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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몰락귀족-45화 (45/60)

역성혁명(2)

“우리의 형제와 자매들이여!”

코끼리 위에 탄 조연이 사열해 있는 병사들에게 외쳤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조연은 오연하게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신앙을 위해!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자유를 위해!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살기 위해서!”

저 뒤에는 조이의 코끼리가 따라오고 있었다. 확성기나 마이크가 없는 시대인지라 전군이 그녀의 연설을 듣게 하려면 사열한 병사들 사이를 움직이면서 하는 수밖에 없긴 했다.

“우리는 결코 패하지 않는다. 보라!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승리하고 또 승리한 끝에 도달한 적들의 수도가 우리 앞에 보이는가! 그대들의 피와 기름을 짜내어 만든 압제자들의 도시가 보이는가!”

코끼리 등 위는 참 불안정하다. 이리저리 흔들리고.... 뭐 덕분에 좋은 구경을 하긴 한다만. 나도 남자인지라 말이지.

근데 등 뒤에서도 보일 정도면 솔직히 괴물이잖아. 사실 쟤는 조구(삼국시대 중국의 지배를 받던 베트남의 독립군을 이끈 여장군)의 환생 아닐까.

사실 코끼리를 타고 싸우는 건 몸이 무거워서고 평소에도 어께가 제법 뻐근하지 않을까 하는 데까지 망상이 이어졌을 때쯤 연설은 클라이막스에 도달해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전쟁이 결코 압제자들을 몰아내는 데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오랜 적인 시암이 있고, 어떤 이유에서든 우리를 침략할 양이들이 있고, 진정한 압제자들인 중국인들이 있다!”

거 참 듣는 양이 기분 거시기하네.

“그들이 두려운가? 정녕 두렵다면 당장이라도 돌아가라! 우리는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리 왕조의 후예가 바다 건너에서 되돌아와 우리의 왕이 되어 전쟁을 이끌 것이고, 우리를 돕는 든든한 동맹이 있다. 무엇이 두렵겠는가!”

같이 타고 있는 내가 좀 잘 보이게 조연 옆으로 가서 모습을 드러내자 확실히 병사들이 좀 동요하는 게 보였다.

긍정적인 반응인지 부정적인 반응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적대적인 느낌은 아니니까 다행이었다.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어떤 역경이 닥치더라도 마지막에 승리하는 것은 우리가 될 것이다! 저 양이들도, 저 중국인들도, 그 어떤 침략자도 우리를 굴복시키지 못하리라!”

조구가 그랬듯이, 쯩 자매가 그러했듯이.

그들의 혼을 이어받아 투쟁하겠다는 선언에 수많은 병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 공격 개시를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

하늘에 뜬 달의 빛이 차갑게 도시를 비추고 있었다.

온 세상을 덮은 은빛은 세상을 차갑게 얼리고 싶어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그 아래 있는 도시는 불타오르고 있었다. 뜨겁게, 아주 뜨겁게.

-탕! 탕! 탕!

3배럴 드릴링 플린트락 권총이 골목길에서 불을 뿜었다.

다총신 권총은 워낙 비싸서 영국의 지원을 받는 반군조차 전군에 지급하지 못하고 친위대 격인 소수의 정예병들에게나 지급된 물건이었지만, 동시에 비싼 값을 하는 물건이었다.

“황제를 찾아라!”

“황제의 목을 가져오는 자에게는 공후의 작위가 있으리라!”

개머리판이 달린 8연발 권총을 든 병사가 총 여덟 발을 다 쏘아버린 직후, 골목길에서 튀어나온 적에게 베여 쓰러졌다.

“역도 놈들!”

고함을 지른 근위병은 다음 동작을 하기도 전에 총검에 배를 깊숙이 찔렸다.

난전 끝에 근위병들이 범궐한 적들을 쫓아내나 싶은 찰나, 총성이 연속적으로 울렸다.

수레에 올려 골목까지 끌고 들어온 20연발 볼리 건, 차라리 대포라고 불러야 할 물건을 몰고 온 반군이 탄환을 쏴댄 것이었다.

골목에 있던 근위병들은 사지 중 최소 하나를 잃고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러나 그런 볼리 건이 모든 골목에 들어가지는 않았고, 그런 골목에서는 총검과 각종 냉병기를 동원한 백병전이 벌어졌다.

그리고 조연은 그 모슨 상황을 보고받고 있었다.

“금군의 저항이 격렬합니다.”

황제도 자신의 친위대의 무장을 부실하게 하지는 않았다. 베트남에서 자체 제작한 화승총의 성능은 퍼거션 캡을 사용하는 반군의 유럽제 라이플보다는 한참 모자랐고, 베트남제 구식 대포의 질과 수량은 반군의 프로이센제 크루프 야포보다 한참 아랫줄이었지만, 근접전 훈련이 부족하고 갑주도 없다시피 한 반군과 각종 냉병기도 충실하게 갖추고 갑옷까지 껴입은 데다 오래전부터 훈련받은 금군에게 백병전으로 밀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야전에서야 압도할지 몰라도 이런 근접전에서는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단정히 내려빗은 머리카락을 매만진 조연은 입을 열었다.

“부정령(Lieutenant_colonel).”

“예!”

“흑적군은 뒤로 뺀다. 크메르군을 투입해.”

반군의 군사 중추, 흑적군.

그 이름은 그들의 검은색과 붉은색 군복에서 비롯되었다.

검은색을 베이스로 붉은색.

처음 만들어진 군복은 온통 붉은색이었지만, 그걸 본 영국 공사가 누가 봐도 레드코트라면서 대량양산에 걸림돌인 장식물들을 확 줄여버리고 검은색에 붉은색이 곁들여진 정도로 만든 제복을 입고 다녔기에 흑적군이었다.

완성된 제복을 본 공사가 황실의 폭정과 외세의 침략자에게서 베트남인들을 구원하니 구세군(The Salvation Army)으로 부르자는 농담을 했지만, 아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주지 않았기에 이들의 이름은 그냥 흑적군이 되었다.

보병은 총검과 공사 본인이 직접 구상해서 특허를 냈다는 페이퍼 카트리지가 적용된 부흘처 탄을 사용하는 스위스제 10.4mm 구경 펠드슈처 소총, 별도의 단검 한 자루와 군장, 화약뿔을 기본 장비로 챙기고 다니며, 부대의 형편에 따라 권총 등 보조장비를 지급하기도 한다.

기병은 중기병과 경기병으로 나뉘어 중기병은 세총통 여러 자루와 검으로 무장하고, 경기병은 기병도와 기병총을 장비한다. 포병대는 프로이센제 크루프 야포를 사용하며, 20연발 볼리 건을 운용하는 것 역시 포병대의 몫이었다.

장비만 따지면 유럽의 정규군과 붙어도 우세하다. 당장 유럽 국가들 중 페이퍼 카트리지는 도입한 국가가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

레드 코트만 해도 아직도 정부가 무기 교체를 안 해준 탓에 플린트락을 쓴다.

물론 스스로 이 장비들을 생산할 수 없어서 전량을 외국에서 수입해야 한다는 것이 최대의 약점이지만, 프랑스군과의 단기결전에서는 절대 질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이런 소모전에서 헛되이 소모할 병력이 아니었다.

“보조부대들을 전부 밀어넣어.”

이번 기회에 후일 귀찮아질지 모르는 타 군벌 세력들에게 희생을 강요한다. 물론 명분상으로는 병력 교체이며 선봉을 맡기는 것이지만, 저들 중 살아나올 자들이 많지는 않으리라.

그러고도 불만이 나온다면 흑적군으로 짓밟는다.

그녀의 스승이나 다름없는 영국 공사 젠티안 자작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국가의 힘은 총구에서 나오니, 돈자루와 칼자루만 틀어쥐고 있으면 종교든 뭐든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그녀도 동감이었다. 성서를 가져와서 군기를 만든 저 광신도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종교도 사실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금력과 군사력. 그리고 그 둘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군대는 돈이 필요하고, 지역의 말 안 듣는 놈들에게 세금을 내도록 하기 위해서는 군대가 필요하니까.

그리고 군대는 있다. 그러니 폭군을 베어버리고 대관식을 치른 뒤, 다른 불만 세력들을 전부 제압해버린 뒤 개혁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수업료로 얼마를 지불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수업을 안 들을 수는 없지 않은가.

‘최대한 깎아보려고 하긴 해야겠지만.’

잠시 생각에 빠졌던 그녀는 코끼리 등 위에서 대략적인 상황을 검토했다.

‘금군 수백 명을 제외하면 적은 거의 전멸했다.’

그냥 숫자로만 밀어붙여도 무난하게 뚫릴 상황이지만, 그녀는 조금 더 깔끔한 마무리를 원했다.

“황제가 못 빠져나간 건 확실하겠지.”

“호치민 루트라도 파놓지 않았다면 확실해.”

“....... 그건 또 뭡니까?”

다 좋은데 저 양반은 때로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는 게 흠이란 말야.

그렇게 생각한 조연은 지나가던 부하 하나를 잡아 세웠다.

***

창칼이 부딪히는 소리와 부서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총성도 간간이 울렸다. 아군이 맞을 걸 우려해서인지 포성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지만, 그것이 긍정적인 건 아니었다.

“폐하........”

환관 하나가 고개를 떨궜다.

민망 황제는 헛웃음을 지었다.

환관과 궁녀 등을 제외하고 그의 주변에 남아 있는 병사들은 20여 명뿐이었다.

이들이 대월의 마지막 군대였다.

“역도들은 어디까지 왔는가.”

“이미.......”

그 순간, 총성이 울렸다.

창호지를 뚫고 날아든 일제사격에 맞아 병사들 10여 명이 단숨에 절명했다.

여덟으로 줄어든 병사들을 지휘하는 장수가 외쳤다.

“폐하를 보위하라!”

“문에서 떨어져라! 놈들이 우리 그림자를 보고 있다!”

대전에 난입한 적은 최소 30여 명이었다. 좁은 공간에서 총을 재장전하기보다는 칼을 뽑아 든 이들을 본 민망 황제는 분노했다.

“이 역도 놈들! 양이들과 붙어먹은 놈들! 짐과 선황께서 네놈들에게 내린 황은이 얼마였는데 이런 식으로 반역을 저지른단 말이냐!”

검은 옷을 입은 병사들은 답하지 않았지만, 그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허허...... 완복교(응우옌푹끼에우)야, 우습구나.”

황제의 휘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반역이다.

그런데 비웃기까지 하고 있다.

말로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불경 중 하나를 저지른 목소리의 주인이 지팡이를 짚고 피칠갑이 된 대전에 들어섰다.

“네놈!”

완씨 노인은 껄껄대며 웃었다.

“네놈이 그분의 묘를 파헤친 복수를 이제야 하게 되는구나.”

목소리는 웃고 있었지만, 그 눈빛은 차갑디 차가웠다.

“스승님께서는 네 애비를 도와 이 나라를 세웠다. 그러나 네놈은 배은망덕하게도 죄를 씌워 그분의 무덤을 파헤쳐 그분의 시신을 모욕했고 일가를 진멸하였지, 그러니 나 역시 은혜를 잊은 네 아비의 무덤을 파해치고, 너희 가문의 남아들은 전부 죽일 것이며 여자들은 네놈들이 그토록 싫어하던 서역인들의 노리개로 만들겠다. 그리하여 네놈의 목을 그분의 영전에 가져가 복수를 마치겠다.”

“....... 네놈이 그 종자의 추종자였다는 걸 몰랐던 것이 내 한이다.”

여문열.

응우옌 왕조의 개국공신은 민망 황제에 의해 부관참시를 당했고 그 재산은 몰수되었다. 이에 분노한 그 아들이 난을 일으켰으나 패배해 능지형에 처해지고 가문의 남자들은 모조리 죽음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민망 황제가 미처 뿌리뽑지 못한 마지막 화근이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은 백발이 되었고, 홍안은 주름졌지만, 노인은 여전히 정정했다.

“네놈의 고기를 뜯기 전에는 죽어도 죽을 수 없었다. 그뿐이다.”

복수를 위해 돌아온 망령의 손끝이 칼끝처럼 황제를 향했다.

“죽여라!” “저 자를 죽여라!”

두 사람의 외침이 교차함과 동시에 병사들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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