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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몰락귀족-34화 (34/60)

리벨리온(1)

시아누크빌, 베트남. 앙코르 와트.

앙코르 와트.

700년 전에 지어진 고대 사원.

캄보디아의 사원이기는 하지만, 지금 캄보디아가 베트남의 지배를 받고 있으니 베트남의 사원이라고 해도 틀리지는 않다.

실제로 내가 여기서 만나는 이들도 베트남인이고.

“그나저나 베트남인들이 쩐떠이 성(캄보디아를 정복한 베트남이 설치한 행정구역)을 본거지로 삼았을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만. 그러니까... 보통 연고지가 있지 않습니까? 보통.....”

“반역을 하려면 자기 고향을 중심으로 난을 일으키는 게 더 쉽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겠지.”

늙은 남자가 인상을 찡그렸다.

“사실이지, 하지만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그다지 없소, 아무리 민심을 잃었다지만, 황제가 자기 코앞에서 군대를 양성하는 것도 모를 만큼 무능하지는 않으니까.”

“흠, 그런 문제가 있었군요.”

“무엇보다 캄보디아인들과 란쌍(라오스)인들도 자신들을 짓밟는 황제에게는 유감이 많아서 병력을 충원하기도 쉽소.”

“하지만 당신들의 최종 목적과는 다를 거 아닙니까.”

이들의 최종 목적은 정권 탈취.

라오스와 캄보디아의 목적은 독립.

결국 이들 세력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

공동의 적이 제거된 뒤에.

“미스터 응우옌,”

“티우라고 부르시오. 여기 있는 사람들 중 4할은 응우옌이니.”

“흠, 그러면 티우 씨, 우리는 당신을 도울지 말지를 고려하고 있지만, 그 전에 우리와 이해관계가 일치하는지를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뭘 원하지?”

“그건.”

나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회의장에서 말씀드리도록 하지요.”

***

구르카 호위 몇만 이끌고 온 나는 호위병들을 놔두고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갔다.

등잔 하나로 밝혀진 조명은 어둡기 그지없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얼굴에 음영이 져 있었다.

“당신들은 우리를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하는 모양이지만, 우리들은 여러 가문들로 이루어져 있소, 그리고 각자의 생각이 있고.”

노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상석에 앉아서 옆 자리를 권했다.

“손님이시니 이곳에 앉으시게.”

“그러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태연히 노인의 옆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노인도 있었고, 젊은이도 있었고, 심지어 여자도 몇 끼어 있었다.

“우선, 제 소개를 드려야겠군요, 윌리엄 4세 폐하의 내각에 의해 베트남 공사로 오게 된 에드워드 젠티안입니다, 그런데 와 보니 제 직장이 사라졌더군요.”

“황제가 모든 외국인들을 추방하라는 명령을 내린 뒤로 모든 공사관이 폐쇄되었지.”

“예, 그리고 당신들에 대해서도 조금 들었죠, 당신들과 접촉하는 데 무려 9개월이나 썼습니다.”

실제로는 3개월이다. 내가 부임하기 전부터 6개월 가까이 현지에서 조사하고 리스트를 뽑아놓고 있었으니까.

근데 와서 보니 맞는 게 없냐.

“당신들은 무엇을 위해 싸우고자 합니까?”

“이곳에 있는 이들은 다양한 이유로 여기 모였지, 누군가는 자유를 위해, 누군가는 권력을 위해.”

티우 노인은 흰 수염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 나라의 위기를 우려해서.”

“인을 해치는 자는 적이라 하고, 의를 해치는 자를 잔이라 하며, 잔적한 이는 필부일 뿐이니, 저는 무왕이 주라는 필부를 처형하였다는 말을 들었지 임금을 시해하였다는 말은 들어본 바 없습니다.”

순간, 노인을 포함해 여러 사람이 눈을 크게 떴다.

“양이...... 실례했소, 영국인이 맹자를 아시오?”

“대영제국 외무부 전체에서 저보다 아시아의 문화에 대해 더 잘 아는 이는 없으리라 자부합니다.”

당연하지, 난 현지인이거든? 정신만이지만.

“아무튼, 당신들은 최소한 응우옌 왕조가 끝나야 한다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했다는 것이군요, 그러니 이곳에 모였을 테죠. 그렇다면, 그 다음은 어떻습니까.”

나는 둘러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응우옌 왕조가 끝나고, 정권을 새롭게 잡았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누가 황제를 할 것입니까. 아니면 공화국을 세울 것입니까? 국경은 열 것입니까, 닫을 것입니까? 이곳, 캄보디아와 라오스의 문제는 어찌 처리할 것입니까.”

빠르게 말한 나는 냉정히 말했다.

“저는 당신들이 어떤 베트남을 꿈꾸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모두가 침묵했다.

“그렇다면 그대는?”

노인이 입을 열었다.

“그대는 어떤 베트남을 바라는가?”

“제가 바라는 건 열강을 이겨내는 베트남입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유럽의 각 국가들은 몇 년 전,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 모여 회담을 벌였습니다. 당신들이 듣기에는 불쾌하겠지만 문자 그대로 세계를 어떻게 갈라먹을까를 논의하는 회의였죠. 거기에서 베트남의 운명을 포함해 시암과, 기타 국가들이 포함된 이곳, 저희가 인도차이나라 부르는 지역의 운명도 결정되었습니다. 프랑스인들이 당신들을 지배하러 올 겁니다.”

“그게 무슨!”

젊은 목소리 하나가 분노에 차서 끼어들었다.

“너희 유럽인들이 뭐기에......”

“시옌!”

조금 나이든 목소리가 버럭 터져나오자, 분노를 토해내려던 목소리가 멎었다.

“...... 계속해도 되겠습니까?”

“해 보게나.”

“당신들이 가진 포와, 창과, 활로 우리를 막을 수 없다는 것, 지난 다낭 해전에서 모두 인지하셨을 겁니다. 프랑스인은 한 명도 죽지 않았지만 다낭에서는 2천 명에 달하는 사상자와 수십 척의 군선들이 침몰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왜, 당신들이 너무 착해서 그런가? 그걸 믿으라고?”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저 배알이 꼴리는 것 뿐입니다. 물론 우리 역시 식민지로 배정받은 구역이 많지만, 저 프랑스인들이 몇 년 전에 우리에게 같잖은 이유로 시비를 걸다가 전쟁까지 터트려놓고는 당당하게 자기 몫을 주장하는 것이 매우 같잖거든요.”

“그래서?”

“하지만 조약상, 우리는 대놓고 군대를 보내 프랑스의 엉덩이를 걷어찰 수 없습니다. 적어도 이 인도차이나에서는 그렇죠, 그런데, 수상부터 외무성의 말단 직원까지 그런 생각을 품는 와중에 제가 나타났습니다.”

나는 두 팔을 벌렸다.

“저는 유서 깊은 귀족가의 아들이자, 차기 가주입니다. 젊은 나이에 외무성의 고위직에 올라 있고, 부유한 집안의 막내딸과 혼인했습니다. 명성도 있죠. 당신들이 유럽에 가서 젠티안이라는 이름을 대면 어지간한 촌부들도 저희 가문을 알 것입니다. 부와, 명예, 둘 모두 있군요. 그렇다면 제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 권력?”

“저는 수상에게 제안했습니다. 베트남인들을 무장시켜라, 그들을 무장시키고, 우리의 기술을 가르쳐주어 우리가 직접 움직이지 않고도 프랑스인들의 코를 크게 깨주자! 어차피 프랑스의 정예병은 러시아에서 그 절반이, 네덜란드에서 나머지 절반이 쓰러져 죽었으니 저들의 병력은 오합지졸에 불과하니 베트남인들도 우리의 무기와 전술을 배우면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국왕 폐하께서는 크게 기뻐하실 것이고, 이를 성공시킨 제 입지는 크게 확장되겠죠.”

나는 탁자를 짚고 허리를 숙여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아직 지위에 비해 매우 젊습니다. 그런 제가 일인지하 만인지상을 노리지 못할 이유가 있습니까.”

“....... 하하하.”

티우 노인이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대영제국을 어떻게 믿느냐고 물으시려면, 저는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그들을 믿지 마십시오, 믿을 필요조차 없습니다.”

나는 주먹으로 내 가슴을 쳤다.

“그 대신 저를 믿으십시오, 저라는 인간의 야심을 믿으십시오, 당신들의 성공은 저를 대신의 자리에 올려보내줄 발판이 될 테니, 당신들이 프랑스를 몰아내고 독립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을 아끼지 않을 겁니다.”

대영제국을 믿지 마라.

내 약속을 믿을 필요도 없다.

대신, 내 야망을 믿어봐라.

“우리는 조약을 깰 상황이 아니니, 당신들을 위협할 자들은 프랑스뿐입니다. 그리고 응우옌 왕조는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죠, 그래서 당신들입니다. 당신들은 개혁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고, 프랑스를 싫어하며, 마지막으로 응우옌 왕조 역시 싫어하니 말입니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후려친 가슴팍이 아직도 좀 얼얼했다.

“그래서, 충분한 설명이 되었습니까?”

“다른 건 몰라도, 자네에 대해서는 알겠더군,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 될 상이야.”

지금 조조가 여기서 왜 나와.

“저는 그저 평화를 바라는 마음과 제 조국을 위한 충심만으로 가득할 뿐입니다.”

가면을 꺼내 쓴 대답이 나오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나직이 웃었다.

그들도 아는 것이다. 내가 평화 따위는 바라지 않는다는 걸.

아주 저주스러운 전쟁을 바라고 있다는 걸.

베트남인들 몇 명이 죽어나가든 간에 내가 신경쓰지 않는다는 걸.

하지만 그런 입바른 소리는 필요 없었다.

이것은 게약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기 위한 계약.

베트남인들도 맨주먹으로 프랑스에 대항하다가 식민지가 되느니 영국의 군사지원을 받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쯤은 인지하고 있고, 거기에 영국이 원하는 대가라고 해 봐야 프랑스를 쫓아내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물론 신 베트남 정부는 어찌되었든 간에 친영적인 면모를 보이게 되겠지만 그건 상수에 가깝고......

“당신들...... 아니, 당신이 원하는 것이 우리의 프랑스에 대한 승리로써 프랑스의 위신을 추락시키는 것이라면, 당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삿갓을 눌러 쓴 묘령의 여성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좋은 질문이군요.”

나는 미소를 지었다.

“우리 군이 쓰는 것과 동급의 소총 우선 1만 정과 야포 200문, 탄약, 군사고문단 20명. 필요에 따라 군자금과 추가 무기 공급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이 정통 베트남 정부가 되기 전, 베트남 전체의 민심을 당신들에게 돌려줄 최강의 명분도.”

“그게 뭐죠?”

“이곳에서, 리 왕조를 모르는 이가 있습니까?”

있을 리가 없었다.

“리 왕조의 마지막 생존자는 고려로 도망쳤죠, 그리고, 우리가 입수한 정보로는 그들은 아직 저 조선에 남아 있습니다. 그걸 증명할 수 있는 족보도 있고 말입니다.”

나는 마지막 카드를 뒤집었다.

“리 왕조의 마지막 황손들을 당신들의 손에 넘겨드리겠습니다. 그들은 내세워 민심을 잃은 응우옌 왕조를 타도한다면, 적어도 베트남의 피가 흐르는 이들 중 9할은 당신들을 지지하지 않겠습니까. 혹시 이곳에서 자신이 황제가 되고 싶은 분이 계십니까?”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이곳에 있는 군벌들은 다들 힘이 고만고만한 수준, 몇몇 가문이 두각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압도하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대놓고 황제가 되려는 야망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리 왕조의 부활을 대의명분으로 내세우고, 실권은 당신들이 손에 쥐십시오, 우리가 하듯이 말입니다. 이게 우리가 당신들에게 제시하는 조건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참석자들은 이 제안을 곱씹는 듯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침묵했다.

“간단히 거수 투표로 정하지.”

노인이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이 협력에 반대할 자가 있으면 손을 들어보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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