살아남아야 한다. 모든 것을 품을 수 없다.

현재는 과거와 같지 않다.

“정신이 육체에 영향을 받듯, 서양의 기술만을 받아들여서는 진정 개화될 수 없네. 시간을 들이면 어찌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겠지만, 그럴 시간도 없고. 자네의 인내심이 바닥나기 전에는 성과를 보여야 하니까.”

“단 한 번의 실수도, 당신들에게 용납되지 않을 겁니다.”

그 기준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 시대가 정하는 것이다.

“내게 약속된 시간은 짧네. 그러니 그저 믿을 수밖에.”

“제게 이런 말을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우리는 여전히 이빨이 날카롭고, 발톱도 튼튼하네, 자네들의 요구에 여전히 부응할 수 있지. 그리고 우리 스스로도 그것들이 무디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리라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었네.”

쓸모없어진 사냥개가 삶겨진다면, 스스로가 쓸모있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증명하면 될 것이 아닌가.

“말은 누구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조용히 답했다.

“결과로 제게 보여주십시오.”

***

싱가포르.

오늘따라 이상하리만치 거울을 보는 듯이 잔잔한 바다 위를 한 척의 배가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그 배가 부두에 닿자, 한 여성이 천천히 걸어내려왔다.

대영제국의 상류사회에 속해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복식과 옷, 앳된 외모를 지닌 여성은 천천히 하선했다.

그 길의 끝에는 내가 있었다.

“플로렌스.”

“에드워드.”

내 시선은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이 아이가.......”

“당신 딸이에요.”

“앨리스.”

“..........”

나는 조용히 말했다.

“좋은 이름이야.”

***

플로렌스와 단 둘이 앉은 나는 입을 열었다.

“묻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긴 한데, 일단 집안일부터 이야기하자.”

“어머님은 건강하세요. 이전보다 더 나으신 것도 같아요.”

“...... 그건 다행이네.”

“이야기는 들었어요, 나라 둘을 개항시키셨다죠?”

“베트남은 상관없어, 이미 시암이랑 한 판 붙은 상태라서 어차피 영국 정부가 대대적인 지원을 할 테니까. 하지만 조선은 이야기가 다르지.”

나는 자료를 슥 훑었다.

“그래서 지금 조선 정부와 교섭해서 유럽식 병원을 개원할 수 있도록 협상하는 중이야, 다만 다른 쪽 문제가 있어서.”

“다른 쪽이요?”

“청나라.”

임칙서가 칼을 뽑아들었다.

“작년 말, 임칙서가 광둥수사 겸 흠차대신으로 임명되었고, 지난 3월에는 영국 상관이 포위되었으며, 그 압력을 견디다 못해 상인들에게서 대량의 아편이 압류된 게 지난 5월. 한 달 전에 압수된 아편이 전량 폐기됐어.”

찰스 앨리엇이 날뛰든 말든 중국은 원칙적으로는 내 관할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베트남과 조선만 오갈 뿐, 중국에는 발조차 딛지 않았고 관련자와 만나지도 않았다. 극동함대 사령관의 무능을 상부에 찔러서 교체해버린 게 전부였다.

거기에 본국의 입장도 ‘아편 무역은 본국 정부가 관할할 바가 아니다.’였으니 내가 신경쓸 일은 더더욱 없었다. 상인들, 그리고 상인들과 결탁한 현지 관료가 지금 월권을 해대면서 폭주하고 있을 뿐이니까.

어차피 상인들은 막대한 양의 뇌물을 의원들에게 먹여 가면서 결국 의회를 움직이고야 말 거다.

그러면 뭐...... 어차피 나도 윗선이 명령하면 원정대에 참가해야 할 입장이기는 하지만 그다지 걱정되지는 않는다.

설마 지겠냐.

‘역사대로만 하자. 역사대로만.’

***

영국, 런던.

“패배, 굴욕, 또는 치욕이라고는 모르는 나라의 국민들이여! 자국민을 위협하는 자에게는 귀를 의심할 정도의 배상금을 받아온 국가의 국민이여! 청이 본국과의 관계를 단절하기로 했으며, 중국인들은 현재 영국 시민들의 생명과 영국 정부의 재산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지난 50년간의 공직 생활에서 본인은 우리의 국기가 광둥에서 당한 것과 같은 모욕을 본 일이 없습니다!”

전쟁을 외치는 웰즐리의 연설에 뒤이어 글래드스턴의 연설이 이어졌다.

“중국에게는 아편을 금지시킬 권리가 있습니다. 그들은 아편의 무서움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영국의 외무대신은 청의 정당한 권리조차 짓밟으며 이 부정한 무역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부정하고 치욕스러운 일이 될 수밖에 없는 전쟁은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정의는 중국인들의 편에 있습니다. 저 문명화도 되지 못한 야만인들에게는 정의가 있는 반면, 우리 깨어 있고 문명화된 그리스도인들은 종교와 정의에 반하는 목적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의 승리와 그 이득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득이 크더라도 이로 인해 우리 여왕 폐하와 대영제국이 입을 명예, 위신, 존엄성의 손실은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중국 영토에 체류하고 있으면서 그 법률에 복종하지 않는 외국인에 대해 중국이 식량과 음료의 공급을 거부한 것이 어째서 중국의 죄가 되는지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대영제국의 법률 역시 타국에 체류할 경우 해당국의 법률을 준수할 것을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이 전쟁이 얼마나 지속될지, 이 작전 행동이 어디까지 확대될지 등에 대해서는 어떠한 판단도 내릴 수 없습니다. 다만, 단 하나만큼은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이것만큼 부정한 전쟁, 이것만큼 대영제국을 불명예로 빠트리게 될 전쟁은 나는 이제껏 보지 못했습니다!”

글래드스턴은 선각자의 의무를 외쳤다.

선각자의 의무를 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찌하여 이렇게 부끄러운 일을 하느냐고 외쳤다.

그 외침은 200여 명의 의원들을 움직였다.

“찬성 267표, 반대 266표.”

단 한 표.

단 한 표가 모자랐다.

“이로써 청나라의 응징을 위한 군사작전 예산안이 통과되었음을 선언합니다.”

***

“알렉산드르 대사님.”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외무대신 각하.”

“당연히 환대해드려야죠, 조만간 결혼식도 있지 않습니까?”

“아, 물론 그렇습니다만.... 제가 찾아온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알렉산드르 대사는 빙긋 웃었다.

“조만간 중국으로 출병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아, 자유무역을 위한 출병일 뿐입니다.”

슬그머니 변명을 늘어놓으려는 차에, 대사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차르께서는 이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 뭐라고 하셨습니까?”

“차르께서는 대영제국과 협력해 청을 남북에서 공격하자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일단 신속대응군으로 카자크 기병들을 동원할 수 있으며, 시간을 조금 넉넉히 주면 지상군을 추가로 투입할 수 있습니다.”

청의 저력이 그렇게 만만한 건 아니지 않느냐는 알렉산드르 대사의 말에 외무장관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렇다면 러시아 제국이 원하는 것은........?”

“물론 영토입니다. 만주와 중앙아시아, 위구르와 몽골 지역 등 다양한 지역에서 현재 청과 본 제국 간의 영토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를 이번에 확정짓고자 합니다.”

말이 확정이지 영토를 작정하고 뜯어내고, 덤으로 배상금까지 뜯어내겠다는 소리였다.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습니다. 러시아군이 참전하면 청의 군사력도 분산시킬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