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2)
베트남. 반군 지역.
“그래서, 교전했나?”
“예, 세 차례 교전이 있었고 전부 승리했습니다. 현재 함대와 병력을 주둔시킨 채 병력을 충원하고 공사님께 협상 조건을 여쭤 보라고.......”
“사상자 규모는?”
“많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군 전체에서 전사자 11명, 비전투 사상자를 포함한 부상자 수십 정도입니다. 추가 병력이 필요할 경우에 대비해 동인도회사에 세포이 지원 여부를 재확인해달라고도 요청하셨습니다.”
조선군이 그래도 제법 잘 싸웠나 보네, 레드코트가, 아무리 식민지 주둔군이라지만 전사자가 11명이나 나오다니,
신미양요랑 비교하면 엄청 잘 싸운 거 맞다. 물론 기술이 그때보다 뒤떨어지기는 하겠다만.
“기본적으로 부산, 인천, 원산의 개항을 요구하고, 무역에 대한 조선 관원의 불간섭 및 면세권, 조선 내에서 영국의 영사 재판권 인정, 영국인의 조선 내 자유로운 통행 허가..... 아니, 내가 직접 써야겠군.”
나는 곧장 급하게 펜을 들어 종이에 간단한 조약문을 써내려갔다.
물론 이게 진짜 조약서 원문이 되지는 않을 거고, 좀 깨끗한 종이에 다시 옮기게 되겠지, 추가되거나 삭제되는 조항도 있을 거고.
<제1조. 조영 양국-양 국민 사이에는 사람, 장소와 관계없이 항구적인 화친을 한다.>
<제2조. 부산, 인천, 원산을 개항한다. 인천은 즉시, 부산과 원산은 조약 체결로부터 1년 뒤를 기점으로 개항한다. 이 세 항구에서 영국은 군선, 상선, 관선을 막론하고 식수, 식량, 석탄, 기타 필요한 물자를 공급받을 수 있다. 그 가격은 조선 관료가 결정할 것이며, 지불은 금화 내지는 은화로 한다.>
<제3조. 영국 선박이 난파 혹은 좌초될 경우 인천, 부산, 원산 가운데 하나로 이송되어 영국 관헌에 인도한다. 소지품과 화물은 전부 반환되며 구조에 발생한 지출에 따른 변제는 하지 않는다. 이는 조선 선박이 영국 정부의 통치권이 닿는 지역에서 조난당했을 시도 동일하게 적용한다.>
<제4조. 영국 조난자 및 시민은 타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체제비는 없으며 감금되지 않으며 자유로운 행동을 보장받으나, 영국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조선의 법률을 준수한다. 만일 영국 시민이 조선 내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영국 영사가 영국 국민을 공정하게 재판하여 처벌할 권한을 가진다, 단 조선 관헌이 도주하는 영국 국적의 범죄자를 체포하여 영국 공사에 인계할 때까지의 감금은 가능하다. 영국 국민은 조선 내에서 맹수로 인한 자기방어를 제외하고는 짐승을 사냥하는 것은 보류한다. 조선 내에서 사망자가 발생할 시 영국인이나 영국군 묘소를 부산에 설치한다. 이에 필요한 토지는 영국 정부에서 구매하는 것으로 한다.>
<제5조. 기타 물품이나 동의에 관해서는 양 당사국 간에 신중하게 심의한다. 개항장에서 금화, 은화를 통한 매매 및 물물교환이 가능하며, 관세는 부과하지 않는다. 거래가 성립되지 않아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물품은 판매자에게 그 소유권이 있으므로 전부 다시 가져갈 수 있다.>
<제6조. 조선은 영국에 항구적인 최혜국 대우를 준다.>
<제7조, 조난과 악천후로 인한 피치 못할 사정을 제외하고는 영국 선박은 위 3개 항구를 제외한 항구에 입항해서는 안 된다.>
<제8조. 본 조약 체결 후 1년이 경과한 후 영국 정부는 인천에 영사를 둘 수 있다.>
<제9조, 양국은 이 조항을 성실히 준수할 의무가 있으며 협약 체결 후 1년 내에 시행해야만 한다.>
“이 정도로 하지. 여기에서 절대 양보해서는 안 되는 조항은 영국 국민의 조선 왕국 내에서의 자유로운 행동과 항구의 개항이네. 제독에게 확실히 전달해 놓도록, 일단 베트남 문제가 일단락되면 내가 직접 조선에 가도록 하지.”
그야 우리가 조선에 쳐들어간 1순위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직결된 문제니까.
“알겠습니다.”
내가 기억하는 근대적 조약들을 이것저것 섞어 만든 야매 조약문을 든 전령이 떠났다.
‘조선에 가봐야 하나.’
어차피 내가 아는 한국은 아니다. 내가 자란 동네는 아예 20세기에 간척된 동네였으니 지금은 가 봤자 뻘밭이거나 바다겠지.
조선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이 내 손으로 맺어지게 되기는 했지만.... 조선에게 너무 좋은 조건을 내주면 내 입지가 축소된다.
어쩔 수 없다. 나중에 조선이 국력을 키운다면 불평등조약은 다 청산할 수 있겠지.
‘아니면 차라리 확 혁명이라도 나서 엎어지든가.’
내 생각에, 세도정치가 시작된 조선은 조선 내에 빙의자라도 태어나거나 하지 않는 한 가망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안동 김씨, 풍양 조씨로 대표되는 기득권의 저항이 워낙 심할 테니까. 그러면 차라리 혁명이 일어나는 게 더 가능성 높지 않을까.
내가 보낸 조약에서는 자유로운 상거래와 관세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진짜 문제는......
‘포목.’
조선에서는 베가 돈 역할을 할 정도로 옷감의 가치가 높았다.
그런데 영국 면포는 어지간한 조선 포목보다 질이 좋을 텐데 싸기까지 할 거다. 인도에서 만든 면포가 영국 본토에서 기계를 통해 방직되고, 다시 그 면포가 조선까지 가도.... 조선에서 거래되는 면포 가격보다 한참 싸겠지.
그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다. 화폐 가치 폭락, 면포를 짜던 가정들의 수입이 끊길 거고, 가뜩이나 삼정의 문란에 고통받던 조선인들은 가만히 있지 않겠지, 홍경래의 난도 19세기에 터지지 않았나? 이미 터졌나 안 터졌나.
그렇게 한 번 지배층들을 갈아버린 뒤에 대대적인 개혁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메이지 유신처럼 힘을 기른다면 언젠가 열강이 될 수도 있겠지.
‘아직 흑선내항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찍 개항하면 유리하지만 언제나 유리한 건 아냐.’
그랬으면 마카오에서 오랫동안 서양과 교류했던 청은 진작 개혁에 성공했어야 하니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남은 건 너희들 스스로에게 맡겨야지.’
개혁의 필요성을 인지시켜줘도 저쪽에서 안 받아들이면 방법이 없다. 청나라가 그 예시, 외부에서 도와줄 수 있는 건 명백히 한계가 있고, 나는 도와줄 입장도 아니니까, 차라리 이런 식으로 조약을 맺어놓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번에는 제발 좋은 결과가 있기를.
내가 언제 죽을지, 죽어서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바나나 공화국 한국에서 태어나고 싶지는 않으니까 더 간절한 소원이었다.
‘나중에라도 뭐... 안 좋게 돌아가겠다 싶으면 수습하러 가지 뭐.’
모양새를 봐서는 당분간 일본과 조선, 동남아를 포함해 극동에서의 업무 대부분은 내가 총괄하게 될 느낌인데, 그러면 대영제국의 극동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건 일도 아니니까.
그런데 그러자면 귀국은 많이 늦어지겠지만.......
‘적당히 수습되면 나이팅게일도 이리로 부르지 뭐, 크림 전쟁이 여기서는 없겠지만 조선에서 헐벗고 굶주린 자들을 위해서 병원을 열자고 하면 좋아하지 않겠어?’
플로렌스는 아마 지금쯤 내 아이를 낳기는 했을 거다. 하지만 어린 애를 동반하고 멀리 움직이기 어려우니 아직 런던에 어머니랑 있을 터.
“전신이 없는 게 아쉽군.”
전신이 있으면 아이를 낳았다거나, 뭐 아들이라거나 딸이라거나 이름은 뭘로 지었다거나 하는 연락은 재깍재깍 왔을 거다. 문제는 전신이 여기까지 깔리기는커녕 아직 발명도 안 됐다는 거지만.... 아니, 발명되었더라도 최소한 유럽에 보급되지 않았단 건 확실하다.
애초에 내가 많은 권한을 가진 이유도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지시를 차일피일 기다리고만 있을 수가 없으니 어지간히 중요한 문제가 아니면 알아서 처리하라는 이유에서였으니까.
물론 조약을 맺는 것 같은 문제는 나 혼자 처리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이미 출발 전에 이에 관해서는 지시를 받아 두었다.
적어도, 내 작전에 조선의 개항이 필요하다는 것은 출발 전에 보고한 바 있고, 이에 따라 조선을 개항시키는 것, 그리고 개항한 조선과 기본적인 통상 조약을 맺는 것은 허가를 받았을 뿐 아니라 그 세부조항들은 내 재량에 맡긴다는 허가도 받아두었던 것이다.
물론 조선 외에 다른 국가를 개항시킨다거나 조선과 추가적인 조약을 맺어야 한다거나 하면 나도 본국의 훈령을 요청하기는 해야 하지만...... 그래도 어지간하면 내 요청은 받아들여질 거란 확신이 있었다.
왜냐고?
지금 영국은 벨 에포크 시기의 그 대영제국이 아니다. 극동의 정세는 그야말로 영국에게 있어서 장님 코끼리 더듬는 꼴. 사실 다른 나라라고 다르겠냐마는.
즉 나는 일종의 영국 정계에 몇 없는 동아시아통이라는 거다.
그래서 나보다 아시아 상황 잘 아는 인간 있으면 나와보라고 내가 당당하게 말하면 선뜻 나설 인간은 별로 없는 셈이다. 애초에 내가 여기 온 목적도 프랑스 엿먹이기용이고.
영국은 아직 완벽하게 장악하지는 못한 인도 경영에 더 관심이 있지 그보다 동쪽은 관심이 크지 않다. 따라서 내가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면, 높은 확률로 통과될 거라는 확신이 있는 거다.
“뭐, 아무튼 일어난 일은 일어난 거고, 내 앞에 있는 일에 더 집중해야 하겠지.”
“빨리도 말하십니다.”
“그래서, 거사 진행은 어떻게 되어가나?”
“현재 훈련을 거의 마쳐가고 있습니다. 늦어도 올해 내에는 봉기를 시작할 겁니다.”
“내가 봉기를 재촉하는 건 내가 성과가 급해서가 아니라 그대들이 프랑스의 침략 전에 최대한 빨리 정권을 장악하기를 바라서라는 건 알아두도록, 영국에서 올 연락선이 오면 상황을 더 잘 알 수 있으련만.”
내가 타고 왔던 그레이트 웨스턴은 현재 복귀한 상태다. 나 하나를 실어나르기 위해 상업운항이 아닌 별개의 노선을 임시편성한 셈이었으니 이 항로에 계속 배치되지도 않는다.
즉 희망봉을 돌아오는 루트를 통해서 범선이 우편물을 수송한다. 그마저도 배가 사고로 침몰하기라도 하면 연락은 고스란히 끊긴다.
“잘 돌아가고 있을 겁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하니,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 두고 하늘의 뜻을 기다려야 하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래, 어차피 정기 연락선이 조만간 온다. 거기에 프랑스가 원정군을 편성해 벌써 출발시켰다는 이야기만 없으면 된다. 프랑스 내부 사정이 계속 혼란스러워서 한동안 원정군을 편성할 여유가 없기를 바라야지.
“그래, 신께서 우리를 지켜봐 주시겠지.”
만약 베트남에서도 실패하면 그때는 루이필리프 정권은 진짜 붕괴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럼 그 다음에 정권을 잡을 사람은 나폴레옹 3세려나.
그런데 나폴레옹 3세도 식민지 확보에 적극적인 양반이었단 거 생각하면 여기는 또 침략받을 공산이 큰데........
“앞일이 예측이 안 되는군.”
나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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