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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몰락귀족-35화 (35/60)

리벨리온(2)

앙코르 와트의 탑들 사이를 몇몇 사람들이 걸었다.

인도에서 고용한 구르카 용병 넷, 베트남 반군 넷, 그리고 나와 노인, 그리고 다른 두 명이었다.

“공사.”

노인은 입을 열었다.

“우리도 눈이 있고, 귀가 있네,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 그리고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도 무엇보다 절실하게 실감하고 있네.”

“..........”

“하지만 자네들의 입장에서는 아니겠지.”

“무슨 말이 하고 싶으신 겁니까?”

“마음에 걸리는 게 있네.”

“말씀하십시오.”

“설령 우리가 승리하더라도, 유럽에서의 조약이 파기되지 않으면 결국 프랑스는 다시 돌아오게 되는가?”

“프랑스인들처럼 자존심이 강한 이들은 유럽에도 몇 없죠, 한 번 상한 자존심은 철저하게 복수할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때 영국은 없겠지.”

“그렇기에 제가 자강을 권했습니다.”

나는 말을 이었다.

“스스로 강해지십시오, 우리가 주는 총과 포에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그 총과 포를 만드십시오. 우리가 가르쳐준 대로만 하지 말고 스스로 생각하십시오.”

“하지만 한계가 있겠지, 자네가 약속해줄 수 있는 건 군사고문단까지가 아닌가.”

“다른 것이 필요하십니까.”

“아직 베트남의 일인지하 만인지상이 되지도 못하였는데 벌써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온만일지 모르지. 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네, 우리가 스스로 견뎌내기에는.”

인구의 95%가 농업에 종사하는 이 베트남의 상태는 총포를 좀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극적으로 개선될 수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

“유학생들을 보낼 수 있겠는가.”

“유학생입니까.”

“그렇네.”

노인은 차분히 말했다.

“전쟁이 모든 것을 파괴한다고 해도, 모든 국토가 쑥밭이 되고 모든 재물이 약탈당한다고 해도 파괴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손에 익은 기술과, 머리 속에 든 지식이네. 총포를 만드는 지식을 조금 배운다고 이 나라에서 총포를 만들 수 있겠는가? 인구의 대부분이 농사를 지어서 그날 한 끼 입에 풀칠이라도 하는 이 나라에서?”

기록적인 대기근이 몰아치고 있어서 그렇지, 원래 베트남이 쌀 생산량이 적은 나라는 아닐 텐데.

“그대들의 모든 것을 배우겠네, 그래야 그 반, 아니, 반의 반이라도 따라갈 수 있지 않겠는가.”

“아시겠지만, 유학생을 보내는 것 자체는 가능합니다. 다만.....”

“돈이 문제라 이거겠지. 해결할 방법이 없지는 않겠지만. 황실을 페하고 그 재산을 몰수하면 웬만큼 나오지 않겠나?”

흠, 뭐 명색이 황제의 내탕금인데 그렇겠지?

“그 돈을 전부 써서라도 유학생을 보내고, 그대들에게서 이런저런 것들을 사들일 생각이네.”

“사실 그건 제게 말씀하실 필요도 없습니다만, 제가 다리를 놓아주시길 원하시는 겁니까?”

“그렇네.”

“그러려면 제가 런던으로 돌아가야 합니다만, 적어도 제가 공사에 재직하는 동안은 어려울 듯 합니다.”

“그렇다면 돌아가는 길에 그들을 데려가 주게나.”

거 참 노인네 끈질기네.

“사례가 문제라면, 내 약속하지, 자네가 바라는 한 가지 부탁을, 이유도, 쉽고 어렵고도 따지지 않고 들어주도록 하겠네.”

“그런 차원의 문제는 아닙니다만......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고맙네.”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탑 꼭대기에 걸린 달을 보았다.

“자네도 알겠지만, 우리 가문은 상인 가문이네.”

“그런 것 같습니다.”

“상인은 시류를 잘 타야만 해, 오래 전 중국에서 건너온 우리 가문의 시조부터 이어져내려온 가훈이지, 그랬기에 지금까지 많은 부를 쌓을 수 있었네.”

“그랬군요.”

“그리고 내 눈에는 지금 거센 급류가 보이는군.”

“........”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는 자네라는 인물이 서 있고.”

“저라는 인물을 과대평가하시는 듯합니다.”

“과대평가? 하하...... 자네가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것이지. 나는 이곳, 안남에서 살다가 있었는지도 없었는지도 모르게 죽을 운명이지만, 자네는 세계를 웅비할 봉황이야. 이 늙은이가 유일하게 자랑할 만한 잔재주지. 사람을 볼 줄 아는 것 말이네. 이미 자네를 중심으로 거대한 파란이 일고 있는데 말이지.”

“.........”

다른 건 몰라도 파란은 할 말이 없기는 하다. 저질러놓은 짓이 워낙 많으니.......

“자네는 설령 날개를 접고 해가 들지 않는 동굴을 찾아든다고 할지라도 그 동굴 안의 폭류 탓에 다시금 날아올라야 할 팔자네, 그리고 나는 자네의 날개가 일으키는 파란을 등진 채 쪽배 위에 앉아 있는 모양이지. 그 비바람이 내 쪽배에 순풍이 되어주기를 기대하면서 말이야.”

“저는 베트남에 어떠한 유감도 없습니다.”

“그렇지,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 호혜적인 관계를 주고받을 수 있는 걸세, 관심 분야가 아예 다르니까.”

그림자처럼 따라오던 둘을 힐끗 바라본 노인은 한숨을 쉬었다.

“내 외손들이네, 찌에우 티 니(趙氏貳), 찌에우 티 셴(趙氏蓮)이지.”

삿갓을 눌러 쓴 두 사람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나보다는 저 아이들과 더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될 걸세. 군무의 상당 부분은 저들이 맡고 있으니 말이야.”

“군무입니까?”

“옛 사서의 군주들에 비해 결코 못하지 않은 군재를 지닌 아이들이네, 내가 죽게 되더라도 뒤를 맡기고도 남지.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자네가 베트남을 돕는 한, 우리 역시 베트남 내에서 자네의 이권은 최대한 보장해주겠네.”

이거 그...... 고종 느낌인데, 고종이 운산금광 헐값에 알렌에게 팔아먹.....

“그럴 가치가 있다 보십니까.”

“이 늙은이가 못 배우고 볼품없어도, 직감 하나는 남부럽지 않네, 자네는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 반드시 자네는 멀지 않은 미래에 이 동양에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테니, 그런 자네와 미리부터 우호적인 관계를 수립하는 것은 당연히 도움이 되리라 믿네, 자네들의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일종의 투자지, 내 안목을 믿고 하는.”

***

-타앙!

총성 한 발이 숲에서 메아리쳤다.

재장전 없이 총성이 이어졌다

-탕! 탕! 탕!

장전된 총알을 다 쏜 나는 총을 내려놓았다.

“괜찮지 않습니까?”

“과연, 관군의 조총과는 화력부터가 다르긴 하겠군요, 하지만.......”

자신을 찌에우 티 셴이라 소개한 여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너무 크고, 장전에 시간도 오래 걸릴 것 같네요. 제식 화기로 사용하기보다는 차라리 코끼리 위에서 거치해놓고 사용하는 게 낫겠는데요?”

“뭐 거기까지 간섭할 생각은 없습니다. 군의 운용은 귀측이 알아서 할 일이죠, 저희는 귀측에 무기를 넘길 뿐입니다. 아직 군사고문단은 오지도 않았고 말입니다.”

내가 협상이 타결되었다고 연락을 보냈으니 무기를 부랴부랴 나르는 한편 군사고문단도 오고 있긴 할 거다.

“그리고, 귀측의 이야기처럼 이 총을 우리가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건 단기간 내에는 어려울 듯 합니다.”

나도 그건 동감이다. 퍼거션 캡에다가 총신다발을 돌려서 재장전하는 역할을 하는 기어까지 들어가는데 그게 19세기 베트남에서 뚝딱 나올 기술이냐?

뭣보다 총신을 여럿 뭉쳐놓은 탓에 무게가 무겁다. 손으로 들고 쏠 게 못 되지는 않지만 오래 들고 다니면 분명 지칠 거다. 재장전도 오래 걸리고.

“퍼거션 캡은 계속 공급해줄 예정입니다. 탄환 자체는 베트남에서 생산한다고 해도 퍼거션 캡은 화학 기술이 필요하니.....”

습도가 높은 베트남의 정글에서는 불발날 수 있는 플린트락이 매치락보다 우위에 있다고만은 할 수 없지만, 퍼거션 캡은 무조건적으로 우위에 있다.

그리고 퍼거션 캡은 1808년에 만들어졌음에도 아직 정식으로 채용한 국가가 없다. 우리야 민간 시장에 풀린 걸 쓸어왔지만 열강들이 안 채용한 이유가 참으로 쪼잔하고 졸렬하다. 발명자의 특허권이 소멸될 때까지 다같이 채용 안 하고 버틴 거다.

그러니 프랑스군이 참공하더라도 그들은 플린트락 소총을 들고 오는 데 비해 이들은 퍼거션 캡 머스킷이나 라이플로 중무장하고 맞이해줄 거다.

“우리는 이걸 페퍼박스 리볼버 라이플이라고 부릅니다, 여섯 발이 장전되죠, 일단 인도에서 생산할 수 있으니, 이 물건을 공급할 생각입니다.”

이미 재고가 1천 정 정도 있지만, 우선 백 자루만 가져왔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반군 규모가 크네, 응우옌 왕조에 대한 불만세력이 이렇게 많았나? 게다가 이거, 다 규합한 것도 아니잖아?

대놓고 코끼리들에 기병까지 대규모로 동원이 가능할 정도로 모였다니,

“응우옌 왕조는 고작 2대를 이어져내려온 왕조, 내외가 불안정한 건 당연한 일입니다.”

보충설명이 들어왔다.

“응우옌 가문은 과거부터 대귀족이었지만, 찐 가문과 계속해서 경쟁했습니다. 레 왕조 시기 응우옌 가문은 사실상 남부의 왕이었지만, 농민반란을 틈타 찐 가문이 남부를 침공하면서 한 차례 몰락했으나 자룽 황제가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재기에 성공, 떠이선 왕조를 멸했습니다.”

끼어든 상대를 본 나는 잠깐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이름이.....”

“찌에우 티 니입니다.”

“....... 조이라고 부르면 안 되겠나?”

이름 길어서 헷갈리네, 여기 사람들 하는 식으로 그냥 니라고 하기에는 좀 뭔가 없어 보이고.

“마음대로 하십시오.”

“큼, 그래, 조이, 그런데 보통 왕조가 개창한 뒤로는 힘이 넘치지 않나?”

“자룽 황제의 뒤를 이은 현 황제 민망은 참족 회교도에게 강제로 도마뱀이나 돼지고기를 먹이거나 힌두교에게 소고기를 먹이고 가톨릭 신자들은 고문하다 죽이고 있습니다. 증오가 들불처럼 일어나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죠, 당장 수도를 위협할 정도로 규모가 컸던 반란만 세 차례입니다.”

그 와중에 군비는 되려 축소하고 있다. 물론 군을 경시한 건 아니지만 그 군비 축소에 이어 관료들의 부정부패와 무관심 때문에 베트남 정규군은 병력은 편제에 한참 못 미치고 무기들은 노후화된 등 한없이 약화되어 있는 상태라는 것이 조이의 설명이었다.

“저 기병도 좀 개량을 해야겠군요.”

검과 활, 총과 둔기 등으로 무장하고 갑옷은 입지 않은 기병들.

“제가 기병이 아니니만큼 숙련도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겠습니다만, 베트남 정규군을 상대하는 데에 있어서는 무리가 없을지 몰라도 단순 경기병으로는 프랑스의 흉갑기병부대를 상대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유럽에서도 가성비가 떨어지는 만큼 모든 국가가 퀴레시어를 보유한 건 아니다. 그러나 프랑스, 러시아, 독일 등은 퀴레시어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퀴레시어는 대기병 요격 능력은 명백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그것이 이 국가들에게서 퀴레시어가 유지된 이유다. 나폴레옹만 해도 흉갑기병 1개 연대는 후사르 3개 연대에 맞먹는다는 극찬을 했으니까.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베트남군이 기병 대 기병으로 프랑스군과 부딪히면 갈려버릴 거란 거다.

‘딱히 영국이라도 상황이 다르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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