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점(1)
화약 연기는 모닥불 등에서 나는 연기와는 다르다. 이 시대에는 맡을 일이 없는 자동차 배기가스와도, 그리고 영국 어디서든 나는 석탄 냄새와도 다르다.
사실, 그 묘한 냄새는 일종의 중독성이 있기까지 하다. 많이 맡아서 좋을 게 없으니 일부러 찾아다니면서 맡지는 않지만 말이다.
물론 이건 내 주관적인 견해다. 만일 그 의견에 반박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느낌이 맞는 거라고 해두겠다. 사람마다 감상이 다른 거니까.
같은 음식을 먹어도 누군가는 역하게 느끼면서 손도 안 대고, 누군가는 없어서 못 먹지 않는가? 심지어 같은 피를 나눈 가족들 사이에서도 그런 일이 한둘이 아닌데 냄새에 대한 감상이야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거기에 피비린내가 섞인다면?
사실 피 냄새에 내가 딱히 거부감은 없다. 쇠 냄새 비슷하니까.
하지만 화약 냄새와 묘하게 섞인 쇠 냄새와 피비린내는 묘한 불쾌감을 자극한다.
물론 그냥 심리적인 이유일 수도 있지만.
그 심리적인 이유인 시체들과 무너진 성벽,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는 보루가 내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는 꼭 쳐맞아야 말을 듣는 부류가 있지.”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동감입니다.”
“그래도 경의를 표하게, 우리가 비난해야 하는 것은 저들의 어리석은 수뇌부지, 마지막 순간까지 결사항전한 전사들이 아니니까.”
뒤따라오던 보좌관에게 그렇게 말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들은 자신이 소중히 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운 것일 뿐일세, 비열하지도 않고 정정당당하게. 그런 거라면 비난해서는 안 돼.”
그것이 객관적으로 가치가 있느냐는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겠지만. 그 용기가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 말에 제독이 태클을 걸었다.
“용기보다는 광기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만. 아니면 만용이거나요.”
“꼭 그렇게 삐딱하게 봐야겠나. 조국과 군주를 위해 용감히 싸우는 건 전 세계 어디를 가나 미덕이 아닌가? 그 군주가 잘못된 판단을 한 것과 사자의 심장을 가진 군인들이 그들의 왕에게 모든 것을 다 바쳐 충성하는 것은 전혀 다르네.”
뭐, 저 인간은 애초에 태클을 걸고 싶어서 태클을 거는 거 같지만.
“그래도 이 지경이 되어서야 협상하겠다고 한 건 좀 한심스럽기는 하군.”
김좌근이 오기는 했었지만, 그때에도 상대는 협상할 태도가 안 되어 있었다. 애초에 김좌근에게 뭔 권한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고.
“우리 측 사상자는?”
“5명이 전사했습니다. 부상자는 14명입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피해가 크군. 예상보다.”
내 은근한 힐난을 들은 제독은 표정이 확 굳었지만. 변명을 하지는 못했다.
배도 두 척이나 해먹고 전사자 16명, 부상자는 백 명에 육박해간다.
“조선군이 특이한 무기를 쏴대서 그렇습니다. 굉장히 먼 거리까지 사격을 해옵........”
“비겁한 변명입니...... 그래서 그거에 전사한 사람이 몇이나 되나?”
전쟁 기간 내내 딱 한 명밖에 없지 않았나? 부상자는 다수 나왔다지만. 심지어 한강에 떠 있던 군함 갑판을 돌아다니던 수병들 중에서도 그거에 맞아 사상자가 나오기도 했다.
근데 그 원거리 저격총, 천보총 맞지?
아무튼, 무기 탓할 것도 없이 헤이우드 제독의 지휘가 졸렬했던 거다.
꼬우면 사상자 적게 내든가. 세도정치 시기 조선 상대로 유럽 최정예 레드코트로 싸웠으면서 이 정도 사상자를 내?
내가 현장에 나가지는 않아서-애초에 문관인 내가 전장에 나가서 뭐하겠냐, 괜히 지휘권이나 분산되겠지-이야기로만 들었지만, 그냥 위압만 해도 항복하리라는 생각에 포로 성벽을 때려부순 뒤에는 엄호사격도 안 하고 행진을 시켰단다.
그리고 무너진 성벽 뒤에 숨어 있던 조선군들이 사거리 내의 레드코트에게 일제사격을 퍼부었고, 전사자 셋과 부상자 대부분이 그 때 나왔다. 그 뒤에 성벽을 돌파하면서 전사자 한 명과 다수의 부상자가 나왔고, 시가전 중 화살에 맞아 후송되는 중에 죽은 녀석이 마지막 전사자다.
한 마디로 사상자 절반은 저놈이 조선군을 얕보지만 않았어도 안 났을 일이라는 거다. 당장 이번 원정 내내 기습으로 몇 명이 죽어나갔는데 그렇게 태만할 수가 있나? 닭대가리야?
내가 알기로 기습으로 전투 시작과 동시에 죽어나간 우리 측 인원이 9명이다. 이번 전쟁 내내 죽은 사람이 16명이니까 기습으로 조선군이 거둔 전과가 12명, 일반 교전에서 거둔 전과가 4명. 백 명을 아직 아슬아슬하게 못 채운 부상자도 거의 비슷한 비율이니까.......
걍 내가 직접 윗선에 찔러야겠다. 본국에서도 피해 보고 받으면 기겁할 테니 알아서 자르고 후임자 보내겠지? 저놈도 집안 나쁜 건 아니던데 설마 집안빨로 무마하는 건 아니겠지.
물론 후임자가 오려면 거의 1년은 잡아야겠으니 이번 원정의 마무리는 저 양반과 해야겠지만.
“회담장으로 들어가도록 하죠.”
우리가 제시할 조건은 내가 베트남에서 처음 작성해서 보낸 초안 그대로다. 그리고 조선인들도 이미 그 조건을 알고 있다.
아, 회담장은 한성 내가 아니다. 우리가 미쳤다고 적진으로 들어가는가.
성곽 인근에 쳐진 천막으로 들어가자, 제법 기다린 기색이 역력한 사람들이 있었다.
“미스터 킴, 다시 뵙는군요.”
김좌근을 미스터 킴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으려나.
“..........”
김좌근은 기분이 나빴는지 시선이 좋지 않았지만, 입을 열었다.
“청에서 이번 일을 좋게 보지 않을 거요.”
“그렇게 하면 그들에게도 교훈을 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청을 들어서 은근히 위협하려는가 본데, 아편전쟁 진짜 조만간이다. 한 3년 남았지?
“그리고 귀국의 분투에 경의를 표합니다. 진심으로요.”
암, 병인양요나 신미양요에 비해서는 훨씬 잘 싸웠지, 그때는 걔들도 한성까지 진격하지는 않았다만.
“우리의 조건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조선의 영토는 필요없습니다. 그저 통상과 개항을 원할 뿐이며, 이는 조선에도 나쁘지 않은 조건입니다.”
나는 여유롭게 말했다.
“우리가 입은 피해에 대해 배상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피해를 입은 게 있어야 배상을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포탄값이나 화약값 같은 거, 그리고 사상자 발생한 것 등등 하면 입은 피해가 제법 되기는 하지만, 뭐 어떤가. 어차피 내가 손해난 것도 아니고 서류상으로는 동인도회사 손해가 될 텐데.
그리고 어차피 조선에서 얻을 무역 이익은 그깟 배상금 몇 푼 정도 안 받아도 될 정도고, 조선 조정이 돈이 있을지도 솔직히 의문인지라.
김좌근은 별 말 없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받아들이리다.”
어차피 더 뻗댈 수도 없다. 통상 좀 하자고 한성을 불타게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결국 조선 조정은 굴복했다.
한성조약의 체결 순간이었다.
***
화산 이씨 찾는 일은 내가 직접 할 일은 아니다. 내가 명색이 영국의 극동 최고위 외교관인데 내가 발품을 팔아야 하겠냐.
다만 여러 문제가 있어서 조약 체결 후에도 나는 조선에 얼마간 머무르게 되었다.
일단 가장 큰 문제는 화산 이씨를 찾으려면 내 부하들이 들쑤시고 다녀야 하는데, 이목을 너무 끈다는 점이 있다.
물론 그게 큰 문제까지 되지야 않겠지만 조선 측에서 아무리 남의 나라 왕으로 삼기 위해 데려가는 거라고 해도 자국민을 해외로 빼낸다면 좋아할 리가 없을 터.
조선 조정의 눈과 귀를 붙잡아놓기 위해서라도 내가 초대 조선 공사 역할을 대리하면서 대접도 좀 받고 하면서 있어야지.
“물론 공사관은 없지만 말이네.”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 아니겠어요.”
그래서 조선 정부를 압박해서 적당한 건물을 내놓게 하려 했지만, 한양 시내 사정도 개판이었다.
우선 전투 자체로 한양 시내가 입은 피해 자체는 크지 않았다. 각도를 못 잡은 포탄 몇 발이 시내에 낙하하고, 몇몇 지역이 파괴되었지만 적은 수의 병력으로 시가전을 벌이는 걸 우려한 제독이 성벽을 점령한 시점에서 진격을 중단시켰고, 그 시점에도 파천을 할지 협상을 할지 우왕좌왕하던 조선 조정이 협상을 하러 나왔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우리 군이 입성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한양에 대규모 화재가 발생했단 거다. 다행히 마침 와 있던 영국군까지 동원한 소화작업 끝에 한양 전역이 불바다가 되는 꼴은 피했지만 한때 창덕궁과 그 옆에 붙어 있는 창경궁까지 불이 번졌고, 나도 한강에 있던 영국 해군 프리깃함으로 피해야 할 정도였다.
우리 원정군 중 어떤 미친놈이 담뱃불을 함부로 털어서 화재가 난 건지, 아니면 한양 방위군이 물리적으로 소멸 직전의 상황에 놓인 이 상황에서 치안 부재를 틈타 방화를 저지른 놈이 있기라도 한 건지, 아니면 이게 원 역사에 있던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양 민심은 극도로 흉흉해졌고, 영국군이 불을 질렀다거나 우리랑 협상해서 하늘이 노했다거나 하는 유언비어가 떠돌고 있었다.
조정은 정궁인 창덕궁이 수리될 때까지 화재 피해를 입지 않은 경희궁으로 옮겨가야 했고, 우리 원정군을 위해 나는 경운궁에 주둔지를 설치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그 요청은 금방 받아들여졌다. 애초에 경운궁은 인조 때 싹 헐려서 다른 궁궐 복원하는 데 재활용되었고, 남은 곳은 전각 2채에 부속 건물 2곳, 그리고 왕실 소용의 내탕금을 관리하는 부서인 명례궁이 설치된 거 말고는 사실상 버려진 건물이었고, 지위도 별궁에 불과했으니까.
아마 덕수궁이란 이름 받고 명례궁까지 싹 흡수하면서 확장 건축된 게 고종이 아관파천하면서 한 거였지? 내가 계속 있다가 후임자가 이 자리 가져가고 해서 여기가 영국 공사관 자리로 굳어져버리면 그것도 볼만하겠구만.
훨씬 크고 시설도 좋은 남별궁을 달라고 하지 않은 이유? 남별궁은 청 황제의 사신을 접대하는 장소, 그러니까 굳이 말하자면 외무성 같은 데다. 공사관이 아니라.
영구적인 공사관 설치를 생각하면 내가 남별궁에 계속 머무르면 언젠가 나가야만 한다. 당장 청나라 사신만 와도 내가 자리 비켜줘야 하지만 200년간 잊혀지고 버려진 궁궐인 경운궁은 내가 10년을 눌러앉아 있어도 눈곱만큼도 문제가 안 생긴다.
그리고 이 시대의 공사관이 21세기의 대사관과 같을 리가 없다. 공사관 수비대를 수백 명씩 주둔시켜놓고 심심하면 내정간섭하는 시대니까.
당연히 지금 여기 있는 원정군이 그 공사관 수비대의 모태가 되는 거다.
‘그러고 보니 고종 때 알렌이 광혜원 자리가 너무 좁고 교통도 불편하고 비위생적이라면서 남별궁으로 광혜원 이전하게 해 달라고 했던가. 학교 역사 설명들으면서 들었던 거 같은데.’
물론 운산금광은 잘도 갖다 바친 고종이 그 부탁은 들어주지 않았지만, 내가 극동에서 압도적인 입지를 쌓은 상태에서 청나라가 몰락해버리고, 영국이 조선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확립하게 되면 남별궁에다가 나이팅게일 병원 하나 세우는 것도 나쁘지 않으려나......
애초에 플로렌스는 돈 벌려고 간호사하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구원하겠다는 생각만으로 그 지옥에 뛰어들려는 사람이니까 조선인들에게도 좋은 일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바닥을 뒹굴고 있으려니, 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공사님! 급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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