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1)
“베트남도 퀴레시어를 만들어야 합니다. 정권을 탈취한 뒤에는 늦습니다.”
정규군을 갈아버리면서 실전 경험치를 쌓아야 프랑스군과 비슷하게라도 싸워보지.
“말씀은 좋습니다만......”
그래, 문제가 있다.
흉갑은 아예 없고, 권총 수량이 넉넉하질 못하다.
원래 기병들이 최소 두 자루에서 그 이상씩 짊어지고 다니면서 총을 뿜뿜 쏴야 하는데 권총이 모자라면 죽도 밥도 안 되지.
게다가 한두 명 양성해서 되는 것도 아닌데.
‘베트남 현지에서는 매치락 이상의 총기를 생산하기는 무리, 인도나 본국에 주문해야 하는데 피스톨을 미리 주문해놓지 않았으니 이제 와서 부랴부랴 구해와도 늦을 가능성이 크다.’
“일단 흉갑은 페르시아 쪽에서 어떻게든 주문해봐야겠군, 권총은 아예 현지에서 생산하는 걸로 하고.”
“여기서 권총을 생산한다고요? 가능합니까?”
“물론.”
나는 한 가지에 생각이 미쳤다.
“여기에도 총포를 다룰 수 있는 기술자는 있지 않소?”
“물론 있습니다. 영국에서 가져온 총포 수준의 물건을 만들 수는 없지만 화승총 정도는 만들 수 있습니다.”
“그거면 됐소.”
수백 년 전에 동양에서 만든 물건인데 그걸 못 만들까.
영국제 플린트락 피스톨을 쓰면 너무 걸릴 위험이 크다. 하지만 동양 무기라면 어떨까.
‘흉갑은 원래 흉갑 자주 쓰는 페르시아에서 구하고, 소총은 스위스제, 야포는 독일제, 권총과 그 외 각종 냉병기는 자체생산한다면 프랑스가 시비를 걸 명분이 없지. 페퍼박스 라이플이야 내가 고안한 거라서 영국제라는 걸 알 사람도 없고.’
그때, 구르카 용병 하나가 급히 뛰어왔다.
“동양함대에서의 전갈입니다.”
“음?”
동양함대가...... 아, 조선 개항시키고 화산 이씨 조용히 찾아오랬지.
“했나?”
“예?”
나는 급히 편지를 펴서 읽어보았다.
***
19세기의 조선은 삐걱거리고 있었다.
이는 과장이 아니었다.
조선의 국내는 피폐했고,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가 조선의 모든 권력을 장악한 지 오래였다.
조세는 전세로 통합되어 대동법에 의해 미곡으로 통합되었다. 숙종 대에 비총법이 시행된 이래 세수 총액을 정해놓고 각 지방에 할당하여 세수를 액수화하여 운용하게 되었지만, 면세 대상이 너무 광범위했다. 한편 임진왜란 이후로는 아예 영정법이 시행되었기에 재정 문제는 크게 악화되었다.
그리고 조선의 악화된 재정을 수습하기 위해 정조는 세제를 신고된 토지 결수와 무관하게 액수를 고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간단히 말해 각 지역에 세금 할당량을 부과한 것이었고, 지방관들은 아무튼 간에 그걸 위로 바쳐야 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지방관이 세금을 수취할 경우 암행어사가 수령을 조졌고, 그렇다고 세금을 상황 봐서 걷으면 할당량을 못 채우니 윗선에서 조지는 이도저도 안 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는 단순히 부정부패를 일소하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작은 정부를 지향한 조선의 이념과 현실의 괴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결과는 흔히 후대에는 삼정의 문란으로 일컬어지는 것이었다.
황무지에 세금을 부과하는 진결, 전답을 토지 명부에서 누락시켜 탈세하는 은결, 정액 이상의 세금을 징수하는 도결. 황구첨정, 백골징포. 세금판 연좌제인 족징, 이웃에게 내게 하는 인징. 환곡까지.
정조는 오래전 죽었고, 순조가 즉위했으나 효명세자가 젊은 나이에 요절한 뒤 순조 본인도 사망해 어린 헌종이 8세의 나이로 즉위한 상황에서 정치적 권력은 수렴청정을 하는 신정황후 조씨의 가문인 풍양 조씨, 그리고 안동 김씨가 갈라가지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천주교에 대한 탄압 역시 빠지지 않았다.
물론 이 모든 정황을 동양함대가 파악한 것은 아니었지만, 동양함대에게는 단 하나면 충분했다.
천주교가 탄압되고 있다.
물론 영국은 국교회지만...... 일단 같은 기독교기도 하고 핑계를 대려면 뭐든 못 대랴.
그랬기에 영국군은 조선으로 쳐들어갔다.
***
“집결한 함선은 9척, 이 중 전투함이 7척이고 수송선이 2척, 구르카 용병들과 세포이, 본토에서 데려온 정규군이었습니다. 거기에 동인도 회사에 연락해 추가 증원함대를 준비했죠. 동원 가능한 총 병력은 수병과 해병, 용병들을 합쳐 5천여 명, 중국 개항장에서 활동하던 무장상선들도 동원해 보급선으로 삼았습니다.”
과잉전력은 아니었다. 아직 유럽에서도 철갑선은 취역하지 않은 시대, 이들이 동원한 함선은 당연히 전열함과 프리깃이었던 것이다. 화공이라도 당하면 문자 그대로 X된다.
“한강의 정보는? 공사께서 주신 정보에 따르면 한강을 따라가면 조선의 수도로 연결된다고 하며, 조선은 모든 기능이 수도에 집중되어 있기에 왕과 신하들만 손에 넣으면 조선 전체를 손에 넣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하셨다.”
물론 공사는 쓸데없이 과욕 부리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만일 왕을 잡았다고 해도 과도한 요구를 했다가는 지방 귀족들이 다른 왕족을 왕으로 추대하고 항전할 거라나 어쩐다나.
괜히 그랬다가는 안 써도 될 돈과 인명을 막대하게 소모시킬 테니 통상조약만 맺고 임무만 완수하고 돌아오라는 것이 공사의 경고였다.
그러나 슬그머니 욕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조선을 통째로 식민화하면 더 좋지 않겠는가?
“제독님, 저희는 저 한강이라는 큰 강에 대한 사전정보도 없고, 자칫해서 좌초된 상태에서 화공이라도 당하면 함대 전체가 죽은 목숨입니다. 게다가 함부로 강을 거슬러 올랐다가는 당연히 포격을 가해올 거고요, 조선도 컬버린(홍이포) 정도는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타르를 칠해 검어진 흑선들이라고 할지언정 여전히 목제인 건 변하지 않는다. 목재로 만들어진 전열함과 프리깃은 컬버린을 여러 발 뒤집어쓰면 위험하다. USS 컨스티튜션처럼 포탄을 튕겨내는 함선은 흔한 게 아니다.
게다가 영국 해군의 주력 화포인 캐논보다 컬버린은 기본적으로 사거리가 길다. 사거리만 길고 파괴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생산비가 비싼 탓에 가성비가 떨어지는 문재로 캐논에 밀려 유럽에서는 도태되기는 했지만, 상대가 해안포라면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조선을 개항시키는 데에서 만족하셔야 합니다. 내륙 깊숙이 들어가는 일은 최대한 피해야 함은 물론이고요.”
“쯧, 어쩔 수 없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 헤이우드 제독은 명령을 내렸다.
“한강의 수심을 재는 작업은 완료되었나?”
“일단 해안 인근만 조금 쟀습니다. 내부로 함부로 진입했다가 공격이라도 당하면 생환을 보장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그들은 수가 적다. 신중하게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함부로 진입했다가 좌초라도 하면 작전은 그대로 실패인데, 병력도 넉넉하지가 않으니. 심지어 지형에 얼핏 확인한 것으로도 수심마저도 지랄맞습니다. 공사는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거부할 수도 없다. 젠티안 공사는 런던에서 내각의 승인을 받아 동인도 회사의 지배권 동쪽의 모든 사안을 처리할 권한을 가지고 왔으며, 동양함대도 최대한 협력하라는 공문을 받은 지 오래였다. 동인도 회사도 달라는 물자는 나중에 값을 치를 테니 외상으로 내주라고 지시했다.
사실, 이럴 수밖에 없었다.
내각은 그 취지에는 적극 찬성했지만, 근본적으로 걸리면 골치아파지는 일이다 보니 의회에서 정식 예산을 편성하지는 못했다.
본토에서 무기를 준비하느라 소요된 예산은 이런저런 예산이나 예비비를 전용해야 했고, 그러고도 부족한 건 어음을 써야 했다. 현지에서 작전이 개시된 뒤의 비용은 동인도 회사가 감당해야 한다. 물론 영국 정부가 나중에 동인도회사에 채워주기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미 동인도 회사는 회사의 임원 3분의 1이 영국 정부에 의해 임명되는 등 사실상의 영국의 인도 통치 대리인에 불과했기에 내각의 뜻에 거스를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공사가 내각의 백지 수표를 들고왔다고 한들 제독께서 명령 없이 행동하신 것에 대한 문제를 대신 뒤집어쓰시지는 않으실 것 아닙니까.”
공사의 명령은 전부 구두 명령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제독에게 뒤집어씌우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마당에 제독이 월권행위를 하다 걸리면 그걸로는 안 끝날 거다.
“그건 그렇겠지. 아마 조선에서 피해가 크다면 주저하지 않고 우릴 잘라낼 거야.”
그렇다고 공사의 명령을 무시하자니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더럽고 치사해도 최소한의 피해로 시킨 만큼의 성과를 거둬올 수밖에.
“공사는 조선을 식민화하라는 말은 한 적이 없지, 그냥 개항만 강요하고 사람만 찾아오라고 했어. 그럼 거기까지만 하면 충분하네,”
“함장님, 제독님, 조선인들이 경계하는 듯합니다.”
“조선인들이 발포하거나, 내가 명령하기 전에는 쏘지 않는다. 일단 조선인들 상대로 사절을 보내지.”
요구사항은 간단하다. 개항과 통상.
뭐 그 전에 명분으로 선교사 처형과 기타 등등을 명분으로 조선을 적당히 위압해야겠지만 그런 일이 있었어도 개항과 통상 등을 허용해주면 없던 일로 하고 함께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대충 그런 식으로 압박한다.
물론 조선 정부가 거부하면 무력행사를 들어가야 하지만, 그건 제독에게도 좋은 일은 아니다. 약탈을 할 수 있는 건 좋다고 해도 함선을 상실하는 등의 피해가 나거나 전투가 길어지면 그건 다 그의 책임이 될 테니까.
“제독님, 조선 측에서 소형선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함선으로 부를까요?”
“그래, 기함으로 안내해라, 중국어가 통할까?”
“모를 일이지 않습니까? 그래도 통역을 대기시키도록 하겠습니다.”
***
<그대들은 누구인가?>
<국왕이신 윌리엄 4세 폐하께 충성하는 그레이트브리튼과 아일랜드 연합왕국의 왕립해군 동양함대다>
<어찌하여 이곳에서 수로를 막고 있는가?>
<우리는 그대들 조정에 항의하기 위해 방문하였다. 그대들은 종교를 박해하고 있고, 유럽인들을 살해하였다. 이에 항의하고, 앞으로 이러한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정식으로 통상과 수교를 맺고자 한다.>
<국법은 외인들이 조선의 영토를 밟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돌아가라>
<거부한다. 우리 역시 상부의 명령을 받을 뿐이다. 임무를 완수하기 전에는 돌아갈 수 없다, 당신들의 고위 관료를 불러라, 그들과 회담하겠다. 회담을 거부할 시 부득이하게 무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음을 그대들의 상부에 전달해주기를 바란다.>
첫 회담은 서로의 기본적인 입장 차이만을 확인했다.
얼마 전 임명된 신임 동양함대 사령관 헤이우드 제독은 내각의 지지를 받는 공사가 중요한 일이니 반드시 성사시키라고 압박하는 상황에서, 그리고 프랑스의 식민개척 저지라는 대의명분이 있는 상황에서 물러났다가 무슨 후폭풍을 당할지 알 수가 없었고, 조선은 당연히 개항할 생각 자체가 없었다.
그 결과, 조선 조정은 영국군의 요구를 묵살하기로 결정했고, 동양함대는 무력 행사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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